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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지장 소감문]

여름, 날은 힘껏 더웠고
별은 마음껏 빛났다


서예원 2018 여름명상 바라지 참가


아기를 돌보는 엄마의 마음으로

‘2017년 여름명상 바라지’를 마치고 회향하는 날,“ 다시는 여름명상 바라지 안 올 거예요”라고 법사님께 하직 인사를 드렸었다. 깨달음의장 바라지와 월 명상 바라지를 모두 해보았지만 여름명상 바라지는 듣던 대로‘바라지장의 꽃’이었다. 그럼에도 다시 오지 않겠다던 내가 내 손으로 ‘2018 여름명상 바라지’를 신청했다. 그것도 사전 준비까지 포함한 38일짜리 풀(full) 바라지를 신청하고야 말았다.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용감한 결단을 내렸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아마도 내 수행의 한계를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경전반을 다니고 있었지만 지식으로만 쌓이는 불법이 소화되지 않은 채였다. 일상에서 마음 알아차리기도, 그 마음을 놓아버리는 일도 잘 되지 않는 자신을 자책하고 원망까지 했다. 말로는“나는 행복한 수행자입니다”라고 하지만, 내 마음은 점점 더 무거워지고 있었다.

  경전반을 포기하고 법당에도 발길을 끊고 나니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은 것 같았다. 수행의 갈피를 잃어버렸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곳이 문경수련원이었다. 그곳에는 함께 걸어가는 도반님들과 애정으로 돌보아주시는 법사님들이 있다. 큰 가방에 회색 옷가지를 모조리 집어넣자 학생 때 여름방학 집중 보충수업을 들으러 가던 기분이 들었다.‘ 공부가 안 되면 살이라도 빠지겠지’라고 중얼거리며 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렇게 무언가를 얻으려는 마음으로 바라지장에 참여하는 일이 한편으로는 참 미안했다. 이런 자세는 바라지의 참된 마음가짐이 아니라며 나 자신에게 분별심을 내기도 했다. 바라지장 입재식에서 법사님께서는‘아기를 돌보는 엄마의 마음’으로 수련생을 바라지하자는 말씀을 해주셨다. 더군다나 나는 대웅전에서 수련하는 분들 곁에서 돕는이 역할을 맡았기에 그분들의 엄마가 되고 싶었다. 시시때때로 일어나는 나의 마음에 끌려가지 않고, 수련생들을 먼저 살피고 빈틈없이 뒷바라지하겠다는 장대한(?)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더웠다던 지난 여름, 나에게는 그 계획보다 훨씬 더 큰 과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짜증이 합리화로 바뀔 때 속고 있는 나

나는 기골이 장대한 편이지만 겉보기와 달리 체력이 약하고 더위를 많이 타는 체질이다. 무더위가 심해질수록 입맛을 잃어갔고, 결국 더위를 먹고 체력이 바닥나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했다. 덕분에 내가 몸의 감각에 얼마나 끄달리는지, 몸에 대한 집착은 어느 정도인지, 더위와 고통 속에서 짜증과 분별이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를 볼 수 있었다. 몸이 아프니 주변 사람들에게 징징거리기도 했고, 집에 가겠다며 떼를 쓰기도 했다. 도반들과 나누기를 할 때마다 내가 어렸을 때 몸이 얼마나 허약했고, 지금 어디가 어떻게 아프며, 오늘 대웅전이 얼마나 더웠는지를 이야기하기 바빴다. 더위에 지친 수련생들에게는 이해하는 마음보다 분별심을 많이 냈고, 그렇다 보니 웃으며 부드럽게 안내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아이를 보살피는 엄마의 마음으로 바라지하려 했는데 막상 몸이 아프니 내 고통에 끄달리기 바빴다. 그러던 중 문득 부모님 생각이 났다. 오랜 기간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며 병마와 싸웠던 엄마가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오빠와 나에게 웃어주지 못한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우리에게 짜증을 내지 않은 것만으로도 엄마는 이미 보살이었다. 아픈 엄마와 어린 자식들을 보며 괴로웠을 아빠가 늘 화난 얼굴이었던 것도 이해가 되었다. 부모님이 그 고통과 괴로움을 삼키고 우리를 보살폈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큰 사랑이었다. 슬픔과 두려움으로 얼룩졌다 생각했던 나의 어린 시절은 사실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 부모님의 마음으로 바라지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날씨가 덥고 몸이 아프니 짜증이 항상 넘실거렸고, 그 짜증의 대상은 주위 도반이나 수련생들이곤 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바라지장에 내가 없는 것이 모두를 위한 길이라는 자기 합리화에 깜빡 속아 집에 가겠다고 우기기도 했다. 사실은 내가 이 불편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집에 가려는 것인데, 내 사고 회로는 그것이 모두를 위한 나의 희생이라고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짜증이 이렇게 자기 합리화로 교묘하게 둔갑할 때마다 나는 속아 넘어갔다. 하지만 이런 장애는 특정 상황에서 내 마음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볼 수 있게 해준 좋은 기회였다. 돌이켜보면 나는 종종 그렇게 스스로에게 속아왔고, 그 과보를 받아왔던 것이다.

1차 여름명상 바라지 중 여래원 팀원들과 함께(맨 왼쪽이 글쓴이)

짜증 구경하는 연습

여름명상 바라지장을 통해 뭔가 대단한 것을 깨달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짜증이 올라왔음에도 불구하고 짜증을 내지 않고 그 짜증을 구경하는 연습을 한 것에 나는 만족한다. 어려운 상황에 부딪히면 물러서는 습관으로 인해 바라지 도중에 모두 그만두고 에어컨이 있는 사바세계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도반들과 법사님의 도움으로 그 역시 이겨낼 수 있었다. 나이∙직업∙성격 등이 다양한 도반들과 수련생들은 나도 모르던 내 업식의 경계를 드러내주는 거울이자, 나의 연습을 받아주는 샌드백이 되어주었다. 수련생들이 회향하는 날, 해맑게 웃으며 고마웠다고 인사하는 수련생들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에 나는 대웅전 방충망을 붙들고 한참을 울었다.

온전히 즐긴 여름

날씨는 있는 힘껏 더웠고, 밤하늘의 별은 마음껏 빛났으며, 풀벌레와 새들도 목청껏 노래했던 여름이었다. 나는 도반들과 함께 공부하면서 부딪히고 넘어지고 일어났으며, 다시 돌이키고 함께 나누며 이 여름을 온전히 즐겼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 엄마 같은 법사님들, 스승이자 가족인 도반님들, 그리고 나의 아기가 되어주신 수련생 분들, 무엇보다도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주신 지도법사님과 가르침을 남겨주신 부처님께 감사하다. 물음표로 시작하여 느낌표로 끝난 나의 여름 명상수련 바라지장은 이렇게 많은 분들이 함께 있었기에 가능했다. 나는 이제 다시 경전반과 법당으로 돌아가 재가 수행자로서 어떻게 이 공부를 이어갈지, 가벼운 마음으로 과제를 맞이한다.


2차 여름명상 바라지(맨 윗줄 왼쪽에서 여섯 번째가 글쓴이)

 

* 이 글은 월간정토 2018년 11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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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행복한 수행자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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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 댓글등록
이 글의 댓글 5개
  •  법안 송일웅 2018/12/14 15:54
    법우님 멋있어요~~
    아름다운 글 잘 읽고 갑니다.
  •  광명정 2018/12/13 10:38
    나이먹은 나보다 훨씬 어른이되어 돌아왔네요.자신에게 속는다는걸 안다니 대단합니다. 수련생들의 엄맞습니다.
  •  무심 2018/12/11 09:26
    저도 어린시절 엄마는 아프고 아빠는 겉도셨는데, 님 덕분에 그 시절을 다시 되짚어봅니다. 몸의 작은 고통에도 끄달리는 제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부모님의 사랑으로 성장했음을 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방충망 붙들고 우셨다는 대목에선 눈물이 나면서도 웃게되네요^^ 무더위에 수고하셨습니다.
  •  텀블러 2018/12/10 16:15
    부모님에 대한 부분이 감동적이네요.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희광 2018/12/10 11:08
    반짝 반짝 ***빛나는 수행담 ..... 많이 배우고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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