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 소감문]
700명과 함께한 바라지장
이 음식은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입니다 


윤민아2015년 1월~ 수련 공양간 공양주

공양간 - 낯설고 어색한 공간
 백일출가를 마친 후 수련 공양간(깨달음의장∙나눔의장 공양을 짓는 공양간)에 소임이 배정되었을 때다. 몸을 많이 쓰고 나누기를 많이 할 수 있으니 딱 맞는 소임이라고 하는 반장님 말씀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한편으로는 재미있을 것 같은 호기심도 일었다.

 하지만 막상 바라지장에 들어가니 공양간에‘투하’된 기분이었다. 수련원에 들어오기 전 지리산수련원에서 서너 번의 바라지를 하고 백일출가 때 부공양주 소임도 했지만, 요리를 못하고 집안 일이라곤 전혀 안 해본 내게 부엌은 여전히 낯설고 어색한 공간이었다.

 그런 공간에서‘한 요리 하신다’하는 보살님들부터 설거지 한번 안 해본 귀한 손을 가진 거사님들, 나처럼 빨간 고추와 파란 고추의 품종이 다르고 참깨와 통깨가 다른 아이들인 줄 아는 법우님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바라지들과 한 공간에서 시간 맞춰 공양을 지으려니 말이 좋아 수행이지 전쟁터만큼 정신이 없었다.

 밖에서는 대부분을 혼자 일하던 나에게 사람들과 부대끼며 함께 하는 일은 생각보다 버거웠다. 그러는 과정에서 불안하고 긴장되면 허둥대기 일쑤였고, 게다가 지치면 무기력함이 올라왔다. 지나고 나니 이렇게 정리가 되지만 사실 그 당시에는 뭐가 뭔지 몰랐다.

 사람들 앞에 서면 긴장을 잘하는 나는 열 명 남짓한 바라지들 앞에서조차 입재식을 할 때, 안내할 때, 나누기 할 때 몸이 굳고 얼굴이 붉어졌다. 밖에서는 내가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힘들어하는 사람인지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살았다.

 그뿐만 아니라 안내한 대로 잘 진행되지 않으면 화와 짜증이 올라왔고 시간 맞춰 내지 못할까봐, 요리를 망칠까봐 늘 불안했다. 그렇게 바라지들 앞에서 짜증을 내고 나면 몰려오는 자책감에 사람을 피하고 싶었다. 어린 시절 엄마의 짜증이 싫었는데 내가 같은 모습으로 사람들을 대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공양간 3년이면 성불한다?
 그렇게 1년이 넘어가니 성불은 아니더라도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수행의 시작은 나를 아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하는데 공양간은 자신의 모습을 가장 빨리, 정확하게 볼 수 있는 공간이었다.

▶바라지장 홍보 부스에서

 “안내하기 벅차다, 저런 성향의 사람은 싫다, 저 사람이 문제다”하면서 투덜대던 내가 1년이 지나니‘감정적인 사람, 인내심이 부족해서 잘 지켜봐주지 못하는 사람, 불안함이 많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런 것들을 인정하니 상대방을 탓하는 일이 많이 줄어들었다. 게다가 워낙 다양한 사람들이 다녀가다 보니 이제는 웬만한 일에는‘그렇구나…. 다 이유가 있겠지….’하는 여유가 생겼다. 모두가 생긴 모양이 다르듯 성격도 다를 뿐, 나를 힘들게 하려고 오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가끔 안내한 대로 안 하는 분들이 계시면“거사님~ 이렇게 하셔야죠~.”“에구…. 내가 보살님땜에 못살아~”하며 농담을 섞어가며 안내하기도 하고 짜증을 낸 다음 슬며시 말도 걸어보고…. 늘 안 되는 나를 자책하던 1년 전과 비교하면 엄청난 발전이었다. 밥솥에 쌀만 넣고 불을 올리는 사람, 행주 삶을 때 사용하는 냄비뚜껑으로 음식을 덮어 냉장고에 넣는 사람, 동시에 큰소리로 질문하고 빨리 알려주지 않는다고 화를 내는 사람들을 봐도 웃으며 넘어가거나,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설명할 수 있는 정도가됐으니말이다.

 기본적으로 무기력함이 있던 나는 수련이 없는 날은 몸이 무거워 걸음걸이 떼는 일조차 힘들어하다가도 막상 바라지장만 시작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날아다녔고, 음식을 잘하지는 못하지만 어떤 일이라도 하라고 하면 죽이 되든지 밥이 되든지 해볼 수 있는 용기도 생겼다. 또 사람들 앞에서 잘은 아니지만, 전보다 덜 긴장하며 바라지장을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다른 사람들을 통해‘내가 잘 모르던 나, 외면하고 싶던 나, 민낯의 나’를 마주하며 가벼워졌다. 그러고 나니 바라지에 처음 참여하는 사람들과도 가족 같은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한 번은 새로 산 밥솥이 자꾸 말썽을 부려 AS를 신청했는데, 기사님이 살펴보더니 기계에 문제가 없다고 하자 바라지들이 내 뒤에서 거세게 항의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작동 버튼을 잘못 눌러 생긴 일로, 수련원이라는 곳에서 된통 당하고 간 기사에게 모두 미안해하며 어쩔 줄 몰라 했던 기억이있다.

 선주법사님께서“사람은 먹어야 살 수 있으니 음식을 만드는 일은 사람을 살리는, 사람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지금은 내가 어떻게 이렇게 좋은 소임을 맡게 되었지? 어쩌다 이런 행운이 나에게 왔지? 싶은 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토털 케어 - 바라지장
 나는 스스로 바라지장을 토털 케어 수행 프로그램이라고 이야기한다. 지도법사님의 법문을 듣는 시간에는‘아…. 그래…. 저런 마음으로 하면 되는구나….’하고 마치 다 깨달은 것처럼 가벼운 마음이 된다. 그러다가 공양간에 들어가 바로 분별하고 짜증 내는 나를 보게 되면 괴로운데, 공양간은 그렇게 머리로만 알던 법문을 사람들과 몸으로 부딪치면서 내가 얼마나 옳다는 생각이 강한 사람인지 알게해 주는 공간이다.‘ 수련 오신 부처들께 올리는 공양을 짓는다’는 한 가지 목표를 가지 고 힘들 땐 서로 돕고, 때로는 자기주장을 고집하기도 한다. 그러다 서로 부딪치고 나누기를 통해 이해하며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기도 한다. 법문과 글로는 쉽게 변하지 않던 내가 바라지장을 통해 나를 돌아보는 법, 상대를 이해하는 법, 기다려주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또 법사님과의 일문일답 시간이면 질문을 통해 함께 공부해 나갈 수 있어 무척 귀한 시간이 된다.


▶바라지장을 마치고(앞줄 오른쪽 네 번째가 글쓴이)

밖에서 사는 동안 나는 머리로 아는 것을 내가 아는 것,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착각하며 살았다. 그런데 바라지장을 하면서는 그렇게 말할 수 없게 되었다. 바라지장에서는 내 모습을 감출 수도 없고, 거짓말을 할 수 없게 다 드러나기 때문이다.

나는 빨리 치열하게 수행을 하고 싶으신 분들이라면 꼭 바라지장에 오라고 종종 말씀드리곤 한다. 어떤 보살님은 개인적으로 힘든 일을 겪은 뒤 49일 동안 멀리 부산에서 매주 출퇴근하며 바라지를 했다. 그 보살님이 현재 팀장으로, 한 달에 한 주는 책임지고 바라지장을 진행한다. 보살님은 “정토회에서 여러 가지 봉사를 해봤지만 바라지장이 최고인 것 같다. 힘들지만 그만큼 도움이 된다”고 한다. 바라지 한 후 2주가 지나면 가족들에게 잔소리하게 되고 감정이 올라와 빨리 바라지장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단다.

“손님이 온다는 것, 그건 그 사람의 전 인생이 온다는 것”이라는 말처럼, 각기 다른 인생을 가지고 부족한 나와 함께한 700여 명의 바라지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 이 글은 월간정토 2016년 11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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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법을 전하는 정토행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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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댓글 2개
  •  평화로운 바보의 나눔 2017/01/10 02:16
    [정토회 오늘의 경전]

    정토행자 천일결사
    불기 2561년 01월 10일(화) 기도

    계율을 닦고 보시를 행하여
    복을 지으면 복을 누리며,
    여기에 있거나 저기로 가거나
    언제나 편안한 곳에 이른다.
    어떻게 하는 것이 선이 되고
    어떤 선을 행해야 편안히 머무르는가.
    어떻게 하는 것이 사람의 보배가 되고
    어떻게 해야 도둑이 빼앗아가지 못하는가.
    계율만이 늙어 죽을 때까지 편안하게 해주고
    계율을 잘 지켜야 편안히 머무른다.
    지혜만이 사람의 보배가 되고
    복을 지어야 도둑에게 빼앗기지 않는다.
    비구가 계율을 세워
    모든 감관을 거두어 지키며
    음식을 스스로 절제할 줄 알면
    이치를 깨달아 마음과 응하게 된다.
  •  수보리 2017/01/09 12:00
    전쟁에서 살아 남으셨네요.
    항상 건강하시길. 건강이 제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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