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수련 바라지 소감문]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김진애163차 명상수련 바라지, 164차 명상수련 참가

글쓴이

갑작스러운 엄마의 유방암 진단
 2006년부터 10년간 직장생활을 하고, 지난 9월 휴직계를 냈다. 휴직하기 한 달 전 엄마에게서 연락이 왔다. 가슴 통증이 너무 심하다고, 뭔가 이상하다며 유방 검사를 하러 간다고 했다. 그때만 해도 ‘별일 없겠지.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엄마가 설마 암일까’생각하며 담담하게 결과를 기다렸다. 그런데 조직검사 결과, 엄마는 유방암 2기였다.

 부처님도, 하느님도, 그렇게 엄마가 제사를 드렸던 조상님들도 모두 원망스러웠다. 아빠 때문에 고생하고, 자식들 키우면서 버텨온 엄마한테 어떻게 그러실 수 있지. 나를 지켜준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한 배신감이 들었다. 그동안 동정했던 아빠가 미워지기 시작했다. 아빠 때문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생각했는데, 아빠가 이제는 엄마까지 죽게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미칠 것 같았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눈물을 흘렸다. 엄마가 곧 죽을 것만 같아 너무 두려웠다.

아픈 아빠, 가장이 된 엄마
 우리 아빠는 어린 시절 부유했던 할아버지 밑에서 공부를 많이 했고, 똑똑했다고 한다. 그런 아빠가 결혼 후 멀쩡히 다니던 전자회사와 농협 근무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우울증과 조현병으로 입원을 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 충격으로 고모 2명이 조현병 치료를 받았고, 아빠 또한 가족력으로 그렇게 병을 앓았던 것 같다.

 어릴 적 아빠는 다정하긴 했지만 뭔가 다른 아버지들과는 달랐다. 병 때문인지 엄마에게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고, 나도 이유 없이 아빠에게 맞고 크게 놀랐던 기억이 있다. 아빠는 병이 좋아지면 직장을 다녔지만, 금세 그만두었다. 집에 눌러앉아 잠자고 담배만 피웠다. 우리가 대학에 다닐때쯤 망상증이 재발하여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경제적으로 무능력한 아빠를 대신해 엄마가 가장 노릇을 했다. 염색약 냄새가 코를 찌르는 염색공장에서 30년간 밤낮으로 일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우리를 대학까지 공부시켰다. 그런 엄마인데도 나는 감사할 줄 몰랐다. 무능력한 못난 아빠도, 그런 아빠에게 악다구니하는 엄마도 미웠다.부모는 나에게 마음의 짐이었다.


▶구절초가 한창인 명상수련원

 결혼 전 남편은 내 이상형이었다. 영화처럼 만나게 된 인연이었다. 나는 우리가‘부처님 인연’이라고 생각했다. 신혼 6개월 동안은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평생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열심히 하던 청년 정토회 활동이 시들해지며 이상하게도 남편에 대한 불만이 생겼다. 작은 불만이었던 것이 어느새 돋보기로 확대한 듯 커지며‘이 사람이 정말 내 인연이 맞나’하는 깊은 의구심이 들었다. 결혼 후 심리적으로 부담감이 큰 부서에서 일하면서 일부러 임신을 피했다. 내 스트레스로 정신적 문제아가 태어날지도 모른다는 공포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부서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나서도 꽤 오랫동안 그런 두려움이 있었다. 지금도 그 두려움을 완전히 떨치진 못했다.

나를 돌아보게 된 계기, 명상 바라지
 직장생활을 하며 가끔 정토수련원에 다녀왔다. 수련을 마치고 바라지를 하겠다며 문경에 남는 이들이 부러웠다. 자유로운 영혼 같았다. 휴직 후 나도 자유롭게 마음공부를 해보고 싶은 마음에 명상수련 바라지를 신청했다.

 택시에서 내린 순간 어깨가 축 처지며 그동안 긴장돼 있던 몸이 풀리기 시작했다. 명상원 공양간에는 나와 비슷한 결혼 3년 차 예쁜 새댁이 먼저 와 있었고, 정토지 편집장 소임을 하던 보살님이 공양 팀장으로 계셨다. 두 사람 다 인상이 편안하고 좋아 4박 5일이 꿀 같은 휴식이될 것 같았다.

 예상은 했지만, 명상수련 공양간 소임은 정말 한량이나 다름없었다. 공양간 옆으로 핀 구절초꽃을 감상하며 감자를 찌고, 과일을 깎고, 밥을 하면 하루 일과가 끝났다. 나는 수련생 과일을 담당하면서 함께 공양하시는 노스님과 법사님, 그리고 바라지 5명의 반찬과 간식을 만들었다. 음식을 하는 일이 즐거웠다.

 그렇지만 평화로울 것만 같던 바라지 생활에도 걸림이 있었다. 직장에서 고민했던 어려움이 작은 공양간에서도 반복되었다. 팀장님이 나와 나이가 비슷한 바라지와 더 친하게 지내는 것 같았다. 곧 내 마음속에서 질투가 일어났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올라왔다. 두 사람을 보기가 불편했다. 사랑받고 싶은 마음 때문에 나는 스스로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었다.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우리 명상 바라지들은 덕생법사님과 함께 차담을 했다. 기도하기 싫다는 내 고민에 법사님께서“사람을 살리는 사람이 되겠습니다”라는 기도문을 주셨다. 뜻하지 않은 기도문에 어안이 벙벙했다. 그리고 뜨끔한 마음이 들었다. 그동안 아빠에게, 그리고 내 주변 사람들에게 품었던 살심을 눈치 채신 건가? 하면서도, 이 기도문이 내 것이 맞나 싶기도 했다.

 바라지 이후 집으로 돌아와 정진을 하면서도 계속 마음속이 뜨끔뜨끔했다. 나에게 안 맞다 싶을 때도 있지만 이번만큼은 그냥 정진하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법사님과 차담 후 백화암에서(맨 오른쪽이 글쓴이)

바라지를 마치고 이어진 명상수련
 명상수련 바라지가 끝나자마자 다음 명상수련을 신청했다. 바라지를 하면서 수련생과 함께 법문을 듣고 명상했던 일이 좋았기 때문이다. 3년 전엔 없었던 허리와 다리 통증을, 짧지만 강하게 체험했다. 명상수련을 마치면서 지금껏 내가 잘해보려고 했던 고민이 다 부질없는 일임을 알게 되었다.

명상하며 이렇게 편안하게 살 수 있는데…. 
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 건 남이 아닌 나였음을 알게되었다.

 이런 소득들도, 의심이 많고 자기중심적인 나에게는 얼마 지나지 않아 없어질 약발임을 안다. 매일 정진할 것이고, 매달 한 번은 문경으로 가야겠다고 다짐한다. 이런 인연을 가진 나는 정말 복이 많은 사람인 것 같다. 지금 있는 그대로 고맙고 감사하다.

 


* 이 글은 월간정토 2016년 12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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