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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저는 부모님 말씀 잘 듣고, 학교에서도 크게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착하고 무던한 아이였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도 재미있고 좋지만, 싸우거나 갈등 상황이 생기면 아주 불편해서 혼자 노는 걸 더 좋아했습니다. 저보다 어린아이가 “언니가 이러이러해서 그랬잖아”라고 말을 세게 하면, 저는 반박하지 못하고 얼어버렸습니다.
학교에서는 모범생 소리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를 욕하는 애들한테 겉으로는 부드럽게 대하면서 마음속은 문드러졌습니다. 충돌을 피하고 싸우지 않았던 것에 답답함이 있었습니다. 친한 친구들한테도 저의 힘들었던 점이나 고민거리를 말하지 않고 쌓아두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니 착하고 잘난 사람으로 보이고 싶고, 또 언성이 높아질까 봐 두려운 마음도 있었습니다.
취업 준비할 때도 ‘잘하고 싶은데 내가 어디까지 잘할 수 있을까?’라며 걱정했습니다. 원하는 대로 다 안 될 것 같아 조마조마하고 불안했습니다. 그때는 뚜렷한 목표도 없이 그냥 남들 가는데 저도 가고 싶다는 마음이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학비 걱정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려운 환경에서 일찍 직장을 잡고 안정되어 가는 친구들을 보며, 부모님에게 면목이 없고 죄책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즈음 법륜스님의 법문을 듣고, <깨달음의 장1>과 <나눔의 장2>을 다녀왔습니다. 이후로 '꼭 무엇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좋은 곳에 취직하기 위해 막연하게 허덕이며 사는것 보다는, 일단 무엇이든 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교재를 편집하는 출판사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일을 지금까지 하고 있습니다. 정토회 활동을 병행할 수 있고, 제 성향과도 잘 맞는 편이라 만족하고 있습니다. 초반에는 틀리지 않도록 꼼꼼하게 봐야 한다는 생각에 약간 부담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사람이 하는 일이라 틀린 부분이 아예 나오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놓이고, 여유도 생겼습니다.
어머니는 교회를 다녀서 제가 정토회 다니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했습니다. 불교대학 학생이었을 때는 일주일에 한 번 직장에서 야근한다고 핑계를 대었습니다. 소임이 생긴 이후에는 저녁에 늦을 때도 많고, 주말에 집 비울 때도 많아서 어머니가 이상하게 봤습니다. 결국 숨겨놓은 불교대학 교재와 졸업장이 발각되면서 부모님은 정토회에 대해 알게 됐습니다. 어머니는 자식이 종교에 빠져 잘못될까 걱정하며 언성을 높이거나,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습니다.
어머니의 반대로 마음이 힘들 때는 어머니에게 감사 기도와 참회 기도를 하였습니다. 또 <정일사3>를 통해 법사님이 관점을 잡아주었습니다. 지금 와서 돌아보니 어머니는 자식들이 기대대로 안 되면 그 당시에는 속상해해도, 시간이 지나가면 편해졌습니다. 어머니가 저 하나에 좌지우지되는 약한 분이 아닌데, 기대대로 하지 않으면 어머니가 잘못될 거라고 착각했던 것입니다. 예전에는 부모님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지 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원망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이제는, 나쁜 일도 아니고 직장 다니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한다 생각하니 부모님 대하기가 편안해졌습니다. 부모님도 저를 인정해 주면서 전보다 사이도 가까워졌습니다. 부모님의 기대대로 살아야 서로 행복할 줄 알았는데, 저는 저대로 행복하게 살아도 서로 편안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예전부터 제 마음을 들여다보지 않고, 마음속 이야기를 남에게 하지 않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래서 기분 나쁜 상황에서 화가 올라와도 아무렇지 않은 척 넘어가려고 합니다. 일단 내 마음을 누르고, 그 상황에 필요한 말을 담담하게 하면서 지나갑니다. 그러다가 기도하는 순간 화가 다시 올라오거나 상대방에 대한 미운 감정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 때 당시 억누른 마음과 알아주지 못한 감정이 일어난 것입니다.
평소에는 깨어 있지 못하고 수행이 잘 된 사람도 아니라서 마음을 잘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기도할 때는 ‘내가 그래서 그랬구나, 그런 마음이 있었지’ 하며 스스로를 토닥여 주면 마음이 누그러지는 기분이 들어 좋았습니다. 때때로 직장이나 일상생활에서 또는 정토회 활동을 하며 사람들이 미워지거나 상황을 크게 받아들일 때가 있습니다. 이런 때도 기도하면 스스로 상황을 확대 해석하거나 제 감정에 너무 사로잡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마음이 차분해지고 정리가 됩니다.
정토회의 여러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도반들과 마음 나누기를 많이 하다 보니, 주위 사람들에게도 자연스럽게 마음속 이야기를 내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언젠가 어머니와 함께 동네 뒷산을 갔엇습니다. 그때 “어린 시절에 나는 이만큼밖에 안 되는데, 엄마가 더 많이 기대하는 것 같아서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마음 편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도 “그랬니?” 하며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보고 이런 대화가 오가는 게 신기했습니다. 또한 그동안 어머니가 나를 이렇게 안 받아줄 거라는 편견을 갖고 벽을 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전에 다니던 회사가 어려워져서 제가 직장을 잃게 된 적이 있었습니다. 옛날 같으면 창피하다고 말하지 않았을 텐데, 친구들한테 그냥 웃으면서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살면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법당에 가서 이런 이야기를 하면 도반들이 안타깝게 보지 않고 “그럴수록 밥도 네 그릇씩 먹어야 한다. 기가 죽으면 부모님이 더 속상해하신다.”는 말을 합니다. 그리고 저는 “알았습니다.”합니다. 솔직하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된 것이 제 삶을 변화시킵니다.
불교대학에 2016년에 입학하고, 2017년 불교대학 돕는이부터 시작해서 6년 동안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외부에서 보면 누군가는 ‘시간과 노력을 왜 그런 데 쓸까?’ 할지도 모르지만, 봉사하면서 저에게도 좋은 점이 많았습니다. 일반적으로 불교대학 졸업 이후에는 여러 가지로 나태해질 수 있는데, 소임을 하면서 계속 수업과 법문을 듣고 수행도 할 수 있었습니다. 또 원래 사람에 대해 관심이 별로 없었는데 ‘학생들이 무슨 고민이 있어서 왔을까?’ ‘졸업까지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다른 사람에게 더 많은 관심이 생겼습니다.
불교대학 진행, 반 담당, 지부 지원팀 담당 등의 소임을 하면서, 제가 학생으로 있었을 때, 각 소임을 했던 분들이 얼마나 많은 수고와 노력이 있었는지 알았습니다. 한편으로는 저를 좋게 봤던 분들이 왜 좋게 봤는지, 저를 불편해하던 분들이 어떤 부분에서 답답했는지도 알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서울제주지부 회원 활동 팀장 소임을 맡아서 지회, 지부, 사무처, 으뜸절 등 많은 봉사자분과 소통하고, 회의하며 일을 조율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회원 교육과 연수, 실천활동, 실천장소, 법회 등 다양한 분야를 진행하는데, 같이 봉사하는 여러 도반을 보면서 서로 다른 장점들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봉사하는 모든 분에게 감사한 마음과 제가 좀 더 도와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예전보다 물건을 많이 사지 않고, 화장품이나 옷에 대한 관심이 거의 사라졌습니다. 원래 외모를 꾸미지 않고, 잘하지도 못하는데 남들처럼은 해야 한다는 마음에 사기도 했습니다. 허전하고 공허할 때는 인터넷 쇼핑몰을 찾아보며 사지도 않을 비싼 물건들을 구경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법륜스님의 법문을 들으면서 환경에 대한 관점을 바로 잡았습니다. 남들한테는 어떻게 보이든 상관없이, 제 스타일대로 사는 것이 세상에 전혀 나쁠 게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같이 활동하는 도반들의 꾸밈없고 당당하며, 가치 있는 일을 하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저도 그 모습 닮아가며 함께 가겠습니다.
김지은 님의 이야기를 몇 번이고 다시 들으며 제 마음을 읽어주는 것처럼 비슷한 부분이 많아 반갑고 뭉클했습니다.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집착하여 스스로를 괴롭히고, 상처받을까 봐 표현하지 못한 채 마음을 닫고 있었던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수행과 봉사의 힘으로 있는 그대로 나를 수용하고, 상대를 좀 더 이해하며, 예전보다 한결 편안하다는 김지은 님! 가볍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그 길을 함께 걸어가고 싶습니다.
글_도유진 희망리포터(강원경기동부지부 성남지회)
편집_윤정환(인천경기서부지부 안양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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