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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일 문경살이 소감문
버텨줘서 고마워,
잘 살아줘서 고마워



홍진아49일 문경살이 14기

하기 싫은 마음이 내가 아님을 깨닫는 찰나의 순간
  나는 아랍에미리트의 국영 항공사인 에티하드항공의 부사무장이었다. 비행할 때면 동료와 상사에게 항상 인정을 받으며 일했고“너는 정말 좋은 사람이야”라는 말을 외국인 동료들에게 참 많이도 들었다. 나는 일도 잘하고 얼굴도 예쁘고 성격도 좋은 사람이라는 상을 그려놓고, 일하러 갈 때면 유니폼을 입고 화장을 하고 얼굴에는 미소를 담았다. 하지만 사람들 속에서의 홍진아와 집에서의 홍진아는 다른 사람이었다. 집에서는 극심한 우울감과 불안감으로 침대 밖으로 나가지 않았고 친구를 만나는 시간 외에는 먹고 마시고 온종일 영화와 티브이를 일분일초도 놓지 않고 보는, 그런 우울한 삶을 꽤 오랫동안 살았다.

  2년 전 깨달음의장을 다녀오고 잠시 좋아지는가 싶었다. 초발심에 휴가 때마다 바라지장도 가고 명상수련과 나눔의장에도 참가하며 수행의 기쁨을 느꼈다. 하지만 지난 1년은 기분 날 때만 수행하는, 내 업식을 따라가는 수행을 했다. 깨달음의장 후 조금씩 새어 나오던 무의식 속의 상처받은 어린 나는 나이가 들수록 점점 강도가 높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괴롭고 우울하고 미친 듯이 불안했다. 돈을 많이 벌어도, 친구들과 자주 비싼 음식점을 가고 좋은 옷을 입고 클럽을 가도 점점 더 불행해지는 거 같았다. 공허한 마음을 더는 달랠 길이 없었다. 사직서를 내고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문경으로 왔다. 나의 괴로움을 없앨 길은 이 길뿐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 승무원 시절 (왼쪽에서 두번째가 글쓴이)

  만 배를 시작하며, 천 배가 넘어가자 무릎이 너무 아팠다. 이건 못할 짓이라는, 하기 싫은 마음이 강하게 올라왔다. 108배도 꾸역꾸역했었는데 아직도 팔천 몇백 배가 남아 있었다. 이건 인간이 할 짓이 아니다, 난 집에 가야겠다는 강한 마음이 매 순간 절을 할 때마다 올라왔다. 묵언이고 뭐고 필요 없었다. 묵언을 깨며 그만하겠다고 이분 저분을 붙잡고 말했지만, 그때마다 조금 더 해보라고 회유를 하셨다. 다섯 번째 집에 가겠다고 했을 때, 집에 갈 때는 가더라도 만 배는 채우고 가라고 하셨다.‘ 아, 만배를 채우지 못 하면 집에 못 가겠구나…’

그때부터 나보다 일찍 만 배를 끝낸 도반들이 뒤에서 목탁 바라지를 해주었다. 어느 순간 감사함에 눈물이 나고, 아프고 괴로움에 하기 싫어도 계속 절을 하고 있는 나를 보았다. 하기 싫은 마음이 나에게서 조금씩 거리를 두며 멀어지는 순간이었다. 하기 싫은 마음이 내가 아님을 깨닫는 찰나의 순간이었다.

진아야, 얼마나 답답했니? 잘 살아줘서 정말 고맙다
  49일 문경살이 입재식 때 덕생법사님은 나에게 49일 문경살이를 통해 무엇을 극복하고 싶은지 물으셨다. 나는 아홉 살 때부터 10년 동안 새어머니의 학대로 마음이 힘들었다고, 혼자서도 우울함 없이 잘 살아보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법사님은 내 이야기를 듣자마자“어이구 힘들 만했네.

  한국이 징글징글하게 싫었겠네. 해외 나가 살 만하지”라고 너무나 간단하게 말씀하셨다. 우울감과 불안함조차 내 책임 같고, 행복하게 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가진 나에게 너무나 간단한 대답이었다. 법사님은 그동안 너무 애쓰고 살았다며 오늘부터 긴장을 풀고 일도 열심히 하지 말라고 하셨다. 일 수행을 할 때도 최선을 다하지 말고 천천히 해보고, 화장실도 천천히 다녀오고, 사람들과도 친하게 지내려 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리고“진아야, 버텨줘서 고마워. 잘 살아줘서 고마워”라는 명심문으로 기도하라고 하셨다. 그동안 그리 애쓰고 살았으니 휴일이면 무기력해지고 우울해지는 거라고 설명해 주셨다. 나는 우울한 게 모든 괴로움의 시작인 줄 알았는데, 평소에 내가 일을 할 때나 친구를 만날 때 너무 밝게 애를 쓰고 살아서 우울한 거라니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거 같았다.


▲ 입재식에서 글쓴이

  몸과 마음에 힘을 빼고 문경수련원 정비 일과 깨달음의장 바라지를 시작했다. 애쓰지 않으니 그동안 잘 눌러왔던 우울감이 미친 듯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우울감이 나를 잡아먹을 것 같았다. 머릿속으로는 ‘이건 정상이 아니다. 회향하고 정신병원에 입원해야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어릴 때 새엄마와 함께 살며 매일 했던 주방일, 청소, 설거지를 일수행으로 하다 보니 마음이 답답해서 숨을 쉴 수 없는 지경까지 되었다. 어떤 때는 숨을 쉬기 힘들어서 등을 굽힌 채로 대웅전까지 울며 저녁 예불을 드리러 간 적도 있었다. 덕생법사님은 어릴 때 하기 싫어도 억지로 해야 했던 답답함이 지금 똑같은 상황에 놓이면서 그대로 올라오는 거라며 올라오는 감정은 좋은 것이라고 하셨다. 답답함이 느껴질 땐 ‘진아야, 이런 힘든 일 하느라 얼마나 하기 싫고 답답했니? 잘 살아줘서 정말 고맙다’라고 어린 나를 안아주고 달래주라고 하셨다. 법사님이 알려주신 대로 해보니 시시각각 답답함이 올라왔지만, 그 강도와 머무르는 시간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4박 5일 명상수련이 시작되었다. 첫날부터 나의 울분과 분노가 마구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예전 명상수련 때는 이를 악물고 참았는데 이번에는 참는 게 아닌, 고통이 바라봐졌다. 눈을 감으면 너무나 슬프고 힘들어 눈물이 계속 나왔고, 고통이 느껴질 때는 나의 무의식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기억조차 안 하고 있던 아홉 살 어린아이의 슬픈 절규가 계속 느껴졌다. 어린 시절 참 많이도 맞고 벌을 섰었다. 가져가지 않은 돈을 가져갔다고 할 때까지 엉덩이를 맞고 허벅지를 맞았다. 오빠와 번갈아 가며 맞았는데, 허벅지의 껍질이 벗겨질 때까지 맞았던 그 고통이 그대로 느껴졌다. 마음속의 상처 받은 어린 나는 끊임없이“엄마,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라고 하고 있었다. 서너 시간씩 손들고 벌섰던 고통과 명상 할 때의 고통이 비슷해서일까. 어린 시절의 나에게 깊이 참회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어린아이가그렇게도 절절하게 아팠구나, 힘들었구나, 정말 슬프고 외로웠구나.’명상수련이 끝난 뒤 나의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고, 그 후 며칠은 우울감이 느껴지나 싶다가 우울함을 알아차리니 사라졌고, 그 후 4주 동안은 우울감이 한 번도 안 느껴질 정도로 우울은 나에게서 멀어졌다.

싫어하는 마음에 사로잡히다
‘산 넘어 산’이라는 말은 누가 만들었을까? 어느 순간부터 단 한 명뿐인 도반이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말과 행동이 하나둘씩 보기 싫어지고 나의 분별은 심해져갔다. 지난 한 달 동안 매일 24시간을 함께 웃고 울고 떠들며 지냈던 도반이 웃는 거, 무표정한 거,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거까지 꼴 보기 싫어졌다. 너무나도 착한 도반이기에 나의 이런 분별심은 나를 너무 괴롭게 했다. 좋고 싫음에 끄달리는 그녀의 업식을 알면서도 그녀의 그런 행동이 싫고, 재미있는 것만 찾아하는 거, 애처럼 행동하고 노래를 부르며 하루 종일 빵타령을 하는 그녀의 모습에 숨이 막혔다. 특히나 무표정일 때의 그녀의 얼굴은 나를 몸서리치게 했다. 그녀의 숨소리조차 싫어졌다. 결혼한 사람들이 남편이 밥 먹는 것도 꼴 보기 싫다고 한 심정이 이해가 갔다. 덕생법사님은 드디어 성질이 나온 거라고 하셨다. 나처럼 이해심이 높은 사람이 성질이 이렇게 더럽다니…. 정말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수련팀장님이 지난 한 달 동안 품위 유지하느라 감춰온 나의 진짜 마음을 내어놓아 보자고 하셨다. 나조차 외면했던 마음이 열렸고 입이 떨어졌다. 난 그 법우가 처음 볼 때부터 싫었다고 말씀드렸다. 만 배 할 때 하기 싫어 괴로워하던 그녀의 표정과 그녀의 무표정한 얼굴은 어렸을 때 함께 맞고 자란 오빠의 얼굴과 너무 닮아있었다. 어딜 가든 함께 다녔던 그녀와 내가 동등한 대우를 받는 게 너무 싫었다. 나는 이 사람보다 나은 사람인데 나랑 왜 같은 대접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마음이 처음부터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동안의 분별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했지만 나의 싫은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 도반과 함께 (오른쪽이 글쓴이)

  다음 날 300배 정진 후, 마음나누기 때 싫은 마음을 제어할 방법이 없었다. 싫은 마음은 나를 사로잡았고 일분일초 단위로 그녀의 싫은 모습이 내 머릿속에 살고 있었다. 통일평화집회에 같이 간다는 말에, 나는 같이 가기 싫다고 대성통곡하며 울기 시작했다. 발을 동동 굴러가며 우는 나를 도반은 너무 어이없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박미자 보살님은 나를 꼭 안아주시며, 어릴 때 한 번도 편히 울어보지 못한 어린 나를 꼭 안아주라고 하셨다. 또한 도반과 내가 오늘 처음 만난 사람처럼 다시 시작해보자고 중재하면서 싫어함은 내가 잡고 있는 거라고 하셨다. 순간 싫어함을 잡고 있는 내가 보였다. 원심 법우는 내게 마음 내는 법을 알려주었다. 하기 싫은 일을‘해야지’하면 내무의식과 싸우는 것이요,‘ 한번 해 볼까?’하고 내게 물어보면 마음내서 할 수 있다고 했다.

  나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한번 해 볼까?’그녀도 어쩔 수가 없었겠구나… 도반과 대화를 깊게 하고 나서 그녀에게 자비심 연습문을 읽어달라고 했다. 그녀가 읽는 순간 그녀도 눈물을 흘렸고, 어린 시절 왕따를 당했던 아픔이 있는 그녀의 아픔이 내 마음으로 느껴지며 이해가 되는 듯했다. 그녀가 서로 삼배를 하자고 제안했고, 순간 싫은 거부감이 올라왔다. 절대로 그녀에게 삼배를 할 수 없을 거 같았다. 그런 마음을 바라보며 삼배를 하고 일어섰을 때, 나는 싫어함의 사로잡힘에서 벗어나 있었다.

  일주일 남은 동안 그녀와 웃고 울고 떠들고 서로 마음도 나누며 소중한 시간을 보냈다. 누군가를 미친 듯이 싫어하는 마음에 사로잡혀보니 나를 싫어했던 새어머니의 마음이 이해가 되면서 참회가되었다.‘ 그녀도 자기 마음을 어쩔 수가 없었겠구나.’그동안 기억이 안났던 새어머니와의 좋았던 기억도 떠올랐다. 덕생법사님은 미움에 사로잡혀 어린아이에게 그걸 풀던 새어머니와 살았던 내가, 사로잡힘의 업식이 강하다고 말씀해주셨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인간관계에서 마찰과 괴로움이 컸던 이유가 이해되었다.


 바라지장에서(첫줄 왼쪽에서 세번 째가 글쓴이)

수련원에서 마음 따뜻한 수행자들과 살면서 그동안 못 느꼈던 가족의 정을 느끼고, 이해와 배려를 느끼고, 사랑을 느끼는 사이, 내 마음은 어느새 많이 치유되어 있었다. 재입재를 한 지금, 나는 편안한 가운데 나를 연구하고 공부하는 재미를 느끼며 살고 있다.

 

 

* 이 글은 월간정토 2018년 1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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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행복한 수행자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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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댓글 10개
  •  금광명 2018/08/08 16:04
    잘 읽었습니다. 어릴적 생각이나서 저도 모르게 울컥하게 되네요.
  •  마음은불법으로 2018/04/01 14:32
    읽어 내려가는 동안 머리속으로 그림들이 죽 그려지면서 글쓴이의 마음들과 알아차림들이 생생하게 공감되었습니다.
  •  선명심 2018/02/27 14:03
    감사합니다.
  •  정토 2018/02/10 18:37
    너무 잘 들었습니다.
    자신에게 솔직한 용기있는 모습에 많은 감동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이기사 2018/02/10 17:47
    금강 반야바라밀_()()()_
  •  정지나 2018/02/09 09:40
    잘 들었습니다. 눈물이 그렁그렁....저에 어릴적 생각이 나서입니다.
    끝말에 나를 연구한다는 말에 많은 공감하며 상대를 연구하는 것이아닌
    우선 나부터 이해하고 있어야 겠다는 맘 충분히 이해합니다.
    솔직한 도반님에 글 많은 위로와 공부됨에 감사합니다. 꾸벅인사^^
  •  halmang 2018/02/08 05:37
    잘 들었습니다. 이렇게나 마음을 잘 들여다볼 수 있게 해준 모든 인연에 감사드립니다.
  •  토마토 2018/02/07 08:10
    나무관세음보살
  •   2018/02/07 07:44
    감동적인 소감문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  혜광 2018/02/05 10:39
    아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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