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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민다나오에서는 JTS 활동가와 마을 주민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 함께 희망을 일구고 있습니다. JTS 활동가가 전하는 민다나오의 마을 자립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아무리 헤매도 
돌아갈 곳이 있참 좋다



허유진 행자대학원 12기, 필리핀 JTS 활동가

왜 내가 더 안달해야 해?
  필리핀에서 생활한 지 이제 11개월이 막 지났다. 행자대학원 12기인 나는 운 좋게도 행자대학원 과정에 있는 국제 구호 활동을 하며 1년 동안 필리핀 JTS에서 지낼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국제 구호를 해볼 수 있다는 설렘 가득한 마음으로 한국을 떠나 필리핀 민다나오에 도착했던 첫날이 떠오른다. 이동으로 노곤한 몸 상태에서도 느껴지는 비포장도로의 다이내믹함과 내 눈에는 엉성하게만 보이는 나무판잣집들이 주는 느낌은 한국과는 다른 곳이라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 JTS 파견 교육을 받고, 필리핀에 도착해서도 사업에 대한 안내와 학습을 통해 국제 구호와 필리핀에 대해 공부를 해두었다. 하지만 막상 현장에서 부딪혀본 적 없으니 국제 구호 활동이 뭔지, 필리핀이라는 나라와 그 문화는 어떤지 크게 실감하기는 어려웠다. 그 상태로 본격적인 프로젝트 진행을 맡게 됐다.

  내가 담당한 사업은 학교 건축 파트였다. JTS는 2003년 설립 당시, 교육을 통해 민다나오에 평화를 가져온다는 목표를 가지고 활동을 시작했다. 설립 뒤엔 접근이 힘든 오지 마을에 교실을 건축하는 사업에 주력했다. 하지만 필리핀은 여전히 사회적 기반시설이 취약하기 때문에 접근하기 어려운 마을이 많고, 학교가 없는 곳이 많다. 15여 년 남짓된 지금 필리핀 JTS는 보다 많은 지역민에게 도움이 갈 수 있도록 활동 영역을 넓혀가고 있지만, 학교 건축은 여전히 빼놓을 수 없는 프로젝트 중 하나다.

  학교 건축은 보통 군청과 JTS가 협력 관계를 이뤄서 진행한다. JTS는 교실 건축에 필요한 자재를 제공하고, 군청은 건축에 필요한 기술자문과 인력을 관리하는 방식이다. 군청과의 파트너십, 그중에서도 실제 공사를 담당하는 엔지니어와의 관계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매주 한 번 이상은 공사 모니터링을 함께 가고, 필요한 자재와 자재 배달 시기에 대해 논의 후 공사가 잘 진행되고 있는지도 점검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바갈랑잇’이라는 마을에 교사숙소 신축, 교실 2칸 증축, 외부 화장실 4칸 증축 및 보수등 약 10개월간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건축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공사 현장을 모니터링 해야 하니 처음부터 수월하지 않은 일 투성이였다. 그런데도 나는 공사 현장을 꼼꼼하게 봐서 공사가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하고 싶다는 바람이 컸다. 길거리 모금으로 힘들 게 모은 JTS 사업비를 허투루 쓰고 싶지 않은 마음과 맡은 프로젝트를 내 기준에 맞게 끝내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공사가 진행되는 상황을 보고 있어도 뭐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뭐가 문제인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마음만 그랬으니 욕심이 커도 정말 컸다. 한국에서의 내 기준을 필리핀 현지 상황에 그대로 들이대니 처음부터 삐걱대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일하러 필리핀에 가는 것이 아니라 수행자로서 필리핀에 가는 것이라고 일러주시던 법사님 말씀은 이미 까맣게 잊고 있었다. 국제 구호 활동을 하나의 수단으로 삼아 수행하는 수행자가 아니라, 주객을 전도시켜 버린 중생의 삶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수행자로 이곳에 왔다.’이 사실을 놓치니 군청 엔지니어와 일하면서 일어나는 내 감정에 이리저리 휘둘렸다. 날것의 감정이 올라오는데, 어쩌면 당연한 순서였다. 내 바람에 부응되게 군청 엔지니어가 탁탁 일을 해주면 좋겠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모니터링을 위해 군청 엔지니어와 약속을 잡아야 하는데, 그 일부터‘하늘의 별 따기’였다. 전화도 안 받고, 문자로도 연락이 안 됐다. 약속을 정했다 하더라도 공사 현장에 나타나지 않아서 3~4시간을 무작정 기다린 적도 많았다. 엔지니어는 매번 자재를 배달해 달라고 급하게 연락을 했다. 자재 견적서를 제대로 검토하지않으니 3번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자재 배달도 15번으로 늘어났다.

 

▲ 사업지 바갈랑잇 초등학교 앞에서

 


  자재 배달 횟수가 늘어나는 만큼 비용도 추가됐다. 설상가상 늘어나는 비포장도로 출장과 건강치 못한 마음 상태로 몸까지 축나기 시작했다.‘도대체 엔지니어가 해야 할 일을 내가 왜 하고 있나?’‘이게 얼마나 소모적이고 낭비인가?’‘연락만 해줘도 될 텐데 대체 왜 연락을 하지 않을까?’군청 엔지니어가 인간적으로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심지어 만나면 반갑고 좋기까지 했다. 하지만 일 처리 방식에 있어서 만큼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상대가 이해되지 않는 마음이 커지니 나만 답답했다.‘ 생소한 문화, 생소한 사람들 때문일까?’핑계를 대보지만 결국은 내 맘대로 안 되는 상황, 딱 그 경계에서‘내 생각이 다 상식이고 옳은 것이다!’라는 생각을 쥐고 있는 내가 있었다. 이 상태에선 진전되는 게 없었다. 그러면서 계속 드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나 편하자고 하는 일도 아닌데, 왜 내가 더 안달해야 하나?’하는 생각이 여러 감정과 뒤섞이면서‘대체 국제 구호가 뭐지?’‘국제 구호를 제대로 한다는 건 뭐지?’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감사한 줄 모르고 살았구나, 이런 나와 일하는 엔지니어가 참 고생이 많다

  내안에서 일어나는 온갖 감정은 사실, 바라는 마음에서부터 비롯됐다는 게 보였다.‘ 왜 내가 더 안달해야 하나?’이 의문에는 내가 당신에게 요구하는 것들은‘당연하지’‘이렇게 되는 건 당연하지!’하는 마음이 있었다. 뭔가를 해준다는 마음이 컸다. 운 좋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태어나서 운 좋게 국제 구호 활동을 할 수 있었다. 나는 특별한 능력을 갖추고 있지 않지만, 필리핀 JTS의 일원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이곳에서 뭔가 해볼 수 있었고, 만나는 사람들은 늘 나에게 고마워했다.


바갈랑잇 공사장 인부들과 함께

  인생의 모든 순간이 당연하기만 할까? 그런데 교만하게도 난 모든 것이 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지냈다. 습관처럼 그렇게 생각했다. 누군가의 노력, 그 바탕 위에서 내가 뭔가를 해볼 수 있음을 늘 잊고 지냈다. 그러니까 안 되는 것만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나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왜 당연히 하지 못하느냐고 불평하는 마음을 냈다.

  조금만 내려놓고 엔지니어 처지에서 생각해보니, 엔지니어는 자기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본인의 역할에 따른 일을 충분히 이행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웬 외국인이 나타나서 이건 이래라 저건 저렇게 했으면 좋겠다며 의견을 내질 않나, 매번 만나서 질문하고 지적하면서 귀찮게 굴지를 않나…. 그런데도 군청 엔지니어는 인상 한 번 쓰지 않고 나에게 맞춰주려고 노력했다. 일처리 속도가 내 기준으로는 조금 느릴지 몰라도, 해주기로 한 일을 약속한 시각에 다 끝내지 못할지라도, 엔지니어는 인부들을 관리하고 공사에 큰 결함이 없도록 현장감독을 해주었다. 내 입맛에 딱 맞지 않는다고 해서, 내 기준에 딱 맞지 않는다고 해서 그 사람이 행한 모든 일이 평가절하될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나는 내가 바라는 대로 되는 것에만 골몰하니 보이지 않는 것들이 많았다.‘당연히 그렇게 해야지!’가 없는 세상에서는 조금만 생각해보면 감사한 일 투성이다.

나는 여기 왜 왔는가?
  조금이나마 현지에 도움이 되는 활동을 해보고자 왔던 필리핀이다. 그런데 업식에 끄달리며 살다보니 마치 내 기준을 강요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처럼 살고 있었다. 꼭 그렇게 해야 할 것만 같던 일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잘 진행되는 걸 보게 됐다. 내가 마음을 조급하게 가진다고 해서 달라질 게 없다는 것도 체험으로 받아들여졌다. 조금만 개선되면 달라질 만한 것도 보였다.

  그렇지만 그런 개선점이 있다고, 부족함이 있다고 해서 내가 마음을 조급하게 굴거나 감정적으로 다가갈 일은 아니라는 것도 이제는 알겠다. 내가 더 안달할 게 아니라, 내가 도울 수 있는 부분이 있고 해야 할 일을 하면 그 뿐이다. 학교 건축 과정처럼 벽돌 하나하나가 쌓여 건물이 완성되어 가듯이, 나에게도 경험으로 쌓여가는 것이 많았다.


바갈랑잇 공사장 인부들과 함께 2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12월, 지도법사님을 모시고 바갈랑잇 건축 준공식을 무사히 마쳤다. 현장에는 아직 추가 작업이 조금 남아 있다. 사실 아직도 엔지니어는 연락이 잘 안 되고, 만나기가 힘들다. 지금도 추가 자재 배달을 위해 공사 현장에 가면 아무도 없어서 다시 발길을 돌려야 할 때도 있다. 상황이 달라지거나 사람이 변하진 않았다. 그래도 받아들이는 내 마음이 편해졌다. 예전만큼 마음이 바쁘거나 상대에 대해 미움으로까지 번지지는 않는다. 그런 마음에 에너지를 쓰기보다는 어떻게 할까에 더 집중한다.

  지도법사님이 필리핀 활동가들에게 해주신 말씀이 마음에 많이 남는다. “우리는 수행자로서 여기 왔다. 필리핀 사람들이 분명 부족한 부분도 있지만, 거기에 감정적으로 대하게 되면 좋은 일하러 와서 오히려 민심을 잃게 된다. 일은 힘들게 하고 민심도 잃고, 어리석은 일이다.”결국 내 인생을 똑바로 사는 것, 경계에 부딪혔을 때 돌이킬 수 있는 수행자로 사는 게 나도 이롭고 남도 이롭게 하는 길임을 다시 한 번 새긴다. 활동을 거의 마무리해가는 지금에서야 국제 구호 활동을 하나의 수단으로 삼아 수행자로 산다는 게 어떤 건지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일찍 돌아 볼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서 힘들었기 때문에 수행자로 돌아올 수 있음에 더 감사한 마음이다. 어디에 있든 어떤 상황에 부닥치든 바로잡을 관점이 있어서, 수행자라는 내 정체성이 있어서 참 좋다.  필리핀 JTS는 언제나 국제 구호 활동으로 수행해보고자 하는 모든 분에게 열려 있다!

 


* 이 글은 월간정토 2018년 2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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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행복한 수행자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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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댓글 1개
  •  지혜승 2019/05/13 18:21
    나는 행복한 수행자입니다. 나누어주셔서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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