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정토맑은마음,좋은벗,깨끗한 땅을 실현하는 정토회


 

바라지장을 다녀와서

권유숙 | 문경수련원 바라지장

새벽 4시, 톡! 스위치 켜는 소리와 함께 방안이 확 밝아지면 부스럭부스럭 하루가 열린다.

이부자리 정리하고 간단하게 씻은 후 새벽의 어둠 속 대웅전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발걸음에‘고맙습니다.’라는 마음이 차오른다. ‘지심귀명례~’로 첫 입을 떼며 백팔배로 몸을 낮추어 행복한 바라지의 하루를 시작한다.

아침 발우공양은 너무 경건하여 늘 긴장을 풀지 않도록 채찍질하는 수련과정인 듯, 조금은 불편한 식사시간이었으나 대중의 일원으로 인정받고 대우받는 느낌이다. 건강한 공동체 생활의 원동력이 아침 대중 발우공양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3년 전 비장한 마음으로 깨달음의 장에 참여했었다. 깨달음의 장에서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보내면서 유일하게 따뜻한 위안을 받는 시간이 공양시간이었다.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수련장에 공양간에서 가져온 음식들이 줄을 딱 맞춰 정돈되면, 음식 하나하나에 깃든 정성이 하늘에 맞닿아 보였고“그래도 깨장(깨달음의 장) 오길 정말 잘했어”하며 등을 토닥여 주는 듯 했었다.

이번에는 그 공양을 내가 올리리라! 8월 첫 주, 직장인들의 여름휴가 절정기! 그래서였는지 바라지장에 참가한 인원이 평소보다 아주 많은 14명이었다. 그래서 팀을 나눠 한 팀은 수련생 공양바라지에 집중을 하고 한 팀은 김치를 담기로 했다. 나처럼 적당히 살림의 경륜이 붙은 사람은 당연히 김치 팀에 배정이 되었고 힘을 써야 할 젊은 남자 두 분도 김치 팀으로 모셨다.
한여름 김치담기가 많아야 한 이십 포기 정도 되겠지? 게다가 여긴 매뉴얼이 치밀한 정토회 아닌가 김치의 달인 공양주님이 계실 테고 우린 시키는 대로 충실하게 따르며 사찰 김치 담는 방법을 배우면 되겠거니 했다.

둘째 날 오후 김치 담을 배추와 열무가 공양간 뒤쪽에 쌓였다.
“배추김치를 담고, 요즘 열무도 좋을 때니 열무김치도 한번 담아 보입시다.”
“뭐 그러지요.”배추는 세어보니 100포기, 열무는 몇 단인지 헤아려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고무장갑을 딱 끼고‘우리 뭐하면 되지요? 준비되었으니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하는 태도로 섰더니“배추김치랑 열무김치랑 담는 거 아시지요? 필요한 양념 말씀하시면 드릴게요.”
아주 예쁘고 앳되어 살림이라고는 도무지 해봤을 것 같지 않은,반찬투정 안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특할 것 같은 바라지담당 법우님의 말씀이었다. 아뿔사!! 우리는 전열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었고 조직을 정비해야하는 비상상황! 집에서 김장김치를 담아먹는 사람이 나 하나뿐이었다. 그러니 나는 선택의 여지없이 당연히 김치반장이 되었고‘잘 쓰이겠습니다.’라는 마음을 내었다.

먼저 열무 김치를 시작했다. 일은 나눠서 하니 특별히 어려울 건 없었다. 문제는 간을 맞추는 것이었다. 집에서는 아무런 생각 없이 부족한 맛이 무엇인지 나의 감각에 집중하여 마무리 간을 한다. 그런데 부처님께 올릴 김치여서 잘 담아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나 보다. 나의 감각보다 먹어 보는 사람들의 반응에 집중하여 양념을 채우게 되니 뭔가 나의 정성이 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셋째 날은 배추 100포기!
배추를 절여놓고 배추 속에 넣을 양념을 만들고 배추가 소금에 절여지길 기다렸다. 여름 배추라고 만만하게 생각했는지 생각보다 절여지는 시간이 길었다. 몇 번을 오가며 절여지는 상태를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점심 공양을 마치고 배추의 위, 아래를 뒤집으며 한 시간 정도를 더 기다려 씻기 시작! 준비한 양념으로 배추를 버무리는 바라지들은 다리 아프고 허리 아프고 지쳐 가는데 왜 배추는 끝이 보이질 않을까? 결국 깨달음의 장 공양 바라지분들과 합류해 여름 배추김장을 마무리했다.

그렇게 휴가를 마치고 돌아 온 일상생활에서 때때로 문경의 수련원이 떠오른다. 바라지의 하루 일과를 마치고 나누기에서 오간 이야기들, 보수법사님과의 일문일답시간! 나를 가장 사랑하는 게 수행이라던 법사님의 말씀, 새벽예불 마치고 나오면 천천히 어둠을 벗으며 내게 다가오던 희양산. 

오늘 아침도 가족의 아침식사를 위해 싱크대 앞에 서서 잠깐 되뇐다.

‘이 음식은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입니다.’

 

 

 

 

* 이 글은 월간정토 2014년 11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정토회 소식을  '월간정토'로 매달 받아보세요.


 

*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

 

 

 

게시판 성격에 맞지 않거나, 욕설, 비방, 광고, 도배하는 댓글은 통보 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CD 댓글등록
이 글의 댓글 1개
  •  김경희 2015/01/01 21:01
    아... 이제야 봤네요~ 이 날 김장의 일등공신 권유숙 도반님! 그립고 보고싶습니다!!! ;)
다음글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이야기]함께 살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전글 [즉문즉설] 결혼하고 싶은데 자신이 없습니다

정토회
패밀리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