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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왕삼매론>은 중국 원나라 말, 명나라 초기의 혼란기에 생존한 묘협 스님의 <보왕삼매염불직지> 안에 있는 22편의 글 중 제17편 ‘십대애행’에 해당하는 글입니다. 원문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긴 문장인데, 많은 사람이 읽고 새기기에 편하도록 간결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장애를 이기는 열 가지 수행법 2

세상살이에 곤란 없기를
바라지 말라



법륜스님 본지 발행인
 
세상살이에 곤란 없기를 바라지 말라.
세상살이에 곤란이 없으면
업신여기는 마음과 사치한 마음이 생기게 되나니.
그래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근심과 곤란으로서 세상을 살아가라 하셨느니라.

[ 원문 ]
세상살이에 곤란 없기를 바라지 마라.
세상살이에 곤란이 없으면 교만과 자랑하는 마음이 생겨나고
교만과 자랑하는 마음이 일어나면 반드시 모두를 속이고 억하게 되느니라.
고난의 경계를 잘 살펴 고난이 본래 허망한 것임을 알면
고난이 나를 어찌 상하게 하리.
그러므로 성인이 말씀하시되
근심과 곤란으로서 해탈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고난을 겪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정월 초하룻날 부터 정초 기도로 한 해를 시작하면서 그해 어려운 일이 없기를 바라고, 또 영험 있다 하는 도량을 찾아다니며 무사하기를 기원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전하는 말씀은 곤란함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는 것입니다. 곤란함이 없기를 바라기 때문에 명산 대첩을 찾아다니며 기도를 하는데, 곤란함이 없기를 바라지 않는다면 이럴 필요가 없지요. 그러면 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지난 호에 말씀드린 것과 마찬가지로, 육신을 가지고 있는 한 병들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이 세상일은 우리 뜻대로 다 될 수가 없습니다. 바라는 바대로, 원하는 바대로 다 되는 일은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세상은 풍비박산이 되어 버립니다.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바가 다르므로 상충합니다.

  예를 들어 나는 출가하여 부지런히 정진해서 성불하는 게 목표인데, 나의 부모님이 나에 대해서 원하는 것은 그것과 다르지요. 이렇게 서로 원하는 바가 상충하는데 원하는 것이 다 이루어지면 어떻게 될까요?

  어떤 사람은 오늘 놀러 가는 사람이 있고 또 어떤 사람은 내일 놀러 가는 사람이 있는데, 각각은 자신이 놀러 가는 날 날씨가 맑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계속 맑게 되면 비가 오지 않아 물이 없어서 농사는 안 되고 먼지가 펄펄 날리니 금방 사막이 되어 버리겠지요. 우리가 원하는 대로 되면 자연은 사막이 되어 버리는 셈입니다.

  그러니까 원하는 대로 다 되는 것이 좋은 게 아니지요. 그런데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되기를 바란다는 것은 이 세상을 망치는 거예요. 원하는 바대로 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하는 게 이 세상의 참모습입니다. 이것은 객관적인 사실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다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원하는 대로 안 되면 괴로워하면서 갖가지 곤란을 겪습니다.

  여러 가지 곤란을 바라보는 관점에는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그런 일을 겪을 만한 원인이 있어서 결과가 나오는 것이므로 당연히 과보를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인과’입니다. 중생의 세계에서는 바로 이 인과의 법칙을 따릅니다. 우리는 스스로 지은 그 원인을 모르기 때문에 결과에 대해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나타난 결과를 ‘재앙’ 혹은 ‘곤란’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원인을 알게 되면 재앙이나 곤란이 ‘당연한 결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인과법을 알아 나에게 주어진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임으로써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다른 한 가지는 앞에서 말한 대로 세상 자체가 내가 원하는 대로 안 되는 게 정상이니까 원하는 대로 안 된다고 괴로워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나의 괴로움은 내가 원하는 대로 되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날씨가 맑든 날씨가 흐리든 그 자체는 우리가 괴로워할 대상이 아니지요. 날 괴롭히려고 비가 오거나 날 괴롭히려고 해가 나는 게 아니라 그냥 일상적인 기후환경이에요. 그런데 내가‘오늘 날씨가 맑아야 한다’거나‘비가 내려야 하는데…’하고 바라는 대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할 때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원하는 대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곤란하지, 원하는 대로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없으면 곤란한 일은 아니지요. 약간 불편한 일일 뿐입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원하는 대로 다 되지 않는 게 진리이므로 원하는 대로 안 된다고 해서 괴로워할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내 뜻대로 될 수 없으므로 곤란은 시시때때로 나타나는 거예요. 그래서 곤란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큰 고통을 겪습니다. 곤란이라는 것은 시시때때로 나타나는 것이고, 그게 정상입니다.

  간혹 세상살이가 다 내 뜻대로 되는 것처럼 느끼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사람이 교만해집니다. 인기 가수, 탤런트, 스포츠맨 등이 그런 경우에 속합니다. 세상살이에 곤란이 없으면 세상살이에 조심하는 마음이 없어서 교만하고 거만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수행자들에게 걸식하라고 하셨습니다. 남의 집에 가서 밥 얻어먹는 주제에 큰소리칠 수 있습니까?

  날마다 남의 집에 가서 밥을 얻어먹으려면 문간에서 고개를 숙여야 합니다. 주면 좋고 안 줘도 좋고, 많이 줘도 좋고 적게 줘도 좋고, 이것 줘도 좋고 저것 줘도 좋습니다. 걸식과 구걸의 차이는 걸식은 수행의 한 방편이고 구걸은 욕심을 채우려는 데 있습니다. 걸식할 때는 욕심을 버리고 걸식을 하고, 구걸할 때는 욕심으로 전전긍긍합니다. 걸식할 때는 주는 사람에게 맡기면서 자기를 내려놓는 것이고, 구걸할 때는 주는 사람에게 강요하는 것입니다. 폭력이든 애걸복걸하든 어쨌든 강요를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걸식하는 자는 겸손해야 합니다. 그래서 걸식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제자들은 교만해서는 안 된다. 겸손해라. 나의 제자들은 비굴해서는 안 된다. 당당해라.”

  우리는 겸손과 비굴을 같이 봅니다. 욕구가 있으면 비굴해집니다. 그런데 욕구가 없으면 당당해집니다. 욕구가 있으면 교만합니다. 욕구가 없으면 겸손합니다. 그래서 수행자는 당당하면서 겸손하고 겸손하면서 당당합니다. 천하에 아무 거리낌이 없으면서도 천하 사람에게 고개를 숙입니다. 중생은 천하 사람에게 움츠려 비굴하고, 또 천하 사람에게 잘났다고 큰소리를 칩니다. 여러분이 돈에 집착하는 경우 자기보다 돈 많은 사람을 만나면 비굴해지고 자기보다 돈 적은 사람을 만나면 교만해집니다. 또 권력에 집착하는 사람은 자기보다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는 비굴하고 자기보다 지위가 낮은 사람에게는 거만해집니다. 얼굴 모양에 집착하게 되면 자기보다 잘생긴 사람에게는 기가 죽고 자기보다 못생긴 사람에게는 잘난 척을 합니다. 지식에 집착하면 자기보다 지식이 못한 사람에게는 큰소리 뻥뻥 칩니다. 실제로 우리에게 일어나는 심리지요. 그런데‘나’라고 하는 이것을 내려놓게 되면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비굴할 아무런 이유도 없고 거만할 아무런 이유도 없어집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수행자는 가난한 자에게 밥을 빌게 해서 가난한 사람에게 겸손하도록 가르치고, 궁성에 가서는 그 어떤 것도 빌지 못하게 해서 왕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도록 가르쳤습니다. 대부분은 왕에게 고개를 숙이고 대중 앞에 가서는 고개를 쳐들게 됩니다. 그러나 붓다의 가르침은 왕에게는 고개를 숙이지 말고 대중 앞에 가서는 고개를 숙이는 겁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높은 자는 수행자의 발아래 내려놓고, 이 세상에서 제일 낮은 자는 수행자의 머리 위에 얹어놓으니 결국은 세상을 평등하게 보는 것입니다. 왕은 천시하고 중생은 높이라는 뜻이 아니라 이 세상 사람들을 똑같이 평등하게 보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교만하지 말고 겸손하라, 비굴하지 말고 당당하라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이 자기 뜻대로 되면 교만하게 됩니다. 이건 주위의 사람을 봐도 그렇고, 자기 자신을 가만히 지켜봐도 알 수 있습니다. 뭐든지 뜻대로 잘 되면 사람은 교만해지고 자랑하는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이렇게 교만한 마음이 생기고 자랑하는 마음이 일어나면 반드시 다른 사람을 억압하게 됩니다.

  다음으로 원문에“고난의 경계를 잘 살펴 고난이 본래 허망한 것임을 알면”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본질적인 문제입니다. 고난이라는 것은 본래 없어요. 내가 원하는 대로 되어야 한다고 바라는데서 고난이 되지, 본래 고난이란 없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공空이지요.“ 고난이 어찌 나를 상하게 하리.”우리가 고난이라 말하는 일이 일어나더라도 본래 고난이 없는 것을 알아버리면 그 고난이 나를 어지럽히지 못합니다. 

  그러니 여기 고난의 경계를 잘 살펴보면 실체가 없음을 알 수 있고, 그것을 알면 어느 고난도 아무런 장애가 안 됩니다.

 

* 이 글은 월간정토 2018년 4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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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댓글 2개
  •  조미화 2018/05/01 12:56
    늘 겸손하고 지혜롭게 말씀을 잘 섬기겠습니다
  •  서정희 2018/05/01 10:58
    감사합니다.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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