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성동지회
도량을 쓸고 닦으면서, 제 마음도 맑고 고요해집니다

정토사회문화회관은 지하 5층 지상 15층 규모입니다. 그런데 전문가를 고용하지 않고, 비전문가인 정토회원들이 건물 전체를 관리하고 있습니다. 누가 이것이 가능할지 꿈이나 꾸었을까요? '해외 토픽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렇게 안전하고 멋지게 관리할 수 있는 그 바탕에 올해 68세 된 박봉순 님이 있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계속 청소하고 싶습니다

정토사회문화회관은 서울제주, 인천경기서부, 강원경기동부 등 수도권 3개 지부에 속한 18개 지회에서, 한 달에 한 번씩 돌아가며 도량청정 봉사를 합니다. 봉사자가 모이면 ‘일과 수행의 통일’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먼저 4층 소강당에서 법륜스님의 법문 ‘봉사란 무엇인가’와 유수스님의 법문 ‘정토사회문화회관이 건설된 배경과 의미’를 듣습니다. 그리고 1시간 정도 청소, 10분 명상, 나누기로 진행됩니다. 전체 2시간 반 정도 소요됩니다.

저는 각 요일 정기 봉사자와 지회 봉사자들이 원활하게 소통하고 봉사할 수 있도록 조율하는 일을 합니다. 정토사회문화회관의 월별 청소계획을 미리 짜고 그 계획이 잘 진행될 수 있도록 소통합니다. 청소도구 준비와 청소 구역 안내도 합니다. 도량청정 봉사자들의 노력으로 정토사회문화회관이 청정하게 관리되고 있음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나중에 회향하여 후임자가 와도, 저는 요일 정기봉사자로 돌아가 계속 청소하고 싶습니다.

2023년 10월, 성동지회 도량청정 봉사자들(앞줄 맨 왼쪽 박봉순 님)
▲ 2023년 10월, 성동지회 도량청정 봉사자들(앞줄 맨 왼쪽 박봉순 님)

고용 없는 정토사회문화회관

정토사회문화회관은 2017년에 건립을 시작하여 4년 만에 완공되었고, 1년간의 준비를 거쳐 2022년 10월 1일에 개관하였습니다. 정토사회문화회관 건립을 위한 불사금도 정토회원들이 만들었고, 정토사회문화회관 운영도 정토회원들이 하고 있습니다.

‘타인의 희생 위에 내 행복을 쌓지 않는다’라는 부처님의 정신을 이어받아 정토회는 ‘사람을 고용하지 않는다’라는 원칙이 있습니다. 그래서 외부 전문가들에게 맡기지 않고 정토회원들이 자립적으로 정토사회문화회관을 운영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관리소장 교육 이수자 13명, 전기‧기계‧소방‧통신‧건축 5개 분과 17종 담당까지 총 120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정토사회문화회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또 공양간, 에코 가게, 휴게소 등 모두 정토회원들의 자원봉사로 운영됩니다. 그 중 저는 청소 담당을 맡고 있습니다.

22년 봄 정토사회문화회관 3층 설법전 청소 중
▲ 22년 봄 정토사회문화회관 3층 설법전 청소 중

13세에 취직하다

과거 아버지가 양곡업을 하다 몸이 아프면서 가세가 기울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13살에 학교 대신 사촌 언니가 다니던 평화시장에 취직했습니다. 당시는 전태일 열사의 분신 이후로, 대학생들이 그곳에서 일하며 시장 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 가입을 권유했던 기억이 납니다. 밤 10시까지 일하고, 월급을 받으면 모두 아버지에게 가져다드렸습니다. 우리 가족은 7남매로 언니 둘은 이미 시집을 갔고, 부모님과 나머지 다섯 남매가 같이 살았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평화시장 일은 23살까지 10년 동안 했습니다.

3살 차이인 오빠는 어렸을 때부터 가출했습니다. 우리 집은 청계천 근처에 살았는데, 당시 그 근처 여인숙에서 불이 나 사람이 죽은 일이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혹시나 가출한 아들인가?’ 싶어 화재 현장에 가서 시신을 뒤지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오빠도 공장을 다녔는데, 월급을 받으면 그날로 가출했다가 집에 돌아오기를 반복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저는 어리광 한 번 부리지 못하는 애늙은이로 자랐습니다. 어릴 때의 가정환경으로 인해 마음의 평정을 찾기 위해 20살부터 절에 다녔습니다.

행복했던 목포 생활

아버지는 엄하고 영리했습니다. 또한 가부장적이어서, “여자가 23살을 넘기면 안 된다”라며 중매하였습니다. 소개받은 사람은 기술 있고, 부지런하고, 집 한 채도 있는 남자였습니다. 그래서 23살에 목포로 시집을 갔습니다. 목포에서 30년간 살았습니다.

2022년 조카 결혼식
▲ 2022년 조카 결혼식

남편은 참 가정적이었습니다. 3~4년 살다 보니 제가 원하는 가정의 모습으로 살고 있어서 ‘이것이 부처님의 가피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남편은 항상 5시 반에 일어나 운동을 하고, 성실하고, 부지런했습니다. 친정아버지가 가부장적이라면 시아버지는 호탕하였고, 며느리에게 친절했습니다. 친정어머니가 무심한 스타일이라면 시어머니는 무척 자상했습니다.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갈등 없고, 부러울 게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집 근처 비구니 암자에 다니는 일 이외에는 집에만 있었습니다.
아들 둘은 공부도 잘해서 좋은 학교에 진학하고, 안정적인 직장에 취직 했습니다. 둘째 아들은 제가 소개한 아가씨와 결혼하여 며느리도 생겼습니다.

이렇게 걱정 없이 살다가 남편과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대출도 받고 둘째 아들에게도 돈을 빌렸습니다. 그런데 사업이 어려워져 모든 돈을 하루아침에 날려버렸습니다. 차마 며느리 얼굴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들 빚을 갚으려고 입주 산모 도우미를 했습니다. 일을 찾아 서울로 와서 1년을 주말부부로 지냈습니다. 이후 남편도 서울에 와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4년 동안 산모 도우미를 하며 돈을 벌어 아들 빚과 은행 빚을 모두 갚았습니다.

난 아프면 왜 안 되냐?

산모 도우미를 한 지 4년째, 유방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이 사실을 동생과 큰 며느리에게만 말했습니다. 남편에게는 치료 일정이 확정되면 말하려 했는데, 남편이 알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제가 동생과 며느리에게만 말했다는 사실에 무척 화를 냈습니다. 제가 자신을 ‘돈도 못 버니 무시했다’라고 생각하여 오랫동안 화를 냈고, 마음을 쉽게 풀지 않았습니다.

잘 사는 집에서 일하며 부잣집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남편이 무능하다’라는 무의식이 생긴 것 같습니다. 이런 제 무의식을 남편도 느꼈던 것일까요? 화내는 남편에게 “암 환자가 있는 다른 가족들이 환자에게 어떻게 하는지 알아봐. 그리고 당신은 아프지 마.”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남편은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보냐? 그리고 난 아프면 왜 안 되냐?”라며 오히려 반박하고 더 화를 냈습니다. 제가 항암치료 받고, 방사선 치료가 끝나도 남편은 화를 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항상 제게 불만이었습니다.

한 줄기 빛, 정토회

서울에서도 남편과 저는 절에 다니고 기도하며 생활했습니다. 당시 남편과는 냉랭한 사이였습니다. 그런데 절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는 듯 행동하면서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그즈음 마침 정토불교대학 모집 전단을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수행 법회만 다니다가, 다음 해인 2018년 봄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천일결사는 9-7차 입재식부터 참여했습니다.

정토회에 처음 왔던 날이 기억납니다. 나누기가 뭔지 몰랐는데, 처음 마음 나누기를 하면서 저도 모르게 펑펑 울었습니다. ‘빚을 갚기 위해 남의 집 일을 열심히 했고, 항암치료도 다 끝냈고, 잘 털고 일어났다’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힘들고 서러웠던 제 마음을 관계가 소원해진 남편도 보듬어 주지 않았고, 저도 알아주지 않았습니다. 혼자서 그 힘든 과정을 버텨내며, 힘들다는 말조차 못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힘들었던 제 마음을 나누기에서 풀어 놓으니, 눈물이 봇물 터지듯 흘러내렸습니다. 울고 나니 마음이 정말 시원했습니다.

2023년 베트남스님 맞이 도량청정 봉사자들과(가운데 박봉순 님)
▲ 2023년 베트남스님 맞이 도량청정 봉사자들과(가운데 박봉순 님)

경전대학에 다니면서, 1년간 불교대학 진행을 맡았습니다. 마음공부를 시작한 후배들을 안내하면서, 저도 배울 점이 많아 즐겁게 했습니다. '정토사회문화회관은 봉사자들의 힘으로 운영되어야 한다'라는 말을 듣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도량청정 정기봉사를 시작으로, 목요일 담당 꼭지를 하고, 23년 3월부터 도량청정 담당을 맡았습니다.

문제를 내 안에서 찾다

정토회에 와서 크게 변한 점은 '문제를 내 안에서 찾는다'입니다. 5기 보리수 봉사단에서 명심문을 받을 때 제가 ‘남편이 무심해서 서럽다’라고 말하니, 법사님께서 “아버지의 사랑이 장애가 되었네. 아버지와 남편을 비교하고 있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다 다릅니다.”라는 말에, 저는 ‘아!’ 하는 깨우침이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많이 받은 것이 오히려 장애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좋은 것이 좋기만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좋은 것을 움켜잡고 아버지의 사랑을 잣대로 삼으니, 남편은 무심한 사람이었습니다. 남편의 무심함을 제가 만들어 마음에 품고, 스스로 서럽다고 했습니다. 가출 잦은 오빠로 인해 애어른으로 일찍 철들어 지냈습니다. 그러나 오빠가 아니었으면 불법을 만나지 못했을 겁니다. 암 환자가 되어 남편과 극심한 갈등이 없었다면 정토회를 만나지 못했을 겁니다. 정토회를 만나게 된 부처님 가피에 감사합니다.

“도량청정, 마음청정”

저는 지금 방송통신 중학교 3학년입니다. 월 2회 학교에 가고, 통신으로 공부했습니다. 오는 12월에 졸업합니다. 배우며 생각했습니다. ‘이런 것을 갈구했었구나. 아무것도 아닌 것을.’ 이제는 배움에 대한 욕망에서도 자유로워졌습니다.

그동안 불교를 공부하고 절에 다녔지만, 연속성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정토회는 저를 계속 이끌어 줍니다. 그러니 계속해서 변화하고 봉사하게 됩니다. 저는 뭔가가 완벽하지 않으면 불만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나를 주장하지 않고, 나를 내려놓아야 한다’라고 생각합니다. 이 나이에 잘 쓰이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요? 제가 잘 쓰이고, 봉사자를 잘 쓰고, 정토사회문화회관을 청정하게 하는 일이 무척 보람 있습니다.

처음엔 '내가 ‘정토행자의 하루’에 나갈 만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생각해 인터뷰를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소소하게 사는 이야기를 하는 것도 좋겠다'라고 생각이 바뀌어 인터뷰에 응했습니다. 그리고 도량청정 봉사를 홍보하는 것도 목적입니다.

도량청정은 저에게 딱 맞는 활동입니다. 많은 사람이 모여 원활하게 회관을 청소할 수 있도록 동영상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매뉴얼도 만들어 함께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 나가고 있습니다. 청소하다가 아라한이 됐다는 주리반특의 이야기는 청소 봉사에 임하는 봉사자들의 마음에 큰 울림을 줍니다. 도량청정 봉사에 많이 참여해서 도량도 닦고 마음도 함께 닦는 특혜를 누리길 권합니다. 우리는 모자이크 붓다입니다.


일을 좋아한다는 박봉순 님의 하얀 머리가 눈부셨습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수행하며, "제 서원은 따로 없습니다. 도량 청정이 제게 딱 맞습니다."라고 합니다. 그의 삶도, 그의 마음도, 그의 실천도 모두 힘 있고 담백합니다. 평범함 속에 작은 일을 눈부시게 하는 박봉순 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글_임현주 희망리포터(인천경기서부지부 일산지회)
편집_윤정환(인천경기서부지부 안양지회)

전체댓글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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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정진

정토 사회문화회관을 들어선때 깔끔함이 눈에 선합니다.
많은 도반님들 은혜속에 사용하고 있음을 다시금 새깁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입니다.

2023-11-17 10:57:33

ubaTaeCJ

1

2023-11-16 02:23:39

정덕

도량청정 봉사에 대해 알게되어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2023-11-11 08:2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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