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저녁으로 쌀쌀한 요즘. 따듯한 울림을 주는 시인이자 철학자 같은 장순환 님을 만났습니다. 불교대학 모둠장 소임할 때 알게 된 장순환 님은 생업에 종사하면서 아무리 피곤해도 불교대학에 결석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때때로 범상치 않은 필력으로 도반들의 가슴을 뭉클하게도 했습니다. 나누기 때 내어놓은 촌철살인의 말들이 참 인상적이던 장순환 님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정토불교대학 경전반 졸업식에서 장순환 님
▲ 정토불교대학 경전반 졸업식에서 장순환 님

가난하고 불행했던 시간

어릴 적 아버지와 떨어져 살았습니다. 어머니는 혼자 힘들었지만 자식들은 보리밥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늘 힘겹게 일하는 어머니가 불쌍했습니다. '내가 성공해서 엄마를 편하게 모셔야지'하는 소망을 품고 학창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삶은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반듯하게 성공하기가 멀기만 하던 어느 날, 어머니는 감나무에서 떨어져 크게 다쳤습니다. 그 사고 후 병고로 고생하다가 호강 한 번 못해보고 돌아가셨습니다. 고생만 하고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으로 아주 힘들었습니다.

'내가 그토록 염원하던 성공은 왜 아직 오지 않는 걸까?', '오기는 할까?' 붉은색의 빛나는 양파 껍질을 벗겼을 때 속이 까맣게 썩어 있는 양파가 바로 제 모습 같았습니다. 더 썩지 않으려 애를 써 보지만 까맣게 변해가는 저를 속수무책으로 받아들일 뿐 달리 방법이 없었습니다. 거리 보도블록을 뚫고 나온 가로수 뿌리를 보면서 '나도 저런 생존력으로 살았는데 왜 나는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지 못할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보다 더 가난하고 불행한 사람은 없는 것 같았습니다. 삶이라는 마라톤에서 달린다고 열심히 달렸는데 바른쪽이 아닌 거꾸로 달려온 것 같아 슬펐습니다. 타인과 비교해 봤을 때 제 삶은 초라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자신이 불행하다는 늪에 빠져 발은 땅을 딛지 못하고 연거푸 허우적허우적 물만 텀벙거릴 뿐이었습니다.

'결혼하면 좀 나아지려나?’하는 기대와는 달리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더욱 힘들었습니다. 제 인생의 풀리지 않는 실타래는 '내 탓이 아닌 남편 때문이다'고 생각했습니다. 남편은 가정경제를 위해 노력하지 않고, 한 가지 일을 시작하면 맺음이 없었습니다. 저보다 한 번도 일찍 일어나는 것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말과 행동에 신뢰가 가지 않았습니다. 장사라는 전쟁터에 살면서 손님에 대한 친절과 관심과 배려라는 무기로 싸워야 하는데, 남편은 30년 전쟁터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술에 빠져 지냈습니다.

정토불교대학 졸업식에서 수계증을 들고
▲ 정토불교대학 졸업식에서 수계증을 들고

모든 괴로움의 원인은 바로 나!

나 자신을 학대하고 그런 남편을 미워하면서 우왕좌왕하던 중 스님의 즉문즉설을 만났습니다. 스님은 모든 사람에게 명쾌한 답을 주었습니다. 시간만 나면 스님의 즉문즉설을 들었습니다. 무슨 내용이든 계속 들으니 공감과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그래서 '스님의 발자취를 따라야겠다'고 맘먹고 우선 행복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때 무슨 내용인지 어색한 나누기를 하면서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부끄럽기도 했지만, 맘이 후련해지면서 가슴이 펑 뚫림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2017년 가을 불교대학에 입학해서 본격적으로 부처님 법을 공부했습니다. 항상 삶에 치어 고단했지만, 수업만은 빠지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공부가 쌓여가면서 '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모든 괴로움의 원인은 상대의 잘못이고, 안심입명의 도를 밖에서 찾았으며, '내 말이 전부 옳다'는 아집에 쌓여있었던 자신을 보았습니다. 그야말로 저는 안개가 잔뜩 껴 아무것도 볼 수 없는, 고집불통의, 착한 여자인 척하는 아낙에 불과했습니다. 30년 괴로움이 '상대의 문제가 아닌 내 문제'라는 걸 어느 순간 깨달았습니다. 무지에 사로잡혀 실상을 보지 못했습니다.

상대만 비방할 줄 알았지 자신은 보지 못했습니다. 마음이 송곳니처럼 뾰족해서 상대를 마구 찔러 댔으니 얼마나 아팠을까요? 이런 저를 만나 괴로움에 일보다 술이 먼저였던 남편에게 참회하는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남편을 있는 그대로 봐줄 힘이 생기니 이해하는 마음도 생겼습니다. 남편을 오롯이 이해하며 내 고집을 버렸습니다. 있는 그대로 보려고 수행하면서 마음이 많이 편안해졌습니다.

공양간 봉사 중
▲ 공양간 봉사 중

마음이 성장하는 봉사

JTS 거리모금을 할 때 모르는 이를 향해 소리친다는 것이 맘에 내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천 원으로 굶는 아이가 하루 세끼 밥을 먹을 수 있고, 병든 아이를 치료해 줄 수 있다는 것에 용기 냈습니다. 이것도 수행이고 가여운 어린이를 살리는 것으로 생각하니 점점 목소리에 힘이 실어 졌습니다. 세상이 각박하다지만 아직도 따뜻한 가슴을 가진 사람이 많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저도 가난하지만 ‘헐벗고 굶주린 이들을 외면해서는 안 되겠구나’하는 다짐도 했습니다. 작은 봉사라도 누군가에겐 기쁨이 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내 마음도 성장함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제가 잘 할 수 있는 일이 부엌일이라서 김장 봉사도 했습니다. 늘 생업에 쫓겨 시간 내기가 힘들지만, 작은 보탬이라도 되고자 매년 김장 봉사는 하려고 합니다.

어느 봄날 두북 봉사를 하러 갔습니다. 완두콩을 보면서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게 자연의 이치'임을 깨달았습니다. '나의 현실도 더는 크게 달라질 수 없음을 알면 괴로운 것이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밭을 다 매고 법사님과 공양하면서 대화 도중 제게 “법사 났네!”라고 했을 때 너무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깨달음의 장> 도반들과 부산 을숙도에서 (가운데)
▲ <깨달음의 장> 도반들과 부산 을숙도에서 (가운데)

항상 지금 여기에 깨어있기!

경전반을 졸업하고 정토회 정회원이 되었습니다. 수요일이면 가볍고 기쁜 마음으로 법회에 참여합니다. 수행 봉사 보시가 중요하지만 저는 무엇 하나 뚜렷이 해낼 수 있는 형편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늘 성실히 하는 선배 도반들이 부럽고 미안한 마음도 많습니다. 불교대학 도반들은 제 삶에 큰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우리는 괴로움을 함께 나누고 서로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습니다. 그 시간이 깊고 진하기에 평생 벗을 사귄 것 같습니다.

아직 수행이 많이 부족하지만 저는 제 자신이 자랑스럽습니다. 무릎이 아파 잘 구부려지지 않아 108배는 제게 가장 걸림돌이었습니다. 108배 못하는 수행은 수행이 아니라는 생각이 제게는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정진을 결심했다가도 작심 3일 만에 자꾸 꺾어지고 천일결사 입재는 하지만 반복적으로 놓치게 됩니다. 이제는 노력하지만, 그 또한 욕심임을 알아서 매이지는 않습니다.

내 삶은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에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업식으로 인해서 잘 안 되는 것 또한 압니다. 항상 현재에 깨어 있으라는 스님의 말씀에 꼭 따르겠습니다. 지금 여기에 깨어 있겠습니다. 그것이 '나의 자유'임을 확연히 알고 있겠습니다.

정토불교대학 경전반 졸업 기념사진 (위쪽 오른쪽에서 세 번째)
▲ 정토불교대학 경전반 졸업 기념사진 (위쪽 오른쪽에서 세 번째)


장순환 님의 수행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면 열 사람 이상의 기운을 느낍니다. 이렇게 각자의 자리에서 소임을 다 하는 도반들이 있어 모자이크 붓다가 이루어짐을 다시 한번 알게 되었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차창 밖 가을 하늘이 더없이 높고 청명하게 다가왔습니다.

글_장순환 (대구정토회 대구법당)
정리_김영희 희망리포터 (대구정토회 대구법당)
편집_강현아 (대구경북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