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 법당에는 오랜 시간 정토회와 함께 한 선배 도반이 많습니다. 그 중 채효정 님은 무려 20년을 정토회와 함께해왔습니다. 인터뷰를 위해 채효정 님의 일터인 약국을 찾으니 아니나 다를까 제일 눈에 띄는 자리에 정토 불교대학 홍보 포스터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오랜 시간 정토회와 인연을 맺으면서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수행, 보시, 봉사를 실천하고 있는 채효정 님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힘든 시기를 이겨내는 힘이었던 불교

어린 시절 어머니는 40대에 찾아온 갱년기를 이겨내기 위해 절에 다니셨습니다. 어머니는 절에 갈 때면 막내인 저를 늘 데리고 갔습니다. 그래서인지 자연스럽게 내가 불자라고 생각했고 가끔 절에 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20년 전 남편이 독일 유학을 결정하면서 4살 된 아들과 함께 유학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유학 생활은 여러 가지 면에서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졸업 후 쭉 해오던 일을 갑자기 안 하게 되자 경제적 불안감이 생겼고, 아이를 이방인으로 키우는 것도 불안했습니다. 불안이 불안을 키워 나중에는 독일의 우중충한 날씨조차도 힘들게 느껴졌습니다. 그때, 마치 엄마가 힘든 일이 있을 때 절을 찾았던 것처럼 저도 절을 찾게 되었습니다. 절에 나가기 시작하면서 절에서 활동하는 시간이 많아졌고, 저와 함께 절에 다니게 된 남편도 공부보다 절일 하는 시간이 더 많아 보일 정도로 절에 열심히 다니게 되었습니다.

독일 정토회와의 인연

당시에는 아직 독일 정토회가 없었습니다. 독일에서 절에 열심히 다니던 즈음 그곳에서 알고 지내던 유학생인 법우의 소개로 법륜스님을 처음 뵈었습니다. 그때 법륜스님은 헤이그 이준 열사 기념관에 일이 있어 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인연으로 이후 스님이 독일에 오실 때면 저희 집에도 오셨고 자연스럽게 함께 정토회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기존에 다니던 절은 더 이상 나가지 않고 정토회에서 불교 공부를 계속 했습니다. 남편은 법륜스님께 불교를 배우면서 '불교가 참 과학적인 것 같다'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남편은 독일어도 가능하고 꼼꼼한 성격이라 독일 정토회 개원 준비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독일에서 법회 후 법륜스님과 도반들. 오른쪽이 채효정 님
▲ 독일에서 법회 후 법륜스님과 도반들. 오른쪽이 채효정 님

남편으로부터의 홀로서기, 진정한 자립의 시작

이때만 해도 저는 남편에게 의지를 참 많이 했습니다. 그런 제가 남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인 불안감과 아들을 한국인으로 키워야겠다는 마음이 커져,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마음만 있을 뿐 용기가 나지 않아 먼저 한 달간 적응 기간을 가져보기로 했습니다. 이때 정토회에 대해 많은 걸 알게 되고 〈깨달음의 장〉도 다녀왔습니다. 〈깨달음의 장〉은 같은 또래의 아이가 있는 도반이었던 최경순 님(현 향자재법사님)께 아들을 맡기고 다녀왔습니다. 일 년 뒤인 2001년 남편은 계속 공부하고 저는 5년의 독일 생활을 접고 아들과 먼저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법사님의 조언에 힘 얻어 직장맘과 정토인으로 한국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봐도 남편에게 의지심 많은 제가 어떻게 그런 용기를 냈을까 싶습니다. 정토회를 만나지 못했다면 그런 용기를 내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남편과 함께
▲ 남편과 함께

가장 복된 유산(遺産), 불교와의 인연

독일에 있을 때 남편이 저에게 "어릴 때부터 절에 다녔다는 게 참 부럽다."고 했습니다. 그때부터 언젠가 기회가 되면 아들에게도 불교 인연을 맺어 주고 싶었습니다. 그 마음 하나로 (지금은 없어졌지만) 어린이 법회와 청소년 법회를 10년간 담당했습니다. 여름 어린이 수련 식단 짜느라고 늦은 시간까지 일할 때면 아들이 “엄마 수고해요”라며 힘을 실어 주었습니다. 제가 약사의 길을 가고 있지만 어릴 적 꿈은 선생님이었는데 정토회에서 제 꿈을 이루게 된 셈이지요.

아들은 어린이 수련을 시작으로, 필리핀 민다나오, 인도 성지 순례, 동북아 역사 기행, 백일출가 등 정토회에서 하는 수련 프로그램은 다 다녀왔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들에게는 엄마가 선생님이었으니 힘든 점도 있었겠다 싶지만, 그때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아들은 전공이 고고학인데 동북아 역사 기행 다녀오면서 고구려 발해유적에 관심이 많이 생겼습니다. 아직은 공부 중으로 미래를 알 수 없지만, 아들이 분명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문경에서 아들과 채효정 님. 왼쪽이 채효정 님이고 오른쪽이 아들을 맡아주셨던 도반 최경순 님.
▲ 문경에서 아들과 채효정 님. 왼쪽이 채효정 님이고 오른쪽이 아들을 맡아주셨던 도반 최경순 님.

'평생' 함께 할 정토회

2006년에 남편도 한국으로 돌아왔고 지금은 가족이 모두 안성으로 이사 와서 약국을 하고 있습니다. 남편은 현재 서초 법당 거사회 총무 일을 하면서 안성 법당에서 활동 중입니다. 처음 안성에 왔을 때는 법당이 없어서 가정 법회부터 시작했는데 이제는 법당도 생기고 지금의 모습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최근에는 제가 약국 출근 시간이 빠르고 퇴근 시간이 늦어 정토회 활동을 생각만큼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살아오면서 힘든 일도 있고, 어려운 점도 많지만, 그때마다 질문도 하고 법문도 들으며 '아, 그렇구나 ' 하며 내려놓으며 정진은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수행 법회는 일주일에 한 번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준 스승님 만나는 날'로 평생 함께할 겁니다. 서울에 있을 때 약사 도반과 함께 일할 기회가 있었는데 스님께서 마치 여동생 부탁하듯이 "잘 봐주세요”라고 말씀하시는데 짧은 인사였지만 그 속에 담긴 따뜻한 배려가 깊은 감동으로 언제나 마음속에 남아 있습니다.

나비(나눔과 비움)장터 진행 후 왼쪽 뒷줄 첫 번째가 남편인 유동수 님, 오른쪽 뒷줄 두 번째가 채효정 님
▲ 나비(나눔과 비움)장터 진행 후 왼쪽 뒷줄 첫 번째가 남편인 유동수 님, 오른쪽 뒷줄 두 번째가 채효정 님


채효정 님에게 안성 법당은 '가까이 있어서 갈 수 있고, 스승님이 계시고, 배울 수 있는 법문이 있고, 마음 나누는 도반이 있고, 거사와 함께 가는 곳이지만 생각만큼 봉사를 많이 못 해서 미안한 곳'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리포터가 안성 법당에서 보아온 채효정 님은 수행법회, 입재식, 7대 행사 등 주어진 일은 다 하면서도 수줍게 봉사 많이 못해 미안하다고 하는 겸손한 수행자입니다. 자그마한 체구에 귀여운 웃음을 머금은 채효정 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차분함 속에 유쾌한 농담도 하고 때론 눈가가 촉촉이 젖어 들기도 하며 정토회와 함께한 시간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20년을 한결같이 정토회와 함께한 선배 도반이 닦아놓은 자리가 있으니 그 옆에 제 방석도 살포시 놓아봅니다. 채효정 님을 만나고 돌아가는 길, 가늘고 길게 평생 정토인으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통일의병 활동 모임에서. 왼쪽에서 두 번째가 채효정 님.
▲ 통일의병 활동 모임에서. 왼쪽에서 두 번째가 채효정 님.

글_장미애(수원정토회 안성법당)
편집_신정아(강원경기동부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