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되면 길가에 흔히 피어있는 꽃, 돌 틈에서도 피어나는 생명 질긴 꽃, 화려하지 않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꽃잎 하나하나 예쁜 꽃, 바로 민들레입니다. 26년 전 뉴욕정토회는 민들레처럼 질기게 그 자리를 지켰고, 뉴욕정토회가 뿌린 홀씨들은 세상 이곳저곳에 자리를 잡아 또 다른 민들레들이 되었습니다.

2007년 2월 2일, 미국 뉴욕에 위치한 UN에서는 소리 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수백 개의 비정부 기구(NGO)들이 유엔 경제사회 이사국(ECOSOC) 19개국 대표 영사들 앞에서 공인 자격을 얻기 위한 심사를 받는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최경숙 님: "우리 JTS도 만반의 준비를 하고 그 자리에 섰습니다. 이번 기회를 잃으면 다시 1년의 시간을 더 방대한 자료들을 준비하며 기다려야 하니 긴장이 안 될 수가 없었습니다. 2박 3일 동안 UN에서 그 임무를 짊어진 저와 임선희 님은 말할 것도 없고, 한국과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워싱턴의 민덕홍 님, 미국과의 시차를 생각해 요청하는 자료들을 바로 보내기 위해 한국JTS에서도 뜬눈으로 밤을 지샜습니다. 단 한 나라에서라도 의문을 표시하거나 반대하면 통과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우리가 연단에서 브리핑하던 중, 중국이 이해할 수 없는 이유를 들어 우리를 재심사 단체로 넘겼습니다.

이틀이 속절없이 흘러 마지막 날이 되었습니다. 요청한 모든 자료를 준비해 기다렸지만 5시면 종회하는데 3시가 넘어도 재심사를 위해 우리를 부르지 않았습니다. 속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지요. 한국 영사님까지 오셔서 중국 쪽 설득에 나섰고, 우리도 지난 몇 년간 준비해 온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기에 총력을 다했습니다. 그 결과, 종회 30분 전인 4시 30분에 비로소 경제사회 이사회 스페셜 NGO의 지위를 획득할 수 있었습니다."

선주법사님(가운데)과 최경숙 님 (왼쪽)
▲ 선주법사님(가운데)과 최경숙 님 (왼쪽)

지난 9월 30일, 뉴욕법당에는 뉴욕, 뉴저지, 맨하탄 3개 법당의 도반들이 모두 모였습니다. 선주법사님의 특별법회가 있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선주법사님과 정토회와의 인연

선주법사 님: 저는 9차년도부터 정토회 해외지부 상임법사를 맡은 선주라고 합니다. 원래는 오늘이 지도법사님 법문을 들어야 하는 수행법회 날인데요, 제가 오늘 이곳 뉴욕법당에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오늘 하루만 제게 시간을 주십사 부탁해서 이 자리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몇 주 전 워싱턴에서 북미동부 행자대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문득 현재 세계 각국에 있는 해외정토회의 시작점이 바로 이 뉴욕정토회였다는 사실을 제가 새삼 자각했습니다. 그때가 1992년이었지요. 그때 그 자리에 계셨던 최경숙 님이 오늘 이 자리에도 계십니다.

26년 전 뉴욕정토회가 없었다면 오늘 제가 해외지부 상임법사라는 이름으로 이 자리에 앉을 수도 없었을 것이고, 오늘날 미동부, 서부, 캐나다, 유럽, 아시아에까지 널리 퍼져 있는 해외정토회도 이와 같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 시절에 ‘시작’해 주셔서 감사하고, 그 자리를 지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이 뿌리신 씨앗이 세상에 민들레 홀씨처럼 뿌려져 세계 각국에 싹이 터 잘 자라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것이 제가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한 이유입니다.

법문 중인 선주법사님
▲ 법문 중인 선주법사님

선주법사 님: 벌써 27년 전이네요, 저는 스물세 살에 정토회를 만났습니다. 그 시절 제 인생의 목표는 ‘잘 살고 싶다’ 였습니다. 다시 말해 잘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제가 잘 날 조건을 하나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을 자각한 순간, 그때부터는 세상이 원망스럽고, 부모가 원망스럽고, 그리고 절망스러웠습니다. 제 20대 초반은 그러했습니다. 그때 법륜스님의 법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많은 법문 중 하나, 여러분들도 잘 아시는 씨앗 얘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법륜스님) "여기 씨앗 하나가 있습니다. 이 씨앗이 잘 자라려면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요? 물, 햇빛, 양분… 그렇지요? 그러나 그 모든 환경 조건들이 갖추어 있다 하더라도 만약 씨앗이 병든 씨앗이라면 어떨까요?"

그 때 저는 법륜스님의 이 질문이 충격이었습니다. '씨앗이 잘 자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이렇게 잘 알면서 나는 왜 내 삶에는 한 번도 적용해보지 않았을까…' 저는 씨앗인 나 자신을 원망하거나 환경인 세상을 원망하거나 하며 계속해서 양극단에 치우치고 있었습니다. 씨앗이 건강하게 자라나려면 물, 햇빛, 양분 같은 환경도 중요하지만, 씨앗 자체도 병들지 않아야 하는 양쪽의 균형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당신은 수행자입니까?

선주법사 님: 우리는 ‘씨앗을 건강하게 하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라는 질문에는 바로 대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 마음이 건강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는 질문에도 ‘수행합니다.’ 라고 답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흔히 아는 수행자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머리를 깎고, 승복을 입고, 기와집에 사는 이런 모습의 사람들입니까?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 그런 모습으로 앉아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것을 수행자라고 합니까? 절을 하거나, 명상을 하는 그것들은 단지 하나의 도구나 행위일 뿐이지 수행자의 판단기준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정토회에서 말하는 수행, 내 씨앗을 건강하게 만드는 일은 무엇일까요?

기본적으로 수행이란 내 관점을 바로 세워서 끊임없이 내가 해나가는 것, 이것입니다. 흔히들 일상에서 수행하는 방법으로 절을 하거나, 참선을 하거나, 염불하는 것을 꼽습니다. 그렇다면 정토회에서는 어떻습니까? 정토회에서 수행이란 ‘일’ 입니다. 씨앗이 튼튼하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것! 그것을 위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아무 일을 말하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씨앗이 잘 자라려면 물, 햇빛, 영양 많은 토양이 필요하듯 그것들을 만드는 일, 이 일을 우리는 수행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보통 ‘니가 먼저 건강해져야지, 우선 씨앗이 튼튼해야 이런 일을 하지.. 그것도 안 된 상태에서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느냐’라고 얘기하는데, 이것은 한쪽으로 치우친 사고입니다. 어차피 나를 건강하게 하는 방법으로 절을 하거나, 명상하거나, 염불한다면 우리는 그 방법으로 이 햇빛을, 물을, 땅을 건강하게 하는 것으로 내 공부를 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두 가지가 같이 완성되도록 하는 겁니다. 하지만 이것이 굉장히 어렵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햇빛이 되고 물이 되고, 토양을 건강하게 해주는 일이지만, 결과적으로 이것이 내 씨앗을 튼튼하게 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타인을 위한 희생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우리는 다른 말로 ‘수행자의 삶을 살고 있다’라고 말하고, 우리 정토회에서 핵심적으로 실현하고자 하는 수행자의 모습입니다. 머리 깎고 목탁 치는 모습이 아니라 땅을 일구고 햇빛을 밝게 하고 물을 건강하게 하는 것으로 그 모습을 다르게 실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JTS의 시작

선주법사 님: 저희가 1993년에 처음 인도 성지순례를 가서, 그들이 살고 있는 삶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때 스님 통역으로 함께 갔던 박지나 대표님(현JTS대표)이 뉴욕에 돌아와서 다음 해인 1994년도에 몇몇 분들을 모아 처음 시작한 단체가 바로 JTS입니다.

이 자리에 계신 최경숙 님 포함 다섯 분이었습니다. ‘배고픈 이는 먹어야 합니다. 아픈 사람은 치료받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제때 배워야 합니다’ 하는 구호가 바로 이곳 뉴욕정토회에서 그때 처음 시작되었습니다. '최소한 이 세 가지는 인종이나 민족, 계급에 상관없이 우리가 함께 나누어야 한다! 그리고 그 일을 하는 우리도 그런 것들에 구애받지 않고 함께 해보자!' 그래서 그 이름이 Join Together Society, JTS입니다.

그때 박지나, 최경숙 님 같은 분들은 일 년에 몇 번씩 북한을 오가며 구호 활동을 하셨었지요. 이것이 바로 오늘 제가 두 번째로 뉴욕법당에 감사인사 드리고 싶은 이유입니다. 그 시작을 여러분들이 해주셨기에 오늘까지 세상에 굶주리고 아픈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지금까지 인도로, 필리핀으로, 북한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JTS 활동을 설명 중인 선주법사님
▲ JTS 활동을 설명 중인 선주법사님

이때부터는 선주법사님이 프리젠테이션으로 기아, 질병, 문맹퇴치를 설립 이념으로 한 JTS의 30년을 정리해 주셨습니다. 인도에서 6년, 아프가니스탄에서 3년을 지내며 매일 아침 스스로에게 되묻던 ‘나는 왜 이곳에 있는가’를 이야기하실 때는 법당에 있는 모두가 숙연해졌으며, 인도 불가촉천민(인도의 최하층 신분) 마을에 수자타 아카데미를 건립할 당시의 에피소드를 들려주실 때는 한 바탕 웃기도 했습니다.

인도 JTS 현지 활동가들과 함께한 거리모금 캠페인
▲ 인도 JTS 현지 활동가들과 함께한 거리모금 캠페인

위 사진은 올해 초 인도 현지 활동가들이 한국에 방문했을 때 함께 한 거리모금 사진입니다. 22년 전 수자타 아카데미 유치원생이었던 아이들이 이제는 JTS스텝이 되어 한국을 방문해 함께 거리 모금까지 한 특별한 날이었다고 법사님께서 소개하셨습니다. 그 중 한 인도 청년의 소감이 기억에 남습니다.

인도청년: "나는 우리에게 보내오는 돈이 이렇게 모이는 줄 몰랐다. 돈 많은 사람 몇 명이 목돈을 내겠거니 생각했지, 이렇게 많은 사람이 오랜 시간 길에서 천원, 천원을 모으기 위해 이렇게 애쓰는 줄 알지 못했다. 한국에 사는 JTS회원들이 모금을 하기 위해 백 번을 고개를 숙이는 것을 보았다. 그들이 뭐가 아쉬워서 그렇게 하겠는가, 우리가 대체 뭐라고 우리를 위해 그렇게 돈을 모아 주는가. 여기에 와 보고서야 비로소 알았다. 내가 어떤 돈으로 공부하고 컸는지를… 이제 내가 받은 그 은혜를 세상에 어떻게 돌려주어야 하는지 알겠다."

법사님의 마무리 말씀이 이어졌습니다.

선주법사 님: 그 청년의 소감을 들으면서 느꼈던 감동과 고마움을 오늘 이곳 뉴욕정토회 여러분들과 꼭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 옛날 저는 알지 못했습니다. 이런 날, 이런 장소에서 제가 여러분에게 ‘뉴욕정토회 여러분! 고맙습니다. 여러분의 시작이 이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라고 인사할 날이 오리라는 것을 말입니다. 해외정토회의 첫 시작인 뉴욕정토회, 그리고 JTS의 시작까지 함께 해주신 여러분들께 다시 한번 깊은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대중 박수)

2017년 12월, 맨하탄에서 ‘Peace in Korea’ 평화행진 중. (뉴욕, 뉴저지, 맨하탄 도반들)
▲ 2017년 12월, 맨하탄에서 ‘Peace in Korea’ 평화행진 중. (뉴욕, 뉴저지, 맨하탄 도반들)

법회 후, 뉴욕법당의 일원임이 자랑스러웠다는 나은영 님의 소감입니다.

나은영 님: "선주법사님은 제게는 인도 성지순례를 함께 한, 나름 생각하기로 고행(?)을 함께 한 도반이면서 스승입니다. 오늘 선주법사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설렘과 반가움으로 아침부터 서둘러 법당으로 향했습니다. 뉴욕법당의 지난 30여 년의 역사를 설명하시며, 정토회가 지금처럼 세계 곳곳으로 뻗어 나갈 수 있는 발판을 만든 곳이 바로 이곳, 뉴욕정토회라 하셨습니다. 법당에서 늘 뵙는 분들이 그간 꾸준히 그 일을 해 온 너무나 대단한 분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법륜스님을 통해 큰 가르침을 받고, 곁에서 꾸준히 수행하시는 보살님들을 보며 늘 많은 것을 얻습니다. 평범한 모습과는 다르게 결코 평범하지 않은, 그분들의 역사 속에 JTS도 있고 해외정토회도 있었습니다. 오늘, 그분들이 계신 이곳에 제가 있다는 사실이 참 감사합니다."

그 자리에 누구보다 벅찬 마음으로 함께 했을 최경숙 님께 소감을 여쭈었습니다.

최경숙 님: "선주법사님의 뉴욕정토회 초창기 원로라는 치하를 들으며 초발심 때를 회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무명을 깨우쳐 괴로움이 없는 천상의 행복을 살겠다는 야무진 꿈으로 시작한 때가 벌써 26년 전이네요. 오직 불심으로 시작한 뉴욕정토회와 '배고픈 이는 먹어야 하고, 아픈 사람은 치료받아야 하며, 어린이는 제때 배워야 한다'는 기본 권리를 이념으로 세워진 미국 JTS의 설립 이사로 동참할 수 있었던 일에 새삼 뿌듯함이 느껴집니다. 당시 참여한 이사와 총무들 몇몇은 지금은 다른 곳에 계시지만, 한분 한분의 고마움을 되짚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세속의 탐진치를 끊어내지 못한 채 중생의 삶을 살고 있지만, 30년을 꾸준히 이 자리에서 수행자의 길을 걷고 있는 제 자신에게 자긍심을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여러 훌륭한 도반들이 있어 뉴욕정토회가, 그리고 JTS가 해외에 널리 퍼져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어 말할 수 없이 든든하고 큰 보람을 느낍니다. 저 역시 이런 시간 갖게 해주신 법사님께 감사드립니다."

법회 후 뉴욕, 뉴저지, 맨하탄법당 도반들과 함께
▲ 법회 후 뉴욕, 뉴저지, 맨하탄법당 도반들과 함께


법회를 마치고 돌아가는 한분 한분의 얼굴에 뉴욕정토의 일원이라는 자긍심이 가득합니다. 오늘 우리는 뉴욕정토회의 또 다른 30년을, 그리고 JTS의 새로운 30년을 기약하며 또 한 발 내딛습니다.

최경숙 님의 살아오신 발자취가 궁금하신가요? 2015년 7월 정토행자의 하루에 최경숙 님의 수행담 이 있습니다. 함께 읽어보시면 뉴욕정토회의 더 많은 이야기를 보실 수 있습니다.

글_박승희 희망리포터 (뉴저지법당)
편집_이진선 (해외지부)