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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역사기행의 세 가지 질문]

민족의 뿌리를 찾아 떠나는
백두산∙고구려∙발해 순례


이현이 24차 동북아 역사기행 참가

  동북아 역사기행을 참 많이 망설였다. 이리저리 모르는 척하는 시간이 꽤 길었다. 인도 성지순례는 당연히 가야 한다고 여기면서 동북아 역사기행은 최대한 외면하려 하였고, 스스로 안다는 착각도 했다. 더 솔직한 마음은 역사기행을 다녀오면 왠지‘발목 잡힐 것 같다’는 섣부른 걱정이 그 아래에 있었다. 이렇게 오래 망설이고 외면하던 역사기행을 다녀왔다. 그것도 111년 만에 찾아온 무더위와 또 70여 년 만에 찾아온 한반도의 평화가 시작되는 역사적인 2018년도에 말이다. 동북아역사기행에서 나는 세 가지 질문을 만났다. 이미 질문의 답을 찾기도 하였고, 아직 답을 찾지 못한 것도 있지만 질문을 오래도록 품고 살아도 좋겠다 싶다.

첫 번째 질문, 그들은 무엇을 지키고자 하였는가?

  10박 11일의 전체 일정은 역사유적지 답사와 그다음 목적지로 이동, 그리고 매일 밤 펼쳐지는 스님의 강의로 꽉 채워졌다. 유적지 답사 가운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산성’이었다. 백암산성, 홀본산성, 환도산성과 국내성 그리고 동모산성과 상경성, 염주성, 솔빈부성까지. 고구려부터 발해까지 동북 3성 일대에 남아 있는 많은 성곽 유적지를 직접 다녀 보고, 갈 수 없는 곳은 스님의 말씀에 기대어 그려보았다.

  그중 백암산성은 첫째 날 일정으로, 눈부시게 쏟아지는 한여름의 날카로운 햇살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올랐던 곳이다. 산성 곳곳이 무너지기도 했지만 성의 구조와 돌을 다루던 고구려인들의 솜씨는 잘 남아 있었다. 한여름 날, 한낮에 오른 백암산성의 돌들이 뿜어내는 듯한 환한 빛이 오래도록 기억된다.

  고구려의 첫 수도, 환인에 자리 잡은 홀본산성은 끝없는 계단을 오르고 올라 숨이 한껏 차오를 때쯤 성 안으로 들어서게 된다. 성은 주변을 어지러이 흐르는 혼강을 자연 해자로 끌어들이고, 서남쪽으로 우뚝 솟은 산세를 장악한 모양새가 그야말로 천연의 요새였다. 정작 성 안은 평평하고도 너른 공간을 비밀스럽게 품고 있었으며, 넉넉한 물과 구들까지 갖추고 있어 한편으로는 안온함이 느껴지기도 하였다.

  홀본산성에서는 성을 쌓는 기술에 대해 제대로 배울 수 있었다. 성벽은 아래에서부터 계단처럼 안으로 들여쌓아 성벽 무게를 지탱할 수 있도록 설계하였고, 돌들은 개 이빨처럼 서로 맞물리게 쌓아 빠지지 않도록 하였다. 곳곳에 성벽을 보호하는 옹성과 치성을 두었는데, 홀본산성에는 공工자 형태의 독특한 옹성도 확인할 수 있다. 주변의 환경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필요한 곳에 치성과 옹성을 설치하고, 능숙하게 돌을 다루었던 고구려인의 치밀한 지혜가 느껴졌다. 공자형 옹성을 따라가면서 나는 마치 고구려 장수와 숨바꼭질을 하는 듯한 흥미로 잠깐 웃다가 이내 그들이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궁금해졌다.

  우리는 고구려의 두 번째 수도 집안으로 들어갔다. 국내성은 고구려의 수도를 지킨 도성으로, 이곳에서 2.5㎞ 떨어진 환도산성은 국내성을 외호하는 성이었다. 환도산성은 산 능선을 따라 잘 다듬은 작은 돌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든든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환도산성으로 들어서자마자 중국 공안이 막아섰다. 산성으로 향하는 모든 길목을 막고 돌아가라 큰소리 친다. 부당하다는 생각에 분하지만 전체 일정을 생각하며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돌아서는 무거운 발걸음은‘원래 우리거다, 우리 거’라고 외친다.

  환도산성과 짝을 이루는 국내성은 압록강의 지류를 서쪽에 두어 자연요새로 삼았다. 성벽은 안으로 들여쌓아 고구려의 축성 기술을 잘 계승하였고, 돌들도 직사각형으로 잘 다듬어진 모습이었다. 지금은 주민들의 가옥들이 군데군데에 남아 있지만, 도로로 성벽이 끊어진 곳도 있었다. 눈앞에 두고도 공안 한 사람의 말에 150여 명이 돌아서야 했던 환도산성과, 잘 관리되지 못하는 국내성을 보며 조금 씁쓸한 마음이 일어났다. 이런 마음을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압록강에 흘려보내고 발해 땅으로 넘어갔다.


▲백두산 천지 사진 앞에서(가운데가 글쓴이)

 동모산은 대조영이 발해 건국의 터전으로 삼았던 곳으로, 동모산의 산허리를 두르고 있는 산성을 멀리서 바라보며 발해의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가장 오랜 기간 발해의 수도 역할을 했던 상경성(상경용천부)은 주변의 산과 강, 호수를 자연 해자로 이용하여 적을 방어하는 데 유리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상경성은 외성과 내성을 쌓고 그 안에 다시 궁성을 배치하였다. 성벽 전체 둘레가 16㎞이고, 성벽 밖으로는 자연 해자가 둘러졌는데, 외성 네 모퉁이에는 각루가 설치돼 있었다. 성벽은 안팎 양쪽으로 가지런히 돌을 쌓아 올려 그 안에 흙을 채워 넣은 구조이다. 성 안에는 궁전과 관청, 절간 등의 건물지가 있으며, 도로는 종횡으로 서로 연결되어 도시 전체가 바둑판 모양을 이루고 있었다. 상경용천부는 대발해국의 수도로서 위풍당당한 모습이었으며, 그 너른 평원에 서면 누구라도 발해를 꿈꿀 것 같았다. 언젠가 나의 작은 땅에 경계선이 사라지는 날, 바로 그런 날이 머지않을 것이라는 새로운 꿈을 그려보게 되었다.

  이름이 조금 낯설지만 러시아 연해주의 염주성鹽州城은 안중근 의사가 독립운동을 결의하며 단지동맹 했던 곳으로, 동해로 나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다. 환도산성처럼 산 정상부에 자리 잡은 산성이지만 국내성∙발해성처럼 평지에 쌓아 성이 아니라, 바닷가 갯벌 근처에 위치해 있어 염주성으로 가기 위해서는 습지와 수풀 사이를 통과해야 한다. 발해가 일본과 교역했던 무역로가 시작된 곳이라고 한다. 지금도 발굴조사가 진행 중인데, 성을 보호하는 옹성과 치가 남아 있어 고구려의 특징을 계승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으며, 실제로 고구려시대 흔적들이 확인된다고 한다.

  염주성은 이름에도‘소금’이라는 뜻이 있지만‘소금 가마터’라는 기록이 남아 있어 발해 사람들이 소금을 얻기 위해 동해로 진출한 것이라는 견해가 흥미로웠다. 

  환도산성에서 염주성까지 고구려인들과 발해인들이 쌓은 성, 그들은 무엇을 지키고자 했을까? 적들이 쉬이 오를 수 없는 곳에 위치하면서 주위의 산과 강을 다스릴 수 있는 곳에 성을 쌓고, 다시 그 성에 옹성과 치성을 두었던 고구려인들은 무엇을 지키고자 했을까? 사람과 동물을 살리는 소금을 찾아 바닷가로 나가는 뻘밭에 1m의 흙을 다지고 다져 10㎝ 높이의 성벽을 쌓아나갔던 발해인들은 무엇을 지키고자 했을까?

  두 번째 질문,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다 하였는가?

  역사기행을 다녀온 나에게 가장 많이 물어오는 말은“천지 봤어요?”이다. 나도 스님과 같이 가면 천지는당연히보는줄알았다. 더구나올해처럼비한줄기안오고눈부시게찬란한여름에말이다. 

 출발 전에는 맑고 맑아 구름 한 점 없던 하늘이 해가 기울면서 바람결이 무거워지고, 하나둘 구름들을 모으더니 새벽녘엔 제법 빗줄기가 굵어졌다. 롤러코스터 같은 산길을 승합차로 오른 백두산 정상은 세찬 비바람과 짙은 구름이 천지의 모습을 완전히 감추어 버렸다. 혹시라도 어디선가 고마운 바람이 구름을 훅 걷어주지 않을까 기다리고 기다렸다. 그렇지만 비바람은 점점 거세어지더니 한기를 느끼게 했다. 다시 통나무 대피소로 들어가 무작정 뻗치기에 들어갔다. 각자의 가방에서 꺼낸 다종다양한 간식을 먹고, 대피소에서 파는 컵라면∙소시지도 사 먹고, 이 사람 저 사람과 이렇게 저렇게 온갖 사진을 다 찍고, 다시 사진 찍는 거 구경하는 것도 재미가 덜해졌건만 구름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결국 천지는 보지 못한 채 내려와 비룡폭포와 소천지, 지하삼림을 스님은 여유롭게 산책하시듯 하고, 대중들은 바지런히 행군하듯 하던 중 날씨는 잠깐씩 맑았다, 흐렸다를 반복했다. 괜찮다고는 하지만 아쉬움의 무게를 아는 스님이 진행스태프 1명을 다시 백두산 정상으로 보내고 기다리시는 중이었다. 기다리고 기다리고, 뻗치고, 기다리고, 다시 가보고, 또 기다리고…. 그러고도 볼 수 없다면 방법이 없다. 돌아서는 수밖에. 스님께서도“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고 말씀하셨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버스로 돌아온 스님께서는 곧바로‘창살 없는 감옥’부터 시작해 노래 메들리로 대중을 달래주셨다.

왜 이리 그리운지 보고 싶은지
못 맺을 운명 속에 몸부림치는
병들은 내 가슴에 비가 나리네

  그 절절한 노랫말에 혼자 답가를 보냈다. 첫 음을 무조건 낮게 시작해야만 완창할 수 있다고 배우고 배운 그 노래.

백두산으로 찾아가자 우리들의 백두산으로
백두산이여 꺾이지 않을 통일의 깃발이여

  다시 아쉬운 마음에 대피소 천지 사진 앞에서 찍은 사진을 봤다. 사진을 다시 찍은 것인데 어쩐지 천지의 기운이 느껴졌다. 단연 천지는 정말 그 무엇이다. 

  무심히 돌아서며‘사람이 할 일은 다 했다’는 스님의 말씀이 다시 떠올랐다. 나는 다시 나에게 물었다. 나는 내가 할 일을 다 하였는가? 나는 어떤 일에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는가? 그리고 다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보고 싶은 일이 있는지 물었다.

세 번째 질문, 압록강과 두만강 너머는 누구의 역사인가?


▲압록강 앞에서(아랫줄 왼쪽에서 두번째가 글쓴이)

  역사기행단의 하루는 스님의 강연으로 마무리된다. 발로 다녀보고 눈으로 본 것을 바탕으로 스님의 강연을 따라가면서 우리 민족의 역사를 좀 더 넓고 깊게 들여다보게 되었고, 나도 모르게 내 안에 있던 오류를 자각하며 많이 놀라고, 또 많이 부끄러웠다.

  우리나라를 경계 짓는 압록강과 두만강 너머는 오늘날 중국의 영토이다. 그러면 오늘날 중국 영토는 모두 중국의 역사인가? 역사기행단이 주로 다닌 중국의 동북 3성인 요녕성∙길림성∙흑룡강성의 역사는 중국의 역사인가? 그 옛날에는 고구려와 발해의 땅이기도 했던 그곳은 어느 민족의 역사인가? 스님께서는 이 지역에 남아 있는 역사 유적이라는 실증적 자료를 바탕으로 기존의 역사가 노출한 관점의 오류를 바로 잡아‘새로운 역사적 관점’을 제시하셨다. 새로운 역사적 관점은 새로운 사관이나 주장이 아니라, 역사 유적과 역사서를 바라보는 우리 스스로의 오류를 바로 잡아 객관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바로 보게 하는 것이었다.

  옛날 중국 동북지역은 조선족인 고조선과 고구려 사람들이 장악했고, 그다음은 선비족이, 또 그다음은 거란족과 여진족∙몽고족이 장악하였고, 다시 여진족이 장악해 청나라를 세웠다. 그런데 우리는 스스로 선비족과 거란족∙여진족∙몽고족을 모두 중국 민족이라 여기는 오류를 범하고 있었다. 다시 말하면 선비족∙여진족∙거란족∙몽고족은 중국 한족이 아니며, 이들이 세운 나라는 중국이 아닌 것이다. 중국 한족이 동북지역을 장악한 것은 근대에 이르러 명나라가 차지했던 300여 년이 전부이다. 우리 민족은 역사적으로나 언어학적으로 중국과는 다른 민족이며, 중국의 변방족이 아니라 민족의 뿌리가 완전히 다른 독자적인 문화를 가진 민족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이렇게 우리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오류를 바로 잡음과 동시에 중국의 역사관을 이해하게 되었다. 중국은 현재 중화인민공화국 영토에 있었던 옛 역사를 모두 중국역사의 일부로 보며, 그런 관점에서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를 중국의 변방사, 소수민족사로 본다는 것이다. 우리는 단일민족 사관으로 보는 반면, 중국은 다민족 사관으로 보는 서로의 입장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 역사를 바로 세우는 것과 함께 이웃 나라의 역사관에 대해서도 이해하게 되었다. 우리 역사를 알고 상대의 역사를 이해하니 환도산성에서 만났던 중국 공안을 조금 덜 미워하게 되었다.


▲블라디보스톡 혁명광장에서 여행을 마무리하는 단체 미션(왼쪽에서 4번째 글쓴이)

  이제 긴 여행에서 돌아와 내가 살고 있는 이곳에서 행복학교를 한다. 며칠 뒤에는 행복학교 참가자들과 국립대전현충원을 다녀오기로 한 상태다. 다녀와서는 국경일이 많은 10월 하늘에 태극기를 함께 달아 보리라.

  글을 마무리하며 또 하나의 답을 찾았다. 출발할 때 왠지 발목 잡힐 것 같았던 마음이 편안해졌다. 내 발목을 잡은 것은 다른 이가 아니라, 바로 나였다. 발목이 가볍다. 

 

 

* 이 글은 월간정토 2018년 10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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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댓글 1개
  •  ^^^^ 2018/11/07 15:30
    하~월간정토에서 너무나 감동으로 읽었습니다^^
    노래제목은 창살없는 감옥 아니라,'님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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