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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18일 오후 5시, 3년간의 간경화 투병 끝에 75세의 나이로 어머니는 부처님 곁으로 갔습니다. 참 많이 힘들었습니다. 생전 처음 느끼는 마음과 무언가에 의지하고픈 간절한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어머니는 살아생전 불교 신자는 아니었지만, 산에 오르실 때마다 사찰에 들르고, 부처님 오신 날이 되면 가족의 안녕을 비는 연등을 꼭 달았습니다. 저도 그렇게 어머니를 통해 불교와 조금씩 인연을 맺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래, 이 참에 불교공부를 해 볼까?'하며 집 근처에 있는 봉녕사에 찾아가, 불교대학에 입학금까지 납부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접수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집 앞 공원에서 정토회 불교대학 모집 안내 홍보지를 봤습니다. 홍보지에 실린 법륜스님이 누군지 전혀 몰랐지만 “한 번 알아볼까? 아냐. 봉녕사에 이미 등록하고 왔는데 뭐~”하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돌아와서도 이럴까 저럴까 갈팡질팡하였습니다. 한번 알아보자는 마음에 찾아보니, 정토불교대학은 수업시간이 오전 10시였고, 봉녕사 수업시간은 저녁 7시였습니다. 오후보다는 오전이 나을 거 같아 봉녕사는 환불을 하고, 그 길로 용인법당으로 등록을 했습니다. 운명이 결정되는 건 이처럼 사소한 이유 같습니다.
2018년 정토 봄불교대학에 입학하며 정토회와의 인연은 시작되었습니다. 이때부터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연달아 들었고, 저의 본질적인 문제는 사실 어머니를 잃어서 오는 '애별이고'의 슬픔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슬픔이라고 생각한 것은 저에게 알림을 주기 위한 빙산의 일각이었을 뿐, 수면 아래 거대한 문제점들이 숨어 감춰져 있었음을 점점 알게 되었습니다.
결혼 후부터 10여 년 동안, 초등학교 1학년의 아들, 초등학교 5학년의 딸아이 그리고 남편을 제 마음대로, 그리고 제 업식대로 해 온 삶들이 수면위로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보기도 싫었고 인정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말도 안 돼! 잘 키우려고 한 거잖아, 나 좋자고 한 게 아니잖아’ 하며 수많은 진실앞에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내가 이 정도 밖에 안되는 인간이라고...’ 하며 억울하기도 했고, 저항하는 마음에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어느 결혼기념일 날이었습니다. 가족들과 외식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아들이 아파트 정문에서 내려 달라고 해서 아들을 내려주고, 나머지 가족들은 엘리베이터를 탔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3층, 6층, 8층, 9층, 층층이 타는 사람도 없는데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것이었습니다. 분명 누군가 장난을 치는 것 같았습니다.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고, 11층 집에 도착해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데 아들과 아들 친구가 비상계단으로 사라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아들을 잡아 세웠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네가 층층마다 버튼을 누른 거니?” 하고 물으니 “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 순간 화가 올라왔고, 아들을 나무랐습니다. 몇가지 주의를 듣고서 아들은 그대로 친구와 놀러갔습니다. 저녁시간이 되어 식사 준비를 하고 아들을 기다리고 있는데, 전화기는 꺼져있어 통화가 되지 않았습니다. 낮에 있었던 엘리베이터 사건도 생각나면서 귀가 시간도 지키지 않는 아들에 대해 더욱 화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은 노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아이입니다. 놀이터에 아이들이 한명도 남아있지 않아야 그제서야 집으로 돌아왔고, 귀가 시간에 대해 여러번 약속을 했지만 지키지 못하는 날이 더 많았습니다. 그 날도 8시가 되어서 들어오는 아들에게 화를 냈습니다. 엄마와의 약속은 또 까맣게 잊었냐며 아이를 다그쳤습니다. 아이는 주눅이 든 채로 씻고 나와, 혼자 조용히 밥을 먹었습니다.
그날 저녁 아들과 침대에 함께 누웠습니다. 아들의 불편한 마음은 생각하지 못한 채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얘기를 꺼내며, 내 할 말만 했습니다. 아들은 몸을 옆으로 돌리더니 “엄마, 내가 오늘 어디 갔다 왔는지 모르지?” 하면서 말을 흘렸습니다. “어디 갔다 왔는데?, 놀다 온 거 아냐?” 라고 물었더니 아들은 엄마 아빠 결혼기념일이라 꽃을 사러 가기 위해 꽃집을 찾아 다녔다고 했습니다.
아파트 정문에서 먼저 내린것도, 엘리베이터 올라가는 버튼을 층층마다 눌러 놓은것도, 집에 있던 용돈 지갑을 가져가야 하는데 엄마, 아빠 모르게 가져가려고 시간을 벌고자 했던 일이라고 합니다. 아들의 설명을 조용히 듣고 있는데 할말이 없었습니다. 그저 제 생각만으로만 꽉차 있으니 상대의 얘기를 들어 볼 생각 조차 안하고 있었구나.
'내가 옳다라는 생각으로 빈 틈이 없으니 상대의 마음 따윈 전혀 들어오질 않는구나. 전혀 알려고도 하지 않는구나!'
그 상대가 아들이고 늘 늦은 귀가를 한다는 생각에 빠져 오늘도 당연히 그랬겠지!하면서 단정 지어 놓고 아이의 얘기를 들어보려고도 하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너무 창피했습니다. 어떤 변명도 할 수 없었습니다. 아들의 이야기를 듣고선 멍하니 멀뚱멀뚱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강렬한 충격은 오래갔습니다.
불교대학 1년은 '인정하지 않으려는 나의 자아와 정곡을 찔러대는 부처님 법과의 대치'였습니다. 그러다 경전반을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기나긴 고민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고민 끝에 '해보자, 가보자, 일어나자!'하면서 내린 저의 결정은 어느 날 경전반 수업 중에 '내 결정이 바른 결정이였구나.'하는 확신이 되었습니다.
법문 듣는 중 노트에 필기를 하려고 고개를 숙였다가 법문 영상으로 보려 다시 스크린을 보는 순간, 법륜스님의 얼굴 위에, 스크린 뒤의 부처님 사진이 옮겨져 보였습니다. 그 순간 ‘그래 이 모든 내용이 부처님께서 직접 깨달은 말씀이구나! 법륜스님을 통해서 나는 부처님을 만나고 있는 거였구나.’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 저의 태도는 바뀌었습니다. 그렇게 경전 공부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고, 공부가 깊어지면서 즐거웠습니다. 부처님 오신날을 몇일 앞두고 벌어진 이 짧은 경험이 6월 천일결사 9-9차 입재로 이어졌습니다.
문경수련원에서 1박 2일로 구성된 경전반 특별수업은 한창 공부가 즐거움이 된 저에게 새로운 방법을 제시해 줬습니다. 법사님의 ‘나만의 경전을 만들어 보세요.’라는 말이 인상 깊었습니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와, 저만의 경전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법륜스님 법문에서 제가 감동한 것과 경전공부하면서 깨닫게 된 것들, 그리고 도반들과의 나누기보다 훨씬 더 제 자신의 밑낯이 드러나는 제 자신과의 나누기, 또 풀리지 않아 답답했던 진리들. 기쁨, 슬픔, 분노, 즐거움, 사랑, 미움, 욕심, 희노애락애오욕 인간의 모든 감정인 칠정이 담겨져 있는 저만의 경전을, 경전반 특별수업 이후 4년째 쓰고 있습니다. 오랫만에 꺼내보니 12권이 됩니다. 경전이란 말을 쓰기가 좀 외람되고 불경스러운 마음도 있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진지한 저만의 깨달음의 내용이 많았기에 감히 만들어 봤습니다.
경전반 졸업식을 마치고 수료증을 받아와 식탁위에 두었더니,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인 아들이 "엄마, 엄마 이제 스님 될 수 있는 자격증을 딴 거예요? 이제 법륜스님처럼, 스님 될 수 있는 거에요?" 라고 물어보는데,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고, 불가능한 일이기에 황당해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스님이 되고 싶진 않습니다. 그러나 법륜스님의 낡디 낡은 가사 장삼에 있는 작은 실밥 만큼이라도 스님의 삶을 따라가고 싶은 마음입니다.
현재 경전대 진행자, 그리고 수원지회 환경 꼭지와 복지꼭지 소임을 맡고 있습니다. 진행자 소임을 통해 부처님 법을 전하는 법보시를 행하고 있으며, 사람들이 부처님법을 통해 고달픈 인생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환경 꼭지로 흙퇴비화를 통해 제가 무엇을 먹고, 얼마 만큼을 버리는가를 관찰해 보면서, 적게 먹고, 끝까지 먹고, 육식도 멀리하게 됩니다. 지금은 공양게송도 자각해서 빼 놓지 않고 하려 합니다. 복지꼭지로 영양꾸러미를 통해 제가 가진 것이 얼마나 많으며, 더 이상 바라는 것이 죄가 된다는 사실도 배워갑니다. 누가 누군가를 도와준다는 세속의 정의에서 벗어나, 원래 모두가 평등했음을 매번 확인합니다.
모든 봉사소임을 통해, 부처님 법을 공부하는 제자로서 부처님 법에 대한 회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천일결사 9-9차에 입재하여 아침 정진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잘 되고, 또 잘 안 될때도 있지만, 이 길이 제가 가야할 길이란 생각에는 오르고, 내려오는 등락은 없습니다. 그 전날, 제가 알게 모르게 한 말들, 행한 행동들, 생각들로 지은 업에 대해 참회기도를 합니다, 이어 이 지구별, 부처님, 법륜스님, 부모님, 형제, 남편, 아이들, 제 주위의 지인들과의 인연에 대해 감사의 기도를 합니다.
저는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매일 아침 눈뜨자 마자 제 자신을 먼저 챙기고, 제 생각을 합니다. 그래야 제가 괴롭지 않고, 제 주위의 사람들이 괴롭지 않음을 아침 기도로 배워나가고 있습니다. 여러 봉사소임을 하고 있지만, 가장 즐겁고, 우선 시 되는 건 아침정진 시간입니다. 이 시간을 통해 마음의 중요성을 배워나갑니다.
마지막으로 부처님의 여러 훌륭한 말씀 중 제일 좋아하는 문장을 소개하고 이 글을 마치겠습니다.
홀로 행하되, 게으르지 마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저는 홀로 행하며, 게으르지 않겠습니다.
저는 아직도 남이 하는 칭찬과 비난의 소리에 놀랍니다.
저는 아직도 눈으로 보는 것, 오래 된 관념에 늘 걸립니다.
저는 아직도 세속의 즐거움에 물들 때가 많습니다.
아직은 혼자서 못 갑니다.
그래서 저는 아직은 혼자 갈 수가 없습니다.
저는 그래서 불법승 삼보에 더 간절히 귀의하며 이번 생을 보내고 싶습니다.
어느 나누기에서도 늘 감동을 주는 도반입니다. 배울게 참 많다라고 뵐 때마다 항상 느낍니다. 당당하며 최선을 다해 봉사 소임하는 찬희님을 보면서 제 자신도 돌아보게 됩니다. 똑소리나게 해나가는 모습에 자랑하고 싶고, 닮고 싶습니다. 항상 같이하는 도반으로 나아가 봅니다.
글_이서후 희망리포터(강원경기동부지부/수원지회)
편집_김세영(인천경기서부지부/일산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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