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정토맑은마음,좋은벗,깨끗한 땅을 실현하는 정토회


 

인도 둥게스와리에서는 JTS 활동가들이 희망의 씨앗을 뿌리고 있습니다. 척박한 땅에서 문맹 퇴치와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쓰는 정토행자와 둥게스와리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봅니다.
나마스테
쿠시시스터~


김민정 인도 JTS 활동가- 유치원팀

“인도로 가는 마음이 이상하게 아무 느낌 없이, 들뜨지도 가라앉지도 않는데, 늘 얻으려고만 살다
가 이제 베푸는 마음으로 가게 되니 그런 것 같습니다.” 2명의 도반과 함께 인도로 출국하던 날, 공동체 발우공양 때 내가 말했던 소감이다. 그때 내 마음은 그랬고, 이곳 인도에서의 삶은 그럴 줄 알았다. 

2015년 3월 백일출가를 마치고, 문경수련원에서 2년간 상근 자원 활동을 하면서 해외 활동을 생각했다. 3년 차가 되는 지난 3월, 이곳 인도 수자타아카데미로 활동 터를 옮겼고, 현재는 ‘쿠시’(아이들이 지어준‘행복’이라는 뜻의 인도 이름) 시스터로 살고 있다. 영어가 안 되고 힌디어도 안 되지만, 가난한 그들보다 더 가진 내가 그들에게 보탬이 되리라 다짐하면서 한껏 부풀어 있던 마음, 그것은 결코 담담하지 못했던 들뜸이었다는 것을 서서히 알게 되었다. 

그래, 네가 이겼다!
외국어가 안 되는 것이 문제가 되기도 전에 공동체 생활에서부터 걸림이 생겼다. 낯선 곳에서 나도 모르게 예민해져 있던 나는 작은 한마디 한마디에도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더군다나 문제 제기는 하면서 정작 나 스스로는 하나도 지키지 않는 걸 보면서 가슴에 불덩이가 활활 타올랐다. 

학교에서 일하게 된 나는 말 한마디 안 통하지만 싱글벙글 웃어주는 인도인 선생님들, 아이들과 함께 있는 학교가 쉴 곳이고, 한국인들과 함께하는 숙소로 돌아오면 감옥살이가 따로 없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여름방학을 맞았다.

그렇지 않아도 뜨거운 이곳에서 가슴에 불까지 안고 살자니 몸이 남아나지 않았다. 몸이 아팠는지, 마음이 아팠는지, 여름 방학식 다음날 새벽 일어나지지 않더니, 가까스로 참석한 새벽 예불에서 겨우 삼 배 드리고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이 쑤시고 열나고 숨도 쉴 수 없었다. 옥상에 간이침대와 모기장을 설치해 주시는 보광법사님, 열을 내린다며 하루 종일 온 몸에 풋망고를 갈아 붙여주고 주스를 만들어주는 프리앙카지, 걱정해주는 도반들 덕분에 급한 불은 끈 듯했다. 그 후 얼마 안 되어서 다시 길고 긴 열 두드러기와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어느 날 새벽 예불 후 청소시간에 거울을 보니 난리가 나 있었다. 새빨개진 얼굴이 하루 아침에 두 배로 커졌다. 온몸이 그랬다. 방학이라 지이바카 병원에도 진료해줄 사람이 없었고, 왜 그러는지 이유도 모른 채 하루하루 증세는 심해지면서 두드러기 부위가 넓어졌다.

개학하고도 증세는 계속되었다. 기간이 길어지니 두렵고 우울했다. 열도 열이었지만 소름 끼치는 가려움은 정말 괴롭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 밤이 되면 벌레 수천만 마리가 온몸을 기어다니는 듯한 가려움과 40℃를 웃도는 숨 막히는 열기….그러던 어느 날, 무너지기 직전의 몸을 이끌고 좀 쉬러 일찍 방에 들어갔는데, 두둥~! 벽을 타고 나무침대 다리까지 올라와 진을 치고 있는 흙벌레를 보고는 기절하는 줄 알았다. 내 마음은 이미 델리 공항, 아니 이미 한국에 도착했다.

그 순간, 얼마 전 산책 삼아 놀러 간 학교 옆 동네 아이들 집이 떠올랐다. 천장이 없고, 문도 없이 한국에서 보았던 신축건물의 공사장 같은 곳에서 환하게 웃으며“나마스테, 시스터~”하며 나를 반겨주던 아이들. 의자를 들고 와 앉혀놓고는, 본인들은 평소 쉽게 먹지도 못하는 비스킷을 투박한 스테인리스 접시에 정성스레 준비해 건네던 천사 같은 아이들이 떠올랐다.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내가 너희들보다 덜 행복해도, 돈은 좀 더 있다’고 말해라. 퍽이나 자랑스럽겠다.”법륜스님 법문 속의 주인공이 나였다. 이내 정신이 들었다. 싫어지면 이렇게 버리고 살았구나, 물건도, 사람도 그렇게 버리면서 내 멋대로 살았다.

‘교만한 인간…. 진짜 너, 여기 잘 왔다. 너는 진짜 참회 많이 해야겠다’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거 한번 끊어보자며 천근만근인 몸을 이끌고 나무침대를 번쩍 들어 흙벌레집을 허문 뒤, 비로 쓸고 걸레로 닦아 대청소를 했다. 물론, 다음 날 흙벌레들은 보란 듯이 제 집을 다시 지어놓았다. 그렇게 네가 이기냐 내가 이기냐 씨름하며 허물고 짓고, 허물고 짓고를 몇 주간 반복하던 어느 날, 내 입에서 나온 한 마디.“ 그래, 네가 이겼다.” 이제 흙벌레 집을 치우는 일은 예불 전바닥 청소처럼 나의 일상이 되었다.

아쉽지 않은 인생이 어디 있어?!
아버지의 칠순을 두어 달 앞두고 인도로 왔다. 환갑잔치를 못 해드려 아버지의 칠순은 꼭 함께하리라 다짐했는데, 그 부채감에 가슴 한쪽이 늘 먹먹하다. 문경에 살 때도 그리웠던 딸내미가 이제는 다른 나라를 간다니 얼마나 마음이 미어지셨을까? 그래도 마음 무거울까봐 몰래 눈물만 훔치셨던 어머니…. 어떤 중년 배우가 이런 말을 했단다.“ 아쉽지 않은 인생이 어디 있어?” 아버지,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슴이 조인다.

일찍 결혼하는 문화를 가진 이곳 인도에서 20대 초반에 가정을 이루고,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미술선생님 수딜지‘( 지’는 존칭어)에게 요즘 한국어를 조금씩 가르친다. 어느날 닫는 모임 때 미타이(인도의 단과자) 1개씩을 선생님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수딜 지가 그 작은 과자 1개를 셔츠 주머니에 넣길래 왜 먹지 않는지 물어보았더니 딸에게 가져다줄 거란다. 


▶한국어 공부를 함께 하고있는 미술선생님 수딜지와 글쓴이

내 아버지의 모습이다. 내가 저런 사랑을 받고 자랐구나. 나는 미타이를 1개 더 받아 내 몫의 미타이 1개와 함께 종이에 싸서 쥐여 주었더니 부끄러워 하면서도 얼굴이 환해진 수딜 지. 서른 넘은 딸 밥그릇에 구운 고등어 한 토막과 김치를 얹어주시며 같이 먹으면 더 맛있다던 우리 아버지, 어머니의 모습이 겹쳐졌다.

‘도랑’은 나의 친구
의사소통의 어려움, 앞선 의욕과 열등감, 지극히 개인적인 내 성향이 모두 드러나는 8명의 소규모 공동체 생활…. 어느 날 식욕인지 화풀이인지 모른 채 방에서 비닐에 든 과자 한 봉지를 혼자 먹으면서 작은 구멍으로 들어오는 한 줄기 빛을 보았다. 상처투성이, 외로워하는 내 모습이 거울에 비추인 듯 보였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구나.

과자 한 봉지를 계기로 살펴보니 공동체 생활이 불편했던 이유가 있었다. 혼자 있을 때 내 맘대로 행동하는 나와, 사람들이 있을 땐 그러지 못하는 나 사이에서 생기는 불만이었다. 그런 불만 투성이의 나를 예뻐할 수 있겠는가. 문제 제기를 받아서 문제를 제기하는 그의 행동이 바르지 않아서거나, 그 모습들이 못마땅한 게 아니라 2년을 공동체 생활을 하고도 마음 씀씀이 하나 행동거지 하나가 정갈하지 못한 나, 나에게 보이는 내 모습이 떳떳하지 않았고 밉고 괴로웠다. 그래서 다짐했다. 남 앞에서 못할 행동은 혼자 있을 때도 하지 말자. 내 맘에 드는 내가 되자.

인도에서 처음 맞이한 천일결사 입재식 날, 전정각산을 마주한 법당에서 보광법사님과 공동체 식구들과 함께 100일 동안의 과제 하나씩을 스스로 잡아, 나누기를 했다. 내가 잡은 내 100일 과제는‘사소한 일에 성실하겠습니다’였다. 늘 하는 일 하나하나 못마땅하고, 도대체 왜 이러는지 모르겠고, 쓸데없는 일만 하는 것 같은 나. 그래서 늘 대단한 일, 중요한 일, 아니 그렇게 보이는 일들만 찾아다녔다. 과제를 통해 바꿔보고 싶었다. 그냥 한번 해보자. 설사 정말 하찮은 일이라도 100일간 그냥 성실하게 하자. 100일 뒤 다시 생각하자.

그 과제가 나에게 좋은 약이 되었다. 불편해서 벗어나고 싶던 공동체 생활은 내 마음을 치료하기에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스님, 법사님들이 그렇게도 강조했던‘계율은 나를 옥죄는 도구가 아니라, 나를 지켜주는 것’이라는 말씀이 그제야 가슴으로 내려왔다. 그렇게 한마음 돌이키고 나니, 숨 막히는 공동체 속의 내가 아니라 나를 위해 존재하는 공동체, 내 수행을 도와주는 공동체가 되었다.

이렇게 외줄 타듯 순간순간 흔들흔들, 휘청휘청하면서 나를 알아가고 있다. 공동체 생활 3년이 가까워지면서 이제야 나를 조금씩 받아들이고, 아껴본다. 그런 지금‘사소한 일에 성실하자’는 100일 과제가 톡톡히 도움이 되고 있다. 한마디로 내 인생이나 똑바로 살면 되는 일! 요즘 간혹 정신이 똑바로 차려지는 날이면, 상근활동 전 봉화에서 당시 행자였던 김은경 반장님이 해 주던 말이 생각난다.“ 행자님은 잘 나가다가 꼭 이상한 도랑으로 퐁 빠져요!”그 말이 1년 반이 넘어가는 지금에야 조금 이해가 된다. 각자의 삶이 있고, 각자의 과제가 따로 있다. 아무리 애틋한 내 가족들도 자신의 삶을 스스로 꾸려나갈 권리가 있고, 아무리 퍼주고만 싶은 이곳 인도 아이들이라도 넘치게 건네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남의 인생 기웃거리지 말고 나 하나 똑바로 살면 된다. 그게 나를 사랑하고, 모두를 존중하는 일인데 말처럼 쉽지 않다. 그렇게 쉽지 않은 일이니 나도 나를 탓할 필요 없이, 또 도랑에 빠졌구나 하고 훌훌 털고 일어나 다시 걸으면 될 일이다.



얼마 전 인도에는 대홍수가 일어나 긴급구호를 한번 가보겠냐는 보광법사님의 질문에 물러나는 마음이 훅 일었다. 그리고 퉁명스럽게“영어가 안 되는데 제가 어딜 가요?”라고 말씀드렸다. 옆에 있던 법우님이“제가 갈게요”하니 갑자기 서운한 마음이 일어났다. 이랬다 저랬다, 내 마음이지만 얄궂었다. 그때 혼자서 속으로 피식 웃었었다. 얄궂은 마음 덕에 또 하나 배웠으니까. 명상할 때 잠이 오고, 수백만 가지 잡생각이 들고 걱정이 들어도, 다시 호흡으로 돌아가듯, 이 일로 이 마음이 올라오고, 저 일로 저 마음이 일어나도 그저 아무 일 없듯 조금은 뻔뻔스럽게 다시 ‘사소한 일에 성실하기’로 돌아온다.‘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 처럼’이라는, 별로 좋아하지 않던 이 문구가 내 수행과 연관이 있을 줄이야. 

며칠 전 이곳 인도에서 처음으로 입재식을 생방송으로 내보냈다. 두말 없이 나의 100일 과제는 ‘사소한 일에 성실하기’에 하나가 더 추가되었다.‘ 예불 정성껏 드리기’였다. 인도는 너무 더운 탓에 낮에 정진하기가 어려워 새벽 4시에 일어나던 문경에서보다 1시간 일찍 일어나 삼백 배 정진하고 새벽 예불에 참석하는데, 피곤해서 너무너무 예불하기 귀찮아질 때가 많다. 엎드려 자고 싶기도 하고, 그렇다고 새벽이라고 시원한 것도 아니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불만을 잠재우는 명약인‘사소한 일에 성실하기’를 과제 삼아 보니 마음의 허전함이 조금씩 채워져 가는 이 느낌이 참 좋다. 숭숭 뚫려 늘 춥던 가슴을 한 땀 한 땀 꿰어가는 뿌듯함이 있다.

뜨거운 인디아, 사랑스러운 인디아
인도 오기 얼마 전 보수법사님의 수련 돕는 이로 참가한 적이 있다. 그때 법사님께서 수련생들에게 하셨던 한 마디는 내가 사로잡힐 때면 나를 구제해 주는 튼튼한 동아줄이다.“ 여기에서 배운 많은 것들을 다 잊어버려도 좋아요. 하지만 탁 내려놓아 버린 지금의 이 느낌! 이 느낌만은 잊지 마세요!” 

매일 아침 교문을 들어서며 “나마스테, 시스터~!”인사하며 까르르 까르르 웃는 아이들. 아이들을 보며 또 탁! 내려놓고 학교로 들어간다. 아이들의 환한 웃음 앞에선 얼굴을 찡그릴 수가 없다. 누구라도, 어떤 사로잡힘이라도 이들 앞에선 솜사탕이 되어 녹아버릴 것이다.

 

* 이 글은 월간정토 2017년 12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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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댓글 3개
  •  문수미 2018/01/18 11:23
    민정법우님의 글을 읽으며,
    저도 덩달아
    탁! 놓아집니다. 도반이 스승입니다
    밝고 건강한웃음이 뭉클하네요..
  •  내마음그대로본래마음 2018/01/15 19:01
    여기에서 배운 많은 것들을 다 잊어버려도 좋아요. 하지만 탁 내려놓아 버린 지금의 이 느낌! 이 느낌만은 잊지 마세요!”
    감사합니다^^♡
  •   2018/01/15 18:50
    감명깊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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