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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S 이야기 | 필리핀]


다시 또 
민다나오



조혜림 필리핀 JTS


지난 2016년 행자대학원 해외 학기 과정으로 필리핀 민다나오에 파견되었다. 수출 대국인 우리나라에서 나고 자라 삼시 세끼 잘 먹었는데, 그것이 필리핀 같은 수입 대국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제3세계 사람들에게 빚 갚는 마음으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필리핀에서 1년을 지낸 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갔고, 2017년 8월 말 행자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이후로 필리핀에 재파견되고 싶다는 뜻을 꾸준하고 강력하게 어필하여 지난해 1월, 정식으로 필리핀으로 파견되었다.

다시 돌아온 민다나오는 언제나 그렇듯 푸르른 들판과 파란 하늘이 아름다운 곳이었다. 지난 한 해 학교 건축, 연수, 마을 개발, 워터시스템, 송코 피스홀 도색, 사무, 공양, 비자 등 갖가지 업무를 맡아서 진행하였는데,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워터시스템과 의료지원이다.

물은 어디서 나오나요?
나도 마찬가지지만 한국에 사는 아이들에게 물이 어디에서 나오냐고 묻는다면 대부분은 ‘수도꼭지’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너무나 쉽게 물을 얻고 쓴다.

반면 JTS에서 학교를 지어주는 곳은 도로에서 최소 4㎞ 이상 떨어진 오지 마을이다. 대부분 차로 접근하기 어려워 오토바이로 산길을 타고 오르거나, 배를 탄다. 그마저도 어려운 곳은 걸어서 간다. 마을 근처에 수원지가 있더라도 마을까지 수도 시설이 연결되지 않은 곳이 대부분이다. 그러다보니 여자와 아이들은 물을 길러 가까이는 100m, 멀게는 1㎞ 이상을 이고 지고 다닌다. 하루이틀도 아니고 그런 삶이 일상이다. 

수원지에서 마을까지 비교적 연결이 쉬운 몇 곳은 학교 건축 당시에 파이프를 설치해주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지역은 학교를 건축한 지 10년이 지나도 워터시스템 설치가 어렵다. 그래서 언제나 워터시스템 설치에 대한 요청이 있게 마련이고, 드디어 작년에 시작하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과 화합하여 일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마을 회의 당시에는 매일매일 울력을 진행하는 것에 다들 찬성하였다. 그러나 실제로 진행해보면 당장 먹고사는 문제가 있어 농사가 울력보다 우선시되는 경우가 많다. 거의 매일 워터시스템 위원장을 만나 논의 후 마을 사람들을 직접 만나 설득하면서 공사를 해나갔다.

공사가 완료되고 나서 마을을 다시 방문하니 최소 100m 이상 떨어진 수원지에서 물을 길어 나르던 아이들과 여자들이 공용 수도에서 편하게 샤워하고, 설거지하고, 빨래하는 풍경이 너무나 평화로웠다. 서로 물장난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천진난만 그 자체였다. 당연하게 수도꼭지를 틀면 나오는 물. 우리가 살아가면서 너무나 당연하다고 느끼는 것들이 이곳 민다나오에서는 하나도 당연하지 않다.

워터시스템 답사 간 모습(가운데 필자)

한 번의 의료지원도 소중해
2018년 학교 건축지인 까방라산 군의 까따블라란 마을에 의료지원을 나가게 되었다. 까따블라는 근래에 학교가 들어선 지역 중 가장 가난하지만, 언제나 평화로운 마을이다. 오토바이로만 산길로 1시간을 가야 하는 그런 마을에 1년에 한 번 뿐인 의료지원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처음 시작할 때는 회의적이었다. 의료지원을 위해 마을을 다시 방문하였고, 사람들의 건강 상태를 최대한 꼼꼼히 살폈다.

고산지대다 보니 아침저녁으로 춥고 일교차가 커서 아이들 대부분이 감기를 달고 살았다. 감기가 중이염으로 이어져 대부분의 아이들은 고막이 녹았고, 그중 몇몇은 청력이 손상될 정도였다. 우리나라의 낫과 칼의 중간쯤 되는 볼로라는 농기구에 발을 찧은 사람은 피부 괴사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군 보건소에만 가도 해결될 수 있는 사소한 병들이긴 하지만, 이들에게는 보건소까지 갈 오토바이 비용이 없다. 한 달 수입이 1,000~2,000페소인데, 왕복 오토바이 비용이 400페소이니 웬만한 질병으로는 보건소에 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런 상황인 만큼 단 한 번의 치료라도 큰 효과가 있었다. 염증이 사라지고, 괴사될 뻔한 다리가 나았다.

한국에서는 쉽게 병원을 간다. 조금만 아파도 바로 근처에 병원이 있어 쉽게 치료받을 수 있다. 건강보험 혜택으로 병원비는 저렴하고 약은 넘쳐난다. 당연히 조금만 아파도 바로 병원에 간다.

이곳 민다나오 오지 마을의 사람들은 참는게 더 익숙하다. 병원은 멀고, 차비와 병원비는 수입에 비해 턱없이 비싸다. 그렇게 내가 ‘당연히’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이 이곳에서는 ‘당연하지 않다.’ 아플 때 치료받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고 안심이 되는 일인지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위기의 순간
지난 1년 동안 필리핀에 살면서 집에 가고 싶은 순간이 두 번 정도 있었다. 가장 큰 위기는 지난해 9월 찾아왔다. 행자대학원 13기 2명이 해외 학기를 마치고 한국으로 복귀하게 되었다. 그들이 하던 업무는 고스란히 남았다. 추진 중이던 학교건축 사업을 누군가가 맡아야 했지만, 대체 인력이 파견되지 않아 내 업무가 2배로 늘었다. 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었고, 많은 업무를 동시에 처리하다 보니 실수는 늘었다. 

완벽하게 일을 처리해야 하고 욕먹기 싫어하는 업식이 있는 나로서는 힘든 시간들이었다.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공동체에 사는 것이 좋고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이렇게 업무가 많은 것은 싫었다.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만큼의 일만 하고 싶었다. 그 생각에 사로잡혀 있으면서도 밀려오는 업무를 처리하다보니 그 순간이 지나갔고, 그냥 또 업무를 이어나갔다. 그러는 사이, 또 한 고비가 넘어갔다.

일이 밀려 보고서 몇 개는 당연히 누락되었고, 실수로 욕도 좀 먹었다. 그러곤 정신이 차려졌다. 사실 정토회 들어오기 전에는 학원 강사로만 일해서 업무가 항상 내가 관리하고 컨트롤 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했고, 하고 싶은 것만 했다. 그렇게 살다보니 이런 상황이 처음이라 견디기가 힘들었다.

행자대학원생일 때와 달리, 상근자로 내가 원해서 온 곳인데, 일에 밀려 잔소리를 듣게 되니 ‘내가 왜 이래야 되지?’ 했다. 그래도 어떻게 지내다보니 업무에 적응됐고 결과물도 나왔다. 업무 능력과 함께 스트레스 관리 능력도 조금은 업그레이드 된 기분이다.

이렇게 민다나오에서의 두 번째 해도 지나갔다. 첫 해보다는 훨씬 더 안정적이고 편안했다. 공간과 업무가 주는 익숙함도 있지만, 이곳에 오래 살 것이라고 생각하니 모든 것이 진짜 나의 일과가 되었다. 뭐든 천천히 이루어지는 이곳이 가끔 답답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그들의 느린 속도가 편안하다. 성질이 급한 나로서는 이곳의 속도가 좋다. 올해도 행복하고 재밌게 사업을 진행해야겠다.

마을 회의하는 모습(앞줄 맨 왼쪽 필자)


 

* 이 글은 월간정토 2019년 2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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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댓글 4개
  •  정혜진 2019/03/19 03:06
    감동 받고갑니다.
  •  임호경 2019/03/12 09:58
    1968~9년에 초등학교3~4학년이던 나와 동생은 물을 길어러 산골을 넘어 길어 왔다.
    이글을 보니 그곳에서 봉사 하고 싶네요.
  •  이은희 2019/03/08 09:02
    지금 하고 있는 일이 힘들다는 마음이 사라지네요.~^^ 감동적인 필리핀 JTS 활동에 감사합니다. 올 한해도 건강하시길,,,그리고 재미있고 행복한 필리핀 JTS 활동 또 들려주세요. 두손 모아 감사합니다~~^^
  •  ^^^^ 2019/03/06 00:51
    존경스럽네요‥오지를 자청하시다니ㅜ염증도 사라지고 괴사될뻔한 다리도 고쳐주시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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