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대구경북지부
신장군!
신혜정 님 첫 번째 이야기

오늘 주인공은 1차 만일결사 마지막 대구경북지부 지부장 신혜정 님입니다. ‘꾸미지 않은 솔직담백한 이야기를 들어보자’란 말을 되뇌며 오늘의 주인공을 만나기 위해 단정하게 잘 가꾸어진 한옥 ‘공공’으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수년 전 통일특별위원회(이하 특위) 대구경북지부(이하 지부) 저녁반에서 함께 활동한 인연이 있어 편안한 마음으로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신혜정 님과 함께 활동하며 가장 고마웠던 점은 차가 없는 저를 위해 저녁 회의 후 지하철역까지 태워주고, 지하철도 끊긴 늦은 시간에는 집까지 바래다주었던 일입니다. 활동할 당시 힘든 일도 있었겠지만, 지금 저에게는 열정적으로 재미나게 활동한 느낌만 남았습니다.

신혜정 님은 <정토행자의 하루>에 이미 소개된 적이 있어 활동 중심으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보려 합니다.

괴물 엄마

저는 아들이 둘입니다. 첫째는 태어나자마자 일 년 내내 토했습니다. 엄마가 처음이라 백일 안 된 아이한테 백일 이후에 쓰는 젖꼭지를 물리는 등 미숙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를 건강하게 키우고 싶었고, 저 또한 몸이 좋지 않아 대체의학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몸에 좋은 것만 먹이고자 친환경 매장에서 장을 봐서 건강한 맛(맛없는 맛!)으로 요리했습니다. 대체의학 선생님은 제게 ‘전국 일등’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습니다.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철저하게 잘 지킨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32차 인도성지순례 출발 직전, 인천공항에서 순례지원 나온 큰 아들
▲ 32차 인도성지순례 출발 직전, 인천공항에서 순례지원 나온 큰 아들

이미 자극적이고 감칠맛 나는 인공 조미료 맛을 본 다섯 살 큰아이에게 그런 음식들은 입에 대지도 못하도록 통제했습니다. 아이를 이해시키면서 여지를 두고 했으면 좋았을 텐데 절대 원칙을 세워 극단적으로 행동했습니다. 밖에서 먹는 음식은 사악한 음식이라며 먹지 못하게 막고 집에서만 음식을 먹도록 했습니다. 직접 음식을 만들어 놓고 베이비시터가 챙겨주기만 하도록 했습니다. 심지어 점심을 제공하지 않는 유치원을 보냈습니다.

그러니 아이가 음식을 거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가 왜 그러는지 그 이유는 묻지도 생각하지도 않고 계속 제 방식대로 밀어붙였습니다. 그런 저를 큰아들은 ‘괴물 엄마’라고 했습니다. 또한 제일 싫은 사람이 엄마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랬을까?’ 지금 생각하면, 몹시 마음이 아프고 큰아들에게 미안합니다. 아이와 관계가 좋지 않고, 아이만 보면 화가 나니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템플스테이 등 이것저것 찾아 헤맸습니다. 그러다 <깨달음의장>을 가서 내가 ‘상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사람’이란 것을 알고 마음의 문제가 많이 해결되었습니다. 큰아이는 스트레스를 받거나 힘들면 아토피처럼 피부가 확 일어나는데 이런 증상이 계속되니 제가 불안해서 음식에 더 예민했습니다.

도반이 된 아들

대학교에 입학한 아들은 학교 안에 자연드림 매장이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합니다. ‘우리 엄마만 괴물이 아니었구나’라고 생각하며 저를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그런 유기농식품 매장이 도움이 많이 된다고 하는 아들의 말이 재미있게 들리기도 했습니다. 동북아역사기행을 소개했더니 아들은 선뜻 다녀왔고, 그 후로 <깨달음의장> 수련도 다녀오고 불교대학도 졸업했습니다.

이렇게 아들은 저와 관계가 좋아지니 제가 권유하는 것을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것을 좋아하고, 호기심 많고 사람 사귀는 것을 좋아하는 아들은 동북아역사기행에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나 봅니다. 아들은 21년 2월에 백일 출가를 했고, 지금은 두북수련원 농사 팀에서 봉사하며 수행자로 살고 있습니다.

두북수련원에서 화광법사님, 남편, 큰아들과 함께
▲ 두북수련원에서 화광법사님, 남편, 큰아들과 함께

작은아들은 반항하지 않는 착한 아이입니다. 형과 엄마의 관계를 보면서 눈치껏 잘해서 잘 자란 줄로만 알았는데, 나중에 실은 엄마에 대한 반감이 많았고 불안했다고 말해 놀라기도 하고 미안했습니다. 아들이 표현하지 않으니 문제없이 평온한 줄 알았습니다. 실용음악을 전공하기 위해 고등학생 때 서울에 올라와 형과 같이 지냈지만,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며 우울하고 동굴에 있는 것 같았다고 합니다. "엄마 나 힘들어"라고 표현한 적도 있습니다.

작년 1만 행복학교 전법 때 용돈으로 꼬셔서 행복학교를 수강하게 했습니다. 한 달만 하고 그만둘 줄 알았는데, 지금은 용돈 안 줘도 된다며 마음을 내어 행복시민과정을 하고 있습니다. 낯선 사람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괜찮다고 합니다. 제가 음악에 무지하니 이런저런 잔소리하지 않고 지켜보면 될 것 같습니다. 요즘은 반찬도 해달라며 마음을 표현하니 편안한 관계를 유지합니다.

신장군

저는 고등학교 역사 교사로서 사명감이 투철했습니다. 학생들에게 제대로 된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에 알려주고 싶은 것도 많았습니다. 제가 전교조 활동하면서 깃발 들고 앞서서 싸우는 전사의 역할을 잘했습니다. 그런데 정토회에서 스님 법문을 듣고 싸우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교장이나 학교 입장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저를 후배 교사들은 학교 편을 든다고 오해하기도 하고 저에게 배신감마저 느꼈다고 합니다.

21년 2월에 퇴직했지만 돌이켜보면 학교생활에서도 정토회는 제게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학교 축제 때 유관순 열사의 복장을 하고 참여한 학생들을 보며, 저를 닮아가는 학생들이 무섭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제가 가진 역사의식을 주입만 했었다면, 그 후로는 역사적 사실을 알려주고 “선생님 생각은 이런데 너희들 생각은 어때?”라고 물으며 학생들의 생각을 들어주고 이해하고자 했습니다. 예전에는 학생들이 저와 다른 의견을 이야기하면 당장 바로잡아주고 싶었는데, 학생들이 내 생각과 다른 행동을 해도 그 이유를 먼저 묻고, 혹여 대답하지 않더라도 기다리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학생들과의 관계도 좋아졌습니다.

정토회 활동하면서도 나를 따르라는 식으로 하니 일은 진행되었지만, 힘들어하는 도반도 있었을 것입니다. 과정보다는 목표나 성과를 중심으로 일했습니다. 이런 저를 어느 순간 사람들이 장군!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저는 여리고 섬세한 부분도 있습니다. (진짜입니다!!) 그런데 그런 모습은 왠지 나약해 보일 것 같아 꼭꼭 숨기고 싶었나 봅니다. 저를 먼저 생각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남에게 잘 보일까, 잘한다는 말을 들을까?’에 신경 쓰고 그 상황에 맞는 답을 찾고자 애를 써야 하니 늘 긴장하며 살았습니다. 요즘은 ‘그래서 너는 어때?’라고 저에게 묻습니다. 이것만 해도 제게는 큰 변화입니다. 저 자신에게 여유로우니 상대를 이해하는 폭도 더 넓어지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저 자신을 먼저 돌보는 여유’를 수행과제로 삼으려고 합니다.

2022년 10월 1일 정토사회문화회관 개관식 때 대경지부 축하공연단과 함께-제일 오른쪽 신혜정
▲ 2022년 10월 1일 정토사회문화회관 개관식 때 대경지부 축하공연단과 함께-제일 오른쪽 신혜정

작년 정일사 때 받은 선물이 ‘도반과 함께하기’였습니다. 돌아보니 제가 하면 다른 사람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못하는 사람은 이해하지 못 했습니다. 그저 하기로 한 것은 하고, 끝까지 해서 마지막 자리를 묵묵히 지키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함께 하는 도반이 어떤지에 대해 살피는 공부를 하려 합니다. 앞서지도 뒤처지지도 말고 도반 옆에 꼭 붙어 있으려고 합니다.

열심히 다닌 결과는 포교상으로

저녁반 활동할 때 퇴근하고 안동, 문경 등의 지역법당을 돌아다녔습니다. 활동가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도움도 주고 싶었습니다. 늦은 밤까지 활동가들은 제게 많은 이야기를 꺼냅니다. ‘ 열심히 하고 있었구나, 이런 어려움도 있구나' 이것을 함께 나누고 전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지역의 숨은 활동가, 핵심 활동가를 발굴해서 그들의 사례를 공유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하니 주간반 중심으로 돌아가던 정토회에서 저녁반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2016년 2월 입재식에서 ‘포교상’을 받았습니다. 밖에서 봉사하고 있는데 갑자기 들어가라고 해서 갔더니 무대로 올라오라고 했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라 얼떨떨하고 당황스러웠지만, 함께 열심히 활동한 도반들 덕분이라 생각하며 고맙게 받았습니다. 저녁반에서 활동하니 시간이 늘 부족했습니다. 늦은 밤까지 회의하고 주말에도 쉴 틈 없이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몸은 피곤했지만 잘 쓰일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퇴직하고 주간과 저녁을 아우르며 활동하는데도 시간이 많아 한층 여유로웠습니다. 여유가 생기니 제 자신과 주위를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괴물 엄마, 신장군으로 불린 신혜정님이 포교상을 받기까지 그 과정이 참 순탄치만은 않았을텐데요! 2부에서는 더 재미있는 이야기기가 전개됩니다.

글_도경화(대구경북지부 동대구지회)
편집_김윤희(강원경기동부지부 용인지회)

전체댓글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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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쥐

좋은길 옳은길에 척척 돌진하는 신장군님의 씩씩함은 부럽습니다 재미있게 공감하며 잘 읽어보았습니다. 나누어주셔서 감사해요 -

2023-03-24 08:43:47

정명화

별명이 참 어울린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도 어떤 일이던 척척 앞서서 하시는 걸 보고 장군감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참 대단하셔요

2023-03-23 13:56:34

김경남

“저를 먼저 생각하기보단 어떻게 하면 남에게 잘 보일까, 질 한다는 말을 들을까? 신경 쓰고 그 상황에 맞는 답을 찾고자 애를 써야 하며 늘 긴장하며 살알 습니다. 요즘은 “그래서 너는 어때?”라고 저에게 묻습니다.”...
참 마음에 와 닿습니다. 감사합니다.

2023-03-22 14:5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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