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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출가 이야기]

 

 

내 업식을 이기는 힘,
백일출가의 힘!

일체의장 일수행 연등 달기 중 글쓴이

 

이원표 | 33기 백일출가 

 

 

부모님의 불화, 불행했던 어린 시절
나의 어린 시절은 항상 불행했다고 기억된다. 부모님께서 싸우는 날이 많았다. 심지어 아버지는 어머니께 폭력도 쓰셨다. 대여섯 살이었던 누나와 내가 그 모습을 보면서 서럽게 울던 장면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어머니는 나에게 화풀이도 많이 하셨다. 나는 어느 순간 ‘말을 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꾸중을 들을 때 내 생각을 얘기하면 “너는 어떻게 그렇게 생각할 수가 있어?” 하시며 꾸중 듣는 시간이 더 길어졌기 때문이다. 말이 없고, 마음이 약했던 나는 가족 중에서 가장 억울하다는 피해의식이 깊었던 것 같다. 나의 업식은 무기력, 불안, 초조, 우울, 들뜸으로 형성되어갔다.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참여한 ‘ 깨달음의 장’
20대 후반에 공무원 준비를 하면서 내 인생에 가장 힘든 시간을 보냈다. 항상 들뜸 뒤에는 깊은 무기력감과 불안, 외로움이 찾아왔고, 심한 감정기복으로 인해 공부를 지속적으로 하는 게어려웠다. 아니, 하기 싫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인생을 포기한 사람처럼 지냈다. 그러던 중 친한 친구가 ‘깨달음의 장’(이하 깨장)을 추천해줬다. 자신도 다녀왔는데 너무 좋았다는 것이다.

고맙게도 친구는 돈이 없는 나를 알고 참가비는 자신이 해주고 싶다고 했다. 불안이 심해 연락이 안 되면 이리저리 전화하고, 서울 집에 찾아오시는 어머니가 마음에 걸렸지만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어머니께 솔직히 말을 하고 깨장에 갔다.

괴로울 것이 없다는 깨달음의 시작
깨달음을 얻는 것은 쉽지 않았다. 무기력하게 집에 있을 때 나를 무시하던 아버지의 모습으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했다. 나도 어른인데 어린아이 혼내듯 하시는 게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 특히 이것저것 시도해보려고 할 때마다 생각이 어린아이 같다며 매번 반대하셨고, 나는 그것에 대한 반발로 원망을 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런 분노, 원망이 사라질까.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하지만 법사님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안내해주셨다. 한순간 그 상황에 아무것도 괴로울 것이 없다는 것이 느껴졌다. 정말 아무것도 괴로울 것이 없었다. 마음이 한순간에 밝아지고, 환한 웃음이 나왔다.

깨장이 끝나고 법사님께서 백일출가를 권하셨다. 하지만 공무원 준비생인 내게 당시 참가비 100만 원이 있을 리 없었다. 깨장 다녀오는 것도 어머니를 설득하기가 힘들었는데 백일출가는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고, 정진은 시작했지만 뜻대로 잘 되지 않았다.

타지 생활의 어려움 속에 붙든 정진, 그리고 백일출가
이후 지인의 소개로 중국에서 근무하게 됐다. 일도 처음인 데다 중국어를 하나도 못하는 상황에서 타국 생활은 버거웠다. 그때마다 스님의 즉문즉설을 듣고 절을 하며 버텼다. 그렇게 힘들었던 중국 생활에 적응해갈 무렵 2년 반 만에 직장을 그만뒀다. 곧바로 나는 백일출가 원서를 넣었다. 뭔가 자극과 전환점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백일출가를 통해 머리로 알았던 것들을 마음과 몸으로 익혀갈 수 있었다.

나를 뛰어넘는다는 것의 체험
백일출가 중간에 발목을 다쳐서 500배 정진을 못하고 주력으로 대체한 적이 있었다. 다리가 저려 5분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나에게 1시간 동안 앉아 있어야 한다는 것은 고통이었다. 그러다 마음을 바꿨다. 앉아 있는 연습을 해보자! 주력 한 바퀴 돌리는 동안 다리를 풀지 않는 것에서 시작해 며칠 만에 다섯 바퀴 돌리도록 끝까지 버텨냈다. 주력을 마치니 주어진 정진시간이 20분 남아 있었다. 마음은 그만 멈추라고, 이만하면 됐다고, 내일 다시하자고 속삭였다. 지금까지 내 마음이 이랬구나, 합리화하며 할 일을 포기해왔구나 알아차려졌다. 다리가 너무 아파서 이러다가 무릎이 안 좋아지면 어쩌나 걱정이 됐지만, 무릎이 부서져도 좋다고 내 자신에게 외쳤다. 그렇게 결심하니 알아차림이 빨라지고 호흡에 집중됐다.

그러다 갑자기 온몸의 통증이 싹 사라졌다. 정신은 맑고 또렷했다. 신기하게도 이후로 앉아있는 것이 한결 수월했다. 앉아 있을 때 자세도 많이 좋아지고, 20~30분 앉아 있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뭔가 나를 한 단계 뛰어넘는다는 게 이런 게 아닐까 싶었다.

▶회향수련 경주 문무대왕암 나들이 (맨 뒷줄 왼쪽 첫번째)

“나에 대해 뭘 안다고 그래?”
한 번은 도반들과 서로의 모습에 대해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그런데 내 생각과 다른 모습이 나라고 도반들이 말하자 바로 거부 반응이 일어났다. 몇몇 어리다고 생각했던 도반들이 나에게 ‘어린아이 같다’, ‘의지심이 많다’ 등등의 말을 했다. 그러자 즉시 ‘나에 대해서 뭘 안다고 그런 말을 하지? 내가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는지 알기나 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나한테 어떻게 그런 말을 하지?’ 하고 시빗거리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공무원 시험에 실패하고 어렵게 취직해서 부모님 지원도 안 받고 살았는데, 아직 사회생활도 해보지 못한 도반들이 그렇게 말하자 어이가 없었다. 어떻게든 돌이키고 진정하려고 해도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상대방에게 걸리는 지점은 내가 투영된 모습
다음 날 정진하며 계속 참회하려고 했다. 하지만 진정되려고 하면 다시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라는 시비가 불현듯 올라왔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문득 ‘그럼 나는 도반들에 대해서 뭘 안다고 그렇게 평가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다른 도반들에게 감정이 상할 만한 말을 했던 것이다. 일순간 모든 분노가 눈 녹듯게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그리고 느꼈다. 도반들이 말한 내 모습이 다 맞는 말이구나. 또한 ‘고집이 세다’,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있다’ 등등 도반들에게 했던 말들도 다 내 모습이구나. 상대방을 볼 때 스스로 싫어하는 내 모습들이 먼저 보였던 것이구나. 상대를 욕하는 것이 결국 다 나를 욕하는 것이구나. 그 후 시비하듯 말한 도반들에게 사과의 말을 전했다. 내 인생에서 내 꼬라지를 가장 많이 보고 인정한 시간이었다.

일수행 비닐하우스 짓기(오른쪽)

백일이 지나서야 흐른 참회의 눈물
초반에 법사님께 부모님에 대한 참회의 기도문을 받았다. 백일 동안 참회를 하니 가끔 마음이 울컥하며 부모님에 대한 감사함이 조금씩 느껴졌다. 하지만 눈물이 나지는 않았다. 뭔가 어정쩡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백일출가를 졸업하고 집에 와서 정진을 하던 때였다.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라는 기도문으로 절을 하고 있었다. 부모님에 대한 직접적인 참회의 기도문도 아니었다. 그런데 갑자기 어머니가 떠오르며 눈물이 났다.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희한한 일이었다.

부모님을 이해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내 불안은 어머니로부터 왔는데, 어머니께서는 이 불안감을 가지고 매일 술 마시는 아버지 밑에서 누나와 나를 키우느라 얼마나 힘드셨을까 생각이 들었다. 한 번도 그 마음을 이해해 드린 적이 없었다. 이혼하지 않고 지금까지 키워이 사라졌다. 나의 말에 상처 받았을 도반들에 주신 것만으로 감사했다. 지금까지 나 잘났다고 부모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면서 지내왔던 것이부끄러웠다. 죄송하다고 계속 되뇌었고, 눈물은 멈출 줄 몰랐다. 정진을 마치고 정신을 차렸다. 부모님께 전화를 드리고 다음 날 어머니를 만났다. 그런데 눈물을 흘리며 참회했던 것이 무색하게, 막상 살갑게 대하기는 어려웠다. 그래도 전과는 다르게 어머니 말씀을 끊지 않고 다 들었다. 당신이 얼마나 힘드셨을지 내가 몰랐다고 말했을 때 어머니께서 약간 울컥하시는 것 같았다. 어머니께서는 그걸 알아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하셨다. 상대를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알 수 있었다. 부모님께 더 참회하고 많이 이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행은 현재진행형, 넘어지면 또다시
이렇게 정진이 한발 앞으로 나가기도 했지만 집에 돌아오면 예전 업식으로 쉽게 돌아가는 나를 보았다. 퇴보한 것 같은 마음에 다시 무기력해지며 어영부영 시간을 보냈다. 다시 나를 돌아보자 싶어 바라지장을 통해 문경에 왔다. 오랜만에 다시 공동체 생활을 하니 온갖 사람들에게 분별이 나고 내 꼬라지가 더욱 자세히 보였다. 생각해보니 모두 이곳에 있어준 대중의 은혜다. 나에게 거울이 되어 나의 모습을 바로 보게 해주었고, 이런 나와 함께 생활해주는 고마운 존재들이다. 문경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니 백일출가의 추억이 떠오르며 아련해졌다. 매번 수행적 관점을 놓치며 괴로워하지만 이것이 퇴보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나아가고 있음을 느낀다. 이렇게나마 돌이킬 수 있어 감사하다. 이 마음을 잊지 않고 계속 부지런히 수행정진하겠습니다.


 

* 이 글은 월간정토 2019년 1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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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행복한 수행자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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