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탄법당 불사 기도 정진 입재식이 있었던 9월의 마지막 토요일, 동탄법당 불사를 책임지고 있는 영통법당의 바지런한 일꾼 이서현 님을 만났습니다. 영통법당의 최연소 도반이자 귀여움 담당 세 살 딸과 함께 하는 이서현 님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기복적인 관점에서 진리의 관점으로

어머니를 비롯한 외가 분들이 성철스님의 백련암에 다녔습니다. 첫째・셋째 이모, 어머니까지 3,000배는 물론 만 배도 하면서 절 수행을 열심히 했습니다. 저도 성인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3,000배도 하고 더 나아가 새벽부터 밥 먹는 시간만 빼고 기도를 하는 대중 기도도 여러 번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 세대는 기복적인 관점으로 ‘이렇게 힘들게 절하면 자식이 잘되겠지, 집안이 편안하겠지’ 하는 마음이셨는데 저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이루고 싶은 것이 많으니까 ‘기도를 하면 잘되겠지, 기도를 하면 이루어 지겠지’ 하는 생각으로 힘들어도 참고 절하고 기도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제가 욕심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열심히 기도해도 뜻대로 되는 것은 없었고 오히려 목표했던 바와 반대로 일이 흘러갈 때가 많았습니다. 욕심대로 되지 않으니 항상 우울하고 속상하고 자신감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20대 초반부터 호주에서 유학 생활을 하면서 우울함은 극으로 치달았습니다. 부모님의 기대와 저의 욕심이 더해져서 시작했지만 외롭고 힘들었습니다. 뜻대로 학업이 풀리지 않아 유학을 추천한 부모님을 원망하고 미워했습니다.

그때 법륜스님을 알게 됐습니다. 이종 사촌 동생이 먼저 〈백일출가〉를 다녀와서 저에게 정토회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400개 정도의 즉문즉설을 모두 봤습니다.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보면서 머리가 시원해지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기도를 열심히 하고 있는데 왜 내가 원하는 대로 일이 되지 않을까?’ 그리고 삼천배씩, 만배씩 절을 많이 한다는 보살님들도 좋은 자리에서 기도하려고 다투고 자기 뜻과 맞지 않으면 역정내는 모습을 보고 '불법 공부도 하고 절도 많이 하는데 왜 저렇게 화를 내나?' 했던 의문들이 스님의 말씀을 듣다보니 기복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불교를, 법을 진리로 다시 보게 되었고, 스님의 즉문즉설을 가끔 보며 힘들고 괴로운 유학 생활도 잘 마쳤습니다.

동탄 불사 기도 정진 입재식 (앞줄 왼쪽 세 번째 이서현 님)
▲ 동탄 불사 기도 정진 입재식 (앞줄 왼쪽 세 번째 이서현 님)

정신과 상담 대신 선택한 정토회

한국에 돌아와 취업을 하게 됐고 홀로 지내던 유학생활에 비하면 편안하고 안정된 생활에 법륜 스님을 잊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유학까지 다녀온 딸의 직장이 부모님 눈에는 차지 않았습니다. 저 또한 더 큰 회사, 남들이 알아주는 직장을 가지고 싶은 욕심이 있었지만 잘 안 되었고, 집안에서는 시집이라도 가라는 분위기 였습니다. 마침 어머니 친구분의 소개로 만난 사람이 여러모로 맞다 생각했는지 부모님은 결혼을 더 강요했습니다. 저는 결혼 생각이 딱히 없었고 가더라도 더 늦게 가고 싶었지만 부모님 등쌀에 못 이겨 결혼하게 됐습니다.

그때부터 더 큰 괴로움에 빠지게 됐습니다. 우유부단한 성격에 부모님과 아내 사이에서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할지 몰랐던 남편은 똑 부러지는 성격의 저에겐 모자란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저는 그런 남편을 평생 어떻게 믿고 살아야 하나 걱정했습니다. 매일같이 싸우고 또 싸웠고, 저는 화가 나면 주체가 안 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못난 사람과 결혼했다는 자괴감에 사람도 만나지 않고 집에서 은둔생활을 1년동안 했습니다. 그러다 남편이 정신과 상담을 받아보는 게 어떻겠냐고 말을 했고, 그 말을 들으니 정토회가 다시 생각났습니다.

인터넷 검색을 해서 근처 법당을 찾아 불교대학에 입학 했습니다. 〈깨달음의 장〉도 너무 가보고 싶었지만 신청이 힘들었는데, 불교대학에 입학하면 갈 수 있다는 말에 더 기대했습니다. 경전반까지 2년 동안 정토회에서 하는 모든 것을 해보고 그래도 바뀌지 않으면 정신과를 가겠다 마음먹고 주어지는 것은 다 해보았습니다. 불교대학에 입학해서〈깨달음의 장〉을 가게 되었는데 방이 환해지고 눈이 뜨이는 경험을 하고 제 마음이 문제였구나 알게 됐습니다. 그 후 저는 어떤 마음이 괴로움을 만드는지 알아차리기 위해 계속 수행 정진했습니다. 도반들과 새벽기도도 나가고 경전반 공부를 하며 불교대학 담당 소임도 맡아서 했습니다.

딸은 시위해도 엄마는 수행합니다.
▲ 딸은 시위해도 엄마는 수행합니다.

나를 보게 되다

그러면서 제 안에 있는 문제들을 보게 됐습니다. 자식들에게 기대가 높았던 아버지, 남동생을 편애 하며 저에게는 날카로운 말들로 상처 주었던 어머니. 그렇게 어린 시절을 보냈던 저는 날카롭고 독기가 있었고, 막내로 자라온 남편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의 욕심도 있었지만, 부모님의 권유로 유학을 다녀왔고, 결혼도 했기에 힘든 시간 동안 원망도 많았습니다. 부모님과 자신의 관계가 남편과의 관계에 영향을 미쳤다는 어느 도반의 수행담을 듣고, 저를 돌아보았습니다.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였던 아버지는 항상 어머니를 무시했고, 이로 인해 상처받았던 어머니를 많이 봤습니다. 그런 기억이 남편과의 관계에 투영되어 남편이 기분 나쁜 말을 하면 왜 그런 투로 나한테 이야기하냐고 무슨 의도로 그런 이야기를 했냐며 화내고 추궁했습니다. 이렇게 제 마음을 보고 편치 않은 부모님과의 관계를 보니 남편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다 제 문제가 되었습니다.

함께 살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제 마음자리를 조금씩 보고 받아들이고 있는 차에 시댁과 돈 문제로 갈등이 생겼습니다. 결혼 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남편이 갈등을 풀어 보겠다고 했던 말들이 문제가 되어서 더 힘들어진 상태였습니다. 경전반 수업을 들으며 불교대학 담당을 하던 때였습니다. 마음이 너무 힘들어서 두북 정토수련원에 〈깨달음의 장〉바라지를 갔습니다. 아직 아기가 생기지 않던 상황이었는데 법사님께 시댁과의 관계, 남편과의 관계를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지금 아기가 생겼으면 키우기 힘들었겠다. 설령, 이혼하더라도 혼자 살지 말고 부모님이랑 같이 살고 항상 함께 살아주는 사람한테 감사 기도하라'는 법사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무언가가 탁 내려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이후에 법당 도반들도 제 눈에서 독기가 빠졌다 할 정도로 무언가가 확실히 놓아졌던 거 같습니다. 그러고 나서 '함께 살아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기도문으로 절 수행을 한참 했고 정말 거짓말처럼 남편에게 고마운 것들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신기하게도 그 후 아기도 바로 생겼습니다. 욕심으로 가득했던 마음이 좀 비워져서 그런 게 아닐까 합니다.

행사 진행도 아이와 함께
▲ 행사 진행도 아이와 함께

시댁과의 갈등은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작년 추석에 아이가 아파서 시댁에 가지 못했는데 시어머니께서 심한 말씀까지 하면서 서운함을 드러냈습니다. 저는 그에 대거리해서 집안이 또 발칵 뒤집어졌습니다. 너무 속상하고 힘들었지만, 법당 도반에게 다 드러내어 이야기하고 수행적 관점을 다시 잡아가면서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그리고 또 올해 추석에는 시누이와의 갈등이 조금 있어서 마음이 힘들었습니다. 이런 일이 있을 때면 남편은 중간에서 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를 해서 일을 더 크게 만듭니다. 지금은 남편도 안쓰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모님도 아내도 배려하고 아우를 능력이 없는데 그 일을 해야만 하니 남편이 얼마나 힘들까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지금은 시간이 약이겠거니 여기고 있습니다.

아이를 키우고 있는 현재를 보면 바라지 가서 들은 법사님 말씀이 정말 많이 공감 됩니다. 정토 만나서 수행하지 않았더라면 그 독기와 날카로움으로 아이를 어떻게 대했을지 상상하기 싫을 정도입니다. 남편도 결혼 초기에 자기한테 하던 식으로 제가 아이한테 했다면 아이가 정말 힘들었을 거라 말합니다. 아이를 키우는 요즘 정토회 만나 다행이다, 수행해서 다행이다를 절실히 느낍니다.

쉬지 않고 연습하기

2015년도에 영통법당이 개원하면서 봄불교대학에 입학했고, 2016년 경전반을 하면서 불교대학 담당을 했습니다. 그때는 아이가 없었던 터라 시간이 자유로워 불교대학 소임을 맡았지만 ‘나한테 왜 이런 걸 시키나 경전 공부 더 잘하고 싶은데’ 하는 마음으로 소임에 임했습니다. 그리고 불편한 도반에게 분별을 내고 소임을 그만두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또, 남편과 시댁과의 갈등을 겪으면 소임 그만두고 이혼하고 친정 내려가버리겠다는 마음을 항상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때는 소임이 감사한 줄도 모르고 그저 귀찮은 일처럼 여겨졌습니다. 불교대학 학생도 제 뜻대로 따라주지 않으면 겉으로 티는 못 내지만 속으로 엄청나게 분별을 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스님 법문 말씀대로 다 해본다는 다짐을 지키기 위해 소임을 하면서 자전거 타는 연습을 계속했습니다. 상대를 이해하면 내가 편해진다고 해서 불편한 도반이 있으면 그 도반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이해해보려 노력했습니다. 또 무언가를 바라면 미움과 원망이 생긴다 해서 밉고 원망하는 마음이 들면 제가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돌아보았습니다. 그렇게 연습하다 보니 정말 마음이 편안해지는 경험을 했고 ‘아~ 이거구나. 스님 말씀이 틀리지 않았구나’하고 알게되니 수행에 욕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아기를 낳고 1년 정도 키우고 법당에 다시 나와 7대 행사 담당과 법회 팀장을 하겠다고 스스로 손을 들어 소임을 맡았습니다. 아기를 데리고 2019년 동안 소임을 하면서 크고 작게 힘들고 부딪히는 일들은 많았습니다. 하지만 예전 봄불교대학 담당할 때와 마음가짐이 달라져서 ‘분별 나는 저분이 안 계시면 내가 해야 할 일이고 그래도 계셔주니 내가 좀 더 편하게 다른 일에 집중 할 수 있으니 감사하다’라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먹으니 모든 분이 소중하고 감사한 인연이었습니다.

엄마는 연등 만들고 딸은 예쁜 짓
▲ 엄마는 연등 만들고 딸은 예쁜 짓

될 때까지 끈 놓지 않고 잡고만 있자

지금은 제일 힘든 것이 미운 3살 딸을 데리고 다니는 것입니다. 고집이 생겨 법당을 나오기 싫어하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며 법당을 나와야 하니 나오기 전부터 진이 빠집니다.

하지만 수행 욕심을 버리지 못해 2016년부터 추진했지만, 진행이 되지 않았던 동탄 불사를 또 맡겠다고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영통법당 불사를 하였던 영통법당 부총무님이 큰 소임을 하나씩 해낼 때마다 얼굴이 달라지고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좀 더 변하고 어떤 일에서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싶다는 생각에 더 욕심이 났던 것인데 지금은 좀 후회가 됩니다. 아이 데리고 마음대로 여기저기 다니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 일을 해내겠다고 욕심을 냈는지 스스로 자책하고 있습니다. 걱정이 앞서고 안 될 거 같은 이유만 자꾸 머리속에 떠오르지만, 도반들과 동탄 불사기도 정진도 시작했고 이렇게 어영부영 끌려가는 거 같습니다. 잘하기보다 될 때까지 끈만 놓지 말고 잡고만 있어 보자고 언젠간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버텨보겠습니다.


동탄법당 불사 소임을 후회한다고 농담 반 진담 반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머지 않아 동탄법당 개원식에서 다시 만날 이서현 님의 밝은 얼굴을 기대해 봅니다. 동탄법당 개원 기념 인터뷰 2탄을 기대해 주세요.

글_차미나 희망리포터( 수원 정토회 영통법당 )
편집_임도영 ( 광전지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