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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만 잘 마시면 취직도 잘 되고 돈도 많이 번다는 말에 토목공학과에 입학했습니다. 불교학생회 동아리에서 활동하며 법회가 끝나면 막걸리잔 기울이며 사회문제와 불법에 심취했습니다.
고2 때 광주항쟁을 몸소 체험하고 많은 주검을 보았던 저는 ‘왜 동족 끼리, 시민과 군인 그리고 경찰이 서로 돌 던지고 총 쏘고 피를 보아야 하는지?’에 대해 고뇌했습니다.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있으면 있는 것이고 없으면 없는 것이지 헷갈리는 이 말은 도대체 뭘까?’에 대한 답을 찾고 싶었습니다.
책으로 불법을 공부하던 저는 보던 불경들을 다 태우며 머리 깎을 각오를 했으나 출가는 쉽지 않았습니다. 출가하는 것은 낭떠러지에서 떨어질 것 같은 두려움이었습니다.
대학 졸업 후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그 궁금증들을 묻어둔 채 속세에서 생활을 계속하였습니다. 국내에서 제일 큰 토목엔지니어링 회사에서 메인 부서의 임원까지 탄탄대로로 잘 나아갔습니다. 결혼해서 딸-딸-아들까지 낳으며 어느 누구도 부럽지 않는 1000점짜리 인생이었습니다.
대기업으로 이직을 하여 높은 연봉을 받으며 넉넉하게 살았습니다. 술, 등산, 골프, 패러글라이딩, 스키 등 무슨 일이던지 한번 필이 오면 푹 빠지는 성격이었습니다. 그 때 까지만 해도 남들이 ‘자식들이 잘못되었다, 이혼했다’ 하면 모두 세상을 잘못 살아가는 정신없고 한심한 사람들로 여기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2014년 11월 대학 2학년인 딸이 임신하고 혼인신고까지 한 상태에서 저와 아내에게 통보하는 사건이 터졌습니다. 그때 저는 아내의 권유로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에 한참 심취해 있던 때였습니다. 딸한테 통보를 받고도 즉문즉설 몇 편 들으니 마음의 평정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법적으로 성인이고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임신한 상태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때 가장 힘들었을 사람은 딸이었을 것입니다. 뱃속의 아이를 위해서라도 빠른 안정이 필요했습니다. 다만 식구가 2명 늘었을 뿐입니다. 사위와 외손녀. 즉문즉설을 알았던 것이 지금 생각하면 참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돈댁에서는 “아기를 지워라! 호적에서 파겠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 말에 아내는 울분을 참지 못했고 그런 아내를 달래느라 힘들었습니다.
그 후 계속해서 즉문즉설을 듣다가 대학 때 제대로 하지 못했던 불법공부를 해보고 싶어서 정토회 주말법회를 나가게 되었습니다. 2016년 2월 8-8차 천일결사 입재도 하게 되었습니다. 3월에는 불교대학에 입학도 했습니다. 수업에서 듣는 법문 한마디 한마디가 귀에 쏙쏙 박혔습니다. 대학 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법이 진짜 보배처럼 여겨졌습니다. 마치 물고기가 물을 만나서 자유롭게 헤엄치는 것 같은 자유로움이 느껴졌습니다. 참으로 행복과 자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여겨졌습니다.
수행에서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이 오계라고 생각되니 꼭 지키면서 살고 싶었습니다. 오계법문은 두 번씩 수업을 들었습니다. 출장 가서도 지역 법당을 찾아다니며 듣고 또 들었습니다. 대기업은 연봉도 좋고 할 일도 많지 않지만 영업이라는 업무의 특성상 저의 능력으로 오계를 지킬 수는 없었습니다.
고민 끝에 반대하는 아내를 설득해서 다시 전 직장으로 이직을 했습니다. 이직 후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새벽기도와 법당 일에 빠져 지냈습니다. 술에 취한 날도 기도를 거르고 싶지 않아서 힘들었지만 기도했습니다.
어느 날엔 술이 덜 깬 상태로 밤 12시 가까이 되어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폭음하는 업식을 끊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108배를 열 번 해버렸습니다. 그날은 아침기도까지 하고 출근했습니다. 그 이후로는 폭음을 안 하게 되었습니다.
경전반에서 금강경 법문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보살은 모든 중생을 구제하리라는 마음을 내야한다. 한량없는 중생을 제도하되 실로 제도 받은 자가 하나도 없다.” ‘왜 이런 법문을 이제야 들었을까! 아하 모든 이치가 이렇구나! 더 이상 걸릴게 없네.’ 그렇지만 그 동안 겹겹이 쌓인 업식의 때는 벗겨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수행의 과제입니다.
정토회에서 잊지 못할 소중한 경험은 2018년 1월에 갔던 인도성지순례입니다. 회사에는 “꼭 가야한다. 사표 쓰는 한이 있더라도 가야한다.”, 발주처에는 “겨울철에 공사품질을 위해서 공사 중지해야 한다. 나는 꼭 가야할 데가 있다.”, 직원들에게는 “나는 무조건 인도 가야하니 잘 부탁한다.”고 말하였습니다.
드디어 인도로 출발. 인도에서 8호차 버스차장이라는 새로운 소임도 맡게 되어 기뻤습니다. 기쁨은 잠시였고 한 귀는 송수신기 이어폰으로, 또 한 귀는 수신기 이어폰으로 두 귀를 이어폰으로 막고 나니 정신이 아득해졌습니다. 일정에 대하여 아는 것이 하나도 없는데 순례 객들은 제가 전지전능한 신 인줄 알고 계속해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불편함을 호소했습니다. 하루도 편안한 날이 없었습니다. ‘숙소 배정이 바뀌어 난장판이다. 물이 안 나온다. 침대가 없다. 밥하는 순서 지켜라. 각자의 소임도 모르고 안한다.’ 등등.
‘나도 돈 내고 온 순례 객이지 스텝이냐!!! 누가 나를 버스차장 소임을 주었어!?’ 속으로 원망이 가득했습니다. 정토회 들어와서 처음으로 방긋 웃으며 “예” 했던 것이 무진장 후회되었고 중간에 돌아갈 생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17일 동안 저의 업식과 순례 객들의 업식이 모두 올라오는 듯 했습니다.
‘아하~ 이런 것이 내 모습이구나.’ 일을 할 때 질서나 체계가 잘 잡힌 ‘일사불란’함을 좋아하던 저의 업식을 역경을 통하여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회향식 때 스승님께서 불만 있는 사람 손들라 하실 때 맨 앞줄에서 번쩍 손든 사람이 저입니다.
마지막 날 호텔에서 소감문 발표를 할지말지 고민하다 모두 풀고 가야겠다는 생각에 급하게 발표를 했는데 모두 웃음꽃을 피웠습니다. 고생이 소중한 경험으로 변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버스차장 소임을 주신 분, 8호차 도반님들, 옆에서 묵묵히 받아주신 광명신 향훈법사님께 거듭 감사드립니다. 다시 한 번 돈 내고 스텝으로 가고 싶습니다. 스승님, 법사님, 스텝들이 존경스러웠습니다.
지금 저는 안양법당 사회활동 팀장을 맡아 거리모금, 새터민 봉사, 통일 활동, 환경실천 등을 하고 있습니다. 작년 9월엔 통일체육대회 대신 안양정토회 안양, 안산, 군포 3개 법당이 합동으로 ‘새터민과 함께하는 좋은 이웃 나들이’라는 행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행사가 처음인 저는 엄벙덩벙 했습니다. 예상 참여인원이 많아야 40명이었는데 점점 커져서 72명이 참석한 그야말로 흥겹고 맛있고 풍족한 위아래 동네잔치가 되었습니다. 모든 도반님들의 적극적인 마음과 자세로 이루어낸 결실이었습니다.
윗동네 분들도 멍석을 깔아주니 마음껏 노래와 춤으로 화답을 했습니다. 마지막에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로 마무리하는 모두가 하나 되는 날이었습니다. 또한 세 법당 도반끼리의 화합의 계기도 되었습니다. 참으로 소중한 경험과 행사였습니다. 아하~ 그것이 인도성지순례 버스차장 소임의 힘이었음을 다시 깨닫게 되는 계기였습니다.
첫째 아기부처님은 아내요, 둘째 아기부처님은 집에 있는 딸이요, 셋째 아기부처님은 고3 아들입니다. 매일 아침기도와 이 명심문 덕분에 넘어지면 넘어진 줄 알고 또 일어납니다. 집안에서의 저의 독재 근성도 점차 깨닫게 됩니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듯이 무심코 던진 제 말에 상처를 받았을 아이들의 마음도 헤아려집니다. 대화의 물꼬가 조금씩 트이니 저에 대한 것을 더 많이 알게 됩니다. 요즘 저희 가족은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다큐를 찍습니다. 하나하나씩 억눌렸던 저의 과거도 끄집어냅니다. 그 과거가 쌓여서 현재 나입니다. 감사히 과보를 받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마술입니다!
“어떻게 하면 지혜로운 사람이 됩니까?”라는 질문에 “고생을 많이 해봐야 상대를 이해하고 진실한 경험이 되어 지혜로워진다.”는 말씀을 깊이 새깁니다. 딸의 갑작스런 결혼과 아내의 하소연이 나를 공부시키려고 인연되어 진 것을 알아 모든 중생의 은혜로 살아가고 있음을 항상 명심하며 보왕삼매론의 마지막 구절인 “역경을 통하여 부처를 이루겠습니다.”
방심하면 강력한 스프링처럼 과거 업식으로 돌아가는 것을 극복하고 싶어서 불교대학생과 함께 초심으로 돌아가 배우려고 봄불교대학 저녁반 담당을 맡으셨다는 노기선 님. 몸소 실천으로 하나하나 보여주시는 월광법사님을 등불삼아 배우며 다른 사람에게 등불이 되고 싶다는 원을 세우신 노기선 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서로서로에게 등불이 되어주는 따뜻한 세상을 꿈꿔봅니다.
글_박세영 희망리포터(안양정토회 안양법당)
편집_고영훈(인천경기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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