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짜증 날 수도 있지

김규림 (2016년 11월 29일 ~ 2017년 1월 23일 49일 문경살이 10기)


이강년 기념관에서 글쓴이

어쩌다 문경살이를 하게 되었을까?
발단은 11월 14일부터 진행된 바라지장이었다. 보수법사님께서 특별히 과제를 내주셨다, 이틀간 집중적으로 ‘지금 여기 깨어있기’를 해보고 소감을 나누기로 한 것이다. 한 시간에 한 번, “지금 깨어있습니까?” 하는 법사님의 목소리에, 저만치 가 있던 마음은 그렇게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고, 돌아오길 반복했다. 그러던 중 나는, 너무나도 잘해내고 싶고, 관심 받고 싶은 나의 어린 마음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런 내 마음이 부끄럽고 싫었다. 눈물이 났다. 마음을 꾹 눌렀다, 그렇게 눈물을 삼켰다. 이런 나를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이틀이 지나 다시 돌아온 법사님과의 시간, 내 차례가 되었다. 역시나, 몇 마디 잇지 못했다. ‘관심 받고 싶다’는 말을 내뱉으려는 순간, 목구멍이 꽉 조여 왔고, 울먹임이 시작되었다. 간신히 말을 마쳤다. 정말 궁금했다, 별거 아닌 줄 알면서도 왜 나는 여전히 목이 메는지, 왜 나는 수련원에만 오면 매번 이렇게 우는지.... 법사님께서 알려주셨다, 이 눈물은 지금 내가 흘리는 것이 아님을, 과거 내가 억누르고 외면한 그때 그 아이가 서러워 우는 것임을, 수련원에서 마음이 맑아진 틈을 타 나를 좀 봐달라며 나타나는 것임을... 법사님께서 나에게 49일 문경살이를 하며, 그 마음과 마주해보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다. 그로부터 10일 후, 외면해온 내 마음과 마주하기 위해 나는 이곳 문경으로 왔다.

다시 시작된 아토피, 그저 서막에 불과했을 뿐.
그렇게 도착한 수련원, 4박 5일의 바라지장으로 예비 문경살이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첫날 밤, 깨끗이 나은 줄 알았던 아토피가 10년 만에 다시 날 찾았다. 가려움에 밤새 잠을 설쳤다. 대체 왜,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렇게 물 좋고 공기 좋은 이곳에서 좋은 음식만 먹고 있는 지금, 왜, 어째서! 문경살이 들어오기 전, 이 병원 저 병원, 그리고 약국을 쫓아다니며 받아온 약들, 갖가지 약들로 가득 찬 약 봉투 속엔 아토피 연고는 없었다. 잠을 못 자니 몸이 힘들었다. 그리고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이러다 만 배를 못해 돌아가게 되는 거 아닌가.’ 결국 병원엘 다녀왔다. 그리고 시작된 만 배, 복약 투혼을 발휘하며 무사히 만 배를 마치고 드디어 49일 문경살이 10기로 입재를 하였다. 그러나 무릎이 몹시 아파왔다. 공동체 생활에 적응해 가는 동안에도 무릎은 물론 아토피도 낫지 않았다. 나는 매일 새로운 아침을 맞이했고, 매일 새로운 통증과 마주했다. 몸이 아프니 마음도 힘들었다. 몹시 피곤했다. 

몸이 아파도 마음은 가벼울 수 있지!
명상수련이 있는 날 새벽, 눈을 뜨니 입 주위 느낌이 이상했다, 진물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순간 짜증이 걷잡을 수 없이 올라왔다, 모든 게 지긋지긋했다.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정진 후 나누기를 했다, 난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고 미자보살님이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은 그 마음을 얘기해보라고 하셨다. 그리고 내 이야기를 들은 후 말씀하셨다, 우리가 지금 하는 이 수행이라는 것이, 몸이 아파도 마음은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알아가는 길이라고. 난 전혀 동의할 수 없었다. 앞으로 2주는 꼬박 진물로 고생할 것이 뻔한데 행복할 수 있다니. 귀를 닫았다. 그렇게 난 치솟을 대로 솟은 짜증을 품고 명상수련을 시작했다. 그리고는 명상수련 셋째 날 저녁, 감자를 먹으며, 몸의 힘듦을, 마음의 힘듦을, 한 알의 감자에 속삭이는 우스갯소리로 승화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며 깨달았다. 몸의 고통이 곧 마음의 고통은 아님을, 몸이 아파도 마음은 가벼울 수 있음을, 이제껏 나 자신이 마음마저 아프게 만든 것임을. 

그 후로 회향을 앞둔 지금까지 난 참 부지런히도 아팠다. 49일 동안 약 안 먹은 날은 정말 손에 꼽을 정도, 동기인 은혜 법우는 ‘살면서 만난 사람 중에 이렇게 병약한 사람은 규림 법우가 처음이다’라고 정리했다. 그 사이 무릎 통증으로 병원을 두 번이나 다녀왔으며, 정진은 주력으로 대신한 지 오래다. 그리고 가볍게 30기 백일출가도 내려놓았다. 
예전이었으면 참 많이 괴로웠을 거다. 몸이 아파서 계획이 변경되고,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해야 하고, 함께하는 도반들과 보통이 되어 지내고 싶은데 건강하지 못해 유별난 내가 참 많이 미웠을 거다. 하지만 난 괜찮았다. 이제 괜찮다는 걸 알았다. 내 몸이 아파도 내 마음은 가벼우니까, 나는 행복하니까. 그러고 나니 그제야 보이기 시작했다, 함께하는 도반들의 마음 씀이, 그 감사한 마음들이. 49일 동안 난 매일 그 고마운 마음을 선물 받았다. 마음이 몸의 고통으로부터 헤어나기까지, 그 고개를 넘기까지, 함께해준 모든 분께 정말 감사한 마음이다. 


“내가 짜증 날 수도 있지!!” 유행어의 탄생.
때는 명상수련을 다녀온 후다. ‘아프지만 행복할 수 있다’는 말을 하루에도 몇 번을 되뇌며 지내던 어느 날 새벽, 해우소 청소 중이었다. 나는 똥 묻은 걸레를 빨고 있었고, 날은 참으로 추웠다. 고무장갑을 낀 내 두 손에 차가운 물이 닿는 것이 느껴졌다, 고무장갑이 양손 모두 구멍이 난 것이다. “아!!” 하는 탄성과 함께 괴로움이 올라왔다, 잇달아, 요즘 내가 즐기던 대로, 괴로움을 느낀 내게 매우 다정하게 속삭였다, ‘고무장갑에 구멍이 나서 걸레를 빠는 물이 안으로 들어오지만, 난 행복할 수 있어’라고. 그 순간, 짜증이 머리끝까지 뻗쳤다, ‘아니 내가, 괴로울 수도 있지 왜!! 짜증 날 수도 있지 왜!! 왜 짜증내면 안 되는 건데, 대체 왜!!’ 그랬다. 나는 내가 느끼는 감정에 공감하는 것을 놓친 채, 예전처럼 무시하며 지내고 있었다. 귀신(과거의 억누르고 외면해온 나)의 한을 풀어내러 들어와서는, 또다시 한 맺힌 귀신을 만들고 있었다니!! 그날 이후 ‘내가 짜증 날 수도 있지!!’는 나의 유행어가 되었다. 이 유행어의 특징은 어디에다 붙여도 어색함이 없다는 것, 도반들과의 진지한 나누기에도, 너나 할 것 없이, "법우님이 OO 할 수도 있지, 그럼 좀 어때!" 하고 나면, 우린 언제나 빵 터져서 참 많이도 웃었다. 그 웃음만큼의 돌이킴과 그 웃음만큼의 가벼워짐이 있었던 것 같다. 지금 이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나와 남의 감정에 공감할 수 있게 된 지금, 난 내가 참 좋다.


돌아가기 위한 짐을 싸다.
연말연시가 되니, 이곳 정토수련원에도 들뜬 기운이 느껴졌다. 또한, 법사님들께서 모두 인도 성지순례를 가서 자리를 비우시니 수련이 열리지 않았고, 수련이 없으니 바라지장 역시 필요치 않았다. 자연스레 49일 문경살이 프로그램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나와 은혜 법우는 대중 공양간에서 점심 공당을 맡았다. 공당은 공양 당번의 줄임말이다. 그리고 세차를 하고, 수련원 정비에도 참여했다. 언제나 우리 둘이었다. 더는 49일 문경살이 프로그램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지내는 것 같지 않았다, 마치 울타리는 모두 사라지고 우리 둘만 덩그러니 남겨진 것 같았다. 불안함이 찾아왔고 이곳을 나가고 싶었다. 
어릴 적 나는 외가댁에 맡겨졌다. 그때 느꼈던, 이곳이 아니면 갈 곳이 없다는 불안함, 그때의 그 불안함과 두려움이 찾아왔다, 업식이 올라왔다, 피하고 싶었다, 다 그만두고 싶었다, 나가고 싶었다, 여기를 나가면 괜찮을 것 같았다. 돌아가기 위한 짐을 싸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덕생법사님과의 상담 시간이 잡혔다. 이런 나의 이야기에, 법사님께선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이 네겐 당연하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이곳에서 편히 쉬다 갔으면 좋겠다고,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다는 걸 알아야 한다는 말씀을 덧붙이셨다. 나의 이 불안함이 당연한 거라는 법사님의 말씀에 쌌던 짐을 풀었다. 내가 가진 불안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나니, 같은 상황에도 전과 같은 불안함이 찾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난 내 업식의 한 고개를 넘어 무사히 회향까지 마치게 되었다.
  
나에 대한 엄마의 애달픔을 알게 되다.
엄마는 내가 아픈 걸 참 싫어하셨다. 하긴 내가 늘 아프긴 했다. 아픈 나도 지겨울 지경이었으니, 엄마는 오죽했을까. 그래서 아픈 것을 숨기는 일에 급급했다. 하지만 그게 숨긴다고 숨겨질까. 결국, 엄마가 알게 되고, 나는 ‘네가 그러니까 아프지’하는 외면의 말을, 차가운 얼굴을 마주해야만 했다. 회향을 앞두고, 문경에도 큰 눈이 내렸다. 수련원의 겨울이면 으레 ‘눈 쓸기’를 떠올린다는데, 나도 드디어 그 체험에 동참하게 된 것이다. 도반들의 배려로, 무릎이 아픈 나는, 트럭 뒤에 올라타 염화칼슘을 뿌리고, 평지에 쌓인 눈을 정리하는 소임을 맡아서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날 저녁, 예불을 드리러 가는 길, 미자 보살님과 마주쳤다. ‘눈 쓸기’에 대해 여쭤보셨고, 나도 ‘눈 쓸기’를 해보았다는 말에, “아니, 무릎도 아픈 사람이 왜 그걸 했어!” 하시는 미자 보살님의 표정, 그 순간 보살님의 얼굴에 엄마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참 많이도 닮은 말과 표정, 그건 걱정? 염려?, 아니 그것보다 ‘애달픔’, 애달픔이라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그때야 알 수 있었다. 엄마가 내게 했던 말과 표정은 차가운 외면이 아니었음을, 온 마음이 애달픔 그 자체였음을. 감사했다. 만 배를 하며, 더는 없을 것만 같은 가슴 절절한 감사함을 느꼈는데, 그때보다 더 큰 감사의 마음이 올라왔다. 엄마에게도, 미자 보살님께도... 지금이라도 알 수 있어 정말 다행이다. 

49일 문경살이를 마치며
49일 동안 참 많은 것을 해봤다. 만 배를 하고, 소심경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매일 아침 발우공양을 기다리고, 난생처음 해우소 청소도 하고, 대중 공양간에서 밥을 지어 그 밥을 함께 공양하고, 수련장 도배를 하고, 자작나무 숲의 나무를 베기 위해 톱질도 하고, 정화조 청소도 하고, 그리고 준비과정부터 즐거웠던 9기 회향식, 2016년 마지막 날의 노래자랑, 2017년 성도재일 철야정진, 며칠 전 눈 쓸기까지. 돌이켜보니 날마다 새날이었던 문경 수련원에서의 생활, 함께하는 도반이 있어 더 행복했다.

▶수련장 앞에서 글쓴이
고맙습니다. 49일을 함께한 도반들, 그리고 49일을 기다려준 우리 가족, 정말 고맙습니다. 49일 동안 매일매일 되뇌었던 명심문 잊지 않고 앞으로도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 이 글은 월간정토 2017년 3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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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 댓글등록
이 글의 댓글 4개
  •  정혜진 2017/04/19 22:04
    내가 짜증날 수도 있지!
    저도 한동안 써먹어 볼께요. 감동적인 글이예요.
  •  무구광 2017/04/19 10:39
    글을 읽으며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규림님의 깨우침이 나의 마음 한 구석에 울림을 전해주네요....
    특히 외면해온 어머님의 온 마음이 애달픔 자체였다는 것을
    두아이를 가진 엄마의 마음으로 너무 공감이 되어
    눈물이 흐르는 것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앞으로도 삶의 진정한 주인이 되어 행복하기를...^^
    고마워요 묻혀있던 마음의 한자락을
    다시 보고 만질 수 있게 해줘서.....
  •  안선영 2017/04/17 18:37
    글이 감동입니다...소심경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영혼이 맑고 아름다운 규림님~~참 이뻐요~~ 내가 짜증날수도 있지~ 와우 그대는 천재~~내마음도 가벼워지네요~~
  •  보덕화 2017/04/17 11:41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자로 한단계 더 승격되어 살아가실 수 있음에 축하드립니다....그리고 존경합니다...
    모든것은 몰라서 일어날 뿐...찾아보려고 하면 원인과 이유가 있음을 깨우치니..삶이 한결 가벼워지고 행복할 수 있음을...규림님...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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