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서광주지회
곱게 물든 단풍처럼 살아가고 싶습니다 2

"어디 사이비 종교에 빠져서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야?"라며 정토회에 퉁명스럽던 남편이 <깨달음의장>도 다녀오고 정토불교대학에 입학도 했습니다. 10-10차 천일결사에 입재해 부처님의 길을 함께 걷는 도반이 되었습니다.
내려놓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로 인해 삶의 무게가 얼마나 가벼워지는지 이제는 안다는, 그래서 행복하다는 최란 님의 남은 이야기를 전합니다.

모든 것이 남편 덕분입니다

2004년 6월, 서초법당에서 불교대학 공부를 마치고, 경전대학에 입학하면서 통일 사업부에서 봉사를 시작했습니다. 서울경기 지역에 거주하는 새터민들을 방문하는 일을 주로 했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가족과 살던 고향을 버리고 목숨을 걸고 중국이나 제3국에서 갖은 고초를 겪으며 한국으로 오신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제 힘듦은 배부른 투정이었습니다. 좋은 이웃되기와 통일축전 행사도 함께 준비하며 보람도 느꼈습니다. 남편은 처음에는 아이가 아직 어린데 활동 하냐며 불평했지만, 통일 축전 행사에 아이를 데리고 와서 본 후에는 정토회가 하는 일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서울 생활한 지 3년 쯤 되었을 때 서초법당에서 법륜스님과 봉사자들의 간담회가 있었습니다. 그 때 손을 번쩍 들고 광주에서 이사 와서 3년 기도하면서 남편과 이혼 안 하고 잘 살고 있다고 감사 인사를 드렸습니다. 스님은 환히 웃으시며 뼈있는 화답을 해주셨습니다. 지금 당장 좋다고 너무 자랑하지 말라고 경계하신 의미를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2006년 통일사업부 연말행사에서(오른쪽 첫 번째)
▲ 2006년 통일사업부 연말행사에서(오른쪽 첫 번째)

천일결사 입재를 하고 새벽에 일어나 기도를 하면 남편에 대한 미운 마음이 금방 가실 줄 알았습니다. 정토회에서 활동하는 도반들과 세상을 위해 쓰이는 법륜스님의 활동을 보니 매일 술에 취해 늦은 밤 귀가하는 남편과 비교되면서 무시하는 마음도 커졌습니다. 어떤 날은 새벽 5시에 귀가한 남편이 ‘거룩한 기도는 언제 끝나냐’며 비아냥거리기는 모습에 진저리쳐지기도 했습니다. 기도 방석을 베고 그대로 잠든 남편을 보며 그동안 했던 수행은 어디로 갔는지 억울한 마음에 염주를 던져버리고 한숨만 내쉬었습니다. 기도를 열심히 하면 남편의 술버릇이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었다는 것을 한참 후에 깨달았습니다. 내 수행을 한 것이 아니라 남편을 변하게 해달라고 부처님께 빌었으니 엉터리 수행자였던 것입니다.

세상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

어느 날, 아랫배가 가끔 아파서 했던 건강검진에서 유방암이라는 선고를 받았습니다. 이제 갓 마흔이 된 나이에, 10살 된 아들을 두고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하늘이 무너지고 모든 것들이 원망스러웠습니다. 하느님과 부처님께 매달리며 살려달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알게 모르게 지은 모든 죄를 참회합니다. 제가 빚 진 것을 살아서 갚을 시간을 주시고, 아이가 중학교 마칠 때까지 만이라도 살게 해 주세요. 어린 아이에게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을 주는 엄마가 되지 않게 자비를 베풀어 주세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고꾸라지듯 절을 하고, 또 한 배 한 배 간절한 마음으로 절을 했습니다.

기도가 통했는지 2007년 수술을 받고 남편과 친정 언니의 극진한 보살핌으로 건강이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주변에서는 뭐가 약이 될지 모르니 직접 체험해 보라고 수많은 방법을 안내해 주기도 했습니다. 그 무엇보다 도반들의 따뜻한 말 한 마디와 함께해 준 매일 새벽 기도는 저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삶에는 별로 관심이 없던 제게 도반들의 정성스런 모습은 커다란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암이라는 병은 그동안의 삶을 되돌아보고 자만했던 저를 돌이키고 낮게 숙이는 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2021년 행복시민들과 함께하는 JTS지원사업
▲ 2021년 행복시민들과 함께하는 JTS지원사업

2008년에는 해외 정토지 신청자 관리 담당을 맡았습니다. 죽음을 각오한 수술 후 맡은 소임이었기에 소임을 꼼꼼히 살피고 연구하면서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오늘도 살아 있어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 저절로 우러나와 점점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남편도 평화재단에서 주최하는 전문가 포럼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면서 우리 부부는 서로 공통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날들이 많아졌습니다. 대통령이 바뀌고 인권위원회가 축소되면서 남편은 실직을 했습니다. 예전 같으면 막막하고 조급한 마음이 들었겠지만, 수행자로서 길이 헛되지 않았는지 그저 담담했습니다. 오히려 남편은 <깨달음의장>도 다녀오고, 정토불교대학에 입학도 해서 정토회와 인연을 맺는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남편은 세상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는 진리를 저에게 가르쳐준 스승입니다. 암 투병을 하면서 누구나 병들어서 언제든 죽을 수 있는 존재라는 것도 체험했습니다. 그 속에서 저는 검소하고 겸손하게 사는 방법도 값지게 배울 수 있었습니다. 팍팍하기만 했을 서울살이가 정토회가 있었기에 신이 났고, 세상 속으로 당당하게 나아가 한층 성장하도록 했습니다.

2021년 JTS지원활동(우크라이나 전쟁 피란민 이불지원사업)(오른쪽 두 번째)
▲ 2021년 JTS지원활동(우크라이나 전쟁 피란민 이불지원사업)(오른쪽 두 번째)

이만하면 좋습니다

2010년 남편의 직장 문제로 다시 광주로 이사했습니다. 서울의 여러 활동에 재미를 느끼던 터였지만 완고한 남편의 결심에 서울 생활을 정리했습니다. 광주로 내려온 지 얼마 되지 않아 2011년부터 광주법당 총무 소임을 맡았습니다. 전국 시·군·구마다 법을 전하는 공간을 만들자는 목표 아래 법륜스님의 강연이 전국적으로 이뤄져 각 지역마다 돌아다니며 강연 장소를 물색하고 홍보하느라 아픈 것도 잊었습니다. 서툰 운전으로 여러 지역을 찾아다니다 보니 염려되기도 했지만, 늦은 밤까지 자원 봉사하는 도반들이 함께였기에 거뜬히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이후 광주전라지부 사무국장을 맡아 일하며 수많은 경험 속에서 새로운 배움으로 행복합니다. 현재는 통일특별위원회 소속으로 행복학교를 진행하는 전법활동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주어진 일속에서 가끔은 힘들 때도 있지만, 소임이 복임을 체험한 터라 이만하면 잘 살고 있다는 자긍심도 생겼습니다.

몇 년 전 시어머니 팔순 생신에 시댁 식구들과 제주도에 여행을 갔습니다. 모두 술을 좋아해서 도착하자마자 남편과 막내 사위가 소주와 맥주를 박스 채 사들고 왔습니다. 막내 시누이가 반기면서 “나는 우리 신랑이 술을 좋아해서 너무 좋아요. 술 좋아하는 남편을 만나 퇴근 후 같이 편하게 맘껏 마시니 얼마나 좋아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습니다. 술 문제로 늘 싸웠고, 술 좋아하는 남편이 문제라고 생각했었는데 시누이의 말은 충격적이었습니다. 부처가 여기 있었습니다. 여태 공부하고도 깨우치지 못했던 것을 한방에 깨달았습니다. 그 후로는 술 마시는 남편을 보고도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습니다.

2022년 행복학교 홍보 중(앞줄 오른쪽 첫 번째)
▲ 2022년 행복학교 홍보 중(앞줄 오른쪽 첫 번째)

행복학교가 있는 날 저녁에 남편이 술 마시고 늦게 들어오면 삼배라도 하고 다시 술상을 차려 주고 싶도록 고마운 마음입니다. 요즘 남편은 술 사랑도 줄어 책에 빠져 있습니다. 중도에 포기했던 천일결사 10-10차에 다시 입재해서 기도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저의 봉사활동을 응원해주고 함께 마음공부를 하니 이야깃거리도 많아졌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감사할 일들입니다.

나는 길가의 한 포기 풀

매일 새벽이면 일어나 기도하며 읽는 수행문은 제 삶의 지표입니다. 더욱이 ‘모든 괴로움과 얽매임은 다 내 마음이 일으킨다. 한 생각 돌이켜서 이 사로잡힘에서 벗어나면 모든 괴로움과 얽매임은 즉시 사라진다.’는 수행문을 직접 삶에서 경험하고 보니 마음에 콕 박힙니다. 정토회에서의 여러 활동은 저에게 놀이입니다. 놀이터가 없어 이리저리 심술부리며 방황하던 제게 이보다 좋은 곳은 없습니다. 이 세상에는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가는 따뜻한 사람들이 많음을 알게 해주었고, 이곳에서 저 역시 따뜻한 사람이 되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일을 하기 위해서 아직도 배워야 할 것이 많지만 그만큼 제 능력이 향상되어 쓰일 곳이 많아지는 것도 즐거운 일입니다.

2021년 행복시민들과 광주 월곡동 고려인 마을 방문
▲ 2021년 행복시민들과 광주 월곡동 고려인 마을 방문

되돌아보니 젊은 시절이 힘들고 버거웠던 이유는 꼭 무엇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무엇이 되기 위해 늘 조급했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허상을 좇았습니다. 남편에 대한 원망도 내 기대에 미치지 못함에 대한 욕심이었음을 늦게야 깨달았습니다. 이런 사람이어야 한다,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내 기준을 만들어 두고 남편을 그 기준에 가두려 하다 보니 남편은 나쁜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길가에 핀 한 포기 풀임을 좀 더 일찍 깨달았다면 젊은 시절을 조금은 가볍게 살아도 되었을 것을, 처음부터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했으면 아무 문제 없이 편안하게 살았을 텐데, 그러지 못해 괴로운 삶을 자초했습니다.

지금은 주어진 것들에 감사할 일이 많습니다. 암에 걸리고도 아이가 청년이 된 지금까지 살아 있어 감사하고, 술 좋아하는 남편이 건강한 것도 감사할 일입니다. 마음을 내려놓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로 인해 내 삶의 무게가 얼마나 가벼워지는지 이제는 압니다. 그래서 행복합니다.

제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냐가 중요하지 않음을 압니다. 살아있는 동안 필요한 곳에 쓰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배운 것을 실천하며 '나도 좋고 남도 좋은' 그런 인생이길 바랍니다.
알록달록 곱게 물든 단풍으로 제게 주어진 시간을 물들이고 싶습니다.

곱게 물든 단풍처럼
▲ 곱게 물든 단풍처럼


최란 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제 밑마음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조금만 힘들어도 물러나는 마음으로 움츠려들고 누군가가 그런 저를 보듬어 주기를 바랐던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온전히 온 몸으로 부딪치며 깨지고 넘어지면서도 다시 일어나는 최란 님이 들풀처럼 느껴졌습니다. 오늘 아침 기도에서는 수행문을 천천히 한 구절씩 되새기며 읽었습니다. 수행과 봉사로 더욱 단단해지고 행복을 만들어가는 최란 님은 소임의 귀중함을 다시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글_이영자 희망리포터(광주전라지부 서광주지회)
편집_김난희(강원경기동부지부 원주지회)

전체댓글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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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환

함께 꾸준히, 쓰이며 갑니다.

2023-08-28 12:01:26

느릿느릿

고맙습니다~~~~^^

2023-08-28 09:22:53

김복선

최란님
광주로 내려가고 나서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했는데 ....
최란님의 아름다운 수행자의 삶을 응원합니다. 함께 가요~~
부드럽게 웃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2022-12-04 08: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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