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정토맑은마음,좋은벗,깨끗한 땅을 실현하는 정토회


 

정토회에는 법륜스님과 함께 정토회의 사상과 수행지도를 담당하는 법사단이 있습니다. 법사단은 전문법사와 대중법사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중 대중법사는 정토행자들처럼 재가 수행자로서 법사가 되신 분들입니다. 그분들의 이야기를 <월간정토>가 전해드립니다. 

세상의 ‘복 밭’을 

만나고 가꾸다 

 

  

 

글  `정토행자의 하루’에서     정리  <월간정토> 편집부 

 

태풍 콩레이가 영남지역을 휩쓸고 간 다음 날, 두북 정토마을에 계시는 화광법사님을 만났습니다. 새벽 일찍 농사일을 하러 가신 법사님은 1톤 트럭을 몰고 운동장으로 들어오셨습니다. 방 안에는 리포터 팀이 먼저 오면 먹으라고 고구마를 곁들인 간식을 준비해놓으시고요. 오랜 세월 동안 한결같은 수행의 길을 걸어오신 화광법사님, 그 여정을 함께 따라가 보겠습니다.

 

이산 저산, 이절 저절 헤매던 시절 

 

법사님 : 저는 이절 저절, 이산 저산 유형이에요. 한번은 법륜스님이 ‘이 절 저 절 다닌 사람 손 들어보라’하실 때 손을 번쩍 들었죠! 자주 어울리던 도반 다섯 명이서 해인사, 파계사 등 주변 유명한 데는 다 다녔어요. 그때는 산중 불교이고 스님들 말씀도 경전 법문이었는데, 많이 들으니 아주 입만 살아서 다녔죠 뭐. 자기 마음을 봐야 하는데 그건 모르고 말이에요. 그때 출가하고 싶어서 해인사에 갔더니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자식들 다 키우고 오라고. 그래서 다른 절에 같이 출가하려고 애들을 데리고 갔더니, 또 안 된다고 그러데요.

 

담담하게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법사님의 모습에서 생기 넘치면서도 그 내면에 절실함과 뜨거움을 간직하고 있었던 법사님의 젊은 시절이 보였습니다. 그런 화광법사님과 법륜스님의 인연은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법사님 : 도반들과 어울려 법문을 들으러 다니던 1988년 어느 날, 대구 서문시장에서 최석호 법사님(現법륜스님)이 생활 법문을 한다는 현수막을 보게 되었어요. 그때는 생활 법문이라는 명칭도 생소한 때라 궁금해서 도반 다섯 명과 가보았죠. 그런데 일반 스님들과 참 다른 법문이어서, 저는 훨씬 더 어렵게 느껴지더라고요. 생활에 필요한 법문이라는데, 왜 이렇게 어렵게 하나 싶었죠. 그때까지 제가 듣던 법문과 달라서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런데 같이 간 도반 하나가 스님께 질문을 했는데 스님이 대답을 참 상세하게 해주셨어요. 상대방이 이해하기 쉽게 예시도 들고 풀어서 설명하면서 차근차근 답변해 주시더라고요.‘ 법륜스님이일반스님들과 참 다르구나’하는 것을 그때 확 느꼈죠.

어느 날은 제가 딸하고 심하게 싸우던 와중에 스님이 법사님들과 함께 집에 찾아오신 거예요. 딸하고 싸우고 있는 모습을 스님과 법사님들이 한참을 서서 가만히 보고만 계셨죠. 저는 아무것도 아닌 거로, 철딱서니 없이 스님 대접할 생각은 안 하고 계속 딸하고 싸웠어요. 지켜보시던 스님이“딸한테 의지처는 못 돼주고 계속 싸우네”하시더라고요. 그 말씀에 저는 그만 온몸에 힘이 빠지면서 절인 배추처럼 되어버렸어요. 산중 스님들의 법문을 듣고 말은 청산유수로 떠들면서 전혀 나를 못 보던 시절이었어요. 아휴 부끄럽네요. 왜 나를 취재한다고….

부끄럽다며 왜 왔냐고 하시는 법사님을 뵈면서 리포터 팀은 법사님의 솔직하고 구수하며 재미있는 입담과 소박한 모습에 점점 빠져들었습니다.

법사님 : 스님이 저에게‘딸한테 의지처가 못 돼준다’그러셨을 때, 사실 마음에 분별이 나서 ‘다시는 저 법사님 안 봐야지’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삭발하고 법복을 딱 입고 나타나시니 마음이 출렁이더라고요. 머리를 기르고 계셨을 때는 스님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 그랬는지 아무래도 조심스러운 게 없었던 것 같아요. 분별하던 그 마음은 어디 가고, 스님이 어디어디 오너라 해서 갔더니 깨달음의장 6차, 또 어디어디 오너라 해서 갔더니 나눔의장 1차, 또 어디 어디 오너라 해서 가면 일체의장 1차! 자석처럼 뭐든지 스님이 만드시는 대로 따라가게 되었어요. 그러다가 차츰차츰 물들어간 거예요. 하다 보니까‘바른불교, 쉬운불교, 생활불교가 이거구나!’싶었어요. 그전에는 산중 스님들 속에만 있었으니 몰랐지요.

법사님 말씀을 듣고 있자니, 자그마한 체구의 고집스러운 법사님이 조금씩 정토회에 젖어드는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젊은 시절 법사님의 모습은 어쩌면 자주 넘어지고 부딪치는 지금의 우리 모습과도 닮아 있는 것 같습니다.

▶두북 정토마을에서 화광법사님

일과 수행의 통일

법사님의 하루는 새벽 4시 30분에 시작합니다. 모든 정토행자들과 마찬가지로 새벽기도를 합니다. 기도를 마치면 곧장 밭에 일하러 나갔다가 8시 30분쯤 아침 공양을 하러 들어옵니다. 이어서 농사일과 JTS 물품보관창고를 비롯한 두북수련원을 관리하는 일을 계속합니다. 혼자 있으면 무서울 것 같다고 여쭈었습니다.

법사님 : 혼자 있으면 만고땡이죠 뭐. 지난 15년간 참 겁도 없이 했어요. 그런데 이제 나이가 드니 그런가, 작년부터 혼자 있으면 약간 두렵고 불안하데요. 그런데 그게 또 찰나에 사라져요. 그래서 괜찮아요. 나이 먹으면 정신력이며 육신도 약해지는 거니까요.

일어나는 불안감과 찰나에 사라짐을 가만히 바라보는 법사님의 모습은 오히려 평온해 보였습니다. 두북에는 매주 각 법당에서 봉사를 하러 오는데, 봉사자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들어보았습니다.

법사님 : 주로 봉사점수 모자라는 사람들이 오지요. 불교대학 주간반에서는 동네 어르신 댁을 방문해서 청소하고 목욕 봉사를 해요. 봄∙가을철마다 13개 마을 어르신 경로잔치를 열고요. 불교대학 저녁반과 경전반 학생들은 수련원 관리, 청소, 풀 뽑기를 하고 농사일을 도와요.
  처음에는 제가 심장병 걸리는 줄 알았어요. 일하라 하면 거꾸로 해버리는 거예요. 도라지 뽑고, 더덕 뽑고, 콩 뽑고, 파 뽑고 다 뽑아버려요. 처음에는 봉사자들이 농사일을 다 알고 온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밭에 가서 뭐 뭐 하라고 하고 나중에 가보면 벌써 저지레를 해놨어요. 그저께는 병든 고춧대 뽑으라니까 남의 밭에서 땡초를 다 뽑아놨지 뭐예요. 아침에 밭 주인이 다 물어내라고…. 일을 하기 전에 저에게 물어보면 되는데 저지레를 다 해놓고 물어보는 거예요. 처음에는 가슴이 철렁거렸지요.
  “이러다가 내가 심장병 걸립니다”그랬더니 스님이“몰라서 그렇지 않으냐”그러시더라고요. 요즘은 경전반 팀장급들이 오니까 좀 낫고, 또 잘못해 놓더라도 그냥‘그렇게 했구나’해요. 인도네시아에 쓰나미가 닥치고, 일본에는 지진이 나서 온 마을이 없어지는 상황인데, 밭에 작물 조금 잘못 뽑았다고 난리 날 거 있나 싶고요.
  사실 제가 정토회에서 기도를 반듯하게 잘 배워서 죽을 때까지 염불하려고 했는데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어요. 농사꾼이 다 됐어요. 처음에는 스님한테 분별도 냈지요. 그러다가 ‘내가 일하기 싫구나’하고 알아차렸고, 지금은‘농사하기를 너무 잘했구나’하지요. 스님 보면 해외로 다니시다가도 농사 시작하면 땀을 철철 흘리면서 하시잖아요. 제가 15년간 농사일을 해보니까 알겠더라고요. 어르신들이 가지고 온 콩 한 됫박도 함부로 못 받아먹겠더라고요. 많은 경험과 사람들의 고통 속에 제가 있더라고요. 피와 땀을 흘리지 않고는 입으로 들어가는 게 없어요. 그전에는 알음알이로만 청산유수고 경전을 다 외우고 다녔는데 지금은 다 잊어버렸어요.  그런데 몸으로 체험한 것은 잊히지 않아요. 본인이 체험해야 해요. 알음알이는 다 소용없어요.

농사만 잘 지어도 법사다

화광법사님은 2015년 3월 1일 죽림정사에서 법사 수계를 받았습니다. 수계 전과 후,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들어보았습니다.

법사님 : 법사 수계를 받으라는데 마음에 부담이 딱 되는 거예요. 왜 그렇잖아요, ‘법사가 저것 밖에 안 돼?’그 소리 들을까 봐요. 막노동하는 농부인데 새초롬하게 있을 수도 없고, 수계를 안 받으려고 하니 내려진 건데 또 안 하면 스승을 따르지 않는 게 되고. 그때 당시 마음이 힘들었어요. 그런데 스님께서 “농사만 잘 지어도 법사다” 하시는 거예요. 밥만 잘해도 법사라고 하시고. 그렇게 마음이 바뀌었어요. 그런데 제가 수계 받았다고 사람들이 방문만 열면 삼배한다고 엎어질라 그래요. 제가 하지 말라 그러죠. 이름하여 법사예요. 저는 줄 것도 없고 오히려 봉사를 받아야 하죠. 지금은 사람들이 저에게 보살님이라 그랬다가, 할머니라 그랬다가 편안하게 대해요. 법사 수계 받는 분들이 편안하게 받는 게 아니거든요. 갈수록 머리 숙여야 하고. 머리 쳐들면 절단 나는 거예요. 불법승 삼보에 목숨 걸어야 해요.

처음 법사님을 뵈었을 때 엄마한테 온 듯 편안했고 말씀 듣는 내내 따뜻하면서도 밝은 에너지를 받았습
니다. 그것은 바로 법사님의 모습이 자신의 진솔한 삶 자체이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법사님이 살아오
면서 겪은 깨침에 대해 여쭤보았습니다.

법사님 : 정권이 무너지는 것이나, 자연재해를 보면서 삶과 죽음에 대해 강력한 깨우침이 있었어요.‘ 정말 공한 세계, 무아의 세계, 다 허상이구나!’하고 느꼈죠. 자기가 깨달아서 정신을 주는 것 외에는 남길 게 없는 것 같아요. 부처님의 위대함을 다시 느꼈지요. 얼마 전에는 제가 일하다가 독사한테 물렸는데 처사 한 분이 소독한다고 알코올을 바른 거예요. 근데 알코올을 바르면 독이 번지는 거였어요. 할 수 없어서 병원에 갔는데 해독제가 안 맞으면 죽을 수도 있으니 저보고 선택을 하라는 거예요. 그러니 주사를 맞아도 죽을 수 있고 안 맞아도 죽는 거였죠. 그래서 주사를 놓으라고 그랬어요.‘ 지금 죽으면 어떻노! 공의 세계에서 보면 하나도 문제될 게 없어. 죽고 사는 것도 마찬가지! 언제 죽느냐의 문제지. 살아 있는 게 기적이야.’

법사님의 눈빛이 잠시, 밝게 비추는 창에 머물렀습니다. 삶과 죽음에 경계가 없어지는 경지를 우리는 언제쯤이면 갖게 될까요?

봉사하러 온 도반들과 함께(앞 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법사님)

화광, 멈추지 말고 빛을 비추라

정경숙, 법성행보살, 그리고 화광법사로. 불리는 이름은 바뀌어갔지만 법사님의 한결같은 수행의 길은 어느덧 30년을 넘겼습니다. 선택한 삶에 대해 후회는 없으신가 궁금했습니다.

 

법사님 : 젊어서 회사 다닐 때도 사람들이 쉬는 날 뭐하냐고 물으면 절에 가야 한다고 했어요. 거기 가면 뭐하냐고, 자기들이랑 같이 있자고 했지요. 그런데 그때도 저는 법당이 훨씬 더 비전 있다고 그랬죠. 참 잘했던 것 같아요. 밖에 있으면 뭐해요. 여기서도 하고 싶은 거 다 해요. 밖에 있으면 5계, 10계 어기고 살기 쉽잖아요. 자연 속에서도 계율을 어길 때가 많은데. 나도 그래요. 지나가다 꽃 예쁘면 씨 받아 오고, 홍시나 배 떨어진 거 봐도 가져와요. 버려진 것도 주우면 안 되는데 말이에요.

자연 속에서 느끼고 배우고 익힌 것을 다시 회향하는 보살의 삶! 법사님의 모습은 어느새 자연의 일부가 되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하늘 높고 바람 청량한 가을날, 법사님은 우리 곁에서 엄마 같은 넉넉한 품으로 환하게 미소 짓고 계십니다. 언뜻 바라본 법사님의 바지가 군데군데 꿰맨 자국 투성이입니다. 법사님의 옷에서도 그 청정한 생활과 성품을 엿볼 수 있습니다. 맑은 마음, 좋은 벗, 깨끗한 땅을 일구는 정토회의 슬로건을 몸소 실천하시는 법사님. 법사님의 말씀이 따스한 햇살로 와 닿습니다.
“화광은 멈추어 있으면 안 돼, 빛을 비추고 살아야 돼.”

 

 

* 이 글은 월간정토 2018년 12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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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행복한 수행자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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