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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자들의 출가 이야기]

천일정진을 내려놓으니
새로운 천일이 열렸다

눈 내리던 날

강셰인 35기 백일출가

아버지의 외도, 벗어나고 싶었던 우울한 과거
바꾸고 싶었습니다. 나의 인생. 우울하고 증오하던 나의 어린 시절. 그 기억들로부터 멀리 떠나 새 인생을 살고 싶었습니다.

제가 열다섯살쯤 저희 가족은 안목 바다가 보이는 좋은 아파트로 이사를 했습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저희 가족은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새벽, 보통 때와는 다르게 부모님께서는 큰소리로 싸우셨고 지하주차장으로 우당탕 내려가는 소리에 깬 저는 무슨 일인가 나가봤습니다. 아버지의 사무실 책상 서랍 여러 개가 엎어져 있었고, 거기서 나온 듯한 서류 더미 속에 조각조각 찢겨 뿌려진 사진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도 모르게 그 사진 조각을 맞추어 보았고 그것이 아버지가 벌거벗은 모습으로 외도를 하다 찍힌 사진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가슴이 콩닥콩닥거리고 기분이 참 이상했습니다.

그 이후로 집은 매일 전쟁터였습니다. 어느 날은 어머니가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화장실에 엎어져 괴로워하셨고, 어느 날은 같이 죽자며 식칼을 들고 아버지를 쫓아 뛰어다니셨습니다. 시간이 조금 흘렀지만 저희 집의 공기는 여전히 침묵과 신경전으로 살얼음판이었습니다. 아버지는 TV를 보며 한숨만 쉬셨고, 어머니는 씩씩거리며 분노를 참지 못하셨습니다. 그러다 작은 불꽃 하나라도 튀는 날엔 두 분은 어느새 소리를 지르며 각종 물건들을 던지면서 어머니는 아버지를 때리고,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를 말로 자극했습니다. 그렇게 서서히 부모님은 이혼이라는 벼랑 끝으로 향해 가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복수심으로 나를 상처 냈던 시절
문득 내가 불행한 사람이 되어 부모님께 복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망가지면 부모님이 조금이라도 후회하고 괴로워하지 않을까 하고 말입니다. 부모님을 증오했습니다. 어렸을 때 봉사상을 받으며 상냥하고 모범적이었던 저는, 선생님에게 슬리퍼를 던지고 조금만 거슬리면 친구들과 싸우고 술·담배를 하는 낯선 모습으로 변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우울하고 서글픈 학창시절. 하지만 전 그렇게라도 말하고 싶었습니다. 이제 그만 좀 하라고. 내가 더 망가져버리기 전에 이제 제발 그만 좀 하라고. 하지만 그러기엔 부모님의 상처가 너무 컸고, 저는 그 안에서 그렇게 사는 것이 부질없다는 생각에 내 인생을 바꾸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외국이라는 탈출구, 더 커져버린 우울감 
한국을 떠나 이 지긋지긋한 집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누나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외국에 나가 새 인생을 살고 싶었습니다. 군 제대 후 아버지에겐 유학 간다는 한마디 상의 없이 어머니의 지원과 틈틈이 아르바이트 한 돈으로 한국을 떠났습니다.

꿈에 그리던 유학 생활. 하지만 이 역시 순탄치 않았습니다. 3개월마다 찾아오는 우울감과 무기력증. 학교 과제와 강의가 끝나고 2~3개의 아르바이트를 하며, 주말도 없이 숨 막히는 생활로 3년 반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2학기를 남겨 두고 정말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는 무기력과 외로움, 우울감이 찾아왔습니다. 성탄절에 만난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영상 12월 25일 모두가 즐거워하는 성탄절. 전 기숙사에 혼자 남아 성경을 뒤적거리는 한편, 인터넷으로 이 외롭고 미칠 것 같은 공허함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무언가를 찾아 헤맸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동영상을 보게 됐습니다. 그 누구에게도 위로받지 못했던 제 마음이 생전 처음 보는 스님의 말씀에 홀린 듯했습니다. 그때부터 쉬는 시간에도, 혼자 밥 먹을 때도, 자기 전에도 스님의 동영상을 들으며 의지했습니다. 스님의 책을 사보고, 학교 근처 시드니법당에도 나가보면서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포기하고 싶었던 마지막 2학기를 무사히 마쳤습니다.

2016년 4월, 졸업식이 끝나자마자 진행된 시드니 ‘깨달음의 장’에 다녀왔고 회사 생활을 하면서 불교대학, 경전반을 연달아 다녔습니다. 회사에 지각을 하더라도 아침엔 정진을, 회사를 때려치우더라도 화요일 저녁엔 불대를 가겠다는 마음을 낼 정도로 무겁고 아슬아슬한 내면을 가볍고 편안하게 바꾸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깨장 후 900일이 지났지만 전 여전히 오르락내리락 넘어졌다 일어났다를 반복했고, ‘나눔의 장’에 다녀와서는 우울증이 심해져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기도 했습니다.

▶중간수련 남산순례 단체컷(첫번째 줄 맨 왼쪽 현수막 잡은 이)

다가오는 1000일 정진의 끝, 조바심에 신청한 백일출가
“1000일의 정진은 개인의 삶에 조금의 변화를 준다”는 스님의 말씀을 붙든 채 900일을 보냈지만 변하지 않는 제 자신이 또 다시 지긋지긋하게 느껴졌습니다. 곡예를 타는 것 같은 수행도 이젠 종지부를 찍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3~4년에 한 번꼴로 2주씩 갈까 말까 하는 한국에서 그것도 ‘100일씩이나?’ 생각했던 백일출가. 넘어지고 일어나는 것에 지쳐 있었지만, 곧 1000일이 다가온다는 조바심에 망설임 없이 입방원서를 제출했습니다.

‘죽는 한이 있어도 여기서 이 싸움의 끝을 보리라.’ 이곳에서 물러나면 정말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귀국해 가족과 잠시 시간을 보내고 바로 문경에 들어왔습니다. 

정진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으며 시작된 수행 
백일출가로 문경에 들어와서는 눈에 뵈는 게 없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은 늪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무거워졌다 가벼워졌다 하는 이 수레바퀴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이 외의 것들은 무의미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눈에 불을 켜고 내 공부에 방해가 되는 것은 거들떠보지 않은 채 마음에 칼을 들고 그 무언가를 계속 찾아다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묘당 법사님의 한 말씀이 마음에 살며시 와 닿았습니다. “나를 바꾸려는 마음을 내려놓는 것이 진짜 공부다.”

난 나를 어떻게든 바꾸려고 이제껏 달려왔는데. 지난 900일을 달려와 이제 곧 1000일인데. 해도 해도 잘 되지 않아 여기 백일출가까지 왔는데, 그것을 내려놓으라니…. 나머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그러다 반장님과 스태프의 안내에 따라 나를 내려놓는 연습을 시작했고, 세번의 질문 끝에 조금 알게 됐습니다.

‘아, 나를 바꾸려는 그 욕구가, 그 간절한 마음이 나를 조급하게 하고 과거의 내 자신을 우울하게 느끼게 하는구나. 그 욕구로 보냈던 지난 900일은 여기서 말하는 수행이 아니었구나.’

도반들과 나누며 받은 따뜻한 위로
그렇게 하루하루가 너무도 빠르게 지나갔고 나눔의장에서 자신의 증조할아버지, 할아버지, 그리고 아버지 모두가 외도를 했다는 도반, 또 아버지가 사고로 몸이 불편한데도 외도를 하더라는 도반의 나누기를 들으며 이상하게 마음이 쾌했습니다. 나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서 자란 도반의 이야기를 들으며 같이 울기도 했지만, 이상하게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것이 꼭 제게 ‘괜찮아. 그 정도는 괜찮으니까 이제 그만 우울해하렴. 상처 받은 어린 시절이여 잘 가, 안녕’ 하고놓아주라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중간수련 황룡사 터에서 명상

백일도, 천일도 지나갔지만 수행은 다시 시작
그렇게 100일이 지나갔습니다. 그렇게 1000일도 지나갔습니다. 현재의 저는 처음부터 바꾸어야 할 무언가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과거의 일들, 그 불쾌한 느낌, 처참했던 기억들 모두 지나가고 없기 때문입니다. 머릿속에서 과거의 영상을 틀어 스스로를 힘들게 했던 어리석은 모습이 이제야 조금 느껴집니다. 스님과 법사님의 말씀처럼 스위치만 끄면 될 일이었습니다. 이제야 내가 어머니에게, 아버지에게, 누나에게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랐는지 느끼게 됐습니다. 백일 출가 내내 부모님에게 감사기도를 하면서도 감사한 마음이 아니라 미워하는 마음만 들었던 제가 생각나 울컥하기도 했습니다.

도반들은 “상구보리 그만하고 하화중생 좀 하라”며, 나 자신만 너무 사랑하지 말고 다른 사람도 살피고 사랑해주라는 뜻으로 ‘강셰인 보살’이라는 별칭을 지어줬습니다.

내가 가벼워진 만큼 다른 사람의 무거워 보이는 짐을 나누어 드는 길로 앞으로의 1000일을 다시 시작합니다.

 

 

 

* 이 글은 월간정토 2019년 2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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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행복한 수행자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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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 댓글등록
이 글의 댓글 5개
  •  황지우 2019/03/27 21:06
    법우님 잘 들었습니다 멋진 응원 보냅니다^^*
  •  미물 2019/03/27 11:49
    감동입니다...
    이것이 기적인것같습니다..
    많이 배우고 갑니다..~
  •  무량화 2019/03/23 16:06
    법우님의 이야기가 월간정토에 나와 깜짝 놀랐네요. 나누어주신 이야기에 또 많이 느끼고 배웁니다. 감사합니다.
  •  보리안 2019/03/22 21:00
    입재식 때 지휘를 하던 밝은 모습이 생각납니다. 진정 수행자시군요.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번뇌와 별빛 2019/03/19 22:36
    치열하게 비워낸 당신은 진짜 수행자입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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