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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의병대회 참가 소감문]

 

통일코리아의 여권 가지고 

백두산과 동북아 역사기행 가는 그 날까지(1)

   

 

 

  김순영 (워싱턴정토회 워싱턴법당)

 

2016년 여름, 10년 이상 좋은벗들 미국지부에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해 활동한 덕분으로 한국에서 3기 통일의병대회를 참관할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무더운 뙤약볕이 내리쬐는 날씨 속에 통일역사기행이 이루어졌습니다. 모두가 탈진할 것 같은 상황, 2007년 봄 워싱턴이 머릿속에 펼쳐졌습니다.

     

하루는 국무부 미팅을 마치고 다음 미팅을 위해 의회로 이동했습니다. 스님을 모시고 점심을 밖에서 할 시간이 없어 매번 식사를 거르게 되어 음식을 준비해서 이동 중인 차 안에서 드실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날씨가 아주 좋은 5월 봄날, 국무부를 나와 백악관 남쪽 제퍼슨 기념비가 보이는 워싱턴 몰의 벤치에 앉아 잠시 점심을 먹고 이동하기로 하였습니다. 차에서 내려 스님과 통역하는 제이슨 님께 삶은 고구마를 드렸습니다. 스님께서는 정말 맛있게 삶은 고구마를 드시고 다음 미팅 장소로 이동하셨는데, 저는 뙤약볕이 내리쬐던 그날 통일의병들과 함께 걷는 동안 이 장면이 떠오르며 스님의 부단한 노력이 언제쯤이면 결실을 볼 수 있을지 요원하기만 해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습니다. 탈진할 것 같은 날씨 속에 통일의병대회에 참가한 의병들도 기운이 빠져 지쳐 있는 것 같아 통일의 길이 암울하기만 하였습니다.

 

2016년 서초법당과 전국법당에서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기원하는 24시간 통일 정진도 진행 중이었지만 저에게 통일은 희망적으로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어둠이 깊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더 눈물이 났습니다. 미국에서 힐러리 클린턴이 대통령이 되든지,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든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정책을 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사 이래로 강국에 둘러싸여 분단된 조국 한반도를 바라보는 마음은 슬펐습니다.

 

2017년 드디어 해외에서 처음으로 이루어진 통일의병학교를 졸업하고 6월 경주에서 열리는 통일의병대회에 참가했습니다. 지난 15년간 스님과 함께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해 워싱턴 디씨에서 해왔던 활동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습니다.

 


▶통일의병대회 

 


▶통일의병 해외팀과 함께(앞줄 오른쪽에서 다섯 번째가 글쓴이) 

 

미국 텍사스에서 거주하다 잠시 한국에 와있던 2000년 봄, 부산동래법당에서 법륜스님께 반야심경 강의를 들었습니다. 반야심경 강의를 마치고 스님께서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역사 강좌를 열었습니다. 반야심경이 현대물리학의 이론을 고스란히 담고 있음을 알고 과학자인 저는 불교의 심오한 이론과 깊이에 굉장히 놀라고 매료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어진 법륜스님의 역사 강좌는 지금까지 제가 어디에서도 들을 수도 볼 수도 없었던 강의로 민족의 자긍심과 정체성을 알 수 있게 하였습니다. 이렇게 불교와 정토회와 법륜스님은 제게 큰 의미와 함께 대한민국의 희망으로 다가왔습니다.

     

2002년 봄, 텍사스에서 워싱턴 디씨로 이사하였고 이듬해 3월 워싱턴 디씨에서 법륜스님의 첫 순회 법회가 열렸습니다. 그때부터 스님을 모시고 워싱턴 디씨의 정가를 방문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해 1212일 스님께서는 좋은벗들 미국지부를 설립하여 워싱턴에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해 한 3년 정도만 활동을 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하셨습니다.

 

한국에서 북한지원을 위한 거리모금을 하고, 금요일 한 끼 굶기 운동도 하고, 스님의 역사 강좌도 들었기 때문에 내가 전공한 분야와는 달라도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자원 활동에 동참하겠다는 마음을 선뜻 낼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통역 봉사자 구하기가 힘들어 이 사람 저 사람 수소문하여 미팅 때마다 통역봉사자가 바뀌기도 하였습니다. 이제 갓 출산을 해 백일 안 된 젖먹이를 떼어놓고 통역 봉사하는 봉사자는 모유가 흘러나와 가슴에 천을 대고, 이동시간마다 화장실에 가서 천을 갈고 수유기로 모유를 짜가면서 통역봉사를 해주었습니다. 워싱턴에서 미팅하고 저녁에 돌아오면 한국말로도 어려운 용어들인 제네바협정, 경수로, 북핵 문제 등 용어들로 인해서 머리는 쥐가 나고 몸은 파김치가 될 것 같았습니다.

 

스님께서는 조찬부터 저녁 늦게까지 미팅하느라 점심도 거르는 날이 많았습니다. 2003년 겨울, 그 날은 정말 점심도 거르고 3일간의 미팅 일정 중 마지막 미팅장소로 이동 중이었습니다. 제가 더 배가 고프고 힘이 들어 스님께 여쭈었습니다. “스님, 저는 학교에서 강의하면 첫 시간은 조금 긴장되고, 두 번째는 재미있고, 세 번째는 강의가 지루하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스님께서는 몇 날 며칠 대상만 달리해서 똑같은 얘기를 온종일 하시고, 또 오늘은 점심도 거른 채 마지막 미팅하러 가시는데 이렇게 똑같은 말씀을 몇 번이고 하는 것이 지겹지 않으세요?”라고 여쭈었습니다

그랬더니 스님께서는 

나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그리고 북한 주민들을 위한 길이라면 

똑같은 말을 천 번이고 만 번이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백 번도 아니고 천 번이고 만 번이고 할 수 있다는 말씀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감동이 그때부터 지금까지 제가 워싱턴 디씨에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위한 활동할 수 있었던 원천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스님께서는 국제사회에 북한의 식량난을 알리고 국제사회의 대북 인도적 지원을 이끌어내기 위하여 1996년부터 워싱턴을 드나드셨다고 합니다. 그 때 저는 남편과 함께 텍사스에서 유학 생활을 하고 있을 때라 잘 몰랐습니다. 스님께서는 워싱턴에 오시면 미 국무부(외교부), USAID (국제개발처), NSC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 국방부(펜타곤), 씽크탱크, 학계, 민간단체 등 미국조야를 다니시면서 북미 관계 개선과 북핵 문제 해결, 대북 인도적 지원, 북한 인권개선 등을 위하여 발이 부르트고 목이 쉬도록 강연과 미팅을 하셨습니다. 그런 노력의 결과로 2005USAID에서 앤드류 나찌오스 처장님으로부터 대북 인도적 식량지원 5만 톤을 약속받는 모습은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또한 그런 와중에 스님께서는 6자회담의 미국 측 책임자인 디트라니 북핵 특사를 만나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질적이며 다양한 조언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제 46자 회담 중 2005년 추석 연휴 마지막 날 명절 선물과도 같은 9.19공동성명이 발표되었습니다

 

9.19공동성명은 미국을 비롯한 6자회담 참가국들은 한반도 비핵화 및 관계정상화, 에너지 보장 및 경제협력 증진, 동북아시아 평화와 안정노력 등을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따라 상응 조치를 취할 것을 합의한 것입니다. 그간의 많은 노력이 결실을 맺어 한반도에 평화가 도래하고 북한의 인도적 지원, 북미 관계 정상화 등이 이어져서 통일의 초석이 다져질 것이라 생각됐습니다.

 

하지만 이후 미국 재무부에서 위조지폐와 인권문제를 제기하며 북한에 금융제재와 경제제재를 가하였습니다. 이어진 미국의 대북경제제재로 인하여 북미간의 관계는 정상화를 걷는 것이 아니라 9.19공동성명을 파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면서 협상 테이블 위에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날 수 도 있다는 위험한 발언들도 나오면서 한반도에 전쟁의 먹구름이 몰려오기도 하였습니다. 그 때 정토행자들은 전쟁이 일어나면 판문점으로 모두 가서 드러눕자는 말도 나왔습니다.  

 

그런데도 스님께서는 20075월에 백악관 바로 옆에 평화재단 워싱턴 사무소를 개소하여 한반도의 평화와 북미 관계개선,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워싱턴을 더 자주 방문하여 워싱턴과 국제사회에 팽배한 북한에 대한 왜곡된 시선을 바로 잡아보고자 하였습니다. 2007, 20089월에는 한국평화재단에서 활동하고 있던 한반도 전문가들과 함께 워싱턴을 방문하여 국회, 국무부, 싱크탱크 등에 있는 전문가들과 함께 일주일 동안 한미 전문가포럼을 열어 열띤 토의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북한소식 영문판을 만들어 유엔과 국제사회에 배포하고, 북한의 식량난, 북한주민들의 삶의 모습을 알리고 북한에 퍼진 수족구병과 조류독감소식도 속보로 전하였습니다. 이렇게 북미  관계개선과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스님의 노력은 정말 끝없이 이어졌습니다. 자료를 준비하고 대화하고, 미팅하면서 좌절이 아니라 원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과가 나타나면 그 성과는 다른 분들이 가져가게 하고, 스님은 묵묵히 뒤에서 당신의 역할만 하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의병이 무엇인지, 의병이 어떤 역할을 하는 것 인지 그냥 배울 수 있었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

     

제5차 통일의병 대회에서 해외팀과 함께(첫째줄 왼쪽 세 번째가 글쓴이)

  


* 이 글은 월간정토 2017년 8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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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댓글 1개
  •  ^^^^ 2017/09/15 02:37
    월간정토를 통해 잘 읽었습니다~이어진 이번호 기사까지^^김순영님께서 해외포교의 중심에 계시는 분이라는걸 ,스님의하루 통해 알게되고, 참 대단하신 분이다..누구도 그렇게 하기가 참 쉽지 않을텐데..참 어려운 자리겠다..힘드시겠다..어깨가 무거우시겠다..늘 감탄하곤 했었는데요..이번호,통일이 되지않았으니,부부 두분 귀국도못하고..하는 부분에선 정말 가슴이 짠해지더라구요ㅠ아무 댓가없이,스님가르침 하나를 따라가시는 님같이 순수하신 분이 세상에 계시다는 것 만으로도,삶에 많은 위로가 됩니다^^* 저는 정토회외곽에 있는 사람이지만,스님펜으로,님의 노고에 진심 감사드리고 감탄합니다..늘 힘내시고 건강도 잘 챙기시고 화이팅 하세요^^*
    (사진속 스님과 계신 두분모습이 마치 아버지와 딸 같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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