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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출가 행자들의 출가 이야기

만배,
백일출가의 시작과 끝에 한
두 번의 공부



김태경 백일출가 31기

 


두려웠던 만 배와 마주하다
정토회와 인연을 맺기 시작한 지 약 3개월 만에 백일출가를 가게 됐습니다. 서른에 직장을 그만두고 쉬고 있을 무렵, 법당에 다니는 친오빠가 깨달음의장을 보내줬습니다. 깨달음의장에서 법사님께서 백일출가를 권유하셨지만 만배에 대한 두려움으로 쉽사리 마음이 나질 않았습니다. 깨달음의장 이후 108배는 매일 거르지 않고, 법당도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무렵 천일결사 입재식을 가게 됐습니다. 그날 30기 백일출가 행자님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고 나도 백일출가를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백일출가의 첫 관문은 만 배였습니다. 처음 입방해 3일간 진행되는 만 배는 제가 생각했던 그 어떤 일보다 힘들었습니다. 한 배 한 배 내려갔다 올라오면 되는 일이거늘 만 배라는 숫자 앞에서 저는 한없이 작아졌고, 또 도망가고 싶었습니다. 만 배를 하며 주변 환경에 대한 원망을 핑계로 쉽게 포기하고 자기합리화하며 살아왔던 제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 JTS 거리모금(가운데가 글쓴이)

그리고 내면에서 계속 소리쳐왔던 목소리 또한 조금이나마 들을 수 있었습니다. 만 배를 통해 보게 된 어머니의 마음 6살 때 부모님이 이혼하셨고, 저와 오빠는 아버지 밑에서 자랐습니다. 만 배 기간 동안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아버지와 같이 바다면 바다, 산이면 산, 많은 곳을 놀러 다닌 추억이 떠올랐고 아버지가 끓여주셨던 된장찌개가 너무 먹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저에겐 어머니이기도 했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땐 하늘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장례를 치르고 슬퍼할겨를도 없이 세상에 나와 돈을 벌어야 했습니다. 사회생활에서 많은 감정을 억누르며 살아왔는데 만 배를 하면서 아버지와의 추억, 저희를 포기하지 않은 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 지켜드리지 못했다는 죄송한 감정들이 올라와 눈물이 멈추질 않았습니다.

한편, 부모님의 이혼 후 어린 저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을 내면 깊숙한 곳으로 숨겼습니다. 그러고는 누구도 열어볼 수 없게 잠가버린 채 꺼내보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어머니를 다시 만났을 때 어머니는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아버지의 잘못만 운운하며 이혼이 불가피했음을 이야기하셨습니다. 저에게는 그 말씀이 어머니 본인에게는 잘못이 없으며 오빠와 저에게 미안하지 않다는 말로 들렸습니다. 그만큼 저는 어머니가 받았을 상처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탑골 정토수련원 정비 중(왼쪽에서 두번째가 글쓴이)

만 배 이틀째, 이마에서는 쉴 새 없이 땀방울이 떨어지고 다리는 후들거려 감각이 없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어머니가 떠올랐습니다. 어린 자식들을 두고 갈 수밖에 없었던 그 심정을 생각해보니 어머니가 받았을 상처, 고통이 전해져 한없이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어머니, 제가 어머니의 은혜를 모르고 살아왔습니다. 어머니의 상처를 외면하며 저 역시 어머니께 상처 주며 살아왔습니다. 이제는 은혜 갚으며 살아가겠습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끝까지 저와 오빠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디 그곳에서는 아프지 마세요!’라고 속으로 되뇌며 어머니와 아버지께 참회했습니다. 그리고 옆에서 같이 절하는 31기 도반들, 뒤에서 바라지 해주셨던 30기 선배 행자님들 덕분에 만 배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JTS 거리모금단체 사진(첫 번째줄 왼쪽에서 두번째가 글쓴이)

아쉬웠던 100일, 만 배 바라지에 나서다 기대했던 백일출가 생활이 시작됐습니다. 그런데 만 배 이후 97일을 보내며 저는 주어지는 모든 역할이나 일에 한발 물러서서 나서지 않는 저를 보게 됐습니다.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실수하는 자신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일, 많은 경계에 부딪혀야 다양한 제 모습을 볼 텐데 책임져야 할 일, 힘들다고 생각되는 일에서 물러나 있었고, 저의 모습을 제대로 드러내지 않은 채 평범하게 지내려고만 했습니다.

회향일이 다가오자 백일을 잘 보내지 못한 것 같은 아쉬움이 생기면서 회향하더라도 만배 바라지만큼은 꼭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마음을 내 만 배 바라지 역할 분담 때 선뜻 총괄을 맡겠다고 나섰습니다. 총괄은 만 배 기간에 프로그램을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행자님뿐만 아니라 바라지 하는 같은 기수 도반들까지 전체적으로 살펴야 하는 역할이었습니다. 바라지로서 새로 입방하는 행자님들을 맞으니 낯선 공간과 처음 보는 사람들로 어색해했던 저의 모습이 떠올라 최대한 행자님들이 편안하도록 안내했습니다. 만 배라는 산을 한 배씩 한 배씩 넘어가는 행자님들에게 바라지들이 해줄 수 있는 것은 뒤에서‘관세음보살’을 최대한 크게 외치는 일이었습니다. 관음정근을 하며 부디 한 분도 다치거나 포기하지 않고 모두 만 배를 통과하기를 바랐습니다.


▶ 고라니밭 옥수수밭 정리 운력 중(첫 번째줄 왼쪽에서 세번째가 글쓴이)

만 배로 하나 되는 백일출가를 느끼다만 배는 셋째 날 자정을 넘겨 새벽 4시 새벽예불이 시작되기 전까지 다 마쳐야 합니다. 저희 바라지들 역시 32기 행자님들과 같이 밤을 새우며 필요한 비품 및 약품 등을 챙겨 뒤에서 함께했습니다. 그날 새벽은 정말 평생토록 잊지 못할 장관이었습니다. 새벽 2시쯤 32기 행자님 한 분만이 남았을 때 그분만을 위해 저희 31기 바라지 5명은 휴식을 포기하고 교대로 양 옆에서 절을 하며 한배 한배 할 수 있도록 이끌었고, 나머지 바라지들은 관음정근을 목이 쉬도록 크게 외쳤습니다.

마지막 행자님이 만 배를 마쳤을 때는 저희 모두 눈물바다가 됐습니다. 만 배를 다 마치고 자비당에 앉은 32기 행자님들을 보면서, 포기하지 않고 만 배를 다 마쳐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에 또다시 눈시울이 붉어졌고, 어머니의 마음을 다 헤아릴 순 없지만 이런 마음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저희를 바라지 해주셨던 30기 행자님들이 어떤 마음이었는지, 왜 그리 많은 눈물을 보였는지 그 마음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백일출가는 그 기수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30기 백일출가가 31기에 녹아들고, 31기 백일출가가 32기에 녹아드는 등 1기 백일출가 행자로 부터 32기 행자까지 모두 하나라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비록 아쉬움을 남긴 백일을 보냈지만, 회향 후 만 배 바라지 총괄을 맡으면서 저에게는 백일보다도 더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남을 위해 이렇게 잘 쓰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고, 받는 것보다 주었을 때가 더 행복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정말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이 시간을 선사해준 32기 행자님들에게 감사하며, 부디 아프거나 다치지 않고 남은 백일 무사히 마치시길 응원합니다.

 


 

 

* 이 글은 월간정토 2017년 12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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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 댓글등록
이 글의 댓글 2개
  •  김혜경 2018/01/13 20:55
    감사합니다. ^^
  •  맑은혜안보명 2018/01/09 22:52
    마음 나누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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