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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반야바라밀경>의 금강은 다이아몬드를, 반야는 지혜를, 바라밀은 피안의 세계에 도달함을 가리킵니다. 줄여서 <금강경>이라고도 합니다. 여기에 담긴 지혜가 다이아몬드처럼 가장 값지고 소중하고 견고하다는 뜻이기도 하고, 다이아몬드가 세상 모든 물질을 다 깨뜨리듯 <금강경>의 지혜로써 중생의 어리석음과 번뇌를 깨뜨린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금강경>을 수지독송受持讀誦하고 위타인설爲他人說하는 큰 공덕과 기쁨’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게 되길 바랍니다.

 

금강반야바라밀경
金剛般若波羅密經



법륜스님 | 본지 발행인

 

 

1. 法會因由分
법회가 열리던 날


옷 입고 밥 먹고 자리 펴고 앉는 것이

세계 모든 대중이 다 일반이거늘,

이것을 한 사람도 아는 자가 없으니

 

참으로 애석하도다.

밝은 달은 소나무 사이로 비추고

맑은 물은 돌 위로 흘러가도다.


第一 法會因由分
제일법회인유분

[원문]

如是我聞 一時 佛 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與大比丘衆 千二
여시아문 일시 불 재사위국기수급고독원 여대비구중 천이

百五十人俱 爾時 世尊 食時 着衣持鉢 入舍衛大城 乞食於其
백오십인구 이시 세존 식시 착의지발 입사위대성 걸식어기

城中 次第乞已 還至本處 飯食訖 收衣鉢 洗足已 敷座而坐
성중 차제걸이 환지본처 반사흘 수의발 세족이 부좌이좌

이와 같음을 내가 들었사오니, 한때에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 급고독원에서 비구 천이백오십 인과 함께 계셨습니다. 이때 세존께서는 공양 때가 되어 가사를 입으시고 발우를 들고 사위대 성에 들어가셨습니다. 그 성 안에서 차례로 걸식을 마치고 본래의 처소로 돌아와 공양을 드신 뒤 가사와 발우를 거두고 발을 씻으신 뒤 자리를 펴고 앉으셨습니다.


•이와 같음을 내가 들었사오니

이와 같음을 내가 들었사오니, 한때에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 급고독원에서 비구 천이백오십 인과 함께 계셨습니다.

부처님은 29세에 출가해 6년의 수행 끝에 35세 때 깨달음을 얻고 80세에 열반하실 때까지 45년간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쉼 없이 설법하셨습니다. 이런 부처님의 말씀은 <팔만대장경>이라는 방대한 내용으로 오늘날까지 전해져 내려옵니다. 이는 모두 부처님의 제자들이 부처님 말씀을 경전으로 집대성한 덕분입니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뒤에 마하가섭의 주도로 부처님의 제자 중 깨달음을 얻은 아라한 500명이 왕사성 근처 칠엽굴에 모여 부처님의 말씀인 경전을 결집했습니다. 25년 동안 부처님의 시봉이었던 다문多聞 제일 아난다가 부처님이 하신 말씀을 하나하나 기억해 읊으면 500명의 제자들이 그 내용이 정확한지 검증하는 방식으로 결집이 진행되었습니다.
그 결집 자리에서 아난다가 말했습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기 전에 부처님 말씀을 어떻게 기록해야 할지를 여쭈었습니다. 그때 부처님께서 모든 경전은 육사六事를 성취하라고 하셨습니다.”

 

육사란 ‘여시, 아문, 일시, 불, 재, 여구’를 말하는데, 이 여섯 가지가 합해져 부처님의 설법이 성립되므로 이를 ‘육사성취’라고 합니다.
‘여시如是–이와 같이’는 신信의 성취를 말합니다. 경전 내용이 이치에 맞고 그릇됨이 없으며 믿음이 확실해 의심할 바가 없음을 나타냅니다.
‘아문我聞–나는 들었다’는 문聞의 성취를 말합니다. 경전 내용이 부처님 말씀을 한 점 보태거나 빼지 않고 그대로 재현했음을 밝히는 것입니다. <금강경>에서의 ‘나我’는 아난다를 말합니다.
‘일시一時–한때’는 시時의 성취로, 부처님이 설법하신 시각을 말합니다.
‘불佛一부처님’은 법을 설한 분이 석가모니 부처님임을 밝혀 설법을 한 主주가 성취됩니다.
‘재在–장소’는 법이 설해진 처處의 성취입니다. <금강경>에서는 그 장소가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입니다.
‘여구與俱–이러한 대중과 함께’는 부처님이 누구에게 하신 설법인지를 밝혀 중衆이 성취됩니다. <금강경>에서는 비구 1,250인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육사성취의 핵심은 부처님의 말씀을 조금도 틀림없이 당시 설법 현장 그대로 재현하라는 뜻입니다. <금강경> 역시 “이와 같음을 내가 들었사오니 한때에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서 비구 천이백오십 인과 함께 계셨습니다”라고, 그 원칙을 충실히 따르고 있습니다. 이렇게 아난다가 ‘내가 들었사오니’로 들음의 성취를 이루어 우리에게 <금강경>을 전해주니, 우리는 ‘이와 같이’ 믿음의 성취를 이루어내야겠습니다.

이렇게 부처님이 정해주신 육사성취에 따라 아난다가 경을 읊고 500명의 제자들이 그것이 부처님의 말씀과 틀림없는지 꼼꼼하게 검증하고 나면, 그다음엔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이 경전을 암송해 외웠습니다. 그 방대한 양의 경전을 통째로 외운다는 것이 우리 상식으로는 불가능해 보이지만, 그때 그렇게 외운 경전이 팔리어의 곡조와 운율 그대로 2,5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암송되어 전해져 옵니다. 지금도 남방 승려들은 이렇게 전해진 팔리어 경전을 암송하는 데 몰두합니다.

•한때에

불교 경전은 그 경이 설해진 시간적 배경을 분명한 연월일로 밝히지 않고 ‘한때’라고만 표현합니다. 시간은 인간이 만들어낸 관념에 불과할 뿐, 시간이란 게 본래 없기 때문입니다. 명상법 가운데 시계를 보지 못하게 함으로써 일상 속에서 시간을 잊게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런 명상법은 나를 둘러싼 온갖 틀과 관념에서 벗어나 오롯이 나를 돌아보게 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와 같이 한때는 시간이라는 관념에서 벗어나 부처님 말씀에 집중하게 하려는 뜻이 있습니다.

또한 시간은 절대적 기준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 개념입니다. 같은 지구라도 아시아와 아메리카 대륙 사이에는 12시간이 넘는 시차가 있습니다. 또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등 태양계 행성들은 저마다 하루의 길이가 다르고 1년의 길이가 다릅니다. 그러니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시간이란 개념은 객관적인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잠깐의 꿈이 일생이 될 수도 있고, 육십 평생을 살았다는 것이 잠깐의 꿈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부처님의 법은 이러한 시간 경계를 초월해 언제나 유효한 진리이므로 한때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불佛은 부처님의 여래십호如來十號 가운데 하나로 ‘깨달은 이’를 말합니다. 여래십호는 부처님의 공덕을 기리는 10가지 칭호입니다. 진리로부터 진리를 따라서 온 사람이라는 여래如來, 온갖 번뇌를 끊어서 인간과 천상의 모든 중생으로부터 공양받을 만한 사람이라는 응공應供, 모든 지혜를 다 갖추어 세상 모든 일을 바로 안다는 정변지正遍知, 삼명三明의 신통한 지혜와 육도만행六度萬行을 갖추었다는 명행족明行足, 윤회하지 않고 잘 가신 분이라는 선서善逝, 일체 세간의 온갖 일을 다 안다는 세간해世間解, 정情을 가진 존재 가운데 가장 높아서 그 위가 없는 대사라는 무상사無上士, 중생을 잘 이끌어 가르치는 사람이라는 조어장부調御丈夫, 하늘과 인간 세상 모든 중생의 스승이라는 천인사天人師, 스스로 모든 법의 진리를 깨닫고 중생을 교화하는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분이라는 불세존佛世尊이 그것입니다.

 

* 이 글은 월간정토 2019년 2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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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댓글 1개
  •  서정희 2019/02/01 12:20
    부처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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