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법당에는 제가 수행부장이라는 별명을 지어준 도반이 있습니다. 아무리 바쁘고 힘든 일이 있어도 수행을 놓지 않고, 이제는 다섯 시만 되면 저절로 눈이 떠진다니 과연 수행부장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오늘은 서산법당의 수행부장, 김연주 님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언제나 든든한 힘이 되어주는 부총무님과 함께(왼쪽 김연주 님)
▲ 언제나 든든한 힘이 되어주는 부총무님과 함께(왼쪽 김연주 님)

병원 생활로 얼룩진 나의 신혼일기

3년의 연애 끝에 스물넷 되던 해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1년 후 딸을 낳고, 정말로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너무나 행복해서 과연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하는 생각을 하던 즈음, 그러니까 딸이 100일이 지났을 무렵 갑자기 신랑 건강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냄새만 맡으면 구토를 하고 어지럽다고 해서 안양에 있는 한 병원에 갔습니다. 처음엔 병원에서도 그냥 머리에 물이 찼다고, 수술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큰 걱정 없이 수술했고, 수술도 잘됐다고 입원해 있으면서 운동을 같이하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다음날 새벽에 갑자기 마비가 오기 시작해서 다시 수술실에 들어갔습니다. 그 후로 중환자실에 있으면서 척수에 물이 찼다는 것을 알게 되어, 두세 번의 수술을 더 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100일밖에 안 된 딸을 서산에 있는 엄마에게 보내고, 나는 병원에서 생활했습니다.

허망하게 떠나버린 남편

남편 상태는 조금씩 나아졌지만, 여전히 밤에 자다가 깨서 통증을 호소하기도 하고, 갑자기 숨이 넘어가기도 해서 계속 마음 졸이는 생활이 이어졌습니다. 여러 차례 병원을 옮겨 가면서 주변에서 좋다고 하는 것은 다 해보았습니다. 절에 가서 기도도 하며 그렇게 4, 5년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다행히 남편의 상태가 점점 호전되어 퇴원했고, 딸이 일곱 살 되던 해에 서산으로 이사 왔습니다. 그 후로 어느 정도 남편 혼자 생활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는데, 얼마 못 가 또 척수에 물이 차는 바람에 분당 병원에서 수술했습니다. 수술하고 나면 남편의 상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고, 그렇게 3년에 한 번 꼴로 두세 번의 수술을 더 받았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폐렴에 걸렸고, 결국 병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때 딸 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이었습니다. 그렇게 허망하게 남편을 보내고 나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너무나 막막했습니다. 잠이 안 와서 새벽 3, 4시에 밖을 돌아다니기도 하고, 내가 과연 살아갈 수 있을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 친하게 지내던 언니가 딸 생각을 해야지 계속 이렇게 살 거냐며 충고를 했는데, 그 말을 듣고 한 방 먹은 듯했습니다. 그동안 나 힘든 것만 생각했지 딸 생각은 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앞으로는 딸을 위해 어떻게든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가을불교대학 도반들과 함께(첫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 김연주 님)
▲ 가을불교대학 도반들과 함께(첫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 김연주 님)

한 번만, 한 번만 더하며 다닌 불교대학

하지만 그 후로도 슬픔은 쉽게 가시질 않았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딸을 데리고 남편이 있는 납골당에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바쁘게 일을 하며 힘든 시간에서 빠져나오는 듯했지만, 어느 순간 가만히 앉아 있다 보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시간이 약이라고 하루하루 어떻게 어떻게 견디다 보니 살아졌습니다. 딸이 있어 그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딸이 고등학교 1학년이 되던 해에 이모가 정토회를 소개해줬습니다. 지금 마음이 아주 힘든 상태이니 한번 가보자고 권유를 해서 이모와 함께 불교대학을 다니게 됐습니다. 처음엔 그냥 절에 간다는 생각으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법당에 불상도 없이 사진만 있는 것을 보고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마음 나누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여기를 계속 다닐지 안 다닐지도 모르는데 여기서 내 이야기를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법문을 듣고 집에 가는 길에는 항상 이번 한 번만 가고, 다음엔 나오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한 번만 더 나가보자는 이모의 권유에 어쩔 수 없이 나가게 됐습니다.

내 수행의 중심, 천일결사

그렇게 억지로 떠밀리듯 수업에 나오다가, 무엇이든 궁금증이 많았던 이모의 권유로 얼떨결에 9-1차 천일결사 입재식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천일결사 입재식에 참가했을 때 정말 분위기가 이상했습니다. 무슨 다단계 집단인 것 같았고, 스님을 보고 환호하는 모습을 보니 뭔가 광신도 같기도 하고, 사이비 같아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입재식을 진행하는 동안 전국에서 모인 도반들로부터 수행의 큰 힘을 얻었고, 집으로 돌아오면서는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앞으로 수행을 해봐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천일결사에 입재한 후로 불교대학 수행 맛보기 기간을 거치면서 본격적으로 수행을 시작했습니다. 천일결사를 시작하면서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기도했습니다. 혼자서는 하지 못했을 텐데, 도반들끼리 서로 깨워주고, 마음 나누기도 하니 큰 도움이 됐습니다. 부총무님의 권유로 토요 새벽 정진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부총무님과 단둘이서 정진하는 날이 많았지만, 법당 단체 대화방에 새벽 정진 안내도 하고, 개인적으로 법당 도반들에게 함께 하자고 권유했더니, 시간이 흐르면서 한두 명씩 늘어갔습니다. 도반들과 함께 새벽 정진을 끝내고 나면 감사함과 뿌듯한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수행의 중심이 되어주는 천일결사(뒷줄 왼쪽에서 다섯 번째 김연주 님)
▲ 수행의 중심이 되어주는 천일결사(뒷줄 왼쪽에서 다섯 번째 김연주 님)

나를 보게 되다

수행하면서 힘든 것은 진짜 보기 싫은 내 모습을 하나씩 보는 것이었습니다. 정토회에 나오지 않았으면 내가 이런 인간인 줄 몰랐을 텐데, 부족하고 못마땅한 면이 보이고, 그것들과 마주해야 하는 게 힘들었습니다. 원래도 대충 이런 사람이구나 생각은 했지만, 수행하면서 더욱 또렷이 자신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나를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게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마음은 힘든 반면, 자신을 보면서 가니, 어떤 사람인지 알고는 갈 수 있어서 좋았고, 왜 화가 나는지 돌아보게 되는 힘도 생겼습니다. 예전에는 화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내가 참 이상한 사람이구나, 주변 사람들이 매우 힘들었겠구나 하고 알았습니다. 마음에 변화가 생기니, 나도 법당에 도움이 되고 싶었습니다.

불교대학 담당하면서 보낸 질풍노도의 1년

그러던 중, 법당 부총무님이 가을불교대학 담당을 맡아보라고 권유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없었습니다. 한편으로는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일단은 물러서는 마음이 컸습니다. 나 자신이 그런 큰일을 맡을 만큼 그릇이 크지 못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부총무님이 도와준다는 생각으로 떠밀리듯 담당을 맡았습니다. 다행히 불교대학에 입학한 도반들이 참 좋았습니다. 하지만 처음 불교대학 담당을 맡아서인지, 업식이 발동한 것인지 우리 반을 잘 이끌어가고 싶다는 욕심이 점점 커졌습니다. 욕심이 커지니 부담도 커지고 결국에는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나 스스로 때문에 많이 힘들었습니다. 담당을 맡아보니 부족한 면이 너무 많이 보였습니다. 그런 나를 지켜보는 것 자체가 매우 힘들었습니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새벽 정진을 하다가 갑자기 300배 정진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는 그때부터 퇴근 후에 매일 300배 정진을 시작했습니다. 정진만이 나를 변화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또다시 시작합니다

그렇게 비틀비틀하면서 무사히 1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1년을 잘 이끌어왔다는 뿌듯함보다는 그동안 힘들었던 기억과 부총무님은 왜 나를 도와주지 않았나 하는 원망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습니다. 원망의 마음을 수행으로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은 법당에 발길을 끊었습니다.
처음엔 좋았고, 법당에 나가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다 보니, 왜 내가 그런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이 좋은 법당에 못 나가고 있어야 하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아무렇지 않은 듯 법당에 나가려고 하니 창피한 생각이 들어 망설이던 중, 도반들의 안부와 격려 메시지를 받고 다시 법당에 용기를 내어 나갔습니다. 그렇게 수행법회에 다시 나가게 되었고, 9-10차 천일결사에 입재했습니다. 그리고 도반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내가 얼마나 욕심이 많고 자존심이 센지, 자신도 몰랐던 마음을 알았습니다. 힘들 때 부총무님이 도와주지 않은 게 아니라, 내가 부총무님에게 기대하는 마음, 의지하는 마음이 너무 커서 나 스스로 원망을 키웠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다시 시작해보려 합니다. 워낙에 욕심 많고 의지심이 많기에 언제 또다시 자빠질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나를 보며 갈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합니다. 부족한 나를 항상 격려해주고 함께 가주는 도반이 있어 감사합니다. 작은 것이라도 할 수 있는 봉사를 하며 행복한 수행자로 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법륜스님 행복한 대화 강연을 준비하며(왼쪽 두번째 김연주 님)
▲ 법륜스님 행복한 대화 강연을 준비하며(왼쪽 두번째 김연주 님)

평소 울음이 너무 많아 서산법당의 울보라고 불리는 사람이 그토록 힘들었던 시간을 담담하게 꺼내놓는 모습을 보며, 그동안의 수행이 헛되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같은 도반으로서 존경심도 들고, 수행의 힘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글_허지혜 희망리포터(서산법당)
편집_하은이(대전충청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