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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S 인도 이야기]


인도와 함께하는 
나의 성장기

▶ JTS 데이 때 운력을 하며 아이들과 찍은 사진 (글쓴이 왼쪽에서 두 번째)


권미정    수자타아카데미 유치원 파트


인도로 온지 이제 반 년. 인도에서 첫여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해 10월, 너무나 오고 싶었던 인도로 왔습니다.

제가 처음 인도에 온 건 고등학교 1학년 때로, 지금보다 환경이 더 열악했습니다. 전기가 없어서 초를 켜고 생활했고, 제가 오기 바로 전 해에 이곳 수자타에 강도가 드는 사고가 있었던터라 치안도 불안한 상황이었습니다.

‘아,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 먼지도 많고 시끄럽고 음식도 입에 맞지 않아 어려웠지만, 이런 불편한 것들이 오히려 재밌게 다가왔습니다. 그게 인도에 대한 첫 기억이었습니다.

제가 인도를 다녀온 몇 년 뒤 대학생이 된 오빠가 인도 선재수련을 다녀왔습니다. 오빠는 새까맣게 그을린 거지꼴로 와서는 엄청 고생했다고 하는데, 저는 오빠의 모습에서 오히려 생기를 느꼈습니다. 그래서 ‘아, 나도 대학생이 되면 저렇게 마구 고생하는 인도 선재수련을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대학생이 되자 아르바이트로 선재수련 갈 비용을 마련해 두 번째로 인도에 오게 되었습니다. 도시에서만 살아온 저는 그때 처음으로 몸쓰는 일을 엄청 많이 했습니다. 새벽에는 기도, 아침을 먹고 나서부터 저녁 먹기 전까지 일을 하는데, 뭔가 내 삶이, 나의 하루가 가치 있게 느껴졌습니다. 아이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오늘 하루 참 잘 살았다 싶은 생각에 뿌듯했습니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이곳 사람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어른이 되면 꼭 여기 빚 갚으러 와야지’ 다짐했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직장을 잡고 이런저런 활동을 하게 되면서 다시 인도로 오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려고 보니 인도로 가는 꿈은 이제 포기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파혼을 하게 되어 힘들고 어지러운 가운데 제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싶은지, 힘들었던 연애를 하면서 얻은 교훈은 ‘나는 참 소중한 사람이다’라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소중한 ‘나’니까, 나를 가치 있게 쓰자하는 생각이 들었고, 주저 없이 인도로 오게 되었습니다.

인도로 오기 전, 묘수법사님을 뵈었는데 과제를 주셨습니다. 파혼하는 과정에서 왜 내가 힘들었는지, 그때 내가 무엇 때문에 괴로웠는지를 봐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내 마음대로 되어야 한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는 과제를 가지고 생활해보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생활하다보면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게 더 많다는 걸 앞으로도 계속 겪게 될 거고, 그럴 때마다 내 마음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보라는 말씀을 마음에 담아 저는 그렇게 인도로 왔습니다.

마을교사 수련 후 함께 찍은 사진 (글쓴이 왼쪽 첫 번째)

저를 제일 먼저 반겨준 건 아이들이었습니다. 인도에는 손님이 오면 꽃을 주는 문화가 있는데, 처음 보는 저를 한국인이라 반겨주고 꽃을 선물해 주는 그 마음이 너무 예뻤습니다. 여기 오길 참 잘했다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부서는 학교 파트 유치원으로 배정받았지만, 성지순례 물품담당 업무부터 먼저 시작했습니다. 400명의 물품을 준비하다 보니 혼자서 할 수 없는 일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아이들의 손을 빌려야 했는데, 언어가 안 통하니 함께 청소하는 일부터도 어려웠습니다. 할 줄 아는 말이 한국어밖에 없어서 알아듣지 못할 걸 알면서도 한국어로 추임새를 넣으며, 손짓 발짓 해가며 몸으로 먼저 보여주고 함께 일을 했습니다. 딱 내가 원하는 대로 일이 진행되진 않았지만, 그렇게라도 일이 되어간다는 게 신기했습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와, 이렇게 해도 되네?’ 했던 것이 나중에는 답답함으로 다가왔습니다. 언어가 다르고 생활환경이 다르고, 뭔가를 얘기해야 할 때마다 한참 생각하고 버벅거리고, 나중에는 한국말도 제대로 안 나왔습니다. 언어의 장벽이 생각보다 컸습니다. 한국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을 할 때는 정신없이 하다가도 쉬는 틈이 생기면 ‘아, 한국가고 싶다’ 하는 생각이 밀물과 썰물처럼 왔다갔다 반복되었습니다. ‘해외에서 살면 이런 어려움이 있구나!’ 사실 언어의 장벽 말고도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하는 그런 어려움들이 느껴졌습니다. 해외에서 활동하는 정토행자들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지리도 잘 모르고 말도 모르다 보니 물건을 사러 나가는 일도 혼자의 힘으로는 어려웠습니다. 누군가에게 부탁을 해야 하고,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구나 생각하니 그것도 답답함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럴 땐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에 아이들이 다가와서 인사하고 말 거는 것도 두려웠지요. 그래서 일부러 아이들이 없는 길로 가고 눈도 안 마주치고 빨리 갔던 적도 있었습니다.

성지순례가 끝나고 유치원 업무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이곳 아이들은 제철 야채나 과일을 많이 못 먹는 터라 일주일에 한 번씩 야채나 과일을 스페셜 푸드로 아이들에게 지급하고 있습니다. 도매로 싸게 파는 야채·과일 시장은 새벽에만 열리기에 아침 발우공양을 빠지고 새벽시장에 다녀와야 합니다. 시기마다 나오는 과일과 야채들이 다르지만, 여름이 가까워지면 과일 맛이 떨어지면서도 가격은 비싸지기도 합니다. 좀 마음에 들고 맛있겠다 싶은 과일은 너무 비싸고, 가격이 괜찮다 싶으면 아이들에게 주기에 모양새가 이상하고, 또 어떤 날은 싸게 잘 샀다 싶어서 박스를 열어보면 상한 과일이 너무 많아 다시 장을 보러 가야 하는 날도 있었습니다. 그런 날은 아침 두세 시간 만에 하루 에너지를 다 소비한 것처럼 지치기도 합니다.

하루는 과일 장을 다 보고 대중들이 먹을 야채를 좀 사려고 야채시장에 갔는데, 웬 남자가 과하게 몸을 터치해왔습니다. 순간, ‘이게 뭐지?’ 싶어 2~3초 멍하게 있다가, 그럴 경우에 ‘이 구역의 미친년은 나다!’를 제대로 보여줘야 한다는 선주법사님의 이야기가 퍼뜩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그 남자의 눈을 똑바로 보고 삿대질을 하며 “Don’t touch me!” 하고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습니다. 그랬더니 주변의 인도 사람들 눈이 다 휘둥그레졌고, 저는 씩씩거리면서 다시 장을 본 뒤에야 집으로 돌아왔는데 분이 안 풀렸습니다. ‘아, 좀 더할걸. 앞으로 계속 그 시장에 가야하는데 더 유별나게 보여줘야 안 건드릴 텐데’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성희롱에 대해 살짝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스페셜 푸드를 나눠주고 나면 딱 맞을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넉넉하게 사기 때문에 남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관리는 유치원 파트에서 함께 봉사하는 12학년 칸찬이 관리를 합니다. 그 즈음은 오이가 제철이라 특별식으로 오이를 준비했는데 오이는 하루만 지나면 다 물러지기 때문에 그때그때 다 나눠주는 게 제일 좋습니다. 그날도 남김없이 다 나눠줬다고 생각했던 오이가 나타났지만 대부분 상해서 버려야 할 상태가 됐습니다. 쁘리앙카 시스터가 그 오이들을 보고는 칸찬을 엄청 혼냈고, 칸찬은 한동안 입이 나와서 사무실에 엎드려 있었습니다. 유치원의 일이고 같은 팀이니 모두의 책임인데 칸찬이 대표로 혼난 게 마음에 걸려서, 저는 힌디어는 잘 못하지만 어깨를 토닥여주고 손을 잡아주며 칸찬에게 눈으로 위로의 표현을 했습니다. 유치원 일정이 끝나고 고생했다 싶어서 레몬차를 만들어 유치원 팀끼리 점심시간에 차를 한잔 하면서 칸찬에게 괜찮냐고 한번 더 물어 봤습니다. 칸찬은 안 괜찮다고 하면서도 차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했고, 그런 칸찬을 보며 알았습니다. ‘아, 소통은 꼭 말로만 다 되는 게 아니구나. 눈빛, 말, 행동, 이 모든 것들이 사람과 소통하는 큰 길이로구나!’

스페셜 푸드를 받은 유치원 아이들

사실 한국에 살 때조차 같은 한국말로 하면서도 대화가 안 된다, 말이 안 통한다 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왜 언어가 다르다고 어렵고 답답하게만 생각했을까요? 저는 제가 뜻대로 되지 않으면 다른 길로 둘러갈 줄도 모르고 답답해하는 사람임을 알았습니다.

사실 지금도 답답하기는 매한가지입니다. 마을교사 수련을 준비하면서 얼마나 사방이 막힌 듯 갑갑했는지 수련이 다 끝나고 나니 마치 감옥에서 출소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말을 알아들으려 애를 쓰고, 그게 제대로 안 되니 눈치껏 상황을 살피는 데 온 에너지를 쏟다보니 심신이 함께 지친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이런 어려움, 그러니까 내 뜻대로 되지 않음이, 오히려 열심히 잘 살고 있다는 표시로도 여겨집니다.

고등학생으로 처음 겪은 불편한 인도, 대학생이 되어 몸으로 부딪치는 가운데 보람을 느꼈던 인도, 그리고 어른이 되어 소중한 나를 가치 있게 쓰고자 다시 찾아와 고군분투하고 있는 지금, 이 여름의 인도!

인도의 여름은 많이 덥습니다. 냉장고 없이, 에어컨 없이, 현대 문명과 떨어진 생활을 하는 이곳에서는 오히려 자연에 대한 감사함을 더 잘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작은 바람만 불어도 시원하고 감사합니다.

내가 살아있음에, 잘 살고 있음에 감사합니다.

 

* 이 글은 월간정토 2019년 7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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