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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왕삼매론>은 중국 원나라 말, 명나라 초기의 혼란기에 생존한 묘협 스님의 <보왕삼매염불직지> 안에 있는 22편의 글 중 제17편‘십대애행’에 해당하는 글입니다. 원문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긴 문장인데, 많은 사람이 읽고 새기기에 편하도록 간결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장애를 이기는 열 가지 수행법 3

공부하는데 마음에 장애 없기를
바라지 말라



법륜스님 본지 발행인

공부하는데 마음에 장애 없기를 바라지 마라.
마음에 장애가 없으면 배우는 것이 넘치게 되나니
그래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장애 속에서 해탈을 얻으라 하셨느니라. 

[원문]
마음공부 하는데 장애없기를 바라지 마라.
마음공부 하는데 장애가 없으면
배움에 등급을 뛰어넘게 되고 등급을 뛰어넘으면
반드시 얻지 못하고서도 얻었다고 하게 되느니라. 
이 장애에 뿌리가 없다는 것을 이해하면
장애가 스스로 고요해져서 장애에 걸릴 것이 없어지나니,
그러므로 성인이 말씀하시되
장애 속을 자유로이 거닐어라 하셨느니라. 

마음이 일으키는 장애들
  염불하면 염불에 집중이 되고 참선하면 화두가 성성해지고 명상하면 호흡에 집중되고, 이렇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해보면 그렇지 않지요. 온갖 번뇌, 망상이 끼어들어 집중이 잘 안 됩니다.

  마음공부의 온갖 장애는 먼저 내적 장애와 외적 장애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외적 장애는 수행하겠다고 결심했는데 부모님이 돌아가신다든지 집에 부도가 나든지 해서 수행을 할 수 없는 조건이 되는 상황을 말합니다. 외부의 조건 변화로 갖가지 번뇌가 생기는 거예요. 하지만 외적 장애는 사실 장애가 아닙니다. 그냥 하나의 사건일 뿐입니다. 그런데 외적 장애에 부딪혔을 때 수행에 대한, 공부에 대한 회의와 의심이 내적으로 일어나면 외적인 사건은 큰 장애가 됩니다. 공부하는 데 회의가 일어나 싫어하는 마음에 사로잡히면 외적인 상황이 갑자기 큰 장애로 나타나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외적 장애는 여기서 논하지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외적 장애는 장애라고 하지만 사실은 장애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적으로 공부에 대한 회의가 들지 않으면 외적 장애는 문제가 안 되거든요. 외적인 장애는 공부하는 데 오히려 도움이 됩니다.

  마음공부 할 때 생기는 내적 장애 중 제일 먼저 나타나는 것이 번뇌입니다. 명상한다고 앉아 있으면 이미 지나가 버린 옛날 생각이 끝없이 일어납니다. 그것은 책에 있는 글처럼 내가 옛날에 그랬다는 기록이지, 그게 어떻든 지금 나에게 일어나는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늘 과거에 사로잡혀 있으므로 현실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그 나쁜 기억 때문에 한을 품으면 나에게 큰 불행을 자초합니다. 반면에 과거의 좋았던 기억에 사로잡혀서‘나도 한때는 지위가 높았는데, 부자였는데, 얼굴이 예뻤는데…’이런 생각을 자꾸 하게 되면 현재의 자기가 초라하게 느껴집니다. 과거에 휩싸여서 자신이 지금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못 하게 됩니다. 그래서 현재의 자기를 자꾸 불행하게 만들지요. 과거의 나쁜 기억에 사로잡히면 과거와 현재를 불행하게 만들고, 과거의 좋은 기억에 사로잡히면 현재를 불행하게 만듭니다.

  내적 장애의 두 번째는 망상이에요. 미래에 대한 생각이지요. 있지도 않은 일을 마치 일어난 것처럼 생각하니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하고 걱정이 생깁니다. 미래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히기 때문에 현재를 불행하게 만들어요. 이런 망상 때문에 집중이 안 되지요.

세 번째는 회의입니다.‘ 절하면 뭐하나. 수행하면 뭐하나.’주로 집중이 안 될 때 이런 생각이 많이 일어나지요. ‘꼭 정진해야 하나, 내가 뭘 잘못했다고 참회하나.’이렇게 자꾸 의심이 듭니다. 공부하기 싫은 마음에 사로잡히면 합당한 이유를 찾게 되고 결국은 그만두게 되지요. 내가 하기로 해놓고 안 하는 게 아니고, 안 할 이유가 생겨서 안 하는 거예요. 그래서 하기로 해놓고 안해도 거기에 대한 책임감이 없습니다. 번뇌가 끝없이 일어나 집중이 안 되는 것도 힘들지만 그것은 ‘번뇌가 왜 이리 많지, 왜 이리 공부가 안되지?’ 하는 정도지 ‘공부할 필요가 없다’는 건 아니잖아요. 그러나 회의와 의심은‘과연 공부할 필요가 있는가, 안 해도 되지 않는가’하는 쪽으로 계속 끌고 가는 거예요. 이럴 때 여러 가지 바깥 이유가 겹치지요. 싫어함에 사로잡히게 되면 남의 말이 귀에 안 들리고 사물을 봐도 눈에 안 보입니다. 그래서 사로잡힘 중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싫어함에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좌절하고 절망하는 것입니다. 의욕이 없는 거예요. 흐르는 물처럼 명예도 무엇도 다 버리고 사는 것은 그래도 생기가 있습니다. 좌절이나 절망과는 거리가 멀지요. 무심의 상태라는 것은 그 안에‘소소 영영’깨어 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명상할 때도 마음의 평정, 마음의 고요함 속에 정념이 있어야 합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흐리멍덩한 상태를 ‘무기’라고 하는데, 수행하는 데 큰 장애예요.

  우리가 공부할 때 이런저런 외부 조건을 장애라고 하지만 실제로 그것은 장애가 아닙니다. 마음의 작용일 뿐이에요. 밖에서 일어나는 것은 하나의 사건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온갖 번뇌가 이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을 알아차리고 내 업식이 어떤 부분에서 애착과 혐오를 일으키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거기에 사로잡히지 말아야 합니다.

배우는 것이 넘치면 교만해진다
 명상하면 명상이 고요히 되고 염불하면 염불에 집중되고 이렇게 어떤 일을 하든 뜻대로 되면 좋을 것 같지요. 그러나 그렇게 되면 배우는 것이 넘치게 됩니다. 교만해지게 됩니다. 무엇이든 할 때 손쉽게 하려고 하면 안 돼요. 적당한 장애는 오히려 우리 인생에 도움이 됩니다. 장애를 뛰어 넘을 때는 공부에 도움이 되고, 장애를 뛰어넘지 못하고 걸려 넘어지면 좌절과 절망에 빠지는 겁니다. 장애물 경기와 같습니다. 뛰어넘으면 승리하지만 걸려 넘어지면 패자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원을 세웠으면 어떤 장애가 있더라도 뛰어넘어야 합니다.

  이 장애에 뿌리가 없다는 것은 모든 게 다 공하다는 것을 이해하면 장애에 걸릴 것이 없어진다는 말입니다. 장애라 하는 것은 장애에 걸려 넘어질 때 장애지, 구애받지 않으면 이미 그것은 더 이상 장애가 아니라 하나의 사건일 뿐입니다. 

무엇이든 할 때 손쉽게 하려고 하면 안 돼요.
적당한 장애는 우리 인생에 도움이 됩니다.
장애를 뛰어넘을 때는 공부에 도움이 되고,
장애를 뛰어넘지 못하고 걸려 넘어지면
좌절과 절망에 빠지는 겁니다.

<반야심경>에 나오지요. ‘심무가애心無罫碍’(마음에 장애가 없어지면) ‘무가애고無罫碍故’(장애가없으므로)‘ 무유공포無有恐怖’(두려울것이없어지지요). 우리는 아무 장애가 없기를 바라는데 장애는 늘 있는 것입니다. 마음의 장애가 우선이에요. 싫어하는 데 사로잡히면 이 마음이 바로 장애가 됩니다. 그러나 마음에서 걸리지 않으면 이것이 다만 하나의 사건이 되고, 그런 사건을 해결하게 되면 나에게 능력이 생기고 힘이 생깁니다. 그것이 나를 성장하게 만듭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나에게 좋은 일이에요. 돌아보면 지금까지 겪었던 수 많은 장애가 나를 성장하게 하고 공부를 도와줬어요. 그런 데서 우리가 장애를 ‘해탈의 지름길’로 여기고, 장애 가운데서 해탈을 얻어야 하는 거예요. 갖가지 장애 속에서 자유로움을 얻어야 진정한 자유, 즉 해탈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월간정토 2018년 5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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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댓글 1개
  •  서정희 2018/06/12 14:27
    장애가 해탈의 지름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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