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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자들의 출가 이야기]

백일출가의 끝, 
문경살이를 시작하다

 

 

김재희   백일출가 34기 

 

어쩌지 못하는 내 마음을 보기 위한 백일출가

나를 항상 도와주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에게 어제는 고마움을 느끼고, 오늘은 다시 보고 싶지 않을 만큼 미운 감정이 생기는, 상황들이 계속 반복되는 이유를 찾고 싶어 백일 출가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3일간 만 배를 하고, 다음 날부터 새벽 4시에 일어나 예불을 하고, 아침 소임과 공양 준비, 발우공양, 일 수행, 400배 정진, 학습 등이 이어졌습니다. 한가하게 번뇌할 틈도 없이 바쁘고 촘촘한 생활이었습니다. 세상을 처음 배우는 아이처럼 밥하는 법, 청소하는 법, 김치 써는 법 등 도반들께 모르는 것은 물어가며 이 곳의 방법을 하나하나 익혔습니다. 생전 해본 적이 없었던 밭두둑을 만드는 일, 밭에 들깨랑 배추 모종 심는 일도 배웠습니다. 도반들은 내가 잠시 다른 생각에 빠지는 순간에도 놓치지  않고 “행자님, 뭐 하세요? 일하셔야죠. 묵언하시고 자기 공부에 집중하세요. 놀러오신 게 아니잖아요”하고 다시 안내해 주었습니다.

감정 표현으로 마음 편하게 하기

온종일 옷매무새 챙기랴, 외우기 어려운 ‘소심경’ 외우랴, 땀 흘리며 대웅전에서 정진하랴, 저녁 학습시간에는 밀려오는 졸음을 참아가며 공부하랴, 저는 수행자가 되기 위해 숨가쁜 하루를 보냈습니다. 일체의 장과 나눔의 장을 통해 마음이란 녀석에 대해 살펴보게 되었고, 오래 갇혀 있던 진짜 내 마음들에게 섭섭하다, 밉다, 속상하다, 억울하다, 따뜻하다 등 각자의 이름을 달아주자 슝슝 날개를 펴고 마음 바깥으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불편함이 올라올 때마다“불편합니다”라고 표현하자 신기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NGO 탐방에서 선배 활동가들이 제일 강조한 것도 일이 아니라 수행이었습니다. 먼저 자기 마음 상태를 알아차리면 도반들 앞에서 작은 감정을 내보여도 마음이 가벼워진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보다, 남편보다 내가 먼저 행복한 길을 선택하라고 했습니다. 어찌 보면 이기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내 인생에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최우선적으로 나를 중심에 놓으라고 했습니다.

내가 원한 공동체살이, 내가 해야 하는 공동체살이

대웅전 앞을 지날 때마다 반 배로 부처님께 인사드리며 기도했습니다. 부처님처럼 나를 이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백일출가를 결심한 이유도 대장부 같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홍보지 문구가 좋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묘수법사님이 여는 말씀 중에 “장부란 의지처를 버린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라는 사람은 아직도 좀 어려운 일이 생기면 누군가 능력 있는 사람이 나타나 도와줬으면 하고 바랍니다. 누군가 옆에서 살뜰하게 살펴줄 때는 몰랐는데, 어떤 일을 할지 말지를 내가 결정하고 계획하는 게 어렵다는 것을 알게됐습니다. 살아오는 동안 눈치 보며 사느라 아직도 내 발로 똑바로 서지 못하는 걸까 내 자신에게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졸장부 같은 내가 대장부가 되고 싶은 마음에 문경에 살아봐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백일출가를 마치고 누가 억지로 붙잡은 것도 아닌데 여기서 지내면 저절로 계를 지키고 씩씩하고 당당한 사람이 될 것 같았습니다. 내 눈에 보이는 도반들은 나이가 어린 사람도 의젓하고 멋있어 보였습니다. 나도 그런 수행자가 되고 싶어 문경 공동체에 남았습니다.

공동체살이는 밥을 먹기 싫어도 남들한테 걱정을 끼칠까봐 먹어야 하고, 잠이 오지 않아도 정해진 시간에 누워야 하며, 누구나 똑같이 정해진 규칙에 따라 생활해야 합니다. 백일출가를 통해 다른 사람과 맞추며 사는 법을 조금 배웠는데도 공동체에서 함께 살아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공양간 정비하는 김재희 님

첫 소임은 공양간 소임

가볍게 생각했는데 문경살이 하는 것은 만만치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보시로 살기 때문에 내가 하고 싶고 하기 싫고를 떠나 필요한 소임을 맡는 게 첫 번째 과제였습니다. 나를 대신해서 방을 도배해주고 청소를 해주고 걸레를 빨아주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나도 공양간 일을 소임으로 받아 도반님들과 함께 생전 처음 고추장도 담아보고 열무김치도 담아 보았습니다. 솔직히 공양간 일은 적성에 잘 맞지도 않고, 날마다 식단 짜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물방울이 모여 강물을 이루듯 도반들과 함께 힘을 합치면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알아가는 중입니다. 개인적인 시간은 없다는 법사님 말씀처럼 24시간을 오롯이 수행자로 사는 것입니다.

 

부족하고 느리더라도 나의 속도에 맞게 걷기

특강수련, 김장준비, 공동체의 날 등 여러 가지 행사를 계획하고 바쁘게 움직이는 도반들을 보면 놀랍습니다. 새벽에 차를 타고 여기저기로 이동해서 하루 종일 일하고 밥 먹고 기도하고, 그 바쁜 와중에도 가을 단풍을 보고 밤하늘에 빛나는 별을 감상하는 걸 보면 도반들이 나와 똑같은 사람인지도 의심스러워집니다. 나만 부족해 보입니다. 남들은 특별하고 큰 능력이 있고 모두들 마음 닦는 수행자로서 의연하게 보여 부럽기만 합니다. 하지만 그만큼 많이 넘어지고 오랜 연습의 시간을 거쳤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나는 남들보다 더 늦게 배우는 사람이니 서두르지 않으려고 합니다.

좌충우돌하지만 피하지 않고 경험으로 삼기

이 길을 먼저 간 도반들이기에 나이가 적든 많든 배울 점이 많고, 옆에서 흉내라도 내다보면 이 속에서 나도 물들겠지 생각해 봅니다. 그러면서 컴퓨터도 익숙하지 않고, 실수도 많은 내가 어떻게 문경 생활을 해나갈까 걱정되는 마음이 큽니다.

경유차에 휘발유를 넣기도 하고, 고춧가루 수량을 체크할 때 비닐에 구멍을 내는 바람에 고춧가루가 쏟아져 혼줄이 빠지기도 했습니다. 공양할 때 국물 양이나 건더기를 얼마나 넣어야 하는지 몰라 자꾸 물어보게 되고, 저온 저장고에 가방을 두고 다른 곳으로 찾아다니거나, 급한 성격으로 어딘가에 부딪혀 손이 찢기기도 했습니다. 할 일은 태산이고 생각은 늘 저만치 앞질러서 걱정과 괴로움을 만들지만, 모든 걸 경험으로 받아들인다면 세상의 일 가운데 또 다른 부분을 배워가는 기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과 나이가 많다는 핑계로 여기서 도망간다면 앞으로도 늘 피하는 삶을 살게 될 테니까요.

수행자로서 행복한 나의 노후 계획

괴로움이 없고 자유로운 사람이 되려면 싫은 일, 좋은 일 가리지 않고 무조건‘예 하고 합니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스님의 법문을 약으로 삼아봅니다. 도반들이 “요즘은 마음이 어떠세요?”라고 물어봐주며 이런저런 따뜻한 말로 격려와 배려를 해주는 덕분에 삼십육계 줄행랑치지 않고 공동체살이를 하고 있습니다. 나의 노후 계획은 이름도 얼굴도 없는 의병들처럼 세상을 위해 작은 일이라도 하겠다는 것이어서 수행자의 길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날마다 수행하는 힘으로 남에게 기대지 않는 사람, 일을 미루지 않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설령 괴로움도 있고 조금 자유롭지 않더라도 지금 이대로 행복한 사람이 되어,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작은 보탬이 되려고 합니다. 오로지 앞서 걸어간 분들의 길을 끝까지 따라가 보겠습니다.

백일출가 회향수련 김재희(두번째줄 왼쪽 첫번째)

* 이 글은 월간정토 2018년 12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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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행복한 수행자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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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 댓글등록
이 글의 댓글 2개
  •  이흥선 2019/01/25 19:31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백미숙 2019/01/23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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