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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수련 소감문
이어라
이어라


유재숙189차 명상수련 참가자

그래, 밥만 먹으면 돼
  “밥만 먹으면 된다.”무언가가 되려고 애쓰고 끙끙거리며 걱정할 때마다 친정엄마는 이 말을 건네곤 했다. 그럴 때면“그렇지요. 뭐”라며 예사로이 넘겼다. 명상 셋째 날, 이 말이‘탁’하고 가슴에 꽂힌 줄 모른 채 살아온 것을 알았다. 명상수련을 하면서 유독 배가 많이 고팠다. 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몸이 떨리기까지 했다. 물이라도 실컷 먹자 싶었다. 숙소에서 잰걸음으로 대강당에 들어와 보니 물마시는 곳에 도반들이 가득이다.‘ 아! 다들 배가 고프구나!’ 줄을 서서 물을 받아들고 벌컥벌컥 들이켜 아쉬운 대로 허기를 달랬다.

  기다리던 공양 시간. 주린 배를 느끼며 순서를 기다리는데 밥 냄새가 그리 구수할 수가 없었다. 한껏밥냄새를들이마시는순간“밥만먹으면된다”는엄마말씀이느닷없이떠올랐다.‘ 아! 밥만 먹으면 된다는 소리가 이 소리구나. 밥만 먹을 수 있으면 되는 것이었구나! 그러면 되는 것이었구나!’ 순간 그동안 무언가 되려고 했던 많은 애씀이 군더더기가 되었다. 받아 든 공양이 귀했다. 사라지는 것이 아까워 한 톨 한 톨 곱씹고 또 곱씹어 먹었다. 양배추가 이리 달콤했던가! 사과가 이리 아삭했던가! 콩이 이토록 구수했던가! 마치 모든 음식이 처음 먹어 보는 것처럼 달고 달았다. 심지어 허기를 달래기에 충분하기까지 했다.



  배고픔이 채워진 뒤 원인을 찾아 나섰다. 몇 년 전 여름 명상 때에는 이 정도로 배가 고프지는 않았는데 이유가 뭘까? 겨울이라 그런가? 지난번보다 양을 적게 주나? 토마토보다 사과가 덜 배 부른가? 밖으로 찾아 나선 이유는 안으로 돌려서야 찾아졌다. 그때보다 체중이 늘어 있었다. 음식을 탐하고 즐기던 내가 보였다.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최근 들어 배고픔을 느껴본 적이 없다. 배가 고프기도 전에 먹었고 배가 불러도 먹었다. ‘ 그랬구나!’ 알아차렸다. 원인을 알고 난 즉시 문제가 해결되면 얼마나 좋으랴. 덜 배고프게 지내보려는 욕구가 사라지지 않는다. 다음 날 공양 배식에는 양배추라도 실컷 먹어보자고 궁리한다.

  ‘아뿔싸!’동작 알아차리기에 너무 충실했다. 천천히 천천히 움직이다 보니 끝에서 두 번째. 내 앞에서 양배추가 바닥을 보인다. 실망으로 힘이 쭉 빠지는데 돕는 이가 새로운 양배추 통을 갖고온다.‘ 와~! 신이나를버리지않는구나.’살았다싶었는데그안도도잠시, 쪼끔 아주 쪼끔만 덜어 놓고 간다. 꼭 한 사람 먹을 양만큼만. 야속했다. 기쁨이 슬픔으로 바뀌는 고락의 현장이다. 그마저도 다 덜어오고 싶었지만 내 뒤로 도반이 하나 더 있다. 게다가 평상시 아는 도반이다. 아쉬움 가득 안고 몇 조각만 담아 자리로 온다. 피식 웃음이 절로 난다. 아까워 꼭꼭 씹어 먹는다. ‘그래, 밥만 먹으면 된다’를 다시 새긴다.


밥을 통해 법을 체험하다
  참 질기다. 양배추의 실패는 저녁 감자로 옮겨 앉는다. 대상만 바뀌었을 뿐, 어찌 이리 똑같은지. 늘 뒤에 배식을 받아 내 감자만 작게 느껴졌다. 배식이 끝난 뒤 아직도 남아 있는 감자가 못내 아쉽다.‘ 끝에먹는사람은감자가작으니두개먹으면안되나요’를얼마나묻고싶은지. 묵언수행이 다행이다. 최악은 피하게 한다. 감자가 담긴 통을 봤다가 돕는 이를 봤다가 두리번거리기만 하다 돌아섰다. 글로 써서 묻자니 헛웃음만 나온다. 이런 내가 치사하기 그지없는데, 멈춰지지 않는다. 의연하고 싶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 눈은 이미 감자를 받아 든 도반들의 손에만 머문다. 크다. 분명 지금까지 내가 먹어온 감자보다 크다. 알아차리기고 뭐고, 얼른 가서 큰 감자를 잡자 싶었다. 아직 남아 있었다. 집었다. 개선장군도 그런 장군이 없다. 야심차게 한입 베어 문다. 덜 익었다. 아! 멈췄어야 했구나. ‘밥만 먹으면 되는 것’인데. 이 말이 또 살아난다.

  마지막 날 새벽, 친정엄마께 감사했다. 원하는 목표 달성의 문턱에서 멈춰 섰을 때마다 더 공부시켜주지 않은 엄마가 야속했고, 재산 하나 물려주지 않는 엄마가 원망될 때도 있었다. 어리석음이 걷히니 밥만 먹으면 된다고 말해준 엄마가 내 엄마라는 것이 감사했다. 뭐가 되라고 하지 않고 뭘 이루라고 하지 않은 엄마, 달리고 있는 내게 더 달리라고 하지 않은 엄마, 그저 내가 살아 있는 것으로 충분한, 내 행복에 집중한 엄마가 내 엄마라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내 아이들이 스물을 넘기고 나서야 말이다. 엄마에게 감사한 마음이 가득해지니 뭔가 부족하고 못마땅했던 나도 받아들여졌다. 행복이 물밀듯 밀려왔다. 눈물이주체할수없이흘렀다.‘ 밥’을통해‘법’을체험한다. 스님이공동체에들어와살면 밥은 먹여준다는 말씀은‘전부 주는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밥으로 다가온 법의 깊은 의미
  비워짐이 가볍다는 것을 알고 3일만 지나도 견딜만하다는 것을 안다. 소식이 견딜 만해졌는데 마지막 날의 자율 배식이 날 시험대에 세운다. 밥이 내 맘대로다. 아! 밥만 먹으면 되는데, 그것을 이제는 아는데…. 밥을 뜨고 또 뜨는 나를 본다. 업식의 두터움을 실감한다. 넘어지고 있는 것을 아니, 그래도 가고 있음이려니. 반가움으로 안는다. 다시 연습이다. 살면서 욕심이 올라올 때마다 2017년 겨울 명상 셋째 날의‘밥’을 기억하자 한다. 하나하나 살아서 제맛을 다했던 그 귀한 한 숟가락의 밥. 그것으로 충분했던 밥.‘ 밥’으로 다가온 ‘법’의 깊은 맛을 말이다.

 

 

* 이 글은 월간정토 2018년 3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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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 댓글등록
이 글의 댓글 3개
  •  대지행 2018/04/22 12:46
    잘 읽었습니다~
  •  토마토 2018/04/17 08:11
    밥만 먹으면 된다....
  •  있는그대로 2018/04/16 19:24
    밥으로 법을 맛보셧군요
    부러운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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