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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자들의 출가 이야기]


백일출가와 행자대학원을
강력 추천한다



한혜련 25기 백일출가 & 13기 행자대학원

계획에도 없던 절에서 살게 되다
즉문즉설은 종종 듣지만, 나는 누가 종교를 물어보면 한 번은 불교, 한 번은 무교라고 답하는 정도였다. 절은 1년에 한 번 부처님오신날, 그것도 어머니가 가자고 하면 겨우 가는 곳. 그런 내게 ‘절에서 산다’는 건 인생 계획에 없던 것이었다. 거부감이 있었다. 차라리 출가를 하면 했지, 제대로 사회생활을 할 줄 알면 누가 절에 가서 사나 이런 생각. 그랬던 내가 정토회에서 출가 공동체 생활을 한 지 올해로 4년 차. 나는 왜 공동체에 들어와서 사나, 그리 살아서 뭐가 달라졌나.

“행자대학원 졸업하니 어때요?”
인생이 쳇바퀴처럼 느껴져 2015년에 대학을 휴학하고, 뭐 재미있는 게 없나 기웃거리다가 같은 해 3월 정토회 봄불교대학에 입학했다. 거기서 우연히 깨달음의장을 신청해 4월에 갔다오니 바로 6월 백일출가가 기다리고 있고, 다시 3년 기도로 행자대학원에 입재해 지난 2월에 졸업했다. 공부와 수행으로 쉼 없이 달려온 그간의 행적을 아는 이들은 이렇게 물어본다. “3년 행자대학원 졸업하니 어때?”
음, 졸업한다고 무언가가 딱히 손에 잡히는 건 아니었다. 졸업식 날 갑자기 깨달아서, 그 전과 후로 내 인생이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공부하는 3년 동안 적어도 인생의 방향성은 바뀌었다. 사는 게 참 재미있어졌다.

▶행자대학원 졸업식(가운데에서 오른쪽)

굳이 왜 백일출가를 가니?
백일출가에 들어가기 전 주변 반응은 ‘굳이 왜?’였다. ‘부모님 지원 빵빵해서 부족함 없이 살고 있고, 아이비리그는 아니지만 한국에서 남들 다 들어가고 싶어 하는 대학 들어갔잖아. 머리도 나쁜 편은 아니니 좋은 직장 다니거나 공부를 계속해서 교수직을 노려보든가, 아무튼 남들이 부러워할 인생 살 수 있는데, 갑자기 웬 백일출가?’ 가족과 친척들 중에는 고3 때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이 길을 간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머니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내 인생을 살라는 말씀도 하셨다.
나도 참 내가 이상했다. 내가 봐도 참 ‘좋은’ 조건에서 살고 있는데 뭐가 그리 부족하고, 답답하고, 벗어나고 싶고, ‘자유’라는 말에 가슴이 뛸까. 하지만 나는 어른들이 말하는 행복할 수 있는 길로 최선을 다해 참고 견디며 달려왔는데, ‘행복하려면’ 여전히 넘어야 할 ‘장애물’이 줄줄이 있는 느낌이었다. 뭔가 변화가 필요했다.

백일출가, 정말 예상외였다
깨달음의장이 너무 좋아서, 안내자가 안내하는 삶대로 살고 싶어서 망설임 없이 백일출가를 했다. 그런데 백일출가는 깨달음의장과 달랐다. 너무 바빴다. 일을 시키려고 백일출가생을 받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게 다 연습의 기회인 줄 몰랐다. 평생을 아파트에서 살고, 책상머리에만 앉아 있던 나에게 문경의 동선은 너무 길고 넓었다. 종일 청소, 빨래, 짐 나르기, 풀매기 등등 온갖 익숙하지 않은 소임과 처음 해보는 일수행에 매달리다 보면 밤마다 지쳐 쓰러질 지경이었다. 같이 공부하는 도반들을 보며 왜 저러나, 왜 안내대로 안 하나, 아니 뭐 저런 사람이 다 있나, 저렇게 대충할 거면 백일출가는 왜 들어왔나 생각하며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괴롭기만 한 건 아녔다. 40명이 넘는 도반들과 땀 흠뻑 흘려가며 주변 나무를 정리하고, 웃고 떠들며 화채를 들이켰을 때의 상쾌한 느낌, 다 같이 으?으? 비닐하우스 뼈대를 들어 날랐을 때 뭔가 커진 느낌, 수련을 마칠 때마다 새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 성장하며 행복한 순간들도 있었다.
하지만 100일이 지났을 때, 딱히 변한 게 없었다. ‘내 인생의 새로운 길’을 찾지도 못했고, ‘장부’가 된 것도 아니었다. 나의 제 1의 목표는 내가 행복해지는 것이었는데, 솔직히 백일출가 때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다. 여전히 참고, 견디면서, 언젠간 행복해질 거라며 100일을 보냈던 것 같다. 하지만 백일출가를 통해서 내가 깨달은 건, 이렇게 살면 행복할 것 같다고 생각해서 선택한 삶을 살면서도 나는 괴로워한다는 거였다. 이 괴로움을 여기서 해결해야지, 나 홀로 무인도에 간다고 해결되지 않는다는 건 명확했기 때문에 공동체에 남았다.

행대 덕분에 알게 된 것들, 부모님 그리고 새로운 인생
행자대학원 3년, 1000일 기도를 한다는 건 뭔가 멋져 보였다. 농사도, 국제 구호도, 사회 활동도 해본 건 하나 없지만 다 해보고 싶었다. 그중 수행을 가장 하고 싶었다. 괴로움에서 좀 벗어나고 싶었다.
1000일 기도정진을 하며 조금씩 알게 된 건 부모님. 3년간 동거동락한 도반과 나의 관계를 통해 어머니·아버지를 봤다. 다른 사람에게는 웃으면서 말해도 도반에게는 냉랭하게 반응하는 나. 어른스럽지 않다며, 웃으면서 부드럽게 얘기하지 않는다며 도반을 존중하지 않는 나. 둘밖에 모를 거다. 내가 도반을 얼마나 외면하는지, 서로 얼마나 외롭게 만들었는지. 그런데 참 미묘했다. 냉랭하게 대하는 건 이제 그만 두고 싶은데, 도반의 얼굴만 보면 표정부터 굳어졌다.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 불교공부를 통해 많이 달라지시는 게 감동이었다. 근데 아버지와의 관계는 돌아가실 때까지 안 풀려서 옆에서 내가 보기엔 뭔가 이상했다. 어쨌거나 20대인 나도 습관이 잘 안 바뀌는데 어머니는 그때까지 쌓인 습관으로부터 벗어나기 얼마나 어려우셨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분이 함께 살아주셔서 참 감사하다는 마음이 절로 올라왔다.
아버지 역시 나를 얼마나 많이 사랑하셨는지 알게 됐다. 어릴 적부터 나는 어머니 마음의 도플갱어로 아버지를 많이 미워했다. 주변 친척들은 다들 아버지를 ‘딸바보’라고 하는데, 나는 저건 사랑이 아니라며 마음속으로 부정했다. 내가 공부를 잘하니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시는 거라는 착각으로 언제나 경계심을 가졌다. 꾸준히 기도와 정진을 하면서 점점 내 방식대로 사랑을 주지 않으면 아예 상대의 마음조차 부정하는 내가 보였다. 아버지에 대한 참회 중 내가 애초에 왜 아버지를 미워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순간이 왔다. ‘아버지는 나의 남편이 아니라 아버지였는데, 왜 미워했지?’
그러자 아버지가 보였다. 돌아보니 어릴 때부터 안아주고, 가족 중 처음으로 사랑한다고 말로 직접 표현하는 등 아버지는 사랑꾼이었다. 딸이 행복하기를 바라며 최대한 뒷바라지를 하려는 가장이셨고, 이렇게 절에 와서 사는 내가 이해되지는 않지만 20살이 넘은 딸의 인생이 독립됐음을 아시는 현자셨다.
가족 같은 도반이 있었기에 이렇게 부모님을 이해할 수 있게 되어 감사하다. 함께 지내며 지지고 볶을 때는 너무 미웠는데, 그 덕에 이만큼 느끼고, 알게 됐다. 내가 더 스스로를 마주했다면 서로 더 깨졌을 수 있었겠다는 아쉬움도 있지만, 내 수준에서 최선이었던 것 같다.
1000일 기도를 드리면서 새롭게 발견한 건 인생의 재미다. 학생 땐 공부해야 하니까 친구도, 연애도, 해보고 싶은 것들을 일단 접어두었고, 대학에 가면 끝인 줄 알았는데 취업이 눈앞에 다가왔다. 이대로 가면 결혼과 육아 등 인생의 진로가 뻔히 예상됐다. 지금처럼 잘 먹고 잘 사는, 혹은 좀 더 윤택한 삶을 위해 사는 게 나름 그 안에서는 뿌듯함도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그렇게 살면 뭐하나?’ 이런 허전함이 있었다.
그 허전함은 내가 더 잘 나가거나 더 많이 누려서 채워질 것도 아니요, 참고 견디면서 해소될 것도 아니라는 것을 3년간의 공동체 생활을 통해 알게 됐다. ‘나’만이 아닌, 같이 사는 사람들, 우리 사회, 나라, 인류,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환경으로까지 시야를 넓히니 바로 거기 허전함이 아닌 충족감이 있다는 것, 그리고 내 에너지를 모두를 위해 쓰지 않고 아끼면 오히려 나를 괴롭히는 쪽으로 쓴다는 것, 그리고 에너지를 써야 다시 건강하게 충전된다는 것도 느끼게 됐다.

행자대학원 학기보고회2017(왼쪽부터 3번째)

같지만 다른, 또 한 번 3년의 시작
2월에 행자대학원을 졸업하고, 새로이 3년 기도입재를 시작했다. 이제는 상근 자원활동가로 행자원 소속의 농사 담당으로 부서 배치를 받았다. 백일출가 때는 일수행은 일단 싫고, 땀흘리는 것도 싫었던 내가 행대를 졸업할 즈음에는 일수행이 즐겁고, 흙과 노는 게 좋아서 농사를 하고 싶다고 자원했다. 스스로도 전혀 예상치 못한 변화다. ‘내가 알던 나’만 나라는 생각을놓고, 이렇게 알지 못했던 나의 다른 면모들을 받아들이니 인생이 재미있어진다. 3년 전과 같으면서도 달라진 나를 보며, 여전히 넘어지지만, 이 길에 선 내가 좋다.
길을 열어주신 부처님께, 불법이 지속될 수 있게 이어준 모든 선지식들께, 그리고 지도법사님과 법사님들, 선배 도반들께 감사하다. 함께하는 도반들이 있어 행복하다. “이제는 저도 함께 하겠습니다.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 이 글은 월간정토 2019년 5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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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행복한 수행자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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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 댓글등록
이 글의 댓글 2개
  •  희장엄 2019/06/12 08:17
    행자님의 마음이 제 마음에 와닿아 콕 박히며 찡한 감동을 주네요. 감사합니다. 주변 젊은이들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행자님의 행복한 여정에 화이팅을 보냅니다.
  •  이소중 2019/06/10 19:18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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