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정토맑은마음,좋은벗,깨끗한 땅을 실현하는 정토회


 

인도 둥게스와리에서는 JTS 활동가들이 희망의 씨앗을 뿌리고 있습니다. 척박한 땅에서 문맹 퇴치와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쓰는 정토행자와 둥게스와리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봅니다.

떠나자,

닻을 올려라 

 

 

▶ 유치원팀원들과 인형극 후(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글쓴이)

 

정연서    인도 JTS 학교 파트(유치원팀), 행자대학원 14기, 백일출가 28기 

 

 

항구를 떠나 새 항해의 시작 

 

“나는 괴로웠노라”고 내 상태만 전화로 통보하고 집을 떠난 후 2년여의 시간이 흘러간다. 나의 배는 항상‘가족’이라는 항구에 정박하도록 좌표가 정해져 있었다. 원대한 포부를 안고 망망대해를 찾아 바다에 나갔다가 흔들리고 힘들면 돌아가는 안전한 곳. 떠날 때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다짐했지만, 몸과 마음이 부서질라치면 부리나케 항구로 찾아들었다.

나의 38년 항해는 목적 없이 운항되었다. 불안과 걱정만을 주는 가족을 뒤로한 채 큰 도시로 나와 큰 회사에 다녔지만 항상 같은 지점에서 넘어지며 사회부적응자, 정신분열증 환자 같다고 생각하던 그때, 나는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고 자각했다. 배를 움직이고 새로운 항해를 시작해야만 했다.

이번 항해가 이전 항해와 다른 점은 등대와 나침반이 확실하다는 데 있다. 그러나 항구를 갓 떠난 배는 동력이 부족하여 잔잔한 파도에도 전진이 어렵다. 상대의 말에 걸려 애써 참다가 우울감에 빠져든다. 나는 알아서 잘 생활하는데‘왜 나한테 뭐라고 하는 거야!’속으로 씩씩거리며 당최 앞으로 나아갈 마음이 없다. 내 의견을 쉽게 얘기하지 못하고, 얘기했다가 상대가 다른 의견을 주면 흔들리고 눈치를 본다. 이렇게 살얼음판을 걷지 않고 안락하게 살고 싶다. 이 항해를 괜히 시작한 것 같아 다시 뱃머리를 돌리고 싶어진다. 돌아보니 저 멀리서 돌아오라고손짓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돌아가면 내 자존심이 용서하지 않을 것 같아 섣불리 돌아갈 수도 없고 진퇴양난이다. 칼을 뽑았으니 무 자르는 시늉이라도 해야 한다. 나침반이 가르쳐주는 곳
을 살핀다.

 

잔잔한 파도 정도는 가를 수 있는 동력이 생기고, 항구에 대한 생각도 좀 줄어들고, 제법 큰 바다까지 나왔다. 배로 한정된 나의 공간은 나에게 일어나는 몸과 마음의 변화를 더욱 선명하게 보고 느끼게 했다. 일을 잘하는 사람과 끊임없이 나를 비교하며 틀리거나 못하면 자책했다. 나는 잘하는 것이 무엇인가? 나는 왜 똑똑하지 못한가? 나는 왜 남의 말에 흔들리며 우물쭈물하는가? 인도에 처음 와놓고는 힌디어를 유창하게 못해서 나를 탓하고,간식을 사러 갈 때도 인도인에게 매일 속아 돈만 쓰는 것 같아 탓하고, 대중 앞에서 말을 정확하고 유창하게 하지 못하는 나를 탓했다. 잘하는 것이 없으니 사람들이 나를 미워할 것이고, 나는 쓸모가 없다는 우울감으로 가버리는 생각의 사슬. 이 사슬에 대한 자각이 일어난 후 내 배의 강점과 취약점을 살피고 연구하기 시작했다. 내가 가진 것을 파악하지 못하고 항상 밖으로 시선을 돌려 남들이 잘하는 것, 남들이 하는 말, 남들이 가진 것에 현혹되었다.

내가 흔들리는 것은 내 배의 가치를 나 스스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와 닮은 사람은 지루하고, 재미없고, 우유부단하고 그래서 자동반사적으로 멀리했다. 부모님에 대한 낮은 평가는 나를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모래 위에 성을 쌓듯, 표류했던 이유를 찾아냈다. 그때부터 나의 배는 조금씩 달라졌다.

 

내실을 갖추고 등대를 향해 

 

인도에 와서 언니와 통화한 적이 있었다. “엄마는 나를 좋아해 주었지만 나는 엄마와 있는 것이 불안했고 늘 떠나고 싶었어. 그래서 어릴 때는 참고 있었지만 크면 꼭 떠나야지 하고 칼을 품었지”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언니는 “38년을 어떻게 그런 마음으로 살았냐”며 “말을 안 하는데 어떻게 아냐. 네가 집에서 그런 마음을 솔직하게 말한 적이 있냐? 잘 사는 줄 알고 있던 애가 갑자기 나가면 우리는 충격이 얼마나 크겠냐?”반문했다.

 

사실 나는 집에 가면 거의 말을 안 했다. 그러나 끊임없이 표정과 행동으로 나를 보여줬다고 생각했는데, 가족들은 나만의 언어를 읽지 못한 것이다. 결국 38년간 말 하나로 쉽게 풀어갈 수 있었던 것을 나는 스스로 괴로움을 쥐고 살았다. 참 어리석었구나!

불행과 괴로움뿐이었다고 생각한 과거의 시간은 지금 돌이켜보면 그 속에 소소한 행복과 따뜻함이 많았고, 무엇보다 가족이 주는 사랑이 넘쳤다. 이만큼 사람답게 살도록 보살펴준 공덕을 당연한 것으로 알고 지냈는데, 당연한 것은 어디에도 없었다. 가족들과 닮은‘나’라서 다행이고, 살아 있으니 다시 볼 수 있어 얼마나 기대되는 날들인가! 행복은 정말로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행자대학원 14기 도반들과 정전각산에서(왼쪽에서 첫번째가 글쓴이)

지금 나의 좌표는

 

나라는 배는 평범하다. 커다란 돛대가 없어 추진력도 없고, 대포가 즐비하게 화려하지도 않다. 그러나 그런 배들 사이를 허물없이 오가며 소통하고, 필요할 때 돕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자잘한 것들을 채우고 챙기고, 특히 사람들이 배고프다고 할 때 더 많이 더 맛있게 먹이려고 어떻게든 음식을 만들어 낸다. 사람들과의 유대를 중요시하고, 분위기를 편하게 이끌어 잠시라도 쉬어갈 수 있게 한다. 나는 이렇게 조촐하지만 편안한 배가 되면 되겠구나!

 

아직 나의 마음은 내가 잘못했거나 실수했을 때 격하게 반응하고, 사람들이 나를 싫어한다는 느낌이 들 때 불안해한다. 하지만 이런 과제에 깨어 나를 알아차린다면 충분히 사람들에게 필요한 안식처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을 품어본다. 나아가 내 주변에만 그치던 살핌이, 가난하고 굶주리는 제3의 사람들과 함께하겠다는 원으로 커졌을 때, 뒤돌아보지 않고 앞장서서 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으로 발전했다.

나의 배는 항해 중이다

 

화려한 배가 되려 했다가 우스꽝스러워졌고, 동력 좋게 물살을 가르려다가 기름을 다 쓰고 바다 한가운데 서서 다시 항구를 그리워했던 것은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나의 배에 올리려 했기 때문이다. 어디로 가는지 여전히 흔들리고, 방향을 잃고 헤매는 것이 일상이다. 내가 잘못했다는 소리로 들릴 때, 무표정하게 의기소침하다가 말을 하지 않는 습관들, 더 이상 상처 받지 않으려 벽을 치는 습관을 자각하면서 허물기를 반복한다. 계속 연습 중이다. 연습의 힘은 첫째, 부모님과 가족이 물려준 가치가‘나’라는 자부심이요, 둘째, 이 연습을 여실히 볼 수 있고, 받아주는 도반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요, 셋째, 등대와 같이 흔들리지 않는 법의 가르침이 있기 때문이다.

좌표를 정확하게 가늠할 수는 없지만 어제보다 오늘 나는 더 큰 바다를 항해하고 있다. 바다의 깊이만큼 나의 마음도 깊어지고, 파도의 높이만큼 나의 근기도 단단해져 돌아옴도 빨라지리라. 항구에 언제 도착할지는 모르지만 나침반이 가리키는 길을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며나의 배는 항해 중이다.

P.S 나는 수행을 한다고 절집에 들어와 살지만 여전히 사람들을 마음에 담고 산다. 나약하지만 이렇게라도
설 수 있게, 나를 여기까지 있게 한 아버지, 어머니, 가족들에게 이 그리운 마음을 전한다.


 


* 이 글은 월간정토 2018년 12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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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행복한 수행자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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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 댓글등록
이 글의 댓글 5개
  •   2019/01/28 12:39
    저도 벙어리 냉가슴 병이 있습니다.
    내가 말을 안해서 아무도 몰랐던 거구나.....허탈한 마음입니다.

    스님께 말을 어떻게 해요?? 라고 물으면 그냥 말을 해라 라고 답하실거 같네요. ㅠㅠ
  •  무상 2019/01/07 10:38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많이 공감됩니다...
    원하시는 마음의 평안을 얻으시고 항상 행복하시를 바라겠습니다...
  •  서정희 2019/01/03 12:19
    난 도대체 무슨소린지 잘 모르겠습니다.
  •  평화 2019/01/02 12:04
    도반님 이야기에 저를 돌아봅니다. 비교하고 의기소침했던 지난날..원망했던 지난날을 돌아봅니다. 이제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괴로움없이 살겠습니다.
  •  ^^^^ 2019/01/01 13:47
    감수성 가득하신,정말 글솜씨 좋으신 글 잘 읽었습니다~
    끝부분등 가족에대한 그리움 부분에서 가슴이 아팠습니다~
    어떻게 3일을 만배를하시고서 가족의품을 떠나 그길을 가시는지
    도저히 상상이 가지않습니다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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