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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편안히 계십시오.

이제 남은 일은
저희가 하겠습니다(2)
- 제29차 인도 성지순례를 다녀와서 

최인정 부산 금정법당

보드가야 대탑, 수자타아카데미 개교기념일
  안개 낀 새벽길을 걸어 부처님께 유미죽 공양을 올린 수자타 공양 터에 도착했다. 안내표지판 하나 없는 그곳은 스님의 안내가 없으면 성지라는 걸 알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스님 법문과 경전 말씀을 통해 수자타 공양의 의미를 깊이 깨달았다.

수자타 마을에 있는 수자타탑 터에 도착하니 부처님의 성지마다 거대한 탑을 세워 기념하고자 했던 간절함이 느껴졌다. 그렇게 출발한 지 4시간이 지나서야 멀리 보드가야 대탑이 눈에 들어왔다. 부처님이 성도한 자리에 아소카 왕이 세운 기념탑, 거대한 종 모양의 탑은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었다. 탑 주변에는 티베트와 미얀마 등 여러 나라에서 온 수행자들이 오체투지 수행을 하거나 명상을 하고 있었다. 짙은 향내가 탑 주변에 번졌고, 우리는 부처님이 수행하신 보리수나무 아래 금강보좌 앞에 앉아 예불을 드렸다. 부처님과 함께 있는 듯 고요함이 찾아왔다. 잠깐의 자유시간에도 도반들은 기도나 명상을 했다.

순례 6일째 | 전정각산, 수자타아카데미 개교기념일 행사
  다음 날 새벽, 부처님께서 6년간 고행하신 전정각산으로 산책하러 갔다. 그리고 안개 낀 전정각산 너른 터에서 오랜 명상을 했다. 새벽의 맑은 공기에 마음이 정화되는 것 같았다. 마침 그날은 수자타아카데미의 개교 24주년 기념일로 초?중학생들과 유치원생들, 마을 사람들과 손님들, 순례객이 모두 모였다. 드디어 학생들의 축하공연이 시작되었다. 1년 동안 오늘을 위해 준비한 학생들의 공연은 감동이었다. 특히 여학생들의 공연은 잊히지않는다.“ 둥게스와리! 이척박한 곳에서 여자로 살아가기가 비참할 수 밖에 없는데 여러분의 도움으로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곳을 졸업하고 나가면 자신있게 여자의 삶을 스스로 잘 꾸려나가겠습니다.”그들의 노래와 춤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눈시울이 붉어졌다. 스님께서“여러분은 부처님께서 6년 고행하신 전정각산 아래 둥게스와리에서 사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합니다. 세상에 나가 나는 둥게스와리에서 왔노라, 자신 있게 얘기해야 합니다”며 아이들에게 용기와 자신감을 주셨다. 점심 공양 후에 학생들이 헤나로 해 주는 타투도 받아보고 준비해준 과자와 차도 마시며 순례 일정 중 가장 게으르고 느긋한 하루를 보냈다.


▲수자타아카데미 개교기념 행사 중에 유치원생들과

순례 7일째 | 라즈기르(죽림정사, 영축산)
  새벽 5시, 고향 집 같은 수자타아카데미를 떠나 가장 힘들다는 일정, 지금껏 다른 순례단은 해본 적 없다는 순례길, 부처님께서 걸어가신 제티안에서 라즈길까지 무려 15㎞를 순례했다. 단단히 마음먹고 출발했지만, 흙먼지는 끊임없이 날렸고 울퉁불퉁 좁은 길에서 한 발 디디기 무섭게 기다리는 소똥을 피해가며 걸었다. 축지법을 쓰듯 빠르게 걷는 스님을 따라 뽀얀 먼지를 뒤집어쓴 채 한순간도 쉬지 않고 3시간 30분을 걸었다. 모두 지친 기색이었지만 먼저 와서 기다리는 버스를 타고 최초의 절, 죽림정사에 들렀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성도 후 많은 설법을 하셨던 영축산으로 갔다. 부처님을 만나기 위해 가마에서 내려서 걸었다는 빔비사라 왕의 길을 지나 부처님께서 설법하신 곳에서 참배 후 영축산의 맑은 공기와 함께 부처님의 숨결을 느꼈다. 

순례 8일째 | 바이샬리(칠엽굴, 진신사리탑 터, 원후봉밀 터)
  어제의 힘든 일정 때문인지 발가락은 온통 물집이 생겨서 퉁퉁 부었다. 안개 자욱한 새벽길을 걸어 가파른 계단을 오르니 서서히 날이 밝았다. 비좁은 칠엽굴을 구경하고 그 앞에 우리 일행 420명이 앉으니 꽉 찼다. 이곳이 아라한과를 증득한 장로 500명이 부처님의 말씀을 기록한 제1차 결집이 이루어진 장소라니 불법을 공부하는 것이 감사했다. 우리도 500 아라한처럼 스님의 법문에 집중했다. 다음 일정으로 부처님의 진신사리탑 터를 찾았다. 진신사리는 박물관으로 가고 탑 터만 남았지만, 부처님을 뵌 듯 간절한 마음으로 탑 터를 돌았다.

  인도 곳곳에 부처님의 발자취가 머물렀다 생각하니 남은 일정도 오롯이 깨어서 소중한 순례를 잘 마무리하고 싶었다. 순례도 어느덧 절반이 지났다. 어색하던 도반들과 친해져 간식을 나눠 먹고 웃고 얘기하고…. 틈만 나면 졸다가 차가 멈추면 바랑을 챙기고 가사를 수하고 순례자로 돌아오는 도반들의 모습에서 진정한 순례자로 거듭나고 있음을 느꼈다.

순례 9일째 | 쿠시나가르(춘다의 공양 터, 열반당)
  춘다의 공양으로 열반에 드셨지만 춘다의 마음까지 헤아려주신 부처님의 한량없는 사랑을 춘다의 공양 터에서 느끼며,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열반당으로 향했다. 저멀리 열반당이 보이자 모두 가사를 수하고 향을 피워 든 채 석가모니불 정근을 하며 열반당 주변을 돌았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날 하늘에선 풍악이 울리고 꽃이 흩날렸다고 한다. 열반당으로 들어가니 오른쪽 어깨를 바닥에 대고 열반에 드신 부처님이 계셨다. 스님께서는 일행이 모두 들어온 걸 확인하고 예불을 시작하셨다. 열반당에 울려 퍼지는 예불 소리 때문인지 여기저기에서
흐느끼기 시작했다. 나도 눈물이 흐르고 목이 메었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시고 우리에게 남기지 않았다면 내가 이만큼 가벼워지고 행복해졌을까 생각하니 한량없는 부처님 은혜가 느껴졌다. 순례자들은예불을마치고열반당에서108배를하거나밖으로나와서기도했다.‘ 인생덧없다. 부지런히 수행 정진하라.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부처님의 말씀이 들려오는 듯했다.

순례 10일째 | 네팔(룸비니)
오늘은 인도를 떠나 네팔로 가는 날이다. 새벽 2시 30분에 출발해서 아침 8시가 다 돼서야 네팔 국경에 도착했다. 일요일이라 출입국 사무실 직원은 달랑 한 명. 더딘 출입국 수속으로 5시간이나 걸렸다. 우리는 기다림에 지쳐서 버스에서 내려 네팔 국경에 있는 시장을 돌아다니며 짜이, 오렌지, 석류, 땅콩 등 맛난 간식을 사 먹었다. 드디어 수속이 끝나고 네팔로 입성.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는 룸비니로 갔다. 인도의 성지와는 달리 관리가 잘 되어 있었다. 거대한 아기 부처님상이 우리를 맞이했다. 카필라바스투라는 부족국가의 왕자로 태
어나신 부처님의 탄생과 관련한 유적지를 돌아본 뒤 넓은 공터에 앉아 부처님의 탄생 일화를 경전으로 읽고 스님의 법문을 들었다. 순례를 통해 부처님의 일생과 경전 말씀이 안개 걷히듯 선명하게 다가왔다.


▲쿠시나가르 열반당에서

순례 11일째 | 탄센, 카필라성, 쿤다
  새벽 3시, 버스에 올랐다. 안나푸르나 설산을 보기 위해 해발 1,500m의 탄센으로 가는 길. 가파른 절벽과 구불구불한 산길을 돌고 돌아 산꼭대기에 올랐다. 옅은 안개가 끼어 보일 듯 말 듯한 히말라야의 산봉우리들이 마치 설악산을 옮겨놓은 듯했다. 일출시간을 놓쳐 설산을 보진 못했지만, 산 공기를 마시니 피로가 말끔히 풀리는 것 같았다. 카필라성을 거쳐 어둠이 짙게 내려서야 부처님께서 부모님을 만나셨다는 쿤다에 도착했다. 아들을 보내고 힘들었을 정반왕의 마음과 부모님을 남겨두고 깨달음의 길로 나아가신 부처님. 예불을 드리고 앉은 탑 주변은 어두운데다 밤이슬마저 내렸지만 우리는 오랫동안 명상을 했다.

순례 13일째 | 시라바스티(기원정사, 사위성)
  오늘은 부처님께서 24안거 동안 머무르며 금강경을 설하셨다는 기원정사로 가는 날이다. 기원정사는 규모를 짐작할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숙소 터와 탑, 그리고 보리수나무 등 부처님께서 머무신 흔적이 역력하게 느껴졌다. 사위성 안에 있는 앙굴리말라탑 터와 부처님을 뵙고 신심이 난 베사카 부인이 설립했다는 동원정사에 들렀다. 어두워져서야 돌아온 숙소에서 조원들과 긴 나누기 시간. 함께 순례 길에 동참했다는 것만으로 이해하고 공감하니 참 좋았다.

순례 14일째 | 상카시아
  순례 일정도 서서히 막바지로 향해 간다. 회향식이 열릴 마지막 순례지인 상카시아로 출발했다. 창밖엔 변함없이 안개가 끼었지만, 끝없이 펼쳐진 유채꽃에 행복했다. 인도의 들판에도 봄이 오고 있었다. 10시간이 걸려서야 상카시아 담마센터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짧았지만, 행복했던 우리의 순례 길을 마무리하는 회향식을 했다. 그곳에 온 많은 석가족의 후예들이 우리를 형제처럼 반갑게 맞이했다. 석가족은 인도에서 불교가 사라져갈 때도 조상 대대로 불교를 믿으며 불교의 부흥을 위해 힘썼다고 한다. 스님께서 그들을 돕고 계신다니 자랑스러우면서도 내 문제에 빠져 주변을 돌아보지 않고 살아온 내 삶이 작고 초라하게 느껴졌다.


▲ 탄센에서 설산보러 가는 길

뉴델리 : 인도박물관, 아그라성, 타지마할 그리고 안녕
  뉴델리로 오자 그간 수고했다며 순례객이 아닌 관광객으로 다녀보라는 스님 말씀에 박물관과 아그라성, 타지마할을 구경했다. 박물관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인도 전역에서 온 불교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아그라성과 타지마할을 보고 마지막 숙소인 특급 호텔로 갔다. 송구한 마음이 들었다. 둥게스와리 아이들과 구걸하던 사람들, 현지에서 고생하는 활동가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스님 말씀처럼 시설이 좋은 곳에서 자나 열악한 곳에서 자나 자고 나면 같은 것을….

  내일 출발을 앞두고 스님께서는 순례 코스를 따라 다시 한 번 정리해주셨다. 그리고“우리가 보고 다닌 작은 벽돌 하나가 얼핏 보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지혜를 가지고 보면 모두 소중하다”는 말씀을 하셨다. 순례자들의 소감문 시간.

“가사를 수하니 진정한 수행자가 된 것 같았습니다. 힘들었지만 최선을 다해 기쁩니다.”
“근래에 이렇게 가슴 뛰는 일은 없었습니다. 순례의 모든 일정이 행복이었습니다.”
“온화하신 부처님, 보리수 아래 계신 부처님이 그립습니다.”
“법륜스님의 프로그램은 선고생, 후감동입니다.”
순례자들의 소감에 울고 웃는 시간이었다.

다음 날 우리는 뉴델리 공항으로 향했다. 일정이 남은 스님께서 420명 모두 공항에 들어갈 때까지 일일이 악수하며 배웅해 주셨다. 스님의 따스한 사랑, 부처님을 닮은 한없는 사랑을 안고 긴 비행 끝에 한국에 도착했다.

17일간의 순례길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었던 순례길.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며 힘들었던 기억은 모두 사라졌다. 다만 안갯속 탑 터 아래서의 명상이 그립고, 향내와 함께 멀리멀리 퍼져가던‘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정근 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지금 거리에서 파란색 JTS 조끼를 자랑처럼 입고 마이크를 잡고 소리 높여 거리 모금을 한다.

“1,000원이면 굶주리는 아이 2명을 먹일 수 있습니다.”그럴 때마다 눈물이 핑 돈다. 내가 가르쳐준 손 하트를 열심히 따라 하던 수자타아카데미에서 만난 귀여운 아이들이 떠오른다.

  도반들의 도움으로 둥게스와리 유치원생 1,100명을 위해 털모자를 짜기 시작했다. 화장실에 갈 때마다 내가 누리고 있는 시설에 감동하고 한 그루 나무도 고마우며 따스한 햇볕도 감사하다. 대한민국이 좋아서 땅에 절이라도 하고 싶다. 진심으로 소중한 이 나라를 지켜내야 한다는 마음도 생겼다. 그동안 무관심하던 통일의병 교육도 신청했다. 17일간의 순례길에서 나는 정말 많은 선물을 받았다. 그래서 도반들에게 얘기한다. 늦기 전에 꼭 다녀오라고.

  앞으로도 힘든 일을 만날 것이고 괴로움에 빠질 것도 안다. 하지만 알아차림으로 나날이 행복할 것도 안다. 우리는 열반당에서 부처님께 약속했었다.“부처님! 편안히 계십시오. 이제 남은 일은 저희가 하겠습니다.”

  

* 이 글은 월간정토 2018년 4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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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댓글 1개
  •  ^^^^ 2018/05/13 13:33
    탄탄한 글솜씨가 돋보였던 글,월간정토통해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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