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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강좌]

<금강반야바라밀경>의 금강은 다이아몬드를, 반야는 지혜를, 바라밀은 피안의 세계에 도달함을 가리킵니다. 줄여서 <금강경>이라고도 합니다. 여기에 담긴 지혜가 다이아몬드처럼 가장 값지고 소중하고 견고하다는 뜻이기도 하고, 다이아몬드가 세상 모든 물질을 다 깨뜨리듯 <금강경>의 지혜로써 중생의 어리석음과 번뇌를 깨뜨린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금강경>을 수지독송受持讀誦하고위타인설爲他人說하는 큰 공덕과 기쁨’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금강반야바라밀경 4
金剛般若波羅密經


법륜스님   본지 발행인


2. 第二 善現起請分
선현기청분(2)

時 長老須菩提 在大衆中 卽從座起 偏袒右肩 右膝着地 合掌恭敬 而白佛言
시 장로수보리 재대중중 즉종좌기 편단우견 우슬착지 합장공경 이백불언
希有世尊 如來 善護念諸菩薩 善付囑諸菩薩
희유세존 여래 선호념제보살 선부촉제보살
世尊 善男子善女人 發阿 多羅三䶘三菩提心 應云何住 云何降伏其心
세존 선남자선여인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 응운하주 운하항복기심
佛言 善哉善哉 須菩提 如汝所說 如來 善護念諸菩薩 善付囑諸菩薩 汝今諦聽 當爲汝說
불언 선재선재 수보리 여여소설 여래 선호념제보살 선부촉제보살 여금제청 당위여설
善男子善女人 發阿 多羅三䶘三菩提心 應如是住 如是降伏其心 唯然 世尊 願樂欲聞
선남자선여인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 응여시주 여시항복기심 유연 세존 원요욕문

그때 장로 수보리가 대중 가운데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꿇으며 합장하고 공경하사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
“희유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모든 보살을 잘 두호하여 생각하시며 모든 보살을 잘 부촉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한 선남자 선여인은 마땅히 어떻게 머물며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받아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갸륵하고 갸륵하다, 수보리여! 그대의 말과 같이 여래는 모든 보살을 잘 수호하여 생각하고 모든 보살을 잘 부촉하나니, 이제 자세히 들어라. 마땅히 그대를 위해 말하리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한 선남자 선여인은 마땅히 이와 같이 머무르며 이와 같이 그 마음을 항복받느니라.”
“예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원컨대 즐겁게 듣고자 하나이다.”

어떻게 머물며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받아야 합니까?

“세존이시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한 선남자 선여인은 마땅히 어떻게 머물며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받아야 합니까?”
世尊 善男子善女人 發阿 多羅三䶘三菩提心 應云何住 云何降伏其心

부처님께 찬탄의 예를 올린 수보리는 과연 어떻게 하면 부처님처럼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룰 수 있는지 묻습니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으로, 모든 진리를 깨친 더할 나위 없는 지혜를 말합니다. 수보리의 이 질문에 대한 부처님의 답변으로 <금강경>의 설법이 시작됩니다. 사람들이 <금강경>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하는 이유 중 하나는 <금강경>에서 부처님과 수보리의 대화가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금강경>은 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 얼핏 보면 수보리의 질문과 부처님의 답변 사이에 단절이 있는 듯이 보이는데, 이는 부처님이 단순히 수보리가 물어본 질문에만 답을 하신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은 수보리가 마음속에 어떤 의심을 품으면 곧 그 의심을 알아차리고 그에 대한 설법을 하십니다. 그래서 수보리의 마음속 의심을 모르고 읽으면 부처님의 설법이 무슨 말인지 어리둥절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보살의 마음을 발한 이가 아니면, 즉 수보리의 마음이 되지 않으면 경전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한 선남자 선여인은 과거로부터 구도심을 일으켜 열심히 마음을 닦는 공부를 해온 사람을 말합니다. 또 다른 의미로는 내 인생의 주인이 되려는 보리심을 일으킨 사람을 말합니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 즉 가장 높고 보편타당한 진리인 무상정등정각을 얻고자 하는 마음이 보리심입니다. 아무리 두터운 업장이 쌓였다 할지라도, 혹은 세상에서 큰 죄를 지었다 해도 지금 이 순간 진리의 삶으로 나아가리라고 한마음 돌이킨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선남자고 선여인입니다.

앙굴리말라는 한 브라만을 스승으로 섬기며 열심히 공부하는 젊은 수행자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스승 브라만이 외출을 하자 앙굴리말라를 남모르게 좋아하던 스승의 부인이 그를 유혹했습니다. 하지만 앙굴리말라가 유혹에 넘어가지 않자 스승의 부인은 그에게 앙심을 품게 되었습니다.

스승이 집으로 돌아올 때가 되자 부인은 자기 옷을 찢고 머리를 풀어헤치고는 울기 시작했습니다. 브라만은 부인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부인은 남편에게 앙굴리말라가 자신에게 못된 짓을 하려 했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브라만은 몹시 화가 나 앙굴리말라를 파멸시킬 방법을 궁리한 끝에 앙굴리말라에게 사람을 100명 죽여 그들의 손가락으로 목걸이를 만들면 성자가 될 수 있다고 속였습니다. 앙굴리말라는 스승의 말을 믿고 닥치는 대로 사람을 죽이고 손가락을 잘랐습니다. 세상은 삽시간에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이러한 소문을 들은 앙굴리말라의 어머니는 부처님을 찾아와 아들을 구해줄 것을 간청했습니다. 부처님은 앙굴리말라를 찾아갔습니다. 그때 앙굴리말라는 99명을 죽이고 마지막 한 사람을 채우기 위해 자신을 찾아온 어머니마저 죽이려던 참이었습니다. 앙굴리말라는 부처님이 나타나자 어머니 대신 부처님을 향해 소리를 지르며 덤벼들었습니다.

하지만 앙굴리말라는 아무리 있는 힘을 다해 뛰어가도 부처님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부처님은 분명히 천천히 걸어가는데도 도저히 붙잡을 수가 없자 앙굴리말라는 소리를 질렀습니다.
“거기 멈추지 못해?”
그러자 부처님이 앙굴리말라를 돌아보며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이미 오래전에 멈추었는데 너는 아직도 멈추지를 못하는구나.”
앙굴리말라는 부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분명 자기가 아무리 달려가도 부처님을 잡을 수가 없는데, 부처님은 이미 오래전에 멈추었다니 도무지 그 뜻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당신은 이미 멈추었고 나는 멈추지 못한다니, 그게 무슨 말이요?”
그러자 부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거기 멈추어라, 앙굴리말라여. 나는 진리에 머무르는데 그대는 그것을 모르는구나. 앙굴리말라여, 나는 언제나 머물러서 모든 생명이 그 은혜를 입고 있는데, 그대는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의 불꽃을 피우며 잠시도 머무르지를 못하는구나.”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앙굴리말라는 비로소 자신이 저지른 죄업을 깨닫고는 부처님 앞에 엎드려 간청했습니다.
“부처님, 저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살인자를 제도해 주십시오.”

그러자 부처님은 앙굴리말라를 제자로 받아들여 법을 설해주셨고, 앙굴리말라는 곧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앙굴리말라는 비록 수많은 사람을 죽이는 악행을 저지른 큰 죄인이었지만 부처님을 만나 진정으로 참회하고 보리심을 가졌기에 새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앙굴리말라는 바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한 선남자 선여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수보리는 이처럼 보리심을 낸 선남자 선여인이 어떻게 하면 깨달음을 얻어 참자유와 행복을 누릴 수 있는지를 부처님께 여쭙니다. 수행자는 과연 어떻게 마음을 머물러야 하며, 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탐·진·치貪嗔癡 삼독三毒에 찌든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수보리의 간곡한 물음에 부처님은 답하십니다.

이 마음 하나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갸륵하고 갸륵하다, 수보리여! 그대의 말과 같이 여래는 모든 보살을 잘 두호하여 생각하고 모든 보살을 잘 부촉하나니, 이제 자세히 들어라. 마땅히 그대를 위해 말하리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한 선남자 선여인은 마땅히 이와 같이 머무르며 이와 같이 그 마음을 항복받느니라.”
“예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원컨대 즐겁게 듣고자 하나이다.”
佛言 善哉善哉 須菩提 如汝所說 如來善護念諸菩薩 善付囑諸菩薩 汝今諦聽 當爲汝說 善男子善女人
發阿 多羅三䶘三菩提心 應如是住如是降伏其心 唯然 世尊 願樂欲聞

수보리의 첫 물음은 마음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과연 마음이란 무엇일까요?
마음은 삼라만상을 짓기도 하고 허물기도 합니다. 번뇌 망상을 일으켜 지옥 같은 고통에 빠졌다가도 바로 다음 순간 재물욕·성욕·식욕·명예욕·수면욕 같은 오욕락五欲樂에 젖기도 하는 게 사람 마음입니다. 한 치 앞도 못 보는 어리석음에 빠져 축생이 되기도 하고, 분노와 짜증으로 독한 마음을 불러일으키며 아수라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또 청정한 마음을 내면 수행자가 되기도 합니다. 자비를 내어 고통 받는 중생과 함께해 보살이 되거나, 한마음 깨달아 부처가 됩니다.

이렇게 순간순간 바뀌는 마음의 변화는 모두 눈·귀·코·혀·몸·뜻의 육근六根이 경계에 따라 일어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 귀에 들리는 것, 코로 맡는 냄새, 입으로 느끼는 맛, 손으로 느끼는 감촉, 머리에 일으키는 생각에 따라 순간순간 좋고 싫음을 분별합니다.

육조 혜능 대사의 일화는 마음이 얼마나 순식간에 바뀔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혜능 대사는 달마 대사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중국 선종의 제6대 조사입니다.

혜능 대사가 오조五祖 홍인 대사로부터 법을 전수받을 당시 그는 머리 기른 행자에 불과했습니다. 그런 혜능이 법을 전수받자 홍인 대사의 제자들은 혜능이 법을 훔쳐갔다고 분개해 혜능 대사의 뒤를 쫓기 시작했습니다.

홍인 대사는 혜능에게 법을 전수했다는 증표로 가사 한 벌과 발우 한 개를 전했습니다. 가사와 발우는 부처님이 살아가셨던 모습 그대로 살아가라는 메시지입니다. 그것은 단지 전법의 형식일 뿐, 법이란 본래 줄 수도 없고 받을 수도 없는 것이므로 훔칠 수도 빼앗을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혜능 대사의 뒤를 쫓던 이들은 홍인 대사로부터 받은 가사와 발우를 빼앗기만 하면 자신이 육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혜능을 쫓던 무리 가운데 혜명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저만치에서 도망가는 혜능을 발견하고는 있는 힘을 다해 쫓아가 거의 따라잡았습니다. 혜능은 더 이상 도망칠 수 없게 되자 들고 있던 발우와 가사를 바위 위에 올려놓고 그 뒤로 몸을 숨겼습니다. 혜명은 발우와 가사가 이제 자기 차지가 되었구나 싶어 뛸 듯이 기뻐했습니다. 하지만 혜명이 아무리 애를 써도 발우와 가사를 집어들 수 없었습니다. 발우와 가사는 마치 바위에 딱 달라붙은 듯 떨어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제야 혜명은 법이란 것은 욕심낸다고 되는 것이 아님을 깨닫고는 바위 뒤에 숨어 있는 혜능에게 법을 청했습니다.

“나는 법을 위해 왔지 옷을 위해 온 것이 아닙니다.”
그러자 혜능 대사가 혜명에게 물었습니다.
“조금 전 마음은 무슨 마음이고, 지금 마음은 무슨 마음입니까?”

육조가 되겠다는 욕심으로 발우와 가사를 움켜쥐던 마음이 순식간에 법을 청하는 마음으로 변한 이치를 돌아보라는 뜻이었습니다. 혜능 대사의 간단한 질문 한마디에 혜명은 그 자리에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마음이란 그런 것입니다. 그러니 최상의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선남자 선여인이라면 다른 무엇보다도 자기 마음을 어떻게 머무르고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가 첫 번째 숙제입니다. 그렇게 보리심을 일으켜야만 윤회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간절히 일으킨 보리심은 하나의 씨앗이 되어 언젠가는 싹을 틔워 깨달음을 얻게 합니다. 그래서 대승불교에서는 발보리심, 그중에서도 초발심初發心을 특히 중요시합니다.

그런데 처음 보리심을 일으키는 것만큼이나 그 마음을 지속적으로 밀고 나가는 것도 참으로 어렵습니다. 보리심을 붙들어 깨달음으로 나아가려면 스스로에게 엄격해야 합니다. 이제껏 내 삶을 지배해온 욕망과 집착을 버려야 함을 깨달았다 해도, 긴 세월 몸에 밴 습관은 쉽게 사라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래된 습관에서 벗어나 진리를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수보리는 이렇게 보리심을 낸 이들의 절실한 마음을 대신해 물은 겁니다.

 

 

* 이 글은 월간정토 2019년 3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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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댓글 1개
  •  서정희 2019/05/01 17:40
    초발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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