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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에겐 정토불교대학을 입학한 2018년이 그랬습니다. 다니던 회사에선 상사와의 불화로 권고 사직을 당했고, 오랫동안 사귀던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나서는 연애를 해도 금방 헤어지기 일쑤였습니다. 직장도 잃고 사랑도 잃고 망연자실한 저와 달리, 친구와 동료들은 돈도 잘 벌고, 결혼하고, 집도 사는 것이 행복하게만 보였습니다.
잘나가는 그들을 부러워하다 스스로를 돌아보면 초라하고 부끄럽게만 여겨졌습니다. 자신이 싫어 화가 났고, 이런 저를 낳고 기른 부모가 원망스러웠습니다. 이 모든 게 부모 탓이고 세상 탓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화와 원망이 가득해서 시비하고 분별하니 정말 힘들고 외로웠습니다. 누군가에게 도와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 말 한마디도 나오지 않을 만큼 모든 것이 무너졌습니다.
출퇴근하는 만원 전철에 가만히 서 있는데도 눈물이 날 정도였습니다. 심한 우울증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법륜스님 즉문즉설을 듣게 되었는데 어둠 속의 한 줄기 빛처럼 작지만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그런 스님과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지고 싶어서 정토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기대와 달라 놀라기도 하고, 불만도 많았습니다. 즉문즉설 때와는 달리 스님은 엄하게만 보였고 법문도 어렵고 딱딱했습니다.
정토회 규칙이나 법당의 예절은 왜 그리도 많은지, 예상치 못한 깐깐함과 엄격함에 화가 나고 반발심도 생겼으며 도반들도 곱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심리학 대학원을 다니며 마음공부를 한창 할 때라, 도반들은 나이도 많고 법문 이해나 나누기도 잘 못해서 답답하고 못나게 느껴졌습니다. 겉으로는 웃지만, 속으로는 ‘나는 당신들과 다르다. 나는 여기에 있을 사람이 아니다’라는 교만함이 가득했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든 분별하고 훈수를 두거나 제 뜻대로 밀어붙이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런데도 도반들은 그런 저를 탓하거나 멀리하지 않고 오히려 살펴보고 이야기를 경청하며 따뜻하게 대해주었습니다. 집이 법당 바로 옆이라 수업 후에 공양하고 남은 밥이나 음식을 자주 챙겨주었습니다. 혼자 자취하던 저에겐 귀한 양식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참 따뜻하고 고마운 일입니다.
<깨달음의 장1>에 가서 정말 많이 배우고 느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부모님 생각에 펑펑 울었던 일입니다. 정신없이 울면서 깨달았습니다. 그토록 원망하고 미워했던 부모님을 사실은 엄청나게 의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지나친 욕심 때문에 부모를 원망했지만, 차고 넘치게 사랑과 관심을 받았다는 사실이 그제야 보였습니다. 그 순간에 미워하는 마음은 사라지고 고마운 마음이 샘솟았습니다. 의지심을 내려 놓았습니다. 이때부터 휴대전화에 부모님을 ‘아버지 부처님’, ‘어머니 부처님’이라고 저장했습니다.
그렇게 불교대학 수업을 들으며 가랑비에 옷 젖듯이 수행자로 한 발짝 나아갈 즈음 9-8차 백일기도 입재식2이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법당에 모여 입재식을 했고 예비 입재자들이 앞으로 나와 소개하면 선배 도반들이 염주를 목에 걸어주며 환영했습니다. 그때 쭈뼛거리며 앞에 선 저에게 앉아있던 수십 명의 도반이 진심을 담아 손뼉 치는데 가슴이 뭉클하며 감격스러웠습니다.
그렇게 도반들의 격려와 지지를 받으니 힘이 절로 나서 첫 입재한 100일 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정진했습니다. 108배를 하는데 엎드리면 ‘내가 옳다는 한 생각을 내려놓는다’는 명심문이 바닥에 보이고, 올라올 때는 평온하게 미소 짓는 부처님 얼굴이 보이니 절하는 자체가 그저 좋았습니다. 언제나 ‘내가 옳다’는 생각에 갇혀 고집만 부렸는데, 완전히 엎드려서 상대를 공경하는 절하는 행위 자체가 큰 교훈이었습니다.
심리학을 전공하며 머리로만 하던 마음공부가 부지런히 정진하면서 가슴으로 내려오고 또 온몸, 온 마음으로 번졌습니다. 특히 부모님에 대한 마음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내가 이렇게 된 게 다 부모 때문이다’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내가 이 정도라도 된 게 다 부모님 덕분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원망했던 지난날을 참회하며 부모님이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매일 정진하며 올리는 삼배 중 첫 번째 절은 부처님, 두 번째 절은 부모님, 세 번째 절은 자신에게 고마움을 담아 합니다.
정진하며 얻은 것이 또 있습니다. 저는 고등학생 때 친구와 선배로부터 폭행당했습니다. 그로 인해 20년 넘게 아파하고 괴로워했습니다. 사람을 좋아하고 활발하던 제가 사람을 믿지 못하고 두려워하게 되었고, 사람들로부터 비난받거나 배척당할까 봐 전전긍긍하며 긴장 속에 살았습니다. 작은 일이나 사소한 장난도 그냥 넘기지 못하고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쉽게 흥분하고 공격적으로 반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과 더 멀어지고 점점 혼자가 되었습니다. 저를 때린 놈들도 미웠지만 자신이 더 미웠습니다. ‘얼마나 별로면 친구들이 때리겠냐?’고 생각하며 상처받은 자신을 자책하고 비난했습니다. 누가 이 사실을 알면 욕하고 멀리할까 봐, 부모를 비롯해 아무에게도 폭행 피해 사실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20년이 흘렀고 상처는 마음 한구석에서 곪아갔습니다.
온라인 4박 5일 명상을 하면서 잊고 있던 그 일이 선명하게 의식 위로 떠올랐습니다.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습니다. 시간이 지나 괜찮아진 줄 알았는데, 너무 고통스러워 마음 속 깊은 곳에 똬리를 틀고 숨어있었나 봅니다. 오랫동안 모른척했던 고통을 처음으로 마주하며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네 잘못이 아니야. 그동안 힘들었겠다. 정말 수고했어”
정토회에 와서 수행, 보시, 봉사를 통해 누군가를 돕고 위로하는 법을 알게 되어 스스로 위로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20년이나 늦은 위로였지만 이제라도 할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이 경험을 명상 소감문으로 적어냈더니 월간 정토에 실렸습니다. 이것도 인연이라 생각하고 정토지에 실린 글을 사진으로 찍어 부모님께 보냈습니다. 보내면서도 절 탓하고 뭐라 하진 않을까 불안했습니다.
예상외로 부모님은 깜짝 놀라며 누구보다 안타까워하고 가슴 아파했습니다. 그런 부모님을 보면서 그제야 제 잘못이 아님을 분명히 알게 되었고, 앞으로는 이 일로 자신이나 상대를 탓하지 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얼마 전 1차 만일 회향수련을 통해 1,080배 정진을 하는데, 그동안 미워하고 원망했던 상대들이 떠올랐습니다. 신기한 것은 밉거나 원망스럽고 화나기보다는 ‘그들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겠지’라는 이해와 자비의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저도 뭔가 영향을 줬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모든 것이 마음으로부터 비롯됨을, 또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연기법을 알게 되니 무턱대고 원망하고 분노했던 일들이 새롭게 보이고 자기 행동도 다시금 살펴보게 됩니다. 정토회와 인연 맺어 그들을 원망하기보다는 제 행동과 업식을 살피고 바꾸어 행복으로 나아갑니다. 스스로는 부족하다고 여기지만, 사실은 부족하지 않음을 이제는 알고 있습니다.
심리상담사로 청소년을 만날 일이 많은데, 청소년 시기에 상처를 받았던 제가 청소년을 상담하고 위로하는 일을 하게 된 것도 묘한 인연 같습니다. 그때 어떤 도움도 받지 못했던 스스로를 지금이라도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이 아닐까요? 청소년들을 만나며 놀란 것은, 아주 작은 도움만으로도 금방 좋아지는 경우가 많을뿐더러, 고통과 상처에 가려진 누구보다도 맑은 마음을 발견하며 깊이 감동합니다.
비바람이 몰아쳐도 결국 이겨내는 한 그루 나무처럼, 여기저기 치이면서도 순수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아이가 보살 같이 느껴지며 이런 인연이 고맙습니다. 어리고 연약한 청소년이기에 위기나 변수도 많고 부정적인 감정이 상담사인 저에게도 옮겨와 힘들 때도 있지만 매일 하는 정진 덕분에 이겨내기가 수월합니다. 불법을 공부하며 깨치게 된 세상의 이치가 상담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부처님은 누구보다도 뛰어난 상담사 같습니다.
〈깨달음의 장〉 이후부터 정진을 시작해서 오늘로 1,450일이 지났습니다. 그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정말 많이 달라졌습니다. 여전히 업식대로 살며 번뇌가 많지만, 정토회 일이나 소임은 귀찮지만, 막상 하면 큰 도움과 깨달음을 준다는 걸 알기에 “네”하고 웃으며 합니다. 그래서 불교대학 담당을 하라고 했을 때도 가볍게 맡았고 그로 인해 많이 경험하고 배웠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108배를 한 것도 그때부터입니다.
“네”라는 짧은 한마디가 삶을 통째로 바꾸었습니다. ‘모르면 묻고, 틀리면 고치고 배우면 된다’는 말처럼 삶이 가볍고 즐거워졌습니다. “네”하는 마음으로 가족과 친구와 세상을 대하니 더는 외롭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나친 사랑과 관심이 고마워 조금이나마 갚으려고 합니다.
정토행자인 것이 뿌듯하고 자랑스럽습니다. 분명하게 알게 된 것은 저는 이대로 충분하고 괜찮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여기가 정토임을 알아 부지런히 정진하여 자유롭고 잘 쓰이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전현규 님은 처음엔 ‘정토행자의 하루’에 실린다고 하니 부담스러우면서 욕심도 나서 힘들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야기하는 동안 스스로 위로받아서 이런 기회를 얻게 되어 고맙다고 합니다. 전현규 님, 행복을 전하는 일에 마음 내 주어서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더욱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글_김남희 희망리포터(서제지부 양천지회)
편집_도경화(대경지부 동대구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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