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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나이 50에 갱년기가 시작되고 무기력증이 왔습니다. 대구에서 서울로 이사와 아는 사람도 없고, 직장 생활도 지쳤습니다. '어떻게 살까?'라는 생각에 멍하게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인터넷에서 50에 해야 할 일을 검색하고, 정토회와 정토불교대학을 알았습니다. ‘불교대학에서 사찰 예절도 가르쳐 주고, 108배도 알려 주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인맥도 만들고 싶었습니다. 옆에서 보던 딸이 “엄마 내가 등록금 줄게. 한번 다녀봐” 하길래 입학했습니다.
제가 입학한 2020년 3월부터 정토불교대학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전환하였습니다. 법당을 정리할 때 법당에 몇 번 가서 봉사하였지만, 오프를 기대했던 저는 '계속 다녀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그러나 '마음먹은 김에 하자.'라는 마음으로 다녔습니다. 학기 초에는 화면을 끄기도 하고, 직장 근처 카페에서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수업은 계속 참여했습니다. 화상으로 여러 사람을 만나는 것이 불편했지만, 점차 익숙해졌습니다
입학 후, 얼마 되지 않아 천일결사 입재식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인 것을 보고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무슨 일을 하는 단체일지?, 뭔가 있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보다 나이 많은 사람이 진행자도 하고 돕는 이도 하는 것을 보고 저의 궁금증은 커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는 것을 보고, 제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라는 느낌과 '나도 진행자를 하고 싶다."라고 생각했습니다. 호기심과 믿음으로 경전대학에 진학하였고, 지금은 전법활동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는 시골에서 2남 5녀의 막내딸로 싹싹하고 명랑하게 자랐습니다. 부모님의 심부름도 잘하는 딸이었습니다. 부모님은 가정교육을 중시했습니다. 항상 자식들의 안위를 살피며, 성실하고 따뜻했습니다. 어릴 적 추억은 행복했습니다. 저는 부모님을 의지처로 삼고 살았습니다.
불교대학 입학 후에 한 달쯤 지나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정신없이 보냈습니다. 그 시기에 다닌 불교대학은 어머님이 주신 선물 같았습니다. '꼭 졸업해야겠다'라고 마음먹었습니다. 어머니 돌아가신 후 마음도 다스리지도 못했는데 4개월 후 아버지마저 돌아가셨습니다.
1년 사이 부모님 두 분 다 세상을 떠나자,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지푸라기라도 붙잡고 싶은 마음에 즉문즉설을 듣고, 경전대학 수업을 하면서 마음을 추슬렀습니다. 정토회는 제 마음의 의지처였습니다. 그런 고마운 마음이 몸이 아파도 봉사를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직장 생활을 수행처로 삼아라.'라는 법문을 들었습니다. 서울에서 힘들게 얻은 직장이라 3년은 버티고자 했습니다. 이것도 못 하면 저는 여기서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3년을 채운 후, 2022년 1월에 직장을 그만두었습니다. 그때 저는 탈진 상태가 되었습니다.
부모님 부재의 상심과, 3년을 버티면서 참고 지냈던 직장 생활로 몸이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직장을 그만두고 1년 동안 거의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통증이 너무 심해 이 병원 저 병원을 찾아다녔습니다. 쇼크렌 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왜 내게 이런 이상한 병이 왔나?'라는 싫은 마음과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지도 않고, 남들이 잘 알지 못하는 질병을 진단한 의사가 원망스러웠습니다.
지금 돌아보니, 지난 일들은 모두 감사한 일입니다. 병명도 알고, 제게 어떤 질병이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의사를 원망했지만, 지금은 감사합니다. 생각을 바꾼 덕분인지 몸이 조금씩 회복되었습니다. 2022년 6월, 깨달음의 장에 갈 수 있을 정도로 몸이 회복되었습니다. 컨디션이 좋지는 않았지만, 참여했습니다.
깨달음의 장에서 아이들과 남편을 내 소유물로 생각하고 있었음을 알았습니다. 남편의 말을 쓰레기인 줄 모르고 몇십 년을 들고 다녔습니다. ‘저 사람이 나에게 저런 말을 하다니, 어떻게 그럴 수 있나?' 하며 원망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니, 몇십 년 동안 가졌던 고민이 한순간에 깨지는 순간을 경험했습니다.
남편에 대해 기도하며 원망에서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남편 덕분에 아이들도 태어났고, 불법도 알게 되었습니다. 부모가 훌륭해야 아이도 잘될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이렇게 정리하며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엉켜 있던 마음들이 하나씩 풀어졌습니다. 이렇게 저를 변화시킨 정토회는 바로 제가 찾고 있었던 곳이었습니다.
정토회에서 활동하며 돈의 가치가 바뀌었습니다.
서울에 살기 위해 돈을 버는 것이 제일 큰 문제였습니다. '돈은 꼭 벌어야 한다. 많이 벌어야 한다. 당당하게 잘 살아야 한다.'라는 마음이 컸습니다. '생계가 위험할까?'라는 불안한 마음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정토회 활동을 하면서 돈이 있다고 돈의 구애를 안 받는 것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각자 고민하는 괴로움이 다를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더 이상 가진 것이 없음에 우울하지 않습니다.
작년 봄, 경제적으로 매우 힘들었을 때 ‘있는 돈 다 정리하겠다. 나는 무일푼이고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다. 다시 시작이다.’라고 생각하니 돈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졌습니다. '나는 오뚝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매일 천일결사 기도합니다. 기도문의 '적게 먹고, 적게 입고, 적게 쓰고'라는 이 문구가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스님의 하루를 보면서 직접 실천하고, 봉사활동 하는 것을 보고, '저렇게 살 수가 있구나!' 하는 확신도 생겼습니다. 저는 아직 일에 집중할 수 없지만, 편히 쉴 수 있는 집이 있고 배불리 먹을 양식이 있고 추위에 떨지 않을 만큼 걸칠 옷이 있음에 소중하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생활비를 줄이고 소비를 줄여도 살아갈 수 있음을 경험하였습니다. "소비를 줄여도 살아갈 수 있다."라고 친구들에게도 당당하게 말합니다.
정토회에서 수행, 보시, 봉사하며 부처님 법을 배우니 제가 갈구하던 일들이 바로 여기에 있었구나!' 하며 무릎을 '탁' 쳤습니다. '여기서 발 빼지 말자.'라는 생각으로 아픈 몸을 이끌며 지금까지 하고 있습니다. 가볍게 했던 108배가 몸이 아프면서 큰 고통이었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꾸준한 관리와 치료, 그리고 마음공부를 통해 지금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정토회에서 하는 보시는 저에게 뿌듯함과 감사함을 줍니다. 이전에는 보시하고 싶어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고, 정말 필요한 곳에 쓰이는지 부정적인 마음이 있었습니다. 정토회에서는 제 형편과 상황에 따라 편하게 할 수 있고, 투명하게 쓰이니 감사합니다. '저의 작은 보시가 세상 그 누군가에게 양식이 된다.'라고 생각하니 제 소비 습관도 줄일 수 있었습니다.
봉사하며 '봉사한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시간이 있으니 불러주고, 필요로 하는 곳에 갈 수 있으니, 큰 행복이고 희망입니다. 누군가가 저를 찾는 것은 행운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며 제 문제가 가벼워졌습니다. 앞으로 시간 되면 어디에서든 봉사하겠습니다. 저의 명심문은 ‘지금 이대로 아무 문제 없습니다. 오늘도 제 마음은 편안합니다.’입니다.
이정옥 님의 진솔한 이야기를 듣고, '가진 것에 감사하기, 지난 일들은 모두 잘된 일이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를 저도 실천하려 합니다. 가을의 풍성함을 여러 사람과 나누듯 불법을 주변에 나누는 이정옥 님의 모습에서 풍성하고 아름다운 보름달을 보았습니다.
글_이지우 희망리포터 (서제지부 서초지회)
편집_최미영 (국제지부 아태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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