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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1남 3녀 중 둘째로 태어나 경제적으로는 어려움 없이 어린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20대 초반, 1990년대에 살던 동네에 재개발 붐이 일었습니다. 살고 있던 집 앞으로 도로가 나면서 집을 신축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무리하게 빚까지 내서 옮긴 집은 IMF 시기에 이자를 감당하기 힘들어졌습니다. 집이 팔릴 때까지 사채와 신용카드 대출로 버티다가 결국은 1층 세입자에게 건물을 넘기고 월세방으로 이사를 하였습니다.
부모님은 물론 언니도, 저도, 여동생, 남동생도 빚을 떠안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직장을 다니던 저는 집 팔리면 다 갚을 수 있다는 아버지 말만 듣고 신용카드 대출을 받았다가 강북의 아파트 한 채 값 정도의 빚을 지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제게 마포에 있는 한 법무사 사무실로 오라고하여 갔는데, 아버지 친구가 아버지가 채무 변제를 못할 경우 제가 대신 갚겠다는 각서에 서명을 하라고 했습니다. 자포자기하는 마음으로 서명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분노, 허탈감은 극에 달했고 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이사 날짜가 정해지고 좁은 집에 모든 식구가 기거할 수 없어, 6년간 연애를 하면서도 집안 형편으로 결혼을 미뤘던 지금의 남편과 스물아홉 되던 해에 결혼했고, 여동생도 이사하기 전에 사귀던 사람과 서둘러 결혼을 했습니다. 제 결혼 생활은 제2의 인생을 위한 새로운 출발이 아니라 탈출을 위한 선택이었기에 기대도 없었고 친정 빚을 갚아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 남편의 눈치를 살피게 되고 낮아진 자존감과 우울감에 젖어 살았습니다. 빚을 갚기 위해 주중에는 직장생활, 주말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서른 일곱 까지 10년동안 빚을 갚는 것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습니다.
그러나 시련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여동생이 임신중 뇌출혈로 뇌병변 장애등급을 받았고 부모님 역시 건강 악화로 응급실로 이송되신 경우도 수 차례.지옥이 있다면 이런 곳일까? 빚의 노예가 되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희망을 갖기 조차 어려웠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를 낳는다는 건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부모로서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는 무책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힘들고, 외롭고, 괴로울 때마다 늘 죽음은 나의 최후의 보루처럼 여겨졌습니다.
내 인생의 반 이상은 죽음에 대한 고민이었고 그나마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버팀목이 되어준 건 친정 엄마였습니다. 엄마가 돌아가시면 내 인생도 끝난다는 생각으로 살았는데 회사 재직 중 ‘잘 죽는 법’ 이라는 주제로 ‘샘물 호스피스’ 원주희 목사님의 호스피스 강연을 들었습니다. 내가 지금 살고 있지만 결국은 죽음으로 가고 있는 것이고,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니며, 죽음은 생명과 더불어 시작됨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강연이 계기가 되어 대학병원에서 호스피스 자원봉사를 시작하면서 담당 선생님을 통해 정토회를 알게 되었고 2015년 가을 불교대학에 입학하였습니다.
호스피스 봉사를 하면서 사회복지, 가족상담 치료에 대한 공부도 하였는데, 인간의 삶 속에 일어나는 모든 괴로움과 의문에 대한 해답이 불법 안에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불법에 대한 신뢰와 확신이 생기면서 더이상 지식을 쌓는 공부는 중단하고 수행자로서의 삶을 살아가기로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정토회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나누기였습니다. 사람들에게서 내가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정작 내 이야기는 남들에게 잘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이야기 해봤자 해결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기에서의 나누기는 달랐습니다. 무엇이든 이야기해도 되고, 내 이야기에 평가하지 않고, 굳이 해답을 찾을 필요도 없었고, 그냥 마음 상태만 내놓으면 되기 때문에 말을 잘할 필요도 없었고, 무엇보다 지금 내 마음이 어떤지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마음을 내놓다 보니 ‘나도 나를 잘 모르고 있었구나’ 그 마음이 더해져서 상대방을 이해하게 되고 위로받으며 조금씩 응어리진 상처가 풀려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소임 중에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은 경전반 진행자입니다. 올해로 세번 째 맡고 있는데, 금강경 강의는 들을 때마다 새로움과 신선함으로 다가옵니다. 이해가 안되던 부분이 이해가 되고 예전 강의 노트에 적은 소감과 현재의 소감을 비교해보면 나의 관점이 변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고 조금씩 달라지는 나를 발견하는 재미가 있어서 더욱 소중하고 감사하게 생각됩니다.
8-9차에 입재했지만 기도는 꾸준히 하지 않다가 2018년 자원활동 소임을 하면서 기도를 시작하였습니다. 활동가 프로그램인 정일사를 계기로 2019년 정일사에는 도반들과 법당에서 새벽 5시 300배 백일 정진, 2020년 정일사에는 8월부터 올해 3월까지 모둠원들과 함께 화상에서 만나 새벽 5시 정진을 꾸준히 했습니다.
정진을 통해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미움과 화, 걱정이 줄어는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이기적인 면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면서 아버지의 빚도 내 선택에 대한 책임의 결과이고 부모는 자식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생각, 어떻게 부모가 그럴 수 있냐는 생각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아버지도 자신이 살려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구나 생각하니 연민이 느껴졌습니다.
제 과거 일하는 방식은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하고 결과에 집착했다면, 지금은 준비하는 과정에서 기쁨을 느끼고, 상대방을 기다려주는 여유로움도 생기고, 부족함을 채우기보다 부족함이 없음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나와 상대방을 이해와 공감하는 자세로 인생 2막을 향해 도반들과 꾸준히 수행, 보시, 봉사하며 가볍게 살아가고자 합니다.
온라인 법회로의 전환 원년이 된 작년에 법당 총무를 맡으며 온갖 어려움을 감당해낸 배지은님. 정토회를 만나고, 또 법당 총무를 하며 많은 내적 변화가 있었다고 합니다. 편안해진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글_안형선 희망리포터(서울제주지부 서대문지회)
편집_조미경 (경남지부 김해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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