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4년

백중기도

입재 : 2020년 7월15일(수) ~ 회향 : 9월 2일(수)
매주 수요일 오전 10시 / 오후 7시30분
문의: 전국 정토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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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즉문즉설

정토회
일반회원을 위한
정기법회

매주 금요일 저녁 7시 30분
문의: 각 지역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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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서점 이벤트 중

⟪지금 이대로 좋다⟫
여름 에디션 출간

기간 : ~ 사은품 소진시까지
문의 : 정토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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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행자의 하루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나요?

해운대구에 위치한 반여법당은 부산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동 단위의 법당입니다. 소법당이지만 있을 것은 다 있는 알찬 법당인데요. 오늘의 주인공 김미연 님은 봄 불교대학 담당자입니다. 얼마전 가게의 작은 화재 사고로 종아리 근육이 파열되는 사고에도 수요일 사시 예불만큼은 깁스를 한 채로 진행하였다고 합니다. 무엇이 그녀를 이토록 씩씩하게 만들었을까요? 화장기 없는 얼굴에 두 개의 보조개가 매력적인 김미연 님을 만나 보았습니다. 갈등의 서막 인터뷰 당일 도반들과 시아버님은 시어머니가 40대 중반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렇다 보니 시어머니의 자식 사랑은 대단했습니다. 젊었을 적부터 자식들을 위해 절에 많이 다니셨는데, 어느 날 당신이 자식과 같은 집에서 산다면 자식이 단명한다는 소리를 들으신 모양입니다. 그래서 절을 의지하며 거의 들어가 살았습니다. 당시 온 가족이 반대하였지만 막내아들이 10대임에도 불구하고 절에 공양주로 들어갔습니다. 초기에는 시어머니와 문제는 없었습니다. 그냥 믿고 따랐습니다. 저에게는 큰딸과 두 살 터울의 쌍둥이까지 세 명의 딸들이 있습니다. 쌍둥이가 태어나 100일이 되기 전부터 병원 생활을 하였습니다. 둘 다 동시에 입원시킨 적도 허다했습니다. 시어머니가 아이들을 봐주시기는 했지만 당신대로 절에 가야 하는 사정이 있었기에 산후조리 도움도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신랑과 식당을 운영 하고 있었는데, 그때는 너무나 바쁠 때였습니다. 식당일, 집안 살림, 제사까지 혼자 해야 하는 일들이 많다 보니 남편과 잔 다툼도 잦을 때였습니다. 2016년쯤 제사 때 시어머니가 우리 집에 오신 뒤로 한마디 의논도 없이 그냥 너희 집에서 살겠다 하셨습니다. 곧 가시겠지 생각했지만, 시골에서 짐들이 하나씩 내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 어렸을 적 자그마한 고사리손이라도 필요할 때는 도움을 안 주시더니, 애들이 다 큰 후에야 도움을 주겠다 하시는 시어머니가 도저히 이해가 안 되었습니다. 모둠별 두북 울력때의 모습 미움은 나를 괴물로 어느 날인가 갑자기 가게 주방에 들어오시더니 이것저것 시어머니의 간섭은 시작되었습니다. 거의 30년간 절밥을 드시며 생활하신 시어머니의 내공은 대단했습니다. 소심한 성격에 용기 내어 한마디 할 때면 벽을 마주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제가 말 좀 하려 하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알았다” 하시며 철벽을 쳤습니다. 아예 먹히질 않았습니다. 가게에서 제가 할 일과 시어머니가 할 일이 따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의 영역을 침범하시는 시어머니... 본인은 도와주고 싶어서였겠지만 하는 방식이 전혀 다르니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고가 크게 터졌습니다. 시어머니께서 저 모르게 반찬을 다시 쓰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시어머니께 그러면 안 된다고 단호히 말씀드렸고 괜찮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손님상에 나가는 겉절이 속에 익은 고기가 끼어 있었던 겁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습니다. 이게 어디 아들 도와주는 거냐, 이건 도와주는 것이 아니다, 이대로 소문나면 이 가게는 완전 끝이다, 하지 마라, 어머니랑 일 못 한다 하며 선을 그었습니다. 또한 당신이 부산에서 청도까지 절에 가는 바쁜 길에도 제가 가게에 나왔는지 확인 전화까지 하시던 시어머니가 그때는 정말 미웠습니다. 온라인 수업 전 정갈한 모습의 김미연 님 이런 일들이 일상이 되다 보니 어떻게 하면 같은 말을 해도 시어머니께 상처가 되는 말을 해볼까 궁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내공 백 단의 시어머니에 대한 저의 마음은 이미 괴물이었습니다. 이런 갈등 속에 저의 스트레스 해소법은 남편에게 고자질하기였습니다. 처음에는 잘 받아주던 남편이 ‘나보고 도대체 어쩌라고’ 하며 불같이 폭발하였습니다. 몸은 숙여도 마음은 꼿꼿이 그때 ‘아, 한계점에 왔구나. 더는 물러설 것이 없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당시 남편도 건강이 좋지 않았는데 이러다가 내 신랑 스트레스받아 죽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저의 여건상 개인적인 시간을 빼기 어려워 미뤄왔던 정토불교대학에 제 발로 입학했습니다. 그때에는 큰딸과의 갈등도 있었습니다. 입학 후 혼자서 108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저런 일들로 감정의 기복은 심해지고 혼자 괴로워 500배까지 했습니다. 그래도 해소가 안 되었습니다. 그때 저의 마음을 보니 어떻게 하면 이 괴로움에서 벗어날까 하는 기복적인 생각으로 몸만 숙였던 것 같습니다. 아무리 절을 해도 그 근본을 모르니 몸만 힘들 뿐 나아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내가 얼마나 잘났다 생각을 했던 것인지 도저히 숙이지 않았습니다. 저도 에 다녀와 다른 사람처럼 자유로운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불교대학 입학 후 2개월 만에 으로 향할 만큼 절박했습니다. 올해 봄불교대학 입학식에서 배신감은 분노로 손아랫동서와 같이 식당을 오픈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자본을 대고, 동서네는 기술을 댔습니다. 처음에는 장사가 정말 잘 되었습니다. 우리 식구들 다 먹고 살았으니까요. 가부장적이고 돈에 대한 집착이 있는 남편은 야무지게 가게를 꾸려나갔습니다. 그러던 중 작은 해프닝이 큰 오해를 낳고 말았습니다. 근무 시간 중에 직원 한 명이 테이블에 발을 올려 쉬고 있는 모습을 남편이 본 것입니다. 그 일이 화근이 되어 동서와, 동서가 데리고 온 일 잘하는 직원까지 모두 가게를 그만둬 버렸습니다. 또 휴가철까지 겹치게 되어, 휴가 가는 직원들의 부재까지 겹치니 상황은 참 난감하게 흘러갔습니다. 그때는 정말 정신없었습니다. 우리 쌍둥이 막내딸 수술 날짜까지 잡아놓은 터라 몸과 마음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앞뒤 볼 것 없는 저의 사정에 동서를 말려보았지만 소용없었습니다. 밤에는 병원에서, 아침엔 버스에서 꾸뻑꾸뻑, 낮에는 가게에서 쳇바퀴 도는 저의 일상 속에 저의 몸과 마음은 피폐해져 갔습니다. 법당 행사에서 어느 날 우연히 일을 그만둔 직원의 SNS를 보게 되었는데 눈이 뒤집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렇게 사정 봐달라고 부탁했던 동서와 그 직원, 그리고 휴가철 부재중이었던 직원들까지 모조리 같은 장소, 같은 시간대에서 휴가를 즐기고 있는 물놀이 사진을 본 것입니다. 아무리 형님네가 미워도 그렇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하는 배신감은 분노로 바뀌어 그때부터 동서가 너무나 미웠습니다. 신의 한 수 우리 동서가 참 예쁩니다. 어린 나이에 시집와서 도련님하고 잘 살고, 예쁜 조카들까지... 제가 정말 좋아했습니다. 그랬던 만큼 그 미운 감정은 무서울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에서 보낸 저의 4박 5일은 정말 신의 한 수 였습니다. 천운이었습니다. 78년 묵고 묵은 동서에 대한 미운 감정이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요?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이 책에서나 보았지 내가 경험할 줄 알았을까요?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습니다. 동서를 향한 큰 미움이, 그 마음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그때 저는 동서의 마음을 본 것이 아니라, 제 마음을 보았습니다. 대학생 인도 선재수련에서 봉사하는 쌍둥이 딸들 ‘아 화낼 일이 아니었구나’라고요. 어디에도 화 날 일이 없다는 것, 그 누구도 나를 화나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니 더는 미운 마음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에 다녀온 후 시어머니께 한마디 하였습니다. “어머니 우리 웃으며 살아요” 나는 원래 행복한 사람 태어나 병원 입원의 반복으로 늘 애태웠던 쌍둥이 딸들이 어느새 22살이 되었습니다. 2019년에는 대학생 인도 선재수련이라는 프로그램에도 다녀왔습니다. 마침 미술을 전공하는 딸들이었기에 수자타 아카데미의 벽화를 그리며 너무나 잘 적응하고 잘 쓰이고 왔습니다. 직접 밥을 해 먹고, 인도성지순례자들의 가사를 세탁하는 봉사를 하며 인생에 큰 경험을 해봤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JTS거리모금행사에서는 페이스페인팅을 하며 능력대로 잘 쓰이고 있는 딸들이 참으로 자랑스럽습니다. 그리고 막내딸은 현재 대전법당의 봄불교대학 학생이기도 합니다. 저는 반여법당 봄불교대학 담당자 소임을 맡고 있습니다. 요즘 코로나 여파로 온라인 수업을 하고 있는데, 우리 딸들의 역할이 한몫하고 있답니다. 컴퓨터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터라 딸들에게 구글사용법, 온라인사용법, 컴퓨터 사용법 등을 배우고 있습니다. 쭈욱 발 담그고 행복하게 인도 수자타아카데미 벽화그리기 봉사하는 쌍둥이 딸.right 그리고, 저에게 깨달음의 가르침을 주었던 동서도 경전반 학생이기도 합니다. 까지 다녀와 수행하는 도반애를 나눌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동서의 변화 또한 온 가족이 느낄 정도이기에 뿌듯한 마음과 대견한 마음이 큽니다. 저는 앞으로 ‘무엇을 하겠다’라는 큰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지금 제가 하는 소임에 충실하고 싶습니다. “그러다가 완전 정토에 빠지는 거 아냐?”라는 남편의 걱정스러운 말에 걱정마라 라고 하였지만 생각해보니 ‘빠져도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행복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쭉 발 담그고 있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원래 그 누구에게도 화낼 일 없는 행복한 사람이니까요. 리포터는 어느 해 동짓날에 맛있게 먹었던 단팥죽이 기억납니다. 김미연 님이 직접 만든 팥죽이었는데요. 한 숟가락을 입에 넣으니 따뜻하고 달콤했지요. 동글동글하고 매끈한 팥 속의 달짝지근한 맛, 다 아는 맛, 친근한 맛 같지만 일단 한 입 넣으면 포르르 몸이 녹아드는 달달한 단팥죽. 김미연 님은 왠지 단팥죽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터뷰 하며 김미연 님의 편안함이 저에게도 고스란히 스며드는 듯합니다. 행복을 전하는 일은 100번 말로 해서 될 일이 아니지요. 내가 행복하면 상대에게 전이되는 법 행복을 전하는 수행자 김미연 님을 응원합니다. 글 정지혜 희망리포터 편집 이종명 각주7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4박 5일

반여법당 2020.07.14. 914 읽음

정토행자의 실천

그래, 시작이 반이다

국제구호단체인 JTS는 인종, 종교, 민족, 성별, 사상, 이념과 관계없이 어려운 이웃을 돕고자 작은 힘이나마 함께 모아 일해 가는 단체입니다. 북한사업, 인도 사업, 필리핀 사업과 국내 사업을 다양하게 하고 있습니다. 2016년부터는 청소년 모부가정, 조부모 가정, 한부모 가정, 저소득 결식아동 등 지원이 필요한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계층을 찾아 그해 겨울부터는 여름, 겨울방학마다 꾸준히 결식아동 영양꾸러미 지원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JTS 홍보물 동인천법당에서는 2017년 하반기부터 복지담당인 조상혜 님과 부담당인 손미연 님이 영양꾸러미 지원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의 발굴과 지원대상자의 선정, 물품의 준비과정과 각 가정에 전달되기까지 자원봉사자들의 모습을 담아보았습니다. 영양꾸러미 지원 활동의 시작 처음 시작하는 법당의 자원봉사자들은 지원 대상자의 발굴부터 승인을 받기까지 민관과의 관계나 서류에서 복잡한 절차에 대해 어려움을 토로합니다. 동구에서 태어나서 동구에서만 사는 조상혜 님은 행정복지센터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행정복지센터의 복지팀과 연계하여 필요한 서류를 직접 작성하고 준비하는 데 큰 어려움 없이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인천 동구 지역을 3개의 권역으로 나누어서 권역별로 옮기면서 골고루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자를 선정하고 있습니다. 영양꾸러미를 지원받는 분을 생각해서 대부분 일회성 지원보다는 3회 정도 지속해서 지원하고 있습니다. 다문화가정은 지원 대상자를 선정하고 있습니다. 기관에서 조사하고 발굴하게 되면 동인천법당과 연계하여 지원 예정이라고 합니다. 지금, 이 순간 행복합니다 2017년 하반기에 지원계획을 세우고 JTS의 승인을 받았습니다. 2018년 상반기에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도록 13세대에는 도시가스 난방비를, 1세대는 연탄업체에 의뢰하여 연탄으로 직접 받으실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영양꾸러미와 온누리 상품권을 13세대에 지원하는 것으로 시작하였습니다. 초기에는 조상혜 님이 직장에서 퇴근 후 영양꾸러미 지원할 물품들의 목록을 들고 마트에서 하나하나 직접 구매하기도 하였습니다. 2018년 하반기부터는 JTS에서 물품을 법당으로 보내주었습니다. 법당에서 포장과 전달만 하니 아주 수월해졌다고 합니다. 2018년 하반기와 2019년 상반기에 각각 20세대, 2019년 하반기에는 21세대로 영양꾸러미 지원 활동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영양꾸러미는 어떻게 구성되는지 궁금하시죠? 관공서나 타 단체에서는 김치나 쌀, 참치 세트 등의 물품을 지원합니다. JTS 영양꾸러미는 햄, 참치, 반찬류, 떡볶이, 견과류, 간식 등 아이들을 위한 물품입니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반응이 좋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라면에 대해 물었더니 “라면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식품이지만 끓여 먹어야 하는 불편함과 불을 이용하는 위험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영양을 생각해서 지원하지 않습니다.”고 하였습니다. 건강을 우선시하는 품목들로 찾다 보니 유기농 음료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각 가정에 영양꾸러미를 전달하면서 설문지를 드립니다. 작성한 설문지를 핸드폰으로 받아 추후 필요한 물품들을 선정하는 데 반영하기도 합니다. 영양꾸러미 물품에도 신경을 써야 해요 JTS에서 영양꾸러미 물품이 각 법당으로 내려옵니다. 물품을 취합해서 지원하기까지 1주일 정도 소요됩니다. 유통기간이 넉넉한 물품은 괜찮지만, 반찬류는 유통기간이 짧아 신경을 더 써야 한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여름방학 기간에 멸치와 견과류 볶음이나 오징어 진미채 볶음을 지원 물품으로 보내올 경우가 있습니다. 다른 물품들과 함께 포장해야 하므로 반찬이 상하지 않도록 포장할 때까지 냉장고에 보관해야 합니다. 냉장고에 보관하지 않고 배송 물품이 모두 도착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한꺼번에 포장하면 안 됩니다. 반찬의 상태가 좋지 않으면, 배송 당일 다른 반찬으로 교체해야 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자원봉사자들은 정해진 시간에 법당에 모여 가볍게 마음을 나누고, 각자 맡은 일들을 척척 해나갑니다. 영양꾸러미 물품 담을 상자 준비 중 물품 목록을 가지고 빠지지 않도록 꼼꼼하게 체크하며 전달할 상자에 쏙쏙 여럿이 함께하니 물품 전달 준비가 뚝딱 영양꾸러미 전달을 위해 사전 계획을 하고 팀별로 동선을 짭니다. 골목을 돌고 돌아 영양꾸러미를 전달하기 위해 출발 영차영차 가볍게 영양꾸러미와 함께 잠깐 담소도 나누고 환한 미소로 인사드립니다. 영양꾸러미 지원 활동을 담당하고 있는 조상혜 님과 이야기 나누어 보았습니다. 부자 가정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집에 아이 혼자서 물품을 받는 상황이었습니다. 문만 열어봐도 알 수 있는 어려운 상황이 감지되었습니다. 아이 혼자 방치된 듯한 느낌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한번은 영양꾸러미를 받은 어머님이 고맙다며 아이와 직접 만든 예쁜 비누를 건네주었습니다. 사양했지만 계속 받기를 원하셨습니다. 비누 선물을 받기도 그렇고 받지 않기도 그렇고 난감한 상황이었습니다. 고마운 마음에 준비했다면서 극구 건네주시는 어머님의 마음을 생각해서 받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생활이 어려운 분들을 위해서 무언가를 준다는 생각보다는, 제가 건강하게 봉사할 수 있어서 감사하고 활동하는 내내 뿌듯하고 행복합니다. 돌아보지 않던 제 삶을 성찰해보고 있습니다. 제 생활이 부족함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봉사를 하면서 ‘내가 많이 가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도성지순례를 다녀온 바로 다음 날 영양꾸러미를 전달하게 되었습니다. 거리에서 구걸하는 인도아이들이 불쌍하고 안쓰럽다는 생각과는 다르게 해맑은 얼굴이 떠오르며 행복의 기준이 물질이 아님을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풀 한포기도 나서 거름이 되는데 사람으로 태어나서 무언가는 보람된 일을 해야 하지 않겠나? 법륜스님의 말씀이 떠오르면서 어려운 이웃과 세상에 잘 쓰인다는 마음이 크게 와 닿았습니다. 어머님이 주신 각양각색의 예쁜 비누들 우리 법당도 영양꾸러미 지원사업을 참여하고 싶어요 영양꾸러미 지원 활동을 처음 시작하는 법당의 자원봉사자들은 지원 대상자를 발굴하고 지원 승인을 받기까지 기관과의 연계나 서류의 준비 등 복잡한 절차에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합니다. 최근에 영양꾸러미 지원 활동을 시작하는 송도법당의 경우 지원 대상자 발굴을 위해서 기관을 방문하여 대상자를 물색하였으나 연계가 잘되지 않았습니다. 동인천법당에서 지원 대상자를 조금 더 선정한 후 송도법당이 영양꾸러미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함께 봉사활동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동인천법당에서는 인근 법당에서 영양꾸러미 지원 사업에 참여하고 싶은 분들이 도움을 요청할 경우 흔쾌히 돕겠다고 하였습니다. 일정을 마친 행복한 웃음 가득한 자원 봉사자들의 마음 이경준 님 봉사하러 온 도반들이 많았습니다. 일사분란하게 각자 맡은 일들을 척척해내는 것을 보고 훈훈한 마음입니다. 가정에 방문했을 때 시설이 노후 되고 벽지에 곰팡이가 핀 환경에서 자식을 키우는 엄마의 마음은 ‘얼마나 가슴이 아플까?’하는 마음에 속상했습니다. 이교옥 님 두 번째 봉사였습니다. 영양꾸러미를 받고 기뻐할 아이들 생각에 즐거운 마음으로 준비하였습니다. 영양꾸러미를 받는 아이와 부모님의 기뻐하는 모습에 함께 기쁨을 누릴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법당의 도반들과 행복을 전하는 일에 함께할 수 있어서 뿌듯하고 행복했습니다. 이선정 님 작게나마 봉사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은 시간이라고 생각하며 참여했습니다. 방학 때 혼자 끼니를 챙겨 먹기 어려운데 영양꾸러미 간편식으로 영양을 보충할 수 있으니 좋았습니다.. ‘적어도 우리나라에는 끼니를 거르는 아이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안심이 되고 뿌듯했습니다. 박옥금 님 처음 참여하는 봉사여서 아무생각이 없었습니다. 도반들과 함께 한 집 두 집 영양꾸러미를 전달하던 중 젊은 어머님이 ‘아이와 함께 만들었다’며 손수 만드신 비누를 건네주셨습니다. 받지 않으려고 극구 사양했지만 ‘어떻게 매 번 받기만 하느냐?’고 하시면서 다시 건네주신 비누를 어쩔 수 없이 받아오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생활이 어렵다고 받기만 하는 게 아니라 나누고 싶어 하는 그 어머니의 마음을 생각하며 더 많이 나누고 열심히 봉사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안현식 님 개인 약속을 뒤로하고 참여한 ‘영양꾸러미’ 자원봉사 활동. 도반들과 함께해서 값지고 보람되었으며 훈훈한 감정이 올라왔습니다. 어려운 가정을 눈으로 보는 순간 내 마음도 따라서 움직이는 것을 느꼈으며 ‘일체유심조’가 떠올랐습니다. 손미연 님 영양꾸러미 지원 사업을 위해 사전에 수많은 문서들을 준비하고, 민관의 소통이 필요한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마음을 내어 정성을 다하고 있는 모습은 큰 감동이었습니다. JTS의 국내사업의 일부인 영양꾸러미를 전달하는 과정을 통해 거리모금의 의미도 더욱 간절하게 다가왔습니다. 이 땅의 어떤 아이들도 소외되지 않고 건강하게 자랐으면 좋겠다는 간절함이 생겼습니다. 조상혜 님 JTS의 영양꾸러미 봉사 횟수가 늘어가면서 함께 늘어가는 자원봉사자들을 봅니다. 도반이 전부임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습니다. 함께 한 도반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영양꾸러미를 받고 고마움을 겉으로 표현 못하시는 분도 있고, 감사하다며 환하게 웃으시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어려운 이웃에게 조금이나마 쓰일 수 있어서 뿌듯했습니다. 함께 한 도반들이 모자이크 붓다가 되어 마음을 나눌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손미연 님과 함께 자원봉사 활동을 하면서 결과보다는 과정의 중요함과 행복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봉사활동을 하면서 만난 분들 덕분에 제가 행복해졌습니다. ‘영양꾸러미’ 지원은 꾸준히 계속됩니다. 영양꾸러미 지원 활동 초기에는 2명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초기라서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고 힘들었습니다. 2020년 1월에는 7명의 도반들이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물품의 포장부터 전달까지 일사분란하게 진행이 되어 훨씬 수월해졌습니다. 기사를 취재하면서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2명으로 시작된 힘들었던 상황들이 떠오릅니다. 영양이 듬뿍 담긴 영양꾸러미를 받고 좋아하시는 분들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부총무 소임을 새롭게 맡으신 조상혜 님의 ‘함께 한 도반들이 모자이크 붓다‘라는 말처럼, 많은 분들이 함께 해서 더욱더 많은 아이들이 영양꾸러미를 지원받을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해봅니다. 영양꾸러미를 준비하고 전달하며 마음이 따뜻해지는 활동가들의 밝고 행복한 모습에 흠뻑 빠져보시기 바랍니다. 기획.취재인연등 글안순애 편집고영훈

복지 2020.03.19. 7,881 읽음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전국 강연 일정은 추후 공지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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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생 이야기

우연히 찾아온 정토불교대학과의 만남

윤정숙 님 - 2018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지금까지 남보다 더 가지고, 더 빛나고, 더 잘 입고, 더 잘 살기 위해 살았는데, 어느 날 문득 이게 무슨 큰 의미가 있나? 싶었죠. 우연히 친구와 얘기하다가 알게 된 정토불교대학.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삶의 기준점을 찾고 싶어 입학하게 되었지요. 집착과 이기심이라는 어리석음으로 내 스스로를 괴롭게 만들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지금은 주변의 모든 것에 감사하며 제 삶에 만족해요.

부부에서 도반으로

이용준·김서화 님 - 2019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부부의 인연으로 만나 이제는 도반으로 서로 힘이 되어 주고 있어요. ‘아내는 이러한 사람’, ‘남편은 이러한 사람’라는 고정관념이 내 삶을 고단하고 힘들게 만들었음을 불법공부를 통해 알게 되었어요. 잘 풀리지 않는 부분도 법문을 들으면 해소가 되고 처방전을 받은 듯 시원해요.

이혼소장을 멈추게 한 정토불교대학

최영미 님 - 2015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13년 내내 총성없는 전쟁과 같았던 결혼생활. 이혼장을 쓰던 중에 정토불교대학 입학홍보문자를 받게 되었어요. 남편과의 싸움은 제 인생의 풀지 못하는 숙제 같았는데, 그게 해결되니까 풀지 못하는 숙제가 없어졌어요. 제가 변하고 나니 남편이 불교대학 홍보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