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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발자취를 찾아서

부처님! 편안히 계십시오.
이제 남은 일은
저희가 하겠습니다
- 제29차 인도 성지순례를 다녀와서


최인정 | 부산 금정법당

순례길
  2년 동안 신청과 포기를 거듭하다 세 번째 신청했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은 오락가락, 내가 왜가려는지, 정말 가고 싶은 건지도 몰랐다. 그러다 사전예비교육을 받으며‘그래 일단 가서 찾아보자,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내가 왜 이곳까지 왔는지….’ 그때부터 추천도서와 도반이 보내준 순례감상문을 읽으며 마음의 준비를 했다. 조장 교육을 받고 순례 기간 동안 스스로 근기를 만들어야 한다며 출발 1달 전 4박 5일 명상수련도 다녀왔다. 

  마음도 몸도 준비 끝. 캐리어 무게 15kg에 맞춰 최소한의 준비물만 챙겨서 드디어 출발하는 날, 부산엔 첫눈까지 내려 우리의 순례길을 응원하는 듯했다.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수신기를 꽂고 나니 조별 준비사항이 전해진다. 도반들 모두 한마음으로 도와가며 공용물품을 챙기고‘부처님의 발자취’라고 적힌 주황빛 티셔츠와 하늘빛 JTS조끼를 입고 나니 공항이 푸른 물결이다. 각 조의 깃발을 선두로 인도 성지순례단의 모습이 갖추어지고 긴 기다림 끝에 에어인디아를 탔다. 기내식에서 풍기는 익숙지 않은 음식 냄새는 우리가 인도
를 향해 가고 있다고 느끼기에 충분했다.


인천 공항에서 출발하기 전에 51조 도반들과(오른쪽 두번째가 글쓴이)

  홍콩을 경유하는 긴 비행 후 델리 공항에 도착했다. 인원이 많으니 수속은 늘 기다림의 연속이다. 바라나시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델리공항에서 15시간 대기. 피곤한 일행들은 공항 바닥에 캐리어와 간이의자로 벽을 만들고 침낭을 꺼내 잠을 청했다. 공항 관계자들의 잦은 눈총에 도 꿋꿋이 버틴 우리의 노숙은 멋진 경험이 되었다. 새벽이 되자 각자 알아서 기도하라는 법사님 말씀에 침낭을 방석 삼아 여기저기 자리 잡고 기도를 했다. 공항에서의 새벽기도를 통해 우리가 순례자로 부처님 성지에 온 것이 실감 났다. 공항 바닥에 앉아 서로를 소개하고 각자 다른 뜻과 의지로 성지순례 온 도반의 나누기를 들으니 소중한 인연들과 함께할 17일간의 순례길이 기다려졌다.

바라나시
  한국 출발 후 이틀이 지나서야 바라나시에 도착했다. 차창 밖으로 인도를 실감하게 하는 낯선 풍경이 우리를 맞이했다. 한낮이건만 하늘은 막을 씌워놓은 듯 뿌옇게 흐렸고, 붉은 벽돌로 만든 집은 짓다 말거나 파괴되어 보였지만 허름한 옷가지가 널린 거로 봐서 사람이 살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초췌한 모습으로 구걸하는 수많은 사람, 곧 쓰러질 듯한 작은 상점들, 한가로이 도로 가운데 드러누운 소와 개. 바퀴 달린 교통수단들은 내기라도 하듯 경적을 울려댔다. 도로와 인도 구별 없이 사람과 차, 동물들이 뒤엉켰어도 서로 잘도 피해 다녔다. 유난히 넓은 나뭇잎은 뽀얀 먼지를 뒤집어쓴 채 자신이 원래 초록빛이었다는 것을 잊은 듯 보였다. 첫날 바라나시에 도착해서 내가 본 광경은 카오스였다. 하지만 그 놀람은 단지 시작이었음을 아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입재식과 수계식
  숙소 도착 후 곧바로 순례단 420명과 스태프들이 입재식을 했다. 이번 순례 기간을 스님과 함께 한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오느라 고생했지요?”하며 환한 미소로 우리 일행을 맞아주시는 스님을 뵙자마자 이틀 동안 쌓였던 긴 여정의 피로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맛난 음식을 먹고 스님의 입재 법문을 들었다. 모두 지친 데다 배불리 먹은 후라 밀려드는 졸음에 정신이 혼미했지만 “불편하겠지만 불평하지 마라” “바깥만 보면 그저 구경거리이고, 안으로 보면 자각이 생길 거다. 순례 기간에 내면을 잘 관찰한다면 큰 자각을 하고 돌아갈 수 있다”“좋은 침대에서 자나 맛난 음식을 먹으나, 자고 나고 먹고 나면 다 같다”하시며“불평으로 입 나오면 돼지가 된다”는 말씀에 모두 웃었다. 그러면서도 걱정이 되시는지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과 불편할 만한 사항 등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스님의 사랑이 느껴진 행복한 입재식이었다.

  입재식이 끝나고 숙소에 와서 씻으려고 보니 따뜻한 물 대신 바람이 벽을 뚫고 들어와 온 방을 자유로이 날아다녔다. 스님께서 당부하신“입 내밀지 마라. 돼지 된다”는, 방금 들은 말도 잊은 지 오래, 더러운 바가지며 초라한 숙소에 불평 소리가 들렸다. 입이 나온들 어찌하리. 여기는 인도, 부처님의 발자취가 서린 곳. 우리는 순례자였다. 내일 일정을 조원들에게 알리고 나누기를 하려고 명심문을 폈다. 하하하! 역시 우리 스님. 우리를 훤히 꿰뚫어 보시는 명심문이다.

“온갖 분별심은 다 내 업식이 짓는 상일 뿐입니다.”

  우리들이 어디로 튈지, 무슨 생각을 할지 알고 주신 명심문이 입에 착착 붙을 때쯤 분별심도 사라지리라 기대했다. 그리고 명심문을 가슴에 새기며 순례를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늦은 밤 서둘러 밥해서 도시락을 싸고 짐 정리까지 하고 나니 내일 출발 때까지 잠잘 수 있는 시간은 2시간뿐. 냉기와 습기, 퀴퀴한 냄새 나는 침대 위에 침낭을 깔고 파스와 핫팩을 배와 등에 붙인 뒤 누운 기억뿐인데 어느덧 기상 알람 소리가 울린다.

  눈뜨자마자 송수신기에 맞춰 아침 예불과 천일결사 기도를 했다. 추우니 단단히 입으라는 스님의 당부 말씀대로, 몇 벌 안 되는 옷을 겹겹이 껴입고 마스크며 머플러로 동여맸다. 조별로 모이고 나서도 여전히 안개가 짙게 드리워져 앞사람만 겨우 보일 정도였다. 우리는 부처님께서 스스로 깨달은 바를 다섯 비구에게 처음 설법하신 사르나트지역 순례에 나섰다. 안개 속에 가려 모습마저 희미한 다메크 스투파 주위를 무변심법사님의 목탁 소리와 석가모니불 정근에 맞춰 향을 피운 탑을 돌기 시작했다.


새벽 안갯길을 걸어서 수자타 아카데미에서 보드가야로 가는 순례자들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400여 명이 넘는 순례단의 정근 소리와 향내가 안개 낀 새벽하늘을 날아 높이 퍼졌고, 탑을 도는 내내 눈물이 났다. 무엇 때문이었는지 알 수 없는 눈물. 남 탓하며 괴로움에 빠져 살던 내가 부처님 법 만나 행복해졌기에 감사한 마음에 나오는 눈물이었을까? 탑돌이 후 넓은 자리에 매트를 깔아 예불을 드리고 명상을 했다. 죽비소리에 눈을 뜨니 안개 속에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던 다메크 스투파가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 웅장함에 압도되어 할 말을 잊었다.

  우리는 전법이 시작된 이곳에서 수행자로서 계를지키며 살아가겠다는 서원을 세우는 수계식을 했다. 어설프지만 어제 배운 대로, 가사를 수하고 호궤 합장을 하며 수계를 기다리는 도반들의 모습이 경건하고 아름다웠다. 오랫동안 이 순간을 잊지 못하리라. 우리는 진정한 수행자로서 계를 받고 다음 순례길에 올랐다.

강가강
  강가강. 듣기만 했던 그 갠지스강. 스님은 각자 알아서 찾아오라며 가는 방법만 설명해주신다. 버스에서 내리니‘오, 마이 갓!’어제 바라나시 거리에서 보았던 그 놀람은 작은 시작이었음을 확연히 깨닫게 해준다. 큰 소리로 얘기하지 않고는 옆 사람과도 소통할 수 없는 소음과 엄청난 인파, 자동차와 자전거, 오토바이, 릭샤, 사람만큼 많은 소까지 모든 게 도로 위에 있었다. 길옆에 무너질 듯한 가게와 거리는 오물 천지다. 정신 차리자고 스스로 다짐해도 정신이 나갈 지경.

  그렇게 강가강에 도착하니 메케한 냄새와 함께 옷 입은 채 목욕하는 사람들, 구걸하는 사람들, 옷을 벗은 채 활보하는 사람들. 트럭 지붕엔 시신이 실려 있고, 차 안의 사람들은 생과 사를 초월한 듯 환히 웃고 있었다. 제행무상이라. 강가강이 우리에게 그리 말하는 듯 들렸다. 

둥게스와리 수자타아카데미와 전정각산

 



▲수자타 아카데미 학생들과(가운데가 글쓴이)

 

  다음 일정으로 수자타아카데미가 있는 둥게스와리로 출발했다. 늘 가고 싶고 궁금했던 곳이다. 수자타 입구에 버스가 들어가자 우리를 반기는 대형 현수막이 보였고, 귀여운 아이들이 꽃목걸이를 선물로 걸어주었다. 넓은 땅에 이쁘게 지어진 엄청난 규모의 수자타아카데미를 보는 순간, ‘우리 스님이 이렇게 큰일을 하고 계셨구나!’싶었다. 불교대학 시절 처음 JTS 거리모금을 할 때 구걸하듯 부끄러워 한마디도 못 하고 모금통만 들고 있던 기억, 파란 JTS 조끼를 입기 싫어서 도망 다녔던 기억이 떠올라 부끄러움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척박한 둥게스와리에 이렇게 대단한 일을 해 놓으시다니,‘ 이제돌아가면 마이크를 잡고 소리쳐서 모금하리라’ 스스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짐을 내린 뒤 바로 바랑을 챙겨 부처님께서 6년 고행하셨다는 전정각산을 올랐다. 돌산과 가시나무뿐인 그 척박한 곳에서 예불을 드리고 경전을 읽었다. 고소공포증 있는 사람은 오지 말라는 스님 말씀에도 다들 전정각산 꼭대기까지 뾰족뾰족한 바위산을 올랐다. 꼭대기에 오르니 괜히 왔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다리는 후들후들, 스님은 저 멀리 날아가신다. ‘스님 말씀을 들을걸….’기듯이 바위산을 타고 내려와 유영굴에 들렀다. 이 험난한 곳에서 6년간 고행하셨다니 문경수련원에서 보았던 부처님 고행 상이 떠올랐다.


 전정각산에서 선주법사님과 (왼쪽이 글쓴이)

  전정각산을 내려오는 길목에는 많은 사람이 구걸하고 있었다. 다른 마을에서 온 사람들이라는데 장애인과 어린아이들, 특히 어린데도 엄마가 된 듯한 여인들이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한 채 길거리에 앉아 있었다. 지금도 이러한데 부처님 당시엔 어땠을까 생각하니, 부처님의 고뇌가 느껴졌다.

  스님이 이런 아이들을 반듯하게 가르치셨다는 생각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졌다. 수자타아카데미로 돌아와 깨끗이 정돈된 기숙사에서 뜨겁게 데워준 물로 목욕하고 식당에서 단체로 밥을 지어 맛난 밥도 먹었다. 불평으로 입나와 있을 우리들을 위해 1년 동안 준비했을 현지 활동가와 학생들의 수고가 느껴졌다. 저녁 후
여러 영상을 보고 나서 들은 스님 법문은 순례 기간 중 가장 큰 선물이었다.

순례길 5일째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자리를 기념하기 위해 아쇼카왕이 세운 보드가야 대탑을 순례하기 위해 출발했다. 새벽 5시 스님을 따라, 짙은 어둠과 안개로 한치 앞도 구분이 안 되는 길을 떠났다. 랜턴을 켜고 마른 흙길을 따라 묵묵히 걸었다. 한참을 갔을까 스님께서“누가 노래해봐라”하자마자 수신기 너머로 무변심법사님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짙은 어둠 속 안개 낀 순례길의 노랫소리는 지금도 내 가슴에 큰 울림으로 남아 있다.
“우물 밑에 보이는 새벽 달빛은 두레박이 넘치도록 길어 올려도, 우물 밑에 보이는 새벽 달빛은 두레박의 한 자락도 보이지 않네. 에헤야, 님도 저와 같아서 가고 안 오느냐.”

  어쩌면 우리는 부처님이 가르쳐주신 깨달음의 길을 한 자락도 길어 올리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우리에게 행복한 길을 열어주기 위해 고행하고 성도하신 부처님의 큰사랑을 언제쯤 깨달을 수 있을까? 안개가 이슬이 되어 머리며 온몸을 적셨지만, 보드가야로 가던 새벽길은 영원히 잊힐 것 같지 않았다.
(다음 호에 계속)

 

* 이 글은 월간정토 2018년 3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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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댓글 1개
  •  조미화 2018/05/01 15:08
    불평하는 입은 돼지입니다~제가 돼지였네요~
    수행전진하는 보살이 되도록 열심히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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