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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강좌]


<금강반야바라밀경>의 금강은 다이아몬드를, 반야는 지혜를, 바라밀은 피안의 세계에 도달함을 가리킵니다. 줄여서 <금강경>이라고도 합니다. 여기에 담긴 지혜가 다이아몬드처럼 가장 값지고 소중하고 견고하다는 뜻이기도 하고, 다이아몬드가 세상 모든 물질을 다 깨뜨리듯 <금강경>의 지혜로써 중생의 어리석음과 번뇌를 깨뜨린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금강경>을 수지독송受持讀誦하고 위타인설爲他人說하는 큰 공덕과 기쁨’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금강반야바라밀경
金剛般若波羅密經



법륜스님   본지 발행인

3 大乘正宗分 (1)

대승의 바른 가르침

중생계가 공하면 불과佛果가
자연히 멀지 아니하리니
무엇이 제도하기 어려우며
무엇이 이루기 어려우리요.
육근이 텅 비고 심식心識이 공하면
자연 댓돌 맞듯 맷돌 맞듯 하리라.

제삼 대승정종분
第三 大乘正宗分

佛告須菩提 諸菩薩摩訶薩 應如是降伏其心 所有一切
불고수보리 제보살마하살 응여시항복기심 소유일체
衆生之類 若卵生 若胎生 若濕生 若化生 若有色 若無色
중생지류 약란생 약태생 약습생 약화생 약유색 약무색
若有想 若無想 若非有想 非無想 我皆令入無餘涅槃 而滅度之
약유상 약무상 약비유상 비무상 아개영입무여열반 이멸도지
如是滅度無量無數無邊衆生 實無衆生 得滅度者 何以故
여시멸도무량무수무변중생 실무중생 득멸도자 하이고
須菩提 若菩薩 有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 卽非菩薩
수보리 약보살 유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 즉비보살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그 마음을 항복받아야 한다. 존재하는 모든 중생의 종류,
즉 알로 나는 것, 태로 나는 것, 습기로 나는 것, 화하여 나는 것, 빛이 있는 것, 빛이 없는 것,
생각이 있는 것, 생각이 없는 것,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닌 것을
내가 다 완전한 열반에 들게 제도하리라.
이와 같이 한량이 없고 수가 없고 가없는 중생을 제도하되 실로 제도를 받은 자가 하나도 없다.
왜냐하면 수보리여! 만일 보살이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있다면
그는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다 열반에 들게 하리니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그 마음을 항복받아야 한다. 존재하는 모든 중생의 종류, 즉 알로 나는 것, 태로 나는 것, 습기로 나는 것, 화하여 나는 것, 빛이 있는 것, 빛이 없는 것, 생각이 있는 것, 생각이 없는 것,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닌 것을 내가 다 완전한 열반에 들게 제도하리라.
佛告須菩提 諸菩薩摩訶薩 應如是降伏其心 所有一切衆生之類 若卵生 若胎生 若濕生 若化生 若有色 若
無色 若有想 若無想 若非有想 非無想 我皆令入無餘涅槃 而滅度之

중생은 자기 뜻대로 일이 되지 않으면 괴로워합니다. 남편이 돈을 못 벌어서, 자식이 공부를 못해서, 부모가 이혼을 해서, 친구가 배신을 해서 등등 갖가지 이유를 대며 괴로워합니다. 이는 세상이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서 괴롭다는 뜻이지요. 내가 괴로운 이유가 하나 같이 다 다른 사람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게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러니 자연히 나보다 힘이 센 존재, 내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일을 단번에 해결해줄 수 있는 존재, 즉 신이라는 존재에 매달려 제 뜻을 이루게 해달라고 비는 것입니다.

이처럼 답답한 우리 삶의 문제를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하고 수보리가 묻습니다. 그러자 부처님은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모든 중생을 내가 다 제도하겠다는 마음을 내라.”
‘아개영입我皆令入 무여열반無餘涅槃 이멸도지而滅度之’에서의 ‘아我’는 발보리심한 보살입니다. 그러니까 보살, 즉 모든 괴로움에서 완전하게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은 일체중생을 열반에 들게 하여 하나도 남김없이 제도해 마치겠다는 마음을 먼저 내라는 말입니다.

열반이란 모든 번뇌가 사라지고 일체의 속박에서 벗어난 상태를 말합니다. 즉, 진리를 깨달아 불생불멸의 법을 체득한 경지를 말합니다. 불교의 최고 이상으로, 니르바나nirva-na, 닙바나 nibbana, 멸도라고 번역합니다. 그런데 열반을 다시 유여有餘열반과 무여無餘열반으로 나눕니다. 깨달음을 얻어 일체의 번뇌는 끊었으나 과거의 업보로 받은 이 몸이 멸하지 않는 한 이런저런 과보를 받고 있는 상태를 ‘유여열반’이라 하고, 모든 번뇌를 끊고 분별을 떠났을 뿐 아니라 완전한 고요 적정寂靜에 든 경지를 ‘무여열반’이라 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내 마음 하나 제대로 간수하지 못해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이제야 겨우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보려고 보리심을 일으켰는데, 그런 사람에게 부처님은 “베푸는 마음을 내라. 주는 마음을 내라. 그러면 완전한 행복, 완전한 자유에 이를 수 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니, 여기에서 더 나아가 나와 같은 사람뿐 아니라, 난생·태생·습생·화생·유색·무색·유상·무상·비유상비무상의 모든 중생을 다 제도하라고 하십니다. 불교에서는 일체중생을 태어나는 방식에 따라, 육신의 존재 여부에 따라, 또는 생각의 유무에 따라 구분지어 분류합니다. 태어나는 방식은 알에서 깨어나는 난생卵生, 부모의 태에서 비롯되는 태생胎生, 습기로부터 나오는 습생濕生, 부모의 몸체에서 분열되어 번식하는 화생化生, 이렇게 4가지로 분류됩니다. 또 육신의 존재 여부를 기준으로 유색有色과 무색無色으로 나눕니다. 가령 지옥 중생의 경우는 육신은 없고 정신작용만 존재하는 무색에 해당하는 존재입니다. 또 정신작용을 기준으로 유상有想과 무상無想, 비유상비무상非有想非無想의 3가지로 구분합니다.
이렇게 내 문제도 해결 못해 절절 매는 사람에게 이 모든 종류의 중생을 다 제도해 열반에 들게하라니,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말씀입니다. 아니, 과연 우리 같은 중생이 그럴 힘이 있기나 한 건지 믿기지 않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술이 보약
결혼한 이래로 허구한 날 술에 취해 주정하는 남편 때문에 가슴앓이를 해온 부인이 있었습니다. 그 부인은 20년 동안 ‘제발 우리 남편 술 좀 끊게 해달라’고 지성으로 기도를 드렸고, 이제는 술만 봐도 독약으로 보일 지경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술 마시는 남편 때문에 괴로워하는 부인에게 제가 말했습니다. “보살님, 오늘부터 매일 아침에 108배를 하면서 ‘부처님, 우리 남편에게는 술이 보약입니다’ 이렇게 기도하세요. 그리고 남편에게는 술이 보약이니 지금부터 술을 잘 챙겨 먹여야 합니까, 안 먹여도 됩니까?”
“잘 챙겨 먹여야 합니다.”
“그러니까 오늘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남편에게 술상을 잘 차려주세요.”
이 부인은 그날 이후로 제 말대로 술상을 차려내기 시작했는데, 막상 술상을 받은 남편은 고맙다는 인사는커녕 “이 여자가 절에 가더니 미쳤나?” 하고 욕만 하더랍니다. 보통은 이렇게 한 사흘쯤 하다가 남편이 험한 말을 하면 “그래 내가 미쳤지, 내가 처음부터 저 인간은 안 될 줄 알았다” 하면서 그만둬 버립니다. 그래서 아침마다 108배 기도를 해야만 그런 고비를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 부인은 꼬박 한 달을 쉬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술은 무조건 나쁜 거다, 술을 먹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내려놓게 되었고, 남편이 술을 먹고 와도 별로 문제 삼지 않게 되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남편이 술을 많이 먹고 온 날은 술상을 차리지 않아도 되니까 좋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조금씩 자기 마음이 편해지는 겁니다. 남편이 술을 먹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데 내 마음은 편안해지고 가정의 불화가 없어졌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두 달이 될 즈음 그 부인이 저를 찾아와 신이 나서 말했습니다.
“스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남편이 드디어 술을 적게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보살님, 요즘 수행 안 하시는군요.”
“아닙니다, 스님. 수행을 더 많이 합니다. 요즘 제가 기분이 좋아서 매일 300배씩 합니다.”
“아니, 요즘 수행 안 하시는데요.”
“스님, 수행 잘한다고 칭찬은 못 해주실망정 왜 자꾸 나무라기만 하세요.”
“그렇게 하는 건 수행이 아닙니다. 지금 기도 잘못하고 있어요.”
그런 일이 있고 두세 달 지난 뒤 그 부인이 또 저를 찾아와 하소연했습니다. 남편이 다시 예전처럼 술을 많이 먹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남편이 술을 많이 먹는다고 괴로워하고 술을 적게 먹는다고 좋아한다는 것은 아직도 내 마음이 술 먹는 남편에게 꺼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남편이 술을 적게 먹는 것을 보고 좋아하는 것은 아직도 내가 남편이 술을 마시지 말기를 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기도를 더 많이 하면 남편이 더 빨리 술을 끊을 것이라는 기대로 매일 300배씩 절을 했지만 막상 남편이 내가 원하는 만큼 바뀌지 않으니 짜증이 났겠지요. 그 짜증을 남편에게 풀어댔을 테니 남편은 스트레스 때문에 전보다 더 술을 마시게 되었을 것입니다.
나의 괴로움이 남편이 술을 먹지 말아야 한다는 ‘자기 생각’에 집착한 것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게 문제 해결의 핵심입니다. 남편이 술을 먹지 말아야 한다는 그 마음만 놓아버리면 남편이 술을 더 먹는다고 해서 실망할 것도 없고, 덜 먹는다고 해서 좋아할 것도 없습니다. 처음 기도하면서 마음이 편안해졌던 것은 남편이 술을 덜 먹어서가 아니라 남편이 술을 마시면 안 된다는 내 생각을 내려놓았기 때문입니다.

흥부는 제비 다리를 치료해줄 때 작은 생명이 소생하는 모습에 기쁨과 행복을 느꼈을 뿐, 제비가 물어다 준 박씨로 부자가 되는 행운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복이고, 그런 복은 재앙으로 바뀌지 않습니다. 그러나 복에 집착하면 놀부처럼 성한 제비 다리를 부러뜨리는 어리석은 짓을 하게됩니다. 제비의 보은으로 얻는 보물보다 제비의 아픔을 자기 것으로 어루만지는 마음 자체가 행복임을 알아야 합니다.
베푸는 마음 자체가 이미 기쁨임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자꾸 다른 보상을 구하다 보면 좋은 일을 하면서도 행복은커녕 오히려 괴로움을 느끼게 됩니다. 보살은 남편에게 술상을 정성스럽게 차려주는 마음에서 행복을 찾습니다. 술상을 차려주는 대가로 남편이 술을 끊게 되는 기쁨을 얻으려 한다면 그것은 이미 보살의 마음이 아닙니다. 제비 다리를 부러뜨려 복을 구하는 놀부의 심보와 다를 바없습니다.
‘술이 보약’이라는 말은 남편을 나한테 맞춰 바꾸려 하지 말고 남편 입장에서 그를 대하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런 마음이 술상을 차려주는 일로 표현되는 것이고, 그렇게 상대의 입장에서 상대가 행복하고 기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일체중생을 제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기도한 공덕은 내 마음을 바꿈으로써 이미 다 받았습니다. ‘내가 남편을 구제했다’든가 ‘남편은 아직 구제되지 않았다’는 생각은 여전히 상대에게 내 삶을 얽어매놓고 종속시키는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이런 어리석은 생각은 언제든 또 다른 괴로움을 불러옵니다.

 

 

* 이 글은 월간정토 2019년 5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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