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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S 소식 - 필리핀]필리핀 민다오에서는 JTS 활동가들과 마을 주민들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 함께 희망을 일구어내고 있습니다. JTS 활동가가 전하는 알라원, 까나안, 가가후만 마을의 자립 이야기 들어보실래요?
감사합니다. 지금 이 순간 행복합니다

조혜림필리핀 민다나오 JTS 활동가


▶알라원에서 필자

모든 문제는 내 마음, 내 생각이 일으킨다
2015년 11월, 인도와 필리핀에 있는 JTS 사업장 중 어느 곳으로 갈지 결정하는 행자대학원 11기 도반들과의 회의. 인도에서는 요구 사항이 없었는데 필리핀에서는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입방하기 전 영어 강사였으므로 필리핀에 가야 한다는 도반들 얘기에, 인도에서 유치원 사업을 하고 싶다는 나의 의견은 가볍게 무시되었다.

영어 강사로 살아온 지난 10년. 영어는 스트레스였다. 영어를 전공하지도 어학연수를 다녀오지도 않은 나는 항상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필리핀으로 결정된 그날, 저녁 예불을 올리는데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언제나‘괜찮다’라는 말로 내 마음을 외면한 채 보낸 영어에 대한 스트레스가 한꺼번에 올라왔다. 내가 이렇게 날 몰라줬구나. 나를 남과 비교하며 자신을 자책하며 나를 갉아먹으며 살아왔구나.‘ 미안해.’나를 괴롭힌 나에게 참회했다.


▶5년 만에 파견된 알라원 교사와 아이들

그렇게 지난 1월 말 필리핀에 도착했다. 필리핀에 처음 와서 듣는 사람들의 영어는 잘 들리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잘 들리지 않았다. 처음에는 사람들의 발음이 이상하다고 탓했다. 그런데 발음이 좋은 사람의 영어도 들리지 않았다. 그다음에는 나를 탓했다. 잘 들리지 않을 때 그냥 웃으며 넘겼다. 그러다 문득 알아차렸다. 이렇게 웃음으로 넘기는 건 일을 이치에 맞게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그래서 그다음 부터는 자연스럽게 되물었다.“지금 당신이 말하는 게 이러이러한 뜻이 맞나요?”그러면 다시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사실 처음 되물었을 때 영어를 못하는 내가 창피했다. 그런데 상대방은 아무렇지도 않아했다. 사실 모든 문제는 내 마음, 내 생각이 일으켰다.

수많은 사람의 공덕으로 일이 되었다
지난 7개월 동안 주로 진행한 사업은 알라원 학교 개교 준비였다. 알라원은 자연보호 구역인 오지에 있는 마을로, JTS가 지은 학교 중 유일하게 지금까지 오토바이조차 진입이 안 되는 곳이다. 2006년에 학교를 완공했지만, 교육청과 군청의 무관심으로 지난 10년간 교사가 파견돼서 운영된 기간은 총 1년 남짓이고, 그마저도 임시 교사가 파견되었다. 그래서 작년부터 정식 학교로 개교하기 위한 준비가 진행되었다. 처음에 선임자로부터 인수∙인계받을 때만 해도 서류만 제출하면 다끝나는 줄 알았다. 실제로 일을 시작하니 준비해야 하는 서류의 양이 처음의 두 배가 넘었다. 자연보호 구역의 원주민 마을이라 갖추어야 할 서류가 많았다. 영어에 능숙하지도 않을뿐더러 심지어 몇몇 문서는 현지어인 비사야어로 작성해야 했다. 그렇게 시작된 일은 한고비를 넘으면 바로 다음 고비가 왔다. 자연보호국의회, 리보나군청, 교육청, 광산지질국, 마놀로폴티치 군청, 자연자원국, 원주민의회, 실리폰 면사무소 등등의 기관을 방문했다. 한국에서는 전화 한 통, 이메일 한 통이면 될 미팅 약속, 서류 수령도 이곳에는 해당 기관을 직접 방문하지 않으면 일이 진행되지 않았다. 


▶해외 학기 입재식에서(앞줄 오른쪽 첫 번째가 필자)

일을 하는 내 밑마음은 항상‘빨리 해치워 버리고 싶다’였다. 사실 나는 긴 호흡으로 하는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언제나 짧게 끝나는 일을 좋아하고 성과가 바로바로 눈에 보이는 일을 좋아했다. 내가 맡은 일이었지만 교육청과 군청의 일을 대신하고있 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NGO에서 할 일이 아니다, 외국인인 내가 할 일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꽉 쥐고 일을 했다. 그래서 조그마한 난관에도 쉽게 짜증과 화가 났다. 그렇게 나를 갉아먹으며 종종거리면서 마감 기한에 쫓기며 정규학교 개교라는 결과를 향해 과정들은 다 무시하면서 달려나갔다. 그렇게 서류 제출은 완료하였고 알라원은 올해 9월부터 정규 학교가 되었다.

일을 마치자마자 올라오는 가장 큰 생각은‘내가 했다’였다. 일주일에 2~3번 출장 다니고 서류준비도다내가했다. 그런데 이 글을 쓰면서 알게 되었다. 사실 나는 한 게별로 없다. 필리핀보다 훨씬 잘 사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온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필리핀 사람을 도와주는 NGO 단체의 활동가라는 이유로 과도한 환대와 친절을 받았던 것이다. 또 각 기관의 사람들 모두 알라원 학교가 개교하기를 바라면서 최선을 다해 도와주었다. 사실 그 수많은 사람의 공덕으로 알라원 학교가 개교했다.

내가 나를 갉아먹는다
그렇게 서류를 준비하던 6월 중순 아메바성 장염에 걸렸다. 병원에서 처방받은 항생제를 먹고 난 후 설사가 잠잠해지는 것 같더니 7월 중순 다시 시작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설사는 한 달이 넘도록 계속되어 필리핀 JTS 대표님께서 마닐라로 소환하셨다. 처음에는 한의원을 방문했다. 선생님은 진맥하자마자 “화병이네, 화병!”이라고 하셨다. 화병은 40~50대 아주머니들이 머리 싸매고 몸져눕는 병이라는 나의 편견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진단이었다. 양방에 가봐야 고작‘과민성대장증후군’이라 할 거라는 말씀에 3일간치료를 받았지만 호전되지 않아 양방을 찾았다.

한국에서도 해보지 못한 복부 초음파 촬영과 대장 내시경까지 했는데, 진단명은 역시‘과민성대장증후군’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줄곧 앓아왔던 고질병이다. 해볼 수 있는 검사를 다 해서 느껴지는 후련함과‘고작 이 병이라니?’라는 허무함이 있었다. 결국 처음에 방문했던 한의사 선생님 말씀이 맞았다. 그렇게 끝까지 다 가서야 나는 병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필리핀 현지 스태프인 미오 아저씨와 도반과 함께(오른쪽이 필자)

사실 나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마음이 항상 불안하다. 나의 불안함은 엄마가 나를 임신했을 때부터 아빠와 사이가 안 좋으셨고, 어린 시절부터 남동생과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며 질투심과 열등감을 느껴서 그렇다는 것을 행자대학원 1학년 2학기가 되어서야 알았다. 게다가 하는 일마다 완벽하고 깔끔해야 하는 결벽증과 강박증이 있어 상대방에게도 똑같이 그 잣대를 들이댔다. 그렇게 나는 나와 상대방 모두를 괴롭히며 살고 있었다. 지도 법사님의 수행법회 법문의 마지막은 항상 같은 구절로 끝난다.“지금 이순간 행복하세요.”그런데 나는 나와 상대방을 그렇게 괴롭히느라 행복하지 않았다.

애쓴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편하게 해요
며칠 전 2학년 2학기 종강 프로그램으로 3,000배 정진과 수련을 진행하며 나눈 나누기를 법사님께 이메일로 보내드리고 수행 점검을 받았다. 법사님께서 말씀하셨다. “애쓴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일을 해봐야 얼마나 하겠어요. 편하게 해요.” 문득 내 기도문이 생각났다. ‘제가 부족합니다. 부족한 저와 함께 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 글은 월간정토 2016년 10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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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법을 전하는 정토행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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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댓글 4개
  •   2016/11/29 14:16
    불안한 마음... 많이 공감이 갑니다^^ 잘 극복해 나가시길 빌겠습니다.
  •   2016/11/23 10:59
    알아차린 구석들이 곳곳에 절절하네요()
  •  딩크 2016/11/23 10:27
    질읽었습니다.
  •  바람 2016/11/23 00:55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시한번 마음을 돌아보는 기회를 갖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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