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재일 법문]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으신 성도재일을 맞이하여 2015년 1월 27일에 설법하신 법륜스님의 성도재일 법문을 싣습니다.
깨달음의 정각

오늘은 부처님께서 6년 고행 후 마침내 깨달음을 얻고 부처님이 되셨다고 하는 성도재일입니다. 부처님이 성도 후 45년에 열반에 드셨으니 지금으로부터 2,600여 년 전의 일입니다.



고락의 뿌리 
부처님은 룸비니에서 태어나 29살 되던 해에 인간의 참자유와 참행복, 즉 모든 속박에서 벗어난 해탈과 모든 괴로움이 사라진 경지인 열반을 얻기 위해 왕위를 버리고 출가하셨습니다. 부처님은 당시 인도 대륙에서 가장 큰 나라 마가다국의 수도인 왕사성으로 가셔서 두 분의 스승을 만나 부지런히 정진하여 스승의 경지에까지 이르렀지만, 그것은 완전한 해탈이 아님을 깨닫고 스승의 곁을 떠나‘가야’라고 하는 곳에 이르렀습니다. 당시 시체를 버리는 곳이었던 가야 근교의 시타림인 전정각산 아래에서 목숨을 걸고 정진을 하셨습니다. 더위와 추위, 벌레 등에 아랑곳하지 않고 식음도 전폐하다시피 해서 갈비뼈가 드러나고 뱃가죽이 등허리에 달라붙어 얼핏 보면 죽은 사람 같았습니다. 천민 아이들이 숲속에서 부처님을 보고‘저 사람이 살았나, 죽었나’하며 막대기로 때리고 찌르고 할 정도였습니다. 죽음이 눈앞에 어른거릴 정도로 그렇게 무려 6년이나 고행을 했지만 깨달음을 얻지 못했습니다.

 6년이 지난 뒤 가만히 자신의 지난 삶을 돌아보니, 12살 때 새가 벌레를 잡아먹는 것을 보고‘왜 하나가 살려면 하나가 죽어야 하는가’하며 염부수 아래에서 사색할 때보다도 오히려 지금의 선정이 더 못한 수준인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수행을 자세히 점검해보니 세속에 살땐 욕망을 좇아서 먹고 싶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고, 그러면 기분이 좋아지는 그것을 행복으로 삼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 역시 기분 좋은 걸 추구하며 그것을 행복이라고 생각하지요. 그러나 욕망이 채워지면 그 만족감이 지속하지 않고 욕망이 계속 커집니다.

‘1억만 있으면 좋겠다’생각했는데 1억이 들어오면‘아이고, 저 사람은 10억이 있네’하면서 그렇게 크던 1억이 이제 별것 아니게 돼요. 이렇게 또 욕구가 일어나고 번뇌가 따릅니다. 그래서 즐거움을 행복으로 삼을 때 그 행복은 지속이 안 돼요. 하나를 만족하게 하면 또 다른 괴로움이 생겨요. 그래서 욕망을 따라가면 완전한 행복에 이를 수 없습니다. 만족했다 불만족했다가, 이렇게 고락이 반복됩니다. 그것을‘윤회’라고해요. 고락이 되풀이 된다는 것이지요. 여기 앉아있는 것도 고락의 되풀이예요.‘ 스님 직강이란다’하면 기분이 좋다가 한 시간이 넘어가면‘아! 길다’, 두 시간 넘어가면‘아, 스님 말씀이 너무 많다’, 즐거움은 온데간데없고 괴로움만 남습니다.

결혼하면 행복할 것 같았는데 결혼하고 나면 결혼 때문에 괴롭고, 자식이 안 생겨서 괴롭다가 자식이 생기면 좋지만, 오히려 그것이 또 괴로움이 되고…. 정토회 와서도 마찬가지예요. 괴로워서 왔는데정토회와서봉사하다가괴로워진사람이많아요.‘ 정토회만안나가도, 총무만 안맡아도 살만한데…’하는 마음이 반복되는 겁니다.

고락은 동전의 양면처럼 분리될 수가 없어요. 고락의 뿌리는 욕망이에요. 뿌리인 욕망으로부터 충족과 불충족이 생기고, 이렇게 되풀이돼요. 끝이 안 나는데 우리는 늘 이것만 충족되면 끝날 것으로 생각해요.‘ 내집만마련하면무슨걱정이있나’해도그게끝이안나요. 모든 고락의 원인은 욕망입니다. 욕망을 따라가면 평생 욕망의 노예가 됩니다. 그래서 욕망의 씨를 말려 용납하지 않아야 진정한 자유가 온다고 생각하고 부처님은 6년간 욕망과 싸웠습니다. 어떠한 욕망도 용납안 하는 심한 고행을 했는데 이것 또한 완전한 해탈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결국 욕망을 따라가는 것도 욕망의 노예이지만, 욕망을 억압하는 것도 욕망의 노예라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욕망을 따라가는 것도 욕망에 대한 대응이고 거부하는 것도 욕망에 대한 대응입니다. 누가 손을 잡아 끌어당기면 끌려가는 것도 대응이지만, 안 가겠다고 버티는 것도 대응입니다. 현상은 정반대이지만 뿌리를 보면 같은 것이에요. 바로 이것을 발견한 것이 붓다의 위대함입니다. 욕구가 나쁘다고 정반대의 길로 갔는데, 그 뿌리가 같음을 발견한 것이 대단한 일이에요. 그 고행마저도 욕망의 대응이라는 것이지요.

알아차리기와 지켜보기
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면 우리에겐 두 가지 길밖에 없잖아요. 하든지, 아니면 참든지 말이죠. 다리가 아프면 펴든지 아니면 이를 악물고 참든지, 이 두 길밖에 없는데, 이게 양극단이에요. 이쪽 아니면 저쪽, 두 길에 치우칩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발견한 제3의 길은‘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욕망을 욕망이라고 알아차리는 것, 다리에 통증이 있다고 알아차리는 것, 그리고 이 알아차림을 찰나찰나로지속하는것을‘지켜보기’라고합니다.‘ 담배가피우고싶다’하면‘담배 피우고 싶은 욕구가 올라오는구나’하고 다만 알아차릴 뿐이지 참는 것이 아닙니다. 긴장할 필요가 전혀 없어요. 이것은 고행이 아닙니다. 안 한다는 면에서는 고행과 같지만 참지 않는다는 측면에서는 고행이 아닙니다. 양극단에 치우치지 않는 것을‘중도’라고 말은 하지만, 이것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이것이 붓다가 발견한 완전히 새로운 방법이에요.

무언가를 안 한다 하는 것만으로는 수행이 아니에요. 단지 그것을 알아차리는 거예요. 붓다는 잘못된 길에 대해 반성하고 잘못된 길을 정확하게 분석해서 새로운 길을 발견한 것이지, 처음부터 쾌락주의에서 바로 중도를 발견했을까요? 아니에요. 여러 번 시행착오를 거쳐서 새로운 길을 발견한 거예요. 그것도 양쪽을 끝까지 가봤으니 알았지, 중간쯤 갔으면 몰랐을 거예요.

그러니 시행착오는 낭비가 아니에요. 잘못된 것을 확인했기 때문에 다시는 그 길을 갈 필요가 없어요. 아닌 것을 확인할수록 제대로 가는 길을 발견할 확률이 높아집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이것을 낭비라고 생각합니다. 무턱대고 가는 게 아니라 최선을 다해서 갔는데도 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나쁜 게 아니에요. 큰 깨달음입니다. 우리는 아닌 것을 아닌 줄 모르는 게 대부분입니다. 이렇게 온갖 번뇌와 유혹을 뛰어넘어 깨달음을 얻으신 날이 음력으로 12월 8일입니다. 여러분은 성도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마음속에서 모든 번뇌가 사라져 버렸어요. 우리는 무의식, 즉 자신의 카르마로부터 늘 영향을 받고 있어요. 그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진 경지, 이것이 해탈과 열반의 경지입니다. 무의식에 지배를 안 받는 것은 아무런 편견이 없다는 거예요. 우리는 자유를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인 줄 아는데, 그게 아니라 주어진 어떤 상황에서도 두려움과 번뇌, 속박이 없는 상태를 말해요. 이것이 해탈입니다.

성도의 길을 따라 행복으로 가다
부처님께서 이 좋은 법을 혼자만 간직하지 않고 우리에게 이렇게 하면 된다고 자세히 알려줬기 때문에 우리는 그 길을 가기가 무척 쉬운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도 싫다는 거예요. 부처님처럼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고 옷도 안 입고 들판에 혼자 있고 갈비뼈가 나오도록 그렇게 수행할 것을 요구하지 않잖아요. 먹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뭘 먹든지 그저 조금만 먹어서 배만 채우면 된다, 이런 정도로 생각하면 먹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한 끼 굶었다고 괴롭지 않습니다. 시체 쌌던 옷을 주워 입으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옷을 입으면 되지, 명품에 좀 껄떡거리지 말라는 얘기입니다. 모양과 색상에 껄떡거리지 말라 이거예요. 나무 밑이나 동굴에서 자라는 것이 아니라, 집 평수와 모양에 껄떡거리지 말라 이런 얘기입니다. 맨발로 다니라는 것도 아니니까 그냥 발에 가시만 안박히면 됐지 명품 구두 찾고, 구두 장사도 아닌데 집에서는 종류별 색깔별로 쫙 놔두고 그러지 말라는 거예요. 대중교통이든 자가용이든 타고 다니면 되지, 더 무게 잡고 타기 위해 돈 많이 들이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기 인생도 제대로 못 살아서 건강도, 돈도, 아이도, 시험도, 승진도, 이런 것들을 다 부처님에게 해달라고 하잖아요. 부처님이 다 해주면 여러분이 도대체 노력하는 일은 뭐가 있어요? 동물들도 자기가 먹을 것 알아서 먹고 사는데, 왜 인간이 그것을 남한테 해달라고 합니까? 부처님의 법을 천분의 일만 알아도‘아! 부처님은 안 먹고도 살았는데 이 정도면 됐지. 분소의를 입었다는데 이 정도면 되었지’하게 됩니다. 부처가 되겠다는 사람이 왜 부처님한테 해달라고 합니까? 붓다의 지혜를 조금만 살피면 얼마든지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어요.부처님의 성도는 우리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놓은 거예요. 여러분이 조금만 어리석은 생각에서 벗어나면 삶을 만끽하며 자유롭게, 그리고 세상을 유익하게 하면서 살 수 있습니다. 절에 오래 다닌다고, 법문 많이 듣는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정말 생각이 탁 바뀌어야 합니다. 머리 안 깎아도 출가자의 마음을 내야 돼요. 그러면 세상이 혼탁한 것을 해결할 수 있어요. 그렇지 않으면 자기 생각에 빠져서 욕망의 세계에 갇혀 지옥의 불덩이 위에 사는 것과 똑같아요.

그러니 탁 내려놓으면 우리는 지옥으로 가도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덕 보려고 하지 말고‘내 인생 정도는 내가 알아서 살고, 내 주위에 조금이라도 도움 주는 사람이 되자’이런 관점을 가지면 성도의 은혜, 붓다의 깨달음의 은혜를 마음껏 누릴 수 있습니다.그러니오늘짧은시간이라도정진을하세요. 복비는정진을하지마시고요.‘ 나도오늘생각을 바꿔 살아야겠다. 카르마에 끌려다니는 삶을 그만 살아야겠다’다짐하는 기도를 하세요. 그러면 여러분의 삶에 큰 변화가 올 거예요. 성도의 은혜를 만끽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글은 월간정토 2017년 1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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