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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출가 | 백일출가 행자들의 출가 이야기
나를 깨워준 만 배의 절실함


정권모 백일출가 33기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만 배 바라지에 나서다

  백일출가를 회향하기 며칠 전, 다음 기수가 며칠 후면 입방한다는 소식에 만 배 바라지를 하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레 올라왔다. 아마도 100일이 지난 지금의 편안함에 금세 잊은, 100일 전 만 배를 할 때 어떤 마음이었는지 점검하고 싶은 생각이 컸던 것 같다.

  100일 전 나는 회사 일과 가족 문제로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마음에 문경에 오게 되었다. 그땐 절실하게 내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고, 누가 되었든‘괜찮다’는 말로 위로해주길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뭐 때문에 그렇게 힘들었는지 기억이 잘 안 날 정도로 편안해진 것을 보니 감사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그래서 다음 기수 행자님들의 만 배를 도우면서 그들의 간절함에 자극받아 더 큰 발심을 내고 싶었다. 누구든지 괴롭지 않고 자유롭고 마음이 편해지고 싶어서 백일출가를 하겠지만, 만 배는 사실 굉장히 무모한 일일 수도 있다. 지금은 일상에서 불편하지 않지만, 허리디스크 수술을 한 적이 있어서 하는 말이다. 그런 나도 무사히 만 배를 마쳤기에 새롭게 입재하는 행자님들에게 절 안내를 하면서 “포기만 안 하시면 다들 충분히 하실 수 있을 겁니다.”라는 말로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심어주고 싶었다.

고통을 회피하던 나를 마주하다

  만 배 첫날, 오전에는 담담히 관음 정근을 외치며 행자님들이 절하는 모습을 편안히 지켜볼 수 있었다. 그러나 오후부터 하나둘 힘들어하는 행자님들 얼굴을 보니 마음이 번잡해졌다. 한 행자님이 절하다가 뒤로 돌아서서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 행자님의 고통스럽고 괴로운 표정을 보는 순간, 나는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가슴이 떨리고 눈물이 왈칵 흐르기 시작했다. 옆에 같이 바라지하는 도반에게 울면서 “나, 못 보겠어요. 어떡해요. 진짜 못 보겠어요.”하며 그곳을 뛰쳐나왔다. 내가 만 배를 할 때는 힘들어서 정작 주변을 살필 겨를도 없었는데 다시 그 상황을 마주하니 불편함이 올라와 그 순간을 외면하고 싶었다. 내가 뛰쳐나오자 같이 있던 바라지들도 따라 나와서 다독여 주었다.


과거의 나를 인정하고 알아차리니 가벼워지다

  ‘정말 난 괜찮은 걸까? 이 감정과 이 마음은 어디에서부터 올라왔을까.’순간 과거를 찾아 CCTV가 틀어졌다. 초등학교 6학년 추석 즈음이 떠올랐다. 그해, 나는 학업을 이유로 혼자 외갓집이 있는 부산으로 전학을 갔다. 전학을 하고 몇 달이 지나 손꼽아 기다리던 추석에 집에 갔는데, 이게 웬일인가. 농기계 사고로 크게 다쳐 기어다니는 어머니와 마주하게 되었다. 다친지 몇 달째인데 나는 그 사실을 까마득히 모른 채 집만 그리워했고, 어머니는 혹시나 내가 알면 새로운 곳에 적응을 못할까봐 알리지 않은 거였다. 그렇게 서로 그리워하던 얼굴을 보고 눈물을 한껏 쏟아내며 며칠이 지났고, 다시 부산으로 가야 할 날이 되었다. 부산 가는 사촌 형 차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데, 저 멀리서 나를 부르는 어머니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고 집 현관문을 살짝 바라보자마자 또 한 번 고개가 숙여졌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어머니는 부산 가는 내 얼굴 한 번 더 보겠다고 현관에서 마당까지 기어서 나오고 계셨다. 지금도 그때 어머니 얼굴이 잊히지 않는다. 골반이 으스러져 움직이면 안 되는 상황인데 기어 나와 일그러지고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시는데, 너무 가슴이 아팠다. 아마도 그때 그 괴로워하던 어머니 얼굴과 만 배 하는 행자님 얼굴이 교차하며 마음이 요동친 것 같다. 몸이 괴롭고 마음이 괴롭고, 그런데도 나아가야 하는 그때의 어머니와 지금의 행자님이 닮아 있었다. ‘나는 그런 얼굴을 보면 가슴 떨리며 불편해지고 외면하며 눈물 나는 사람이구나.’알아차리고 또 알아차리고 가다듬으며 차분히 이런 나의 모습을 인정하며 다시 들어가서 바라지 소임을 계속했다. 이후부터는 담담히 바라보고 안내할 수 있었다.


한 배 한 배 진심을 배우는 시간

  그렇게 하루 이틀이 지나고 마지막 셋째 날 밤이 되었는데, 미처 만 배를 끝내지 못한 행자님이 세 분 있었다. 마지막 날 철야까지 하겠다고 자원하고 대웅전에 올라가니 밤 11시가 지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만 배 바라지 소임이 아닌데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 법우님이 보였다. 다른 바라지들은 잠시 쉬러 가고, 그 법우님이 갑자기 방석을 들고 오더니 만 배 하는 행자님들 옆에서 절을 하기 시작했다. 사실 그 분은 무릎이 안 좋아 절을 하기 힘든 분이었고, 평소 절 대신 주력으로 정진하는 분이어서 깜짝 놀랐다. 그분이 어떤 마음으로 여기에 왔는지 그 마음이 충분히 전해졌다. 관음 정근 소리는 점점 커져갔고, 땀으로 흠뻑 젖어가는 호흡 속에서 부처님 앞에 모두가 한 배 한 배 머리 숙여 절하는 모습에서 하나하나 절실한 마음이 올라옴이 느껴졌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한다는 것

  그렇게 새벽 1시가 넘어가고 앞에서 절하던 법우님이 잠시 쉴 때 나는 그 빈자리를 머뭇거리며 채우게 되었다. 머뭇거리던 그 순간,‘나는 누굴 위해서 이렇게 마음내어 본 적 있는가.’라는 생각이 맴돌았다. 정말 마음을 내어본 적이 있었나. 항상 흔쾌하지 않았다. 가족의 부탁과 주변 사람들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 마지못해 할 수밖에 없다는 불편함과 욕먹기 싫다는 마음이 있었다. 그런 내가 스스로 마음을 내서 누구를 위한다는 것은 어색하고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자연스럽게 방석을 들고 당연하다는 듯이 행자님 옆에서 절을 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땀이 비 오듯이 흐르고 절이 멈춰지지 않았다.

  옆에서 만 배 하던 여자 행자님이 절을 멈추고 털썩 주저앉았다. 이내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절실했을까’울음소리에서 절절한 마음이 전해졌다. 여자 행자님은 다리를 끌며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행자님에게 다가가 “힘내시라.”며 만 배를 마치고 나가셨다.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고 마지막 남은 행자님과 둘이 관음 정근을 크게 외치며 절을 하는데 누군가 내 등을 툭 쳤다. 

“끝났어요. 그만해도 돼요.”눈물이 났다. 내가 만 배를 한 것도 아닌데 다리가 후들거리고 정신이 혼미해졌다. 누군가를 위해 정성을 쏟는다는 것, 그게 내가 느껴보지 못한 혼미함이었다. 있는 그대로 상대를 바라보며 나를 바라보고, 생각이 아닌 마음을 내어 정진하고 또 정진하고, 울음이 터지고 통증에 신음하고, 털썩 쓰러지고, 새벽녘까지 절실하고 간절한 혼미함이었다.

만 배 바라지를 통해 새로운 시작을 다짐하다

  무엇을 위해 만 배를 하며 이토록 자신을 보아야 하는가. 나를 알아가는 시간, 그건 인생의 우여곡절을 겪으며 외면만 했던 내 마음을 들여다보며 내가 어땠는지 자신에게 물어봐주는 시간이었다. 만 배 바라지를 한 것이 참 감사하다. 만 배 하는 분들이 있었기에 내가 여기 있고, 인연이 되었다. 다시금 시작점에 서게된 것 같다.


“이 마음 잘 간직하여 부지런히 정진하겠습니다. 
만 배 바라지를 하며 수고하신 
많은 이들의 공덕을 생각하며 감사히 살겠습니다.”

 

* 이 글은 월간정토 2018년 8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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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댓글 1개
  •  김혜경 2018/09/12 16:59
    감동적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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