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정토맑은마음,좋은벗,깨끗한 땅을 실현하는 정토회


 

인도 둥게스와리에서는 JTS 활동가들이 희망의 씨앗을 뿌리고 있습니다. 척박한 땅에서 문명 퇴치와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쓰는 정토행자들의 이야기와 둥게스와리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봅니다.
낯선 곳에서 를 만나다


박세환 행자대학원 11기, 인도JTS 총무팀

“업식의 밑바닥을 보게 될 거예요.”
인도에 먼저 다녀온 행자대학원 선배님이 말했다. 인도 출국이 얼마 남지 않은 때였다. 그때 내가 뭐라고 대답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그 말을 듣고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은 기억난다.

‘그래요? 이미 본 것만 해도 아주 밑바닥인데, 더 밑바닥을?’

업식의 밑바닥이라…. 사실은 나도 알고 있었다. 아직 밑바닥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본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두 겹, 세 겹 아래에 덮어둔 나의 모습들이 있다는 사실을.

더는 들춰 보고 싶지 않았다. 눈에 보일 듯하면 눈을 감았다. 마치 어둡고 습한 냄새나는 부엌 싱크대 아래 장판을 그냥 덮어두는 것처럼. 힘들여 걷어내야만 그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 아는 것은 아니니까. 그 아래 자리 잡고 있는 것이라고 해봐야 바퀴벌레 또는 곰팡이 같은 것들일 테지. 그런 장면과 마주하기 싫으니 그냥 덮어두기로 하자. 굳이 들춰낸다면 결코 유쾌하지 않은 것들을 봐야만 한다. 그런데 바로 여기 인도에 와서 그 덮어둔 것이 한 겹씩 걷히고 있다.

선배님의 말처럼 밑바닥을 보고 있다. 신기하다. 어째서일까? 내가 의도하고 걷어낸 것은 아닌데…. 그래서 더욱 그 바닥을 봐내기가 힘들었다. 눈앞에 펼쳐지는 나의 모습을 감당하기 힘들었고, 인정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으니 괴로웠다.

여기는 인도
나는 행자대학원 11기 행자다. 행자대학원 3년 중 1년간은 제3세계 국제 구호활동을 실습한다. 그리하여 생전 처음으로 인도 땅에 발을 디뎠다. ‘인도는 정말 더럽고 더럽고 더럽다’라고 익히 들어왔으나 눈으로 본 실상은 가히 충격이었다. 더럽다는 표현은 충분하지 않다. 그것은 더러움의 차원을 넘어선 혼돈과 무질서의 세계이다. 일단 더러움을 바탕에 깔고 시끄럽고 무질서하고 뻔뻔하다. 인도가 시끄럽고 무질서하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던 나는 이런 혼돈과 마주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그러나 내 마음의 준비 따위는 상관없이 인도는 그렇게 존재하고 있었다.

뉴델리 공항 문밖을 나가면서부터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현지 사람들이 우리에게 달려든다. 아마도 택시 호객꾼이겠지. 힘들게 그들을 뿌리치고 ‘프리페이드 택시’를 타기 위해 매표소로 향했다. 외국인을 상대로 택시 기사의 바가지요금이 횡행하자 인도 정부에서 만든 선불 택시인 ‘프리페이드 택시.’그 매표소에서 500루피를 사기당했다. 웰컴 투 인디아. 500루피를 사기당하고 나니 정신이 좀 차려졌다. 길에서 말을 거는 인도인들이 죄다 사기꾼으로 보였다. 외국 여행 좀 해 봤다는 나도 인도는 당해낼 수가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더러운 기차를 탔고, 밤새 달린 끝에 수자타 아카데미가 있는 가야 역에 도착했다. 역 밖으로 나와 보니 그곳은 뉴델리보다 더 심했다. 더 시끄럽고 더 더럽고 더 무질서했다. 길바닥에 사람들이 드러누워 있는데 거지라서 길에 누워 있는지, 아니면 그냥 누워서 쉬는 것인지 구분이 안 되었다. 이런 곳에서 1년을 살아야 한다니 정신이 가마득했다. 외국인을 보자 득달같이 달려들어 바가지를 씌우려는 오토릭샤 기사들을 물리치고 흥정 끝에 250루피에 오토릭샤를 잡아타고 드디어 수자타 아카데미에 도착했다.

아…. 정녕 이곳이 부처님께서 탄생하신 나라란 말인가! 내가 만난 인도는 부처님의 이미지와
너무 안 어울렸다.


▶프리앙카지, 정동표 님, 보광법사님과 짜이 마시는 중(왼쪽 첫 번째가 글쓴이)

모순
나는 평소 해외 구호활동에 대한 바람을 늘 마음속에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외국 생활에 대한 호기심도 많았다. 먹고 입고 자는 기본적인 인권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들이 매우 존경스러웠다. 돈과 명예를 얻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보람된 인생의 길이 그곳에 있다고 생각했다.

깨달음의장을 통해 알게 된 JTS의 해외 구호사업은 내가 정토회를 통해 인생의 방향을 바로잡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이번 1년의 인도 구호활동의 기회가 주어진 것은 정말 반가운 일로 여겨졌다. 그것도 부처님께서 태어나신 인도에서, 그 인도에서도 부처님이 6년간 고행하셨던 전정각산 밑에서 먹고 자면서 말이다.

그런데 인도에 와서 나의 마음은 어떤가? 낯설고 불편한 주변 환경에 대한 불만에 사로잡혀서 보람된 인생의 길 따위는 저 보이지 않는 한구석에 처박아두고 있다. 봉사하는 보람된 삶을 살고자 결심하고 인도까지 왔지만, 인도의 거친 환경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몸의 안락함을 먼저 찾는다. 이렇게 모순된 나의 모습을 발견하자 즉시 나의 업식이 발동한다. 내 꼴을 못 봐주는 마음. ‘네가 하는 게 그렇지. 네 꼬라지가 그렇지….’이렇게 말이다. 행자 생활의 큰 마장 중 하나가 자기 꼴을 못 봐내는 것이라고 들었다. 정말 그랬다.

내가 했던 행동과 생각과 올라오는 마음을 평가하고 점수를 매긴다. 이건 D 학점, 이건 F 학점 이런 식으로. 학사경고 수준의 점수를 매기고서 나의 존재 가치를 바닥에 내동댕이친다. 내가 가진 것, 내가 할 줄 아는 것들은 전부 쓰레기일 뿐이다. 나를 향해 끊임없이 일어나는 부정적인 마음들…. 그런다고 해서 직성이 풀리는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그렇게 괴로워지고 싶어 안달이 났다. 나에 대한 긍정이 없었고, 남에 대한 긍정도 없었다. 세상에 대한 긍정도 없었다. 나의 문제점, 못한 것만 확대하여 해석했다. 나는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왔다.

▶보드가야 태국절에서(왼쪽 첫 번째가 글쓴이)

나, 이런 사람이야
나는 이런 사람이어야 했다. 머리 좋고, 공부 잘하고, 스포츠 만능이고, 5개 국어는 네이티브처럼 말하고, 체력은 마라토너, 말솜씨는 오바마, 리더십 있고, 겸손하고, 유머 있고, 인기 많고, 돈은 재벌만큼 있고, 노래와 춤은 가수, 글솜씨는 작가, 그림은 화가, 사진은 포토그래퍼, 피아노는 피아니스트, 지식은 해박하고, 예술적 감수성이 풍부하고, 인품은 훌륭하고, 외모는 출중하고, 집안은 빵빵하고, 인도에서 살아도 마음의 평정심을 잃지 않고, 깨달음은 부처인 사람. 게다가 그 능력의 격차가 월등하여 다른 사람들은 따라올 엄두도 낼 수 없는 경지에 이른 사람….

그러나 이상의 높이와 인생의 괴로움은 비례했다. 나의 이상에 발끝도 미치지 못하는 나를 대할 때마다 나를 얼마나 미워했던가. 얼마나 열등감에 짓눌려 살았던가. 게다가 한술 더 떠 욕심도 많았다. 노력은 10만 하고 결과는 100을 얻고자 했다. 그래서 위에 열거한 것들은 노력으로 얻은 게 아니라 천부적인 재능이어야 했다. 이 지경에 이르니 이제는 재능을 물려주지 못한 부모님까지 탓했다. 나의 이상과 현실의 간격만큼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만큼 부끄러운 모습이었다.

그런데 행복해요
<월간정토>에 글을 싣기 위해 그동안의 행자 생활과 인도 생활을 찬찬히 돌아보니 나에게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말이다. 인생이 내 생각과 다르게 흘러가고,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던 시기가 있었다. 내 인생이 왜 갑자기 이렇게 꼬여버린 거지? 답을 알 수 없었고 희망은 보이지 않았다.

‘이건 아닌데…’하고 도망치듯 문경으로 내려가 만배를 했다. 그 후로 3년이 다 되어간다. 절에 들어가 살면서도 수행이 내가 원하는 만큼의 수준이 안 된다고 나를 못살게 굴었다. 좋은 점수를 받고 좋은 평가를 받아서 인정받아보려는 업식대로 살았다.

▶인도 스태프와 가야식당에서(왼쪽 첫 번째가 글쓴이)

절에 들어가 산다고 해서 나를 한순간에 바꿀 수는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돌아보니 분명한 변화가 있었다. 더는 남 탓 하지 않고, 잘나보려고 안달복달하는 마음도 상당 부분 진정되었고, 내 실수나 잘못을 지적받아도 금세 머리가 숙여지고, 나의 이상이 욕심이며 괴로움의 원인임을 안다. 늘 마음속에 자리 잡은 근심 걱정이 번뇌임을 알고, 이렇게 출가해서 공부한 공덕으로 이렇게나마 인생을 살아왔음도 안다. 부모님이 얼마나 훌륭하고 존경스러운 분들인지도 안다. ‘살아 있으면 행복한 일이고, 일상이 감사한 일’이라는 스님 말씀이 비로소 마음에 와 닿는다. 현재가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아직 이렇게 많은 괴로움의 원인을 안고 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하다. 나를 괴로움에 빠트렸다고 여겼던 여러 원인으로부터 조금씩 자유로워지고 있는 것은, 일어나는 마음을 알아차리는 연습을 해나가기 때문이다.

참 감사하다. 행복이란 결코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나도 좋고 남도 좋은 삶만큼 보람된 삶이 어디에 있겠는가? 나는 지금 그 길 위에서 행복으로 향하는 확실한 한 걸음을 내디뎠다.

 

* 이 글은 월간정토 2016년 12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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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법을 전하는 정토행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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