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출가 행자들의 출가 이야기]

백일출가! 
출가하기를 참 잘했습니다

박수정 백일출가 28기

특강 시간에 질문하는 글쓴이

어느새 백일출가한 지 100일째 되는 날이다. 회향할 때쯤을 막연히 상상만 했는데 이렇게 빨리 올 줄 몰랐다. 백일간 출가한 행자로 지나온 길을 돌아보니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힘들기도 했지만 나름대로 재미도 있었다.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대학교 때 어머니와 우연히 들른‘희망 세상 만들기’강연장에서 용기를 내서 법륜스님께 질문했다. 대학생활에서 또래와의 관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참이었는데 스님으로부터 명쾌한 답을 얻으면서 마음이 아주 가벼워졌고, 자연스럽게 정토회에 기웃거리게 되었다.

 청년학교 프로그램, 인도 성지순례 등에도 참가했고, 대학을 졸업하고는 기분 좋은 마음으로 본격적으로 청년 포럼 상근 자원활동을 시작했다. 세상을 위해 뭔가 해보겠다고 불끈 다짐하고 달려들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힘이 들고 지쳐갔다. 일은 몰아쳐서 하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계속 부딪치면서 스트레스가 쌓여갔다. 하기 싫은 일이 점점 많아지고 좋아 했던 사람이 싫어지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뭐가 문제일까?’꽉 막힌 듯한 답답함을 해소하고 싶었다. 머리로는 평화와 통일은 해야겠는데 뭔가 나 스스로 발목을 잡는 기분이랄까. 정확하게 뭔지 모르겠지만 제대로 알고 부딪쳐 보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나와 마주하기 위해 백일출가에 입방하게 되었다.

 처음 법복을 입고 발우공양 하며, 뭐가 뭔지 모른 채 후다닥 정신없이 뛰어다니던 때가 생각난다. 대웅전에서 새벽 예불을 끝내고 자비당으로 가서 만 배를 시작했던 기억. 숨이 차고 다리도 아프고 점점 체력이 바닥으로 떨어지는데 힘들다고 말할 사람, 들어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몸이 아픈 것보다 의지할 사람이 없다는 게 더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오로지 나만 보고 나만 믿고 간다.’그렇게 스스로 용기 주고 다독이며, 숙이고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부처님을 대웅(큰 영웅)이라하는 이유, 대웅전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법륜 스님께 듣고 어떻게든 해내겠다고 다짐을 했다. 절하면서는 낳아주신 부모님도 생각나고, 같이 활동했던 동료들도 생각났다. 목탁 치며 관음 정근 해주는 바라지들과, 음식이 되어 내 몸에 살과 피가 되어준 곡식과 야채 등 많은 것에 감사한 마음도 들었다. 만 배를 다했을 때 스스로 뭔가 해낸 그 벅참이 지금도 남아있는 듯하다.


▶나눔의장 수련 후(뒷줄 오른쪽 두 번째가 글쓴이)

 만 배만 마치면 뭐든 술술 잘 될 줄 알았는데 웬걸,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정신없는《소심경》암기, 발우공양바라지교육,‘ 예’하고 한다는 일 수행, 정해진 시간 안에 삼시 세끼 먹어야 하는 공양 시간. 쉬엄쉬엄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끊임없이 쉬엄쉬엄 내 패턴대로 하고 싶은 욕구를 눌러가며 나름으로 열심히 따라갔다. 돌아보니 나는 백일출가의 모든 것을 깔끔하게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생전 처음 해보는 낫질에 혹여 다칠까봐 주저하다가도 거뜬히 해냈고, 밭에서 쪼그려 앉아 풀을 맬 때도 깔끔하게 일사천리로 하고 싶어서 허리 한번 펴지 않고 일하기도 했다. 일 수행을 하다가 가끔 장난치고 농담을 주고받으면“일 얘기가 아니면 하지 않습니다.”또 궁금한 걸 물으면“그런 게 궁금하시군요. 필요한 얘기가 아닌 것 같습니다.”라고 답하던 스태프 법우의 답변에 짜증이 났고, 행자는 그러면 안 된다고 스스로 규정하는 것이 쌓이면서 답답함이 커졌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또다시 하기 싫은 것이 쌓여가는 즈음이었다.


▶프리앙카지 박사님 특강 중(앞줄 오른쪽 첫 번째가 글쓴이)

나도 하기 싫어! 그래도 해야 하니까 하는 거야
 어느 날 두북수련원의 내리쬐는 햇볕 아래 밭 일을 하고 있었다. 등이 아파서 바구니를 오른팔에 걸치고 콩잎을 따고 있는데 화광법사님께서“무거운데 바구니 내려놓고 해”하셨다.

 그래서“몸이 안 좋아서 숙이는 게 불편합니다”라고 말씀드렸더니“오히려 그러면 더 내려놓고 해야지.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하니까 몸이 아프지. 얼굴에 하기 싫다고 쓰여 있어”하셨다. 나는 뜨끔했다. 내 마음을 들킨 기분이었다. “맞아요, 그래요”하니까 법사님께서 “나도 하기 싫어. 해야 하니까 하는 거지. 어이구 하기 싫어! 표현을 해봐라. 아이고 싫다! 그런데 나도 그렇고, 아버지들도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게 있으면 일하고 그래. 내가 하기 싫다고 손 놓고 있으면 여기가 엉망 된다. 근데 일이라는 게 막상 하다 보면 재밌어. 콩잎이 자라면 이렇게 따서 음식으로 해 먹을 수도 있지 않냐. 얼마나 예쁘냐.”나는 놀랐다. 

 나는 그때까지 행자는 하기 싫은 게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실제 내 마음은 귀찮고 하기 싫은데도 그 마음을 꼭꼭 숨긴 채‘해야 한다’는 당위만으로 나 자신을 옥죄고 있었다. 

 백일출가 전에는 힘들고 어려운 일은 될 수 있으면 안 하려고 했고, 백일출가 해서는 행자니까 하기 싫은 게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하기 싫은 게 없어야 되는 게 아니라하기 싫은 내 상태를 있는 그대로 아는 것이 수행이라는 걸 알았다.

 일어나는 마음을 외면하지 않고 바라보며 싫어도 할 수 있고 좋아도 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 이거였다. 좋고 싫음에 휘둘리던 내가 가려고 했던 길이.

아버지는 잘못이 없습니다. 보살입니다
 아버지는 마땅히 존경해야 할 분이라는 걸 머리로는 아는데, 아버지를 떠올리면 긴장되고 두려운 마음이 있었다. 술 마시고 늦게 들어와서 욕을 하고 화를 내던 아버지. 못마땅한 듯 대들던 나에게 아버지가 더욱 화를 쏟아내면 나는 그것을 상처로 꽁하게 간직하곤 했다.

 일체의장 수련에서 보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어머니뿐만 아니라 아버지도 진짜 보살이었구나’가 받아들여졌다. 아버지는 화를 내면 안 되고 반듯하고 친절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내 생각이, 최선을 다해 사는 아버지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런 아버지를 미워하고 원망하며 지냈던 나의 어리석음이 참회가 되었다. 아버지는 슈퍼맨도 아니고 부처님도 아니다. 그냥‘남자 사람’이었다. 아버지이기 전에 한 사람으로, 지치고 힘든 순간도 많았을 텐데 매일 일 하고 가정을 책임지고 꾸리셨다. 포기하지 않고 도망가지 않고 나를 이만큼 키워주셨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아버지 딸이어서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눈물이 났다. 뭔지 모를 내 안에 부족함이 채워지고 아버지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버지가 욕을 하고 소리를 치고 그때처럼 다시 한다 해도 이제는 그것과 상관없이 나는 행복할 수 있다. 내 행복 내가 만들어가는거니까. 

백일출가! 출가하기를 참 잘했습니다.
 백일출가 하지 않았으면 몰랐을 것을 너무 많이 알게 되었다. 예상대로, 아니 그보다 훨씬 더 많이 하기 싫은 일, 다른 사람이 시키는 일을 실컷 해봤다. 물론 지금도 하기 싫을 때가 있고‘예’하고 늘 흔쾌히 되는 건 아니지만, 그 마음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내가 하기 싫은 일이 생각만큼 못 할 일도 아니고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라면 해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먹고 싶을 때 먹어야 하고, 개구지게 놀고 싶을 때 놀고, 힘들 때면 누군가를 찾았던 사람이다. 내 마음대로 안 되면 짜증이 나고 누군가를 미워하기도 했다. 예전에‘나는 문제가 없는데 저 사람, 이런 상황 때문’이라고 착각하고 살았지만 이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알고 간다. 백일출가해서 좋고, 부처님 법 알아서 좋고, 지금 이대로 참 좋다. 자유로운 사람으로 이웃과 세상에 잘 쓰여야겠다.

 

* 이 글은 월간정토 2016년 11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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