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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차 동북아 역사기행 소감문]

생각을 키워야 
내 삶이 확장됩니다



15조 임선희 서초법당

백암산성에서 마주한 만주의 고구려
역사기행 첫째 날 중국 심양에 도착해 요녕성 박물관에서 요하문명 전을 보고 백암산성으로 갔다. 고구려의 수도는 국내성이지만 고구려가 만주에 세운 가장 번영했던 도시는 요동성이고, 그 요동성을 지키는 산성이 백암산성이라고 한다. 성벽에 올라 견고하게 쌓은 고구려 특유의 개이빨식 축성법, 치성 등을 직접 보며 괜스레 든든하고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직까지 상당 부분 남아 있는 산성을 보니 만주벌판에 우리 선조가 살았다는 게 실감 나면서도, 이제는 우리 영토가 아닌 다른 나라의 땅이 되었다는 사실에 기분이 묘했다.

저녁 강연에서 들은 우리 민족이 갖게 된 고대사, 근현대사, 현대사의 열등의식은 곧 나의 열등의식으로 느껴졌고, 이런 열등의식을 극복하는 방법을 듣자 그것이 나의 열등의식을 떨쳐내는 방법으로 다가왔다. 일정을 모두 마치고 누우니 몸은 고단해도 이번 역사기행에 대한 기대가 새록새록 생겨났다.

홀본산성, 국내성, 그리고 압록강 너머 북한
둘째 날에는 고구려의 첫 번째 수도인 홀본산성에 갔다. 산 위에 요새처럼 지어진 성에 올라 어제에 이어 고구려 산성의 특징에 대해 설명을 들으니 이해가 잘 됐다. 그런데 유적들을 관리하는 중국의 태도와 감시 때문에 ‘남의 땅에 있는 우리 선조의 유적’이라는 사실이 새삼 안타까웠다.
환도산성에서는 관리인이 까다롭게 굴어 어떤 구역은 마음 편히 둘러보기도 어려웠다. 국내성 유적은 시내의 주택가와 도로가에 남아 있었다. 내 무지한 눈으로 보면 그저 돌무더기들인데 스님의 설명을 들으니, 국내성의 거대한 모습이 눈앞에 나타나는 듯했다.
국내성 성벽을 따라 걷던 길 끝에, 드디어 압록강과 그 건너 북한 땅이 보였다. 손에 잡힐 듯 너무나 가까운 거리, 철조망도 하나 없는 그곳에, 그냥 배 타고 건너가도 될 것 같았다. 스님이 처음 북한 동포를 돕게 된 계기가 되었던 이곳에서, 죽어 가는 이들을 앞에 두고 내가 가진 작은 것조차 건네지 못한다는 게 어떤 슬픔인지 느껴본다.

국동대혈에 올라 함께 부른 ‘우리의 소원은 통일’
셋째 날, 고구려 왕들이 나라의 번영을 기원하며 하늘에 제사를 지냈던 국동대혈에 올라,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간절히 발원했다. 다 함께 손을 잡고 부르던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는, 통일에 이어서 ‘민주·자주·평화’를 염원하며 부르니 그 단어들이 갖는 묵직하고 거대한 가치가 새롭게 다가와 뭉클했다.
400년 넘게 고구려의 수도였던 집안에서 장군총, 광개토대왕비, 광개토왕릉을 둘러보았다. 사진으로만 보던 유적들을 실제로 보니 그 규모가 매우 크고 정교해서, 당시 고구려의 강성함과 뛰어난 기술을 짐작하게 했다.
스님께 자세한 설명을 들은 후, 직접 눈으로 확인하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역사기행의 즐거움 중 하나였다. 모르는 것을 물어보면 누군가가 늘 잘 알려준다.

홀본산성(왼쪽에서 두 번째가 글쓴이)

압록강 건너 북한을 바라보며 혜산까지
넷째 날, 림강에서 출발해 차를 타고 압록강을 따라 계속 이동했다. 강 건너 북한의 산에는 굶주림을 이겨내기 위해 주민들이 개간한 뙈기밭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과연 농작물이 잘 자랄 수 있을까, 어찌 매일 오를 수 있을까 싶을 만큼 높은 산 위에까지 있던 뙈기밭은 그 모습 자체로 마음이 아렸다.
가다 보니 북한 주민들도 많이 보였다. 강가에서 노는 아이들, 낚시하고 빨래하는 사람들, 지나가는 트럭, 자전거 탄 아저씨, 심지어 황소만 보여도 와! 하며 다 함께 감탄사를 연발했다. 우리 세대는 한 번도 그들과 지낸 적이 없지만, 차 안에서 합창하듯 감탄사를 뱉을 때마다 우리가 같은 민족이라는 것을 체감한다.
압록강변을 달려 장백에 있는 발해시대의 영광탑에 올라 다 함께 새로운 통일코리아를 염원했다. 북한의 혜산이 한눈에 보이는 영광탑 앞은, 20년 전 좋은벗들이 북한 난민을 도왔던 현장이기도 하다. 그 당시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모르고 살았던 또 다른 우리 역사를 시리게 마주했다.

상경용천부 성터를 걸으며 발해를 기억
다섯째 날, 백두산 천지에 오르는 날인데 입구에 도착하니 태풍으로 입산을 못한다는 방송이 나왔다. 동북아기행 역사상 최초의 입산금지다. 일정을 변경해 발해의 수도 중 하나였던 상경용천부로 출발했다. 북쪽으로 달리는 길 양옆으로 끝없이 펼쳐진 평야가 광활하기 그지없다. 발해가 멸망하고 1,100년이 지나서야 그 땅에 찾아왔다고 말씀하시니, 우리가 한때 이 넓은 곳을 누비며 살았다는 것을 눈으로, 마음으로 담아둔다. 스님이 아니었다면 나는 발해의 역사를 제대로 기억하지도 못하고 살았을 것이다. 너른 성터와 끝없는 벌판 위로 붉게 물들어가는 하늘을 보는 것만으로 가슴이 시원했다.

발해 흥륭사(뒷줄 왼쪽 세번째가 글쓴이)

독립운동 유적지에서 실감하는 저항의 역사
여섯째 날은 독립운동 유적지를 주로 다녔다. 중국에서는 날마다 새벽시장에 가서 그날 먹을 아침· 점심 끼니를 샀다. 신선한 과일들과 다양하고 생소한 중국 음식들을 둘러보며 조원들과 장을 본다. 중국말을 잘 모르니 서툰 단어에 더해 손짓 발짓을 섞어 가며 물어보고 흥정도 하는 즐거움이 크다.
용성조사님이 마련했다는 명월촌과 봉녕촌의 선농당 터, 그리고 청산리 전투 터, 대종교 3인묘, 용정중학교, 일송정, 봉오동 전투 터까지 줄기차게 내리는 비를 맞으며 부지런히 다녔다. 일송정에 올라 이름이 어여쁜 해란강도 직접 보고, 선구자와 고향의 봄도 함께 불렀다. 멀리 떠나 온 고향을 그리워했을 선조들의 애달픈 심정이 절로 떠올려졌다. 숙소에 도착해 북한 난민들을 도왔던 조선족 분들을 뵈었고, 저녁 강연 때는 ‘좋은벗’들의 북한 난민 돕기 활동에 대해 들었다. 여전히 분단된 상황에서 아직 다 드러낼 수 없는 모든 이들의 노고를 가만히 내 마음에 새겨 넣었다.

구름과 숨바꼭질하며 천지를 만나다
일곱째 날, 다시 백두산에 오르는 날이다. 이틀 전 입산을 못한 이후, 일정을 계속 변경하고 다시 입장 티켓을 구하느라 스님과 진행팀이 수고롭게 많은 일들을 하고 있다. 다시 찾은 백두산은 맑게 개었다. 백두산을 산 하나인 것처럼 생각했는데, 차를 타고 오르다 보니 우리나라 경상도 지역과 크기가 비슷하다는 말을 실감할 정도로 규모가 컸다.
천지에 도착하니 산 아래와 달리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할 만큼, 차가운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저 구름 아래 천지가 있다고 하니 아무리 추워도 자리를 뜰 수가 없다. 어쩌다 구름이 바람에 비켜날 때 천지가 살짝 보이다가 금세 다시 사라진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세 번 조금씩 모습을 보여주던 천지는, 마지막에 환한 햇살과 함께 빛나는 모습을 드러내었다. 물 빛깔이 참 곱다. 천지는 다시 구름에 가렸지만 산 아래는 더할 나위 없이 화창하고 따뜻했다. 비룡폭포, 소천지, 녹연담, 지하산림을 다니며 밝은 햇살이 비치는 아름다운 백두산 숲을 신나게 걸어 다녔다.
훈춘으로 돌아가는 길, 혼자 조용히 깨어 드넓은 백두산 위로 석양이 물드는 모습을 바라보던 순간은 천지만큼이나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는다.

기다림과 외로움을 넘어 러시아 도착
여덟째 날, 아침 일찍 중국과 러시아 국경에 도착해 순서대로 더디게 수속을 밟았다. 1호 차, 2호 차가 국경을 넘어 러시아로 가고, 3호 차도 중국 쪽에서 차례를 기다렸다. 그런데 화장실이 급해 기행단원이 잠시 버스에서 내린 것이 국경법 위반으로 처리되었다. 다시 한참을 기다려야 했고, 해가 떨어진 후 캄캄한 저녁이 되어서야 단지동맹비에 모여 있던 기행단과 만났다. 하루 종일 조용하던 이어폰에서 스님 목소리가 다시 들렸을 때는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그렇게 3호 차는 국경에서 하루를 보내고 염주성을 보지 못한 채 러시아 우수리스크에 도착했다.

넓은 연해주를 개척하는 벅찬 꿈
아홉째 날, 러시아의 독립운동 유적지와 발해의 솔빈부성을 돌아봤다. 비를 맞으며 걸어도, 전날과 달리 스님 말씀을 들으며 기행단과 함께 다닐 수 있으니 좋기만 했다. 최재형 집무실과 전로한족총회 장소를 거쳐 도착한 고려인 문화센터에서, 연해주로 이주한 고려인들의 역사를 접했다. 이들의 고달프고 처절했던 역사가 아직도 다 끝나지 않은 것 같아 마음이 더 먹먹했다.
북쪽의 한카 호수로 가는 길은 양쪽으로 온통 너른 벌판이었다. 스님의 말씀처럼 아직 개발되지 않은 이 넓은 연해주를 개척하는 꿈을 꾸는 것만으로도 설레었다. 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은 반쪽짜리 좁은 반도가 아니라, 이 광활한 대륙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내가 진짜로 잘한 일
열흘째 되는 마지막 날은 라즈돌로예역과 신한촌 기념비 등 연해주 고려인들의 역사와 관련된 곳들을 돌아보았다.
마지막으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자유시간을 보내는데, 그쳤던 비가 갑자기 쏟아졌다. 우산없이 다니던 기행단은 비를 흠뻑 맞고 지하도에 모여 비를 피했다. 곁에 계시던 스님은 기행단이 조금이라도 비를 적게 맞도록 하기 위해, 버스를 어디로 이동하여 세울지 연신 진행팀과 의논하셨다. 누군가의 말처럼, 우리는 역사기행 내내 비보다 사랑을 더 듬뿍 맞은 것 같다.
이렇게 세심한 배려와 이해로 가득했던 9박 10일의 역사기행이 끝났다. 공항에서 한 명씩 스님과 악수하며 헤어지는데 나도 모르게 “스님, 진짜 고맙습니다!”라고 외쳤다. 스님은 “그래, 잘했어” 하시며 잡은 손을 꼭 쥐고 활짝 웃으셨다. 역사기행을 온 것은 ‘진짜로 잘한 일’이 되었다.

크게 보고, 크게 생각하라
나는 역사의식이 있던 사람도, 세상을 위해 잘 쓰이던 사람도, 미래의 비전을 가진 사람도, 착하게 살던 사람도, 불편함을 잘 견디는 사람도 아니다. 나 개인의 안위와 행복만 생각하며 사는데도 늘 삶이 삐거덕거리던 사람이었다. 그나마 스님을 알게 되어 정토회에 나오면서, 누에고치처럼 갇힌 내 삶을 조금씩 알아가던 중이었다.
역사기행에 참가해 고구려의 성터, 발해의 유적, 백두산과 만주의 풍광을 보면서 역사를 책으로 읽고 글로 이해했던 박제된 지식이 살아 숨 쉬는 생생한 것들로 다가왔다. 북한 난민, 독립 운동, 이주민들의 역사 속에서 내 마음은 깊이 움직였다. 점점 내 몸, 내 분별, 내 감정들이 아주 사소하게 여겨지며 크게 보고 싶고, 크게 생각하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처음 떠날 때는 갖지 못했던 목표의식이 기행 중에 점점 분명해지면서, 나의 이런 느낌과 생각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주체적으로 모든 일정에 집중했다. 그러다 보니 역사기행팀 중에 역대급이라는 사건 사고가 일어나는 중에도 그다지 힘들지 않고, 마냥 좋았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이번 역사기행이 나 개인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명확하게 다가온다. 마치 작은 반도에 갇힌 우리의 왜곡되고 협소한 역사의식처럼 나도 나 자신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왜곡했다. 내 삶을 반도와 같은 작은 규정 속에 한계 짓고 스스로를 긍정하지 못한 채 답답하고 부끄럽게 여겼던 것이 자각되었다. 나를 둘러싼 작은 세계에 갇혀서 아등바등하던 것들이 확 놓여나는 기분이 들며, 소심하고 유약했던 내 마음에 배포와 깡이 생긴 것 같다.
내가 지금 청년이라면 잃어버린 우리의 상고사를 연구하는 역사학자도 되고 싶고, 연해주 넓은 평야를 개척하는 농부도 되고 싶고, 통일된 북한에 가서 이산 저산 뙈기밭에 나무를 심고 싶기도 하다. 이제 나이가 들어 그게 어렵다면 그런 청년들에게 맛있는 밥을 해주는 할머니가 되어도 멋질 것 같다. 그렇게 쨍하고 신나게 살아보고 싶게 만든 역사기행은 출발할 때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나를 깨트리는’ 여정이 되어주었다.
이 좋은 길을 이끌어 주신 법륜스님과, 준비하고 진행해준 스태프들, 함께한 기행단과 너그럽고 따뜻한 조원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덕분에 나는 큰 선물을 받았다. 설레고 가슴 뛰는 마음으로, 몸은 중년이지만 기상은 청년인 새내기 통일의병으로 돌아오게 되어 무엇보다 기쁘다.
“생각을 키워야 내 삶이 확장됩니다.”
내가 좋아하는 스님의 말씀이다. 역사기행에서 돌아와 다시 일상의 무게에 눌릴 때면 만주와 연해주, 압록강과 백두산을 생각한다. 그리고 역사기행을 다시 떠날 날을, 만주와 연해주 어딘가에서 밥을 짓고 있을 날을 떠올려본다. 스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오버랩된다.
“그래, 잘했어!”

 

* 이 글은 월간정토 2019년 10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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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 댓글등록
이 글의 댓글 2개
  •  김혜경 2019/11/05 13:16
    가슴에 찐하게 감동이 전해집니다. 감사합니다.
  •  ^^^^ 2019/11/04 02:17
    월간정토에 사진보다 사진이 더 좋으네요^^감성이 풍부하신 산뜻한 글~
    마치 저도 다녀온 듯ㆍ님의 가슴 떨린 설렘이 맘으로 다가왔네요~~*
    좋은 글,정말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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