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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자 님]
저는 20대 중반에 결혼해 네 식구 평범하게 살았는데 30대 후반에 소뇌위축증이란 희소병이 찾아왔습니다. 거기다 류머티즘 관절염 진단까지 받아 아무 일도 못 했습니다. 집과 병원만 오가는 반복되는 삶으로 40대를 보내며 '왜 내게 이런 병이 찾아왔나'하며 매일 울고 한탄했습니다.
50대 초반에 선배 도반인 동생 박준 님의 전법으로 정토회를 알게 되었고, 불교대학을 시작으로 세상 밖으로 나왔습니다. 저는 병 때문에 항상 내 안에 화가 가득했습니다. 또한 가족에게 언성도 높아지고 짜증 섞인 말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밖에 나가서는 거의 말을 하지 않고 침묵했습니다.
불교대학과 경전반을 다니면서 이제는 화가 올라옴을 알아차리니 짜증을 거의 안 냅니다. 다른 도반들처럼 절을 많이 할 수 없지만 정진하면서 저의 변화된 모습을 보니 이렇게 살아있는 게 참 고맙습니다. 정토회를 알게 해 준 동생 박준 님도 고맙고, 언니 같은 든든한 도반인 김미순 님도 고맙습니다.
[김미순 님]
아버지는 권위적이고 무섭고 엄하셨고, 어머니는 차가우셨습니다. 저는 할머니 품에서 자랐습니다. 결혼할 때 할머니께서 말씀하신 대로 눈 감고, 입 닫고, 귀 막고 살며 30년을 보냈습니다. 남편은 돈 버는 일에는 신경을 안 썼고, 시어머니의 부당한 요구에도 저는 속으로만 중얼거리며 꾹 참고 눌러 담았습니다.
집과 가게만 다니는 제게 용인법당에 다니는 막내 시누이의 전법으로 정토회를 알게 되었습니다. 불교대학을 권유했지만, 청개구리 심보인지라 시키면 꿈적도 안 하고 몇 년을 보냈습니다. 그러다 2016년 평택 서부역에 붙은 포스터를 보고 가게로부터 도망치자는 마음으로 덥석 불교대학 입학금을 넣었습니다. 동기가 순수하지 않았던 것인지 입학식이 다가올수록 '괜한 짓을 했나' 하는 마음으로 가기 싫은 마음이었는데 돈이 아까워 입학식에 참석했습니다.
불교대학에 다니면서 '내가 없는 동안 남편이 가게를 꾸려가는 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나 없으면 가게가 망하는 줄' 알고 수업이 끝나면 부리나케 가게로 뛰어가기 바빴습니다. 그래서 봉사하는 게 참 어려웠습니다. 그러다 초파일 행사 준비로 연등을 만들면서 처음으로 희열감을 맛보았습니다. 가게도 신경 쓰지 않고 손님들 생각도 안 하고 오직 나만 생각하고 집중하는 첫 봉사 시간이었습니다. 그 후에 조금씩 봉사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습니다.
공부하면서 가슴속에 쌓아둔 것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면서 가족들에게 싸우자고 덤비는 모습이 나왔었습니다. '나 건드리지 말라'고 선언하며 싸움닭이 되자 남편은 누가 널 말리냐며 오히려 담담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참지 않고 말하니 속이 시원했습니다. '내가 이겼다'는 희열감에 들떠있다 법문 듣고 '아이고 내가 또 어리석었구나' 하며 돌이켜 갔습니다. 이런 모습도 나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참회했습니다.
불교대학을 졸업하자 딸도 변한 저를 보고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법당에 나가 저는 손녀를 봐주고 딸은 공부하는데 도반이 되니 참 좋습니다. 딸은 싸움닭으로 변하는 저를 돌이키게 하는 부처님입니다.
불교대학 입학 때 담당자를 찾느라 마음을 졸였다는 선배도반의 말을 듣고 경전반에 입학하면 담당자가 되겠다 했는데 이번에는 입학하는 학생이 없다는 말에 경전반이 열리지 않을까 봐 마음을 졸였습니다. 다행히 학생 수가 채워져 경전반이 개설되었고, 함께하는 박수자 님이 참 든든하고 좋았습니다. 법당에서 만나면 그저 반갑고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결석하는 도반이 생기면 마음이 짠했습니다. 이제 졸업할 때가 다가오니 박수자 님이랑 저랑 둘이 남았습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남산순례도 좋았고, 1박 2일 문경수련원의 특강수련도 좋았습니다. 예순이 되면 인도성지순례도 꼭 다녀오고 싶습니다. 2019년에는 봄경전반 담당 소임을 맡았습니다. 박수자 님은 부담당 소임을 맡아주셔서 무거운 어깨가 가벼워졌고 즐거운 마음입니다.
저는 행복한 수행자입니다.
글_장수정 희망리포터(평택법당)
편집_양지원(광주전라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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