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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동생이 텔레비전에서 법륜스님 법문을 듣다 너무 좋아 정토회를 직접 찾았습니다. 그렇게 인연이 된 울산법당에 불교대학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동생이 제게 같이 공부하자고 했습니다. 그때가 9년 전인 2010년, 제가 27살이 되던 해였습니다. 저는 정토회를 전혀 몰랐습니다. 당시 직장을 다니고 있었는데 퇴근 후에 친구들과 놀고 싶고 또 정토회가 사이비라는 의심이 들었기 때문에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동생은 자기를 믿고 딱 일 년만 같이 다녀보자며 저를 이끌었습니다.
불교대학에 입학하니 아니나 다를까 가만히 앉아있는 것부터가 성격에 맞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불교대학 담당자가 영상 봉사를 권유하여 영상을 맡게 되면서 책임감 때문에 일 년을 나오게 되었습니다. <깨달음의 장>도 크게 관심이 없었지만, 어느 선배 도반이 지속해서 권유해 주어 다녀왔습니다. 이렇게 불교대학을 졸업하기까지에는 의지가 없었던 저를 옆에서 도와주고 이끌어 주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졸업 후에는 청년 정토회에서 또래 법우들과 같이 활동하였습니다. JTS거리모금도 하고 주말에는 정진도 하고 또 요청이 들어오는 봉사 일도 기꺼이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그 다음 해에 경전반을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친구들과 놀러 다니길 좋아하는 제가 시간이 될 때만 법당을 나오니,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2013년에 결혼하고 영천으로 이사 오면서 영천법당 수행법회에 한 번씩 나왔습니다. 이듬해에 아이를 낳고 친정에서 몸조리 후 영천으로 돌아왔습니다. 연고가 전혀 없는 곳이라 아이와 바람을 좀 쐬고 싶어도 갈만한 곳이 영천법당 밖에 없었습니다. 아이와 함께 버스를 타거나 택시를 타기도 하며 졸업하지 못했던 경전반을 다녔습니다. 그때는 영천법당이 지금보다 작았던 때라 부총무님 포함 경전반 담당자와 도반들이 아이와 저를 편하게 맞아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또 다시 이끌어주는 인연 덕분에 무사히 경전반을 졸업하였습니다.
그즈음, 회계 소임을 보던 분이 급하게 부총무 소임을 맡게 되면서 저에게 회계 소임을 부탁하였습니다. 사실 계산하는 일과는 거리가 멀었고 그쪽으로는 전혀 꼼꼼하지 않은 저였습니다. 하지만 아이와 법당을 놀이터처럼 드나들며 부총무와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았을 때라 회계 소임 제의가 부담스럽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부총무님이 일을 잘 알고 있어 '아무 때라도 다 알려줄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 하여 안심도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라도 더 가르쳐 주려는 부총무와 한동안 붙어 지내다시피 하며 회계 소임을 배워나갔습니다. 그렇게 그 소임을 올해로 3년을 채웠습니다.
예전에 자발적으로 봉사하고 다닐 때는 없었던 분별심이 소임을 맡고 나니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영천법당에는 젊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불교대학 담당 소임을 맡은 도반들도 나이가 다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컴퓨터와 관련된 일들을 제가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자발적인 봉사를 할 때는 어떤 부탁도 다 들어주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소임을 맡고 나니 그 이외의 일에 관해서 부담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일이 점점 늘어나서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수업 담당자가 해야 할 일인데 왜 내가 자꾸 해줘야 하지?’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자, 이 일을 하지 않는 담당자들에게도 불편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영천법당에 인원이 적어 소임이 적절하게 나뉘지 못했습니다. 또 작은 법당의 부총무 소임이 얼마나 힘든지를 계속 봐온 터라 저 혼자 지레 걱정되어 못하겠다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혼자 끙끙 앓고 있던 때에 친한 도반이 '딱 잘라 말해보라'며 제가 사람들에게 '착하게 보이려 한다'는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그 말에 용기를 내어 부총무에게 업무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더니 바로 일이 해결되었습니다. 제가 아닌 새로 입학한 다른 젊은 도반들에게로 그 일들이 나누어져 깨끗이 해결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는 싫다는 내색조차 보인 적이 없었습니다. 착하게 보이려 한다는 충고가 맞았습니다. 착하게 보이려 하다가 점점 힘들어진 것입니다. 거절해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시작은 잘하나 마무리가 항상 흐지부지하게 끝나는 제 모습이 보였습니다. 배우며 같이 할 때는 잘되던 일이 온전히 맡아서 혼자서 하자 힘들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시작은 잘해놓고 세심하지 않은 제 성격대로, 설명을 들어놓고도 일을 할 때는 대충대충 했습니다. 그러니 마감 때만 되면 수정하러 밤이고 낮이고 법당으로 출동하기 일쑤였습니다. 제가 마감되지 않으니 지부의 관련 담당자들도 같이 고생을 해야 했습니다.
제 딴에는 열심히 하는데 자꾸 실수가 생기니 회계 소임을 할 때면 긴장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다른 업무에 대한 분별심도 생겼습니다. 남편도 직장에서 정신없이 바빴던 때라 남편에게 의지할 수도, 위로받을 수도 없었기 때문에 마음이 더 힘들었습니다.
모두에게 착하다는 소리를 듣고 싶은 제 모습, 막상 시작되면 흐지부지하게 일을 하는 제 모습. 회계 소임 봉사를 했기에 이런 저를 적나라하게 마주할 수 있었으니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저를 알아차리며 앞으로의 수행의 과제가 생겼으니 ‘봉사와 수행의 일치’는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근래 알게 된 사람에게서 마음 상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한두 번씩 생기던 불편한 마음이 쌓이고 쌓여 감정이 몹시 상하던 어느 날, 속상한 제 마음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리고 잠시 뒤 눈물은 났지만, 차분히 할 말을 다 하였습니다. 정토회를 다니지 않았다면 속으로만 삭이며 그 사람을 계속 만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합니다. 여태껏 저는 남의 말에 상처를 받지 않는 사람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수행을 해 가며 상처를 받지 않은 것이 아니라 참고 지나가는 것임을 알았고, 그 감정은 다른 통로를 통해 언젠가는 터져 나옴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를 도와주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던 것도 사람 복이 있어서라기 보다는, 착하다는 소리를 들으려고 노력했기 때문이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수행하지 않았다면, '착하다' 소리 들으며 '부딪히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부터는 참회기도를 꾸준히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려고 합니다. 그리고 회계 담당 후임자와 호흡을 맞춰 업무 인수인계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인수인계가 잘 마무리 되면 이후 주어지는 소임에 대해서도 봉사해 나갈 것입니다.
맡고 싶은 소임이 있느냐는 물음에 “사실은 수행법회 담당 소임을 맡고 싶다.”며 해맑게 웃는 황수정 님. “아직도 쉬운 것을 하려는 업식이 있는 것 알아요. 머리 쓰면 안 되는데 말이에요. 호호!”라며 수줍게 이야기합니다. 주인공의 환한 미소를 보며, 삼 년 동안 봉사하며 수행해왔던 날들이 황수정 님의 앞날에 큰 힘이 되어 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글_정수옥 희망리포터 (경주정토회 영천법당)
편집_강현아 (대구경북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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